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제 69편 ㅡ 화식열전(貨殖列傳)
서론
『사기』 열전 61편인 화식열전(貨殖列傳)은 재물을 늘리고 경제 활동에 종사하여 부를 이룬 인물들의 사적을 통해 사마천 자신의 독창적인 경제사상을 펼쳐 보인 편이다. 화식(貨殖)이란 재화를 늘려 부를 증식한다는 뜻으로, 이 열전은 유가(儒家)적 명분론에서 흔히 천시되던 상업과 재물 추구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사기』 전체 가운데서도 파격적이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사마천은 이 편의 서두에서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이상, 즉 백성이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사는 세상을 이상으로 여기는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인간이란 본디 이목(耳目)의 즐거움과 몸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이러한 욕망은 억지로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임을 역설하였다. 나아가 그는 농업과 공업, 상업, 산림과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각기 자신의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해 재물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이치이며, 이러한 각자의 이익 추구가 결국 조화를 이루어 재화가 잘 유통되는 것이 바로 도(道)에 부합하는 다스림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부국(富國)과 이재(理財)의 문제를 정치의 근본 과제로 인식한 사마천의 탁월한 경제적 통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론
사마천은 화식열전의 서두에서 정치의 등급을 논하며, 최상의 다스림은 백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따르는 것이요, 그 다음은 이익으로써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요, 그 다음은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며, 가장 못한 것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그는 각 지역의 물산과 풍토,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특성을 상세히 서술하였다. 산서(山西) 지역은 목재와 대나무, 옥이 풍부하고 산동(山東)은 물고기와 소금, 옻이 나며, 강남(江南)은 목재와 코뿔소 뿔, 진주 등이 산출되고 용문(龍門)과 갈석(碣石) 이북은 말과 소, 양이 많이 난다고 하여, 천하의 물산이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분포하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교역을 통해 유통됨으로써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짐을 논증하였다.
이어 사마천은 범려(范蠡), 자공(子貢), 백규(白圭) 등 이재에 능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사적을 소개하였다.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범려는 공을 이룬 뒤 관직에서 물러나 이름을 도주공(陶朱公)으로 바꾸고 상업에 종사하였는데, 그는 시세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여 물건이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팔아 열아홉 해 동안 세 차례나 천금(千金)의 재산을 모았다가 이를 가난한 벗들과 먼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반복하였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 역시 물건을 사고파는 데 능하여 제후들과 대등하게 교유할 정도의 부를 이루었으며, 위(魏)나라의 백규는 시세의 변화를 살펴 남들이 버리면 자신은 사들이고 남들이 사들이면 자신은 팔아버리는 독창적인 상술로 이재의 도를 완성하여 후대에 이재를 논하는 자들이 모두 그를 원조로 삼았다고 전한다.
사마천은 또한 목축과 제철, 소금 생산 등 특정 산업에 종사하여 거부(巨富)를 이룬 인물들도 상세히 소개하였다. 오지(烏氏)의 나(倮)는 목축으로 크게 성공하여 진시황으로부터 봉군(封君)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으며, 파(巴) 지역의 과부 청(淸)은 대대로 단사(丹沙) 광산을 경영하여 그 재산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진시황이 그녀를 정부(貞婦)로 예우하여 회청대(懷淸臺)까지 지어주었다. 촉(蜀) 지역의 탁씨(卓氏)와 정정(程鄭)은 철광을 경영하여 부를 이루었고, 완(宛)의 공씨(孔氏) 역시 제철업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미천한 신분이나 변방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근면함과 시세를 읽는 안목만으로 왕후에 버금가는 부를 이루었으니, 사마천은 이를 통해 부를 이루는 데는 반드시 정해진 직업이나 신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근면과 지혜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무릇 재물이 없는 자는 힘써 일하고, 재물이 조금 있는 자는 지혜를 다투며, 이미 부유한 자는 시세를 다툰다는 이재의 일반 원리를 제시하고, 오랜 세월 청빈함을 자랑하며 가난 속에서도 인의를 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나 실제로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헛되이 가난을 미화하는 것은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라고 대담하게 논파하였다. 그는 나아가 천금을 가진 부호의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처형당하지 않는다는 세간의 속담을 인용하며, 재물의 유무가 실질적으로 사람의 지위와 대우, 심지어 법 앞에서의 처지마저 좌우하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였다.
결론
화식열전은 유가적 명분론이 지배적이었던 한대의 사상적 풍토 속에서 재물과 상업의 가치를 정면으로 긍정하고, 부의 추구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부합하며 나아가 국가 경제의 근본임을 논증한 사마천의 독창적이고 대담한 저술이다. 그는 범려와 자공, 백규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부가 반드시 신분이나 특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근면과 시세를 읽는 지혜에서 비롯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각 지역의 물산과 그 유통이 이루어내는 자연스러운 경제 질서를 통해 위정자가 백성의 이익 추구를 억누르기보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는 것이 최선의 다스림임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사마천의 경제사상은 후대의 정통 유가 사관(史觀)에서는 종종 이단시되거나 경시되었으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의 자율적 기능과 물산의 지역적 분업, 그리고 개인의 근면과 창의가 부의 원천이 된다는 점을 꿰뚫어 본 탁월한 통찰로 재평가받고 있다. 화식열전은 이러한 점에서 『사기』 열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근대적이고 실용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편으로, 사마천이라는 역사가가 지녔던 사유의 폭과 깊이를 여실히 증명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