
《사기(史記)》 본기(本紀) 제 1편 - 오제본기(五帝本紀)
서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총 130권, 본기(本紀) 12권으로 시작되는 방대한 역사 서술이다. 그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오제본기(五帝本紀)」다. 이 편은 중국 상고사(上古史)의 출발점을 이루는 다섯 성왕(聖王), 즉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의 사적을 다룬다. 사마천이 하필 이 다섯 인물로부터 역사 서술을 시작한 것은 단순한 연대기적 선택이 아니라, 중국 문명의 기원과 정치적 정통성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사관(史觀)의 문제와 직결된다.
주목할 점은 「오제본기」가 다루는 시대가 문자 기록이 확립되기 이전, 즉 전설과 신화의 영역에 걸쳐 있다는 사실이다. 사마천 자신도 이 시기에 관한 자료의 부족과 이설(異說)의 혼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여러 문헌과 각지의 구전, 그리고 자신이 직접 답사한 유적과 노인들의 전언을 종합하여 하나의 정합적인 서사를 구축해냈다. 이 글에서는 오제본기의 구성과 각 제왕의 사적, 그리고 사마천이 이 편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역사 서술의 원칙과 사상적 의도를 살펴본다.
본론
1. 오제(五帝)의 계보와 사적
「오제본기」가 다루는 첫 번째 인물은 황제(黃帝)다. 성은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으로 전해지며, 신농씨(神農氏)의 쇠퇴기에 제후들 간의 혼란을 평정하고 치우(蚩尤)를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격파함으로써 천하의 패권을 확립한 인물로 그려진다. 사마천은 황제를 단순한 무력의 정복자가 아니라, 사시(四時)와 오행(五行)의 원리를 살펴 역법(曆法)을 정비하고 문물제도의 기초를 놓은 문명의 창시자로 서술한다. 이는 이후 중국 역사에서 황제가 '중화 문명의 시조'로 신성화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황제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손자인 전욱(顓頊)이다. 전욱은 신령스러운 지혜와 계획성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며, 특히 제사와 귀신 섬김의 예법을 정비하고 오행의 질서에 따라 만물을 다스렸다고 전한다. 이어 등장하는 제곡(帝嚳)은 전욱의 조카뻘 되는 인물로, 공평무사한 통치와 백성에 대한 자애로 칭송받는다. 사마천은 제곡에 대해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이면 어디든 그 은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는 식의 표현을 빌려 이상적인 성군의 상을 그려낸다.
이 계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요(堯)와 순(舜)이다. 요는 근검과 겸양의 덕을 갖춘 군주로서, 자신의 아들 단주(丹朱)가 불초함을 알고 천하를 아들이 아닌 현자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사방의 제후와 신하들에게 두루 인재를 추천받은 끝에 발탁된 인물이 바로 민간에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순이었다. 요는 순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내고 여러 관직을 두루 맡겨 그 능력을 시험한 뒤, 마침내 섭정을 거쳐 제위를 선양(禪讓)했다.
순의 치세는 「오제본기」에서 가장 상세히 서술되는 부분이다. 순은 완악한 아버지 고수(瞽叟)와 계모, 이복동생 상(象)의 지속적인 박해 속에서도 효와 우애를 잃지 않은 인물로 그려지며, 이러한 개인적 덕성이 곧 그가 천하를 다스릴 자격을 얻는 근거가 된다. 순은 즉위 후 우(禹)에게 치수(治水)를, 후직(后稷)에게 농사를, 설(契)에게 교화를, 고요(皋陶)에게 형벌을 각각 맡기는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이는 후대 유가(儒家)에서 이상적 관료제의 원형으로 거듭 언급되는 대목이다.
2. 선양(禪讓)의 논리와 정치적 정통성
「오제본기」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선양'의 논리다. 요가 아들이 아닌 순에게, 순이 다시 자신의 아들 상균(商均)이 아닌 우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서사는 혈연에 의한 세습이 아니라 덕과 능력에 의한 계승이야말로 이상적인 왕위 계승의 방식임을 강조한다. 이는 사마천이 활동하던 한(漢) 무제(武帝) 시대의 정치 현실, 즉 세습 군주제가 확고히 자리 잡은 상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상론이다.
그러나 사마천이 이러한 선양의 서사를 본기의 첫머리에 배치한 것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이후 전개될 하(夏)·은(殷)·주(周)의 세습 왕조사, 나아가 진(秦)·한(漢)의 역성혁명사 전체를 조망하는 하나의 규범적 기준을 제시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즉 권력의 정당성은 혈통 자체가 아니라 덕치(德治)의 실현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관을 오제본기를 통해 먼저 천명한 뒤, 이후의 역사를 그 기준에 비추어 평가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3. 사료 비판과 사마천의 서술 태도
「오제본기」의 말미에서 사마천은 태사공왈(太史公曰)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서술 방법론을 명확히 밝힌다. 그는 《상서(尙書)》가 요임금 이후의 일만을 기록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제자백가들이 황제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문장이 정제되지 않아 학자들이 즐겨 다루지 않았음을 언급한다. 이에 사마천은 서쪽으로는 공동산(空桐山)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탁록을 지나며 동쪽으로는 바다에 다다르고 남쪽으로는 장강·회수를 건너는 등 각지를 답사하며 촌로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를 직접 채집했다고 밝힌다.
이러한 태도는 사마천의 역사 서술이 단순히 문헌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현장 답사와 구전 채록을 통한 실증적 검증을 거친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는 여러 이설 가운데 "그 언사가 우아하고 바른 것을 가려 뽑아" 서술했다고 밝힘으로써, 전설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나름의 사료 비판 기준을 견지했음을 드러낸다. 이는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모호한 상고사를 다룸에 있어 사마천이 취한 독특한 절충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결론
「오제본기」는 단순히 중국 상고시대 다섯 성왕의 행적을 나열한 기록이 아니다. 이 편은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관, 즉 덕치와 인재 등용을 통한 정치적 정당성의 확립이라는 주제를 최초로 제시하는 서장(序章)의 역할을 수행한다. 황제의 문명 창시, 전욱과 제곡의 공평한 통치, 요·순의 선양을 통한 이상적 권력 계승은 이후 하·은·주 삼대와 진·한 제국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역사 서술의 규범적 좌표로 기능한다.
또한 이 편은 사마천이 신화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현장 답사와 자료 비판을 통해 나름의 실증적 태도를 견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후대 중국 역사학의 방법론적 전범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오제본기가 그려낸 이상적 성왕상은 이후 유가 정치사상의 핵심 텍스트로 기능하며,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정치철학에서 '선양'과 '덕치'의 원형적 서사로 거듭 소환되고 있다. 결국 「오제본기」는 상고사의 복원이라는 표면적 목적을 넘어, 《사기》 전체의 사상적 기틀을 놓는 초석으로서 그 역사적·문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기(史記)》전체 130권 종합 목록
「사기」는 전설상의 오제(五帝)로부터 전한 무제(武帝) 시대까지를 다루는 기전체(紀傳體) 형식의 중국 역사서로, 본기·표·서·세가·열전 다섯 부문 총 13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는 각 부문의 전체 목록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Ⅰ. 본기(本紀)
역대 제왕의 사적을 편년체로 기록 · 총 12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제본기(五帝本紀) | 황제(黃帝)·전욱·제곡·요(堯)·순(舜) |
| 2 | 하본기(夏本紀) | 하(夏) 왕조 |
| 3 | 은본기(殷本紀) | 은(상, 商) 왕조 |
| 4 | 주본기(周本紀) | 주(周) 왕조 |
| 5 | 진본기(秦本紀) | 진(秦)의 제후국 시기~통일 이전 |
| 6 |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 진시황·이세황제·자영 |
| 7 | 항우본기(項羽本紀) | 항우 |
| 8 | 고조본기(高祖本紀) | 한 고조 유방 |
| 9 |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 여태후 |
| 10 | 효문본기(孝文本紀) | 한 문제 |
| 11 | 효경본기(孝景本紀) | 한 경제 (저소손 보충) |
| 12 | 효무본기(孝武本紀) | 한 무제 (저소손 보충) |
※ 항우는 황제가 아니었으나 진(秦) 멸망 후 실질적 패권자로서, 여태후는 실권자로서 본기에 편입되었다.
Ⅱ. 표(表)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정리한 연표·월표 · 총 1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삼대세표(三代世表) | 하·은·주 삼대의 제왕 계보 |
| 2 |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 | 춘추시대 12제후국의 연대기 |
| 3 | 육국연표(六國年表) | 전국시대 6국 및 진(秦) |
| 4 |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 | 진 멸망~한 건국 사이의 월별 기록 |
| 5 | 한흥이래제후왕연표(漢興以來諸侯王年表) | 한 건국 이후 제후왕 연표 |
| 6 |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고조 공신 후(侯) 봉작 연표 |
| 7 | 혜경간후자연표(惠景閒侯者年表) | 혜제~경제 연간 후 봉작 연표 |
| 8 | 건원이래후자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후 봉작 연표 |
| 9 |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建元以來王子侯者年表) | 무제 건원 이후 왕자 출신 후 연표 |
| 10 |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 한 건국 이후 장상·명신 연표 (저소손 보충) |
※ 10권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는 후대에 일부가 유실되어 저소손(褚少孫)이 보충하였다.
Ⅲ. 서(書)
정치·사회·문화 제도를 다룬 전문 논술 · 총 8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예서(禮書) | 예법·의례 제도 |
| 2 | 악서(樂書) | 음악과 정치·교화적 기능 |
| 3 | 율서(律書) | 본래 병법·군사, 후반부는 음률 |
| 4 | 역서(曆書) | 역법(曆法) |
| 5 | 천관서(天官書) | 천문(天文), 천인감응 |
| 6 | 봉선서(封禪書) | 봉선(封禪) 의식 |
| 7 | 하거서(河渠書) | 치수(治水)·수리(水利) |
| 8 | 평준서(平準書) | 경제 정책, 물가 평준 |
※ 예서·악서·병서는 원본이 망실되어 예서·악서는 후대 자료로 재구성되었고, 병서는 복원되지 못한 채 율서가 그 역할 일부를 대신한다.
Ⅳ. 세가(世家)
제후국 및 주요 공신·황족 가문의 역사 · 총 30권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1 |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 오(吳)나라 |
| 2 |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 제(齊)나라 (강태공 계열) |
| 3 |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노(魯)나라 (주공 계열) |
| 4 |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燕)나라 |
| 5 | 관채세가(管蔡世家) | 관(管)·채(蔡) |
| 6 | 진기세가(陳杞世家) | 진(陳)·기(杞) |
| 7 |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 위(衛)나라 |
| 8 |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 송(宋)나라 |
| 9 | 진세가(晉世家) | 진(晉)나라 |
| 10 | 초세가(楚世家) | 초(楚)나라 |
| 11 |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 월(越)나라, 구천 |
| 12 | 정세가(鄭世家) | 정(鄭)나라 |
| 13 | 조세가(趙世家) | 조(趙)나라 (전국) |
| 14 | 위세가(魏世家) | 위(魏)나라 (전국) |
| 15 | 한세가(韓世家) | 한(韓)나라 (전국) |
| 16 |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 전씨(田氏) 제나라 |
| 17 | 공자세가(孔子世家) | 공자(孔子) |
| 18 | 진섭세가(陳涉世家) | 진승(陳勝) |
| 19 | 외척세가(外戚世家) | 한대 황실 외척 |
| 20 |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 유교(劉交) 계열 |
| 21 | 형연세가(荊燕世家) | 형왕·연왕 |
| 22 |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 제 도혜왕 유비(劉肥) 계열 |
| 23 |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 소하(蕭何) |
| 24 |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조참(曹參) |
| 25 | 유후세가(留侯世家) | 장량(張良) |
| 26 |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 진평(陳平) |
| 27 |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주발(周勃) |
| 28 |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한 문제 아들 양효왕 |
| 29 | 오종세가(五宗世家) | 한 경제의 다섯 계열 자손 |
| 30 | 삼왕세가(三王世家) | 한 무제의 세 아들 (저소손 보충) |
※ 공자세가(17권)·진섭세가(18권)는 제후가 아니었으나 사상적·역사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세가에 편입된 예외적 사례다.
Ⅴ. 열전(列傳)
인물 중심의 전기, 사기의 압권 · 총 70권
| 권 | 편명 | 권 | 편명 |
| 1 | 백이 열전(伯夷列傳) | 2 | 관·안 열전(管晏列傳) |
| 3 | 노자·한비 열전(老子韓非列傳) | 4 | 사마양저 열전(司馬穰苴列傳) |
| 5 | 손자·오기 열전(孫子吳起列傳) | 6 | 오자서 열전(伍子胥列傳) |
| 7 | 중니제자 열전(仲尼弟子列傳) | 8 | 상군 열전(商君列傳) |
| 9 | 소진 열전(蘇秦列傳) | 10 | 장의 열전(張儀列傳) |
| 11 | 저리자·감무 열전(樗里子甘茂列傳) | 12 | 양후 열전(穰侯列傳) |
| 13 | 백기·왕전 열전(白起王翦列傳) | 14 | 맹자·순경 열전(孟子荀卿列傳) |
| 15 | 맹상군 열전(孟嘗君列傳) | 16 | 평원군·우경 열전(平原君虞卿列傳) |
| 17 | 위공자 열전(魏公子列傳) | 18 | 춘신군 열전(春申君列傳) |
| 19 | 범저·채택 열전(范雎蔡澤列傳) | 20 | 악의 열전(樂毅列傳) |
| 21 | 염파·인상여 열전(廉頗藺相如列傳) | 22 | 전단 열전(田單列傳) |
| 23 | 노중련·추양 열전(魯仲連鄒陽列傳) | 24 | 굴원·가생 열전(屈原賈生列傳) |
| 25 | 여불위 열전(呂不韋列傳) | 26 | 자객 열전(刺客列傳) |
| 27 | 이사 열전(李斯列傳) | 28 | 몽염 열전(蒙恬列傳) |
| 29 | 장이·진여 열전(張耳陳餘列傳) | 30 | 위표·팽월 열전(魏豹彭越列傳) |
| 31 | 경포 열전(黥布列傳) | 32 | 회음후 열전(淮陰侯列傳) |
| 33 | 한신·노관 열전(韓信盧綰列傳) | 34 | 전담 열전(田儋列傳) |
| 35 | 번·역·등·관 열전(樊酈滕灌列傳) | 36 | 장승상 열전(張丞相列傳) |
| 37 | 역생·육가 열전(酈生陸賈列傳) | 38 | 부·근·괴성 열전(傅靳蒯成列傳) * |
| 39 | 유경·숙손통 열전(劉敬叔孫通列傳) | 40 | 계포·난포 열전(季布欒布列傳) |
| 41 | 원앙·조조 열전(袁盎晁錯列傳) | 42 | 장석지·풍당 열전(張釋之馮唐列傳) |
| 43 | 만석·장숙 열전(萬石張叔列傳) | 44 | 전숙 열전(田叔列傳) |
| 45 | 편작·창공 열전(扁鵲倉公列傳) | 46 | 오왕비 열전(吳王濞列傳) |
| 47 | 위기·무안후 열전(魏其武安侯列傳) | 48 | 한장유 열전(韓長孺列傳) |
| 49 | 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 | 50 | 흉노 열전(匈奴列傳) |
| 51 | 위장군·표기 열전(衛將軍驃騎列傳) | 52 | 평진후·주보 열전(平津侯主父列傳) |
| 53 | 남월 열전(南越列傳) | 54 | 동월 열전(東越列傳) |
| 55 | 조선 열전(朝鮮列傳) | 56 | 서남이 열전(西南夷列傳) |
| 57 | 사마상여 열전(司馬相如列傳) | 58 | 회남·형산 열전(淮南衡山列傳) |
| 59 | 순리 열전(循吏列傳) | 60 | 급·정 열전(汲鄭列傳) |
| 61 | 유림 열전(儒林列傳) | 62 | 혹리 열전(酷吏列傳) |
| 63 | 대원 열전(大宛列傳) | 64 | 유협 열전(游俠列傳) |
| 65 | 영행 열전(佞幸列傳) | 66 | 골계 열전(滑稽列傳) |
| 67 | 일자 열전(日者列傳) * | 68 | 귀책 열전(龜策列傳) * |
| 69 | 화식 열전(貨殖列傳) | 70 |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
※ * 표시(38·67·68권)는 원본 유실로 저소손이 보충한 편이다. 70권 태사공자서는 사마천이 130권 전체의 집필 동기와 편찬 취지를 밝힌 서문이다.
구성 요약
| 권 | 편명 | 내용/대상 |
| 本紀 | 본기(本紀) | 12권 — 제왕의 편년 사적 |
| 表 | 표(表) | 10권 — 연표·월표 |
| 書 | 서(書) | 8권 — 제도·문물사 |
| 世家 | 세가(世家) | 30권 — 제후·공신 가문사 |
| 列傳 | 열전(列傳) | 70권 — 인물 전기 |
합계: 130권, 약 52만 6,5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