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제 66편 ㅡ 골계열전(滑稽列傳)
서론
사마천의 열전 체제 안에서 골계열전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자객, 혹리, 유협, 유림 등 대부분의 열전이 특정한 신분이나 행적을 중심으로 인물을 배열하는 데 비해, 골계열전은 익살과 해학, 언어유희를 통해 군주를 깨우치고 세상을 풍자한 인물들을 한데 묶어 서술한다. '골계(滑稽)'란 본디 매끄럽게 잘 돌아간다는 뜻으로, 말재간이 뛰어나 논리가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사마천은 이 열전의 서두에서 "천도는 넓고 넓어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말이 은미하면서도 이치에 맞으면 또한 분란을 풀 수 있다(天道恢恢, 豈不大哉! 談言微中, 亦可以解紛)"고 밝혀, 표면적으로는 우스갯소리처럼 보이는 언사 속에 실은 정치적 간언과 도덕적 훈계라는 진지한 목적이 담겨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사마천의 역사 서술관이 지닌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엄숙한 정론(正論)만이 아니라 해학과 풍자 역시 치세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정색하고 간언하다 목숨을 잃은 충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웃음이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군주의 마음을 움직이고 실질적인 정치적 효과를 거둔 이들의 지혜를 높이 평가하였다. 골계열전에 등장하는 순우곤(淳于髡), 우맹(優孟), 우전(優旃) 세 인물은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군주를 섬겼지만, 공통적으로 웃음 속에 날카로운 진실을 감추어 전달하는 언어의 연금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마천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본론
순우곤과 제나라의 풍간(諷諫)
순우곤은 제(齊)나라 사람으로 데릴사위 출신이었으며 키는 작았으나 언변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하였다. 그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제위왕(齊威王) 앞에서 펼친 "불비불명(不飛不鳴)"의 비유이다. 위왕은 즉위 후 삼 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향락에 빠져 있었는데, 순우곤은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수수께끼 형식을 빌려 물었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궁전 뜰에 앉아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니, 대왕께서는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 위왕은 이 말의 함의를 즉각 알아차리고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를 것이요,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라고 답하며 이후 국정에 전념하여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이 일화에서 비롯된 "일명경인(一鳴驚人)"이라는 성어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순우곤은 또한 초(楚)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자 조(趙)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원군을 얻어내는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술자리에서 위왕이 그에게 얼마나 마시면 취하느냐고 묻자, 그는 상황에 따라 한 말에도 취하고 한 섬에도 취할 수 있다고 답하며, 지나치게 예법에 얽매인 자리에서는 쉬이 취하나 허물없이 즐거운 자리에서는 여덟 섬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비유를 통해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진다(酒極則亂, 樂極則悲)"는 만사개유절도(萬事皆有節度)의 이치를 은근히 깨우쳤다. 이는 단순한 주담(酒談)을 넘어 절제의 미덕을 설파하는 고도의 수사적 전략이었다.
우맹과 초나라 장왕의 애마(愛馬), 그리고 손숙오
우맹은 초(楚)나라의 악인(樂人) 출신으로, 그의 일화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초장왕(楚莊王)이 아끼던 말이 죽자 대부(大夫)의 예로써 장례를 치르려 했던 사건이다. 신하들이 이를 만류하였으나 장왕이 듣지 않자, 우맹은 도리어 대성통곡하며 그 말을 인간의 예가 아닌 왕자(王者)의 예로써 장사 지내야 마땅하다고 과장되게 부추겼다. 관곽을 옥으로 장식하고 제후들로 하여금 조문케 하며 태뢰(太牢)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우맹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듣던 장왕은 비로소 자신의 처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스스로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명을 거두었다. 이는 직접적인 반대가 오히려 군주의 고집을 자극할 수 있음을 간파하고, 도리어 그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스스로 오류를 자각하게 만드는 역설적 간언술이었다.
우맹의 또 다른 일화는 그가 죽은 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아들을 위해 벌인 연극이다. 손숙오는 청렴하게 살다 죽어 그 아들이 곤궁에 처하였는데, 우맹은 손숙오의 생전 의관과 말투를 흉내 내어 장왕 앞에 나타났다. 장왕이 크게 놀라 그를 손숙오로 착각하고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우맹은 이를 계기로 초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위태로운 일인지를 노래로 풍자하며, 결국 장왕으로 하여금 손숙오의 아들에게 봉토를 내리도록 이끌어내었다. 이는 배우의 연기라는 방편을 통해 공신의 후손을 저버린 군주의 무심함을 에둘러 꾸짖은 것으로, 골계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정의를 환기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전과 진나라 조정의 익살
우전은 진(秦)나라의 난쟁이 배우로, 진시황과 이세황제(二世皇帝)를 섬겼다. 진시황이 대규모로 원유(苑囿)를 넓혀 짐승을 기르려 하자, 우전은 그것이 매우 좋은 계책이라며 짐짓 맞장구를 치되, 동쪽에서 도적이 쳐들어오면 사슴들로 하여금 뿔로 이를 막게 하면 될 것이라는 황당한 비유를 덧붙여 진시황이 스스로 그 계획의 부당함을 깨닫고 그만두게 하였다. 또한 이세황제가 성벽에 옻칠을 하려 하자, 우전은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나 다만 그 넓은 성벽에 볕을 가릴 지붕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기지 넘치는 반문으로 무모한 공사를 막아내었다. 우전의 언사는 순우곤이나 우맹에 비해 한층 더 즉흥적이고 기지에 의존하는 성격을 띠었으나, 그 근본적인 목적—군주의 그릇된 판단을 웃음으로 교정한다는—은 동일한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골계라는 정치적 수사의 본질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신분상 결코 높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데릴사위, 악인, 배우라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었던 이들이 오히려 정색한 대신들이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 직언을 웃음이라는 안전장치 속에 숨겨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권력에 대한 직접적 저항이 아니라 우회적 풍자를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약자의 화법이며, 동시에 군주로 하여금 체면을 잃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시정할 여지를 남겨주는 정치적 배려이기도 하였다.
결론
골계열전은 엄숙한 정사(正史)의 틀 안에서 웃음과 해학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정면으로 끌어들인 사마천의 대담한 시도였다. 그는 순우곤의 비유, 우맹의 연극적 간언, 우전의 즉흥적 기지를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이 반드시 근엄하고 직설적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완곡하고 유쾌한 언어가 때로는 더욱 강력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 세 인물은 신분의 미천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군주의 폭주를 저지하고 백성과 공신의 이익을 대변하였으니, 이는 결코 하찮은 우스갯소리로 치부될 수 없는 역사적 무게를 지닌다.
나아가 사마천이 이러한 인물들을 별도의 열전으로 독립시켜 다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역사 서술이 단순히 제왕장상(帝王將相)의 위업만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에 기여한 이들에게까지 폭넓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방증한다. 골계열전이 전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지혜와 용기는 반드시 근엄한 얼굴과 높은 지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웃음과 해학 속에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형화된 권위의 형식을 넘어서는 지혜의 다양한 발현 가능성을 성찰케 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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