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제65편 ㅡ「영행열전(佞幸列傳)」
서론
사마천은 『사기』 열전 곳곳에서 권력의 향배와 인간 군상의 다양한 면모를 그려왔다. 자객과 유협처럼 목숨을 걸고 의리를 지킨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직후, 사마천은 정반대의 인간형으로 눈을 돌린다. 바로 「영행열전」이다. 이 편은 실력이나 공적이 아니라 오로지 군주의 총애 하나만으로 부귀와 권세를 누렸던 인물들, 즉 한나라 초기부터 무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곁에서 아첨과 미모로 신임을 얻은 신하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은 편의 첫머리에서 예로부터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반드시 학식이나 능력만이 아니라 때로는 용모와 아첨으로도 총애를 얻는 자들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는 비단 여인들만의 일이 아니라 남자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행열전」을 단순한 인물 열전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과 군주-신하 관계의 본질을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치철학적 텍스트로 만든다. 사마천은 담담한 필치로 총애받는 신하들의 흥망을 서술하면서도, 그 이면에 권력의 무상함과 인간관계의 취약함이라는 날카로운 통찰을 숨기지 않는다.
본론
「영행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먼저 한 고조 유방 시대에는 적유(籍孺)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특별한 재능이나 공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용모가 뛰어나 고조의 총애를 받았다. 혜제 시대에는 굉유(閎孺)라는 인물이 비슷한 방식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었다. 이들의 사례는 짧게 서술되지만, 개국 초기부터 이미 군주의 사적인 총애가 관직과 부귀로 이어지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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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은 문제 시대의 등통(鄧通)이다. 등통은 배를 젓는 뱃사공에 불과했으나, 문제가 꿈에서 하늘로 오르지 못하다가 어떤 이가 밀어 올려주어 하늘에 이르렀는데 그자의 옷차림이 등통과 흡사했다는 일화로 인해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등통에게 촉군의 구리 광산을 하사하여 스스로 돈을 주조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로써 등통이 발행한 '등씨전(鄧氏錢)'이 천하에 유통될 정도로 그의 부는 천자에 버금갔다. 그러나 사마천은 여기서 인간사의 냉혹한 반전을 보여준다. 문제가 종기를 앓아 등통이 입으로 고름을 빨아주는 지극한 충성을 보였을 때, 훗날 태자였던 경제가 같은 일을 하기 꺼려했던 일화를 병치시킴으로써, 총애가 진실한 충성심과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문제가 죽고 경제가 즉위하자 등통은 곧바로 탄핵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결국 굶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한때 천자와 맞먹는 부를 누렸던 자가 끼니조차 잇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 극적인 대비는 「영행열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즉 총애로 얻은 권세는 뿌리가 없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무제 시대로 넘어가면 한언(韓嫣)과 이연년(李延年)이 등장한다. 한언은 무제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인연으로 총애를 받아 상대부에 이르렀으나, 지나치게 교만하고 방자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태후의 노여움을 사서 사사되고 만다. 이연년은 음악적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인물로, 그의 누이가 무제의 총애를 받은 이부인이었던 인연까지 더해져 협률도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역시 누이가 죽고 총애가 식자마자 집안이 몰락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마천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 총애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특수한 인연과 상황에 기대어 있을 때, 그 기반이 사라지면 곧바로 권세도 함께 소멸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편의 말미에서 사마천은 태사공왈을 통해 총결한다. 그는 힘써 농사짓는 것이 흉년을 만나는 것만 못하고, 훌륭한 관리가 되는 것이 오히려 요행히 은총을 입는 것만 못하다는 세간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이러한 아첨과 총애로 얻은 부귀가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역사적 사실로써 논증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사마천이 평생 목도한 한나라 조정의 실상에 대한 냉철한 관찰의 결과였다.
결론
「영행열전」은 짧은 분량 안에 권력의 본질에 대한 사마천의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등통, 한언, 이연년 등의 삶은 하나같이 화려한 정점과 비참한 몰락이라는 극단적 대비를 이루며, 총애란 군주 개인의 변덕과 상황에 따라 언제든 거두어질 수 있는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등통의 사례에서 드러나는 굶어 죽는 결말은, 촉군의 구리 광산까지 하사받았던 자의 몰락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마천이 이 편을 자객열전과 유협열전 바로 다음에 배치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목숨을 걸고 의리를 실천한 이들과, 아첨으로 일신의 안위와 부귀만을 추구한 이들을 나란히 배열함으로써, 사마천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만든다. 「영행열전」은 표면적으로는 총신들의 흥망사이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과 도덕,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사마천의 예리한 역사관이 관통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권력과 총애의 속성을 성찰하게 하는 시대를 초월한 통찰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