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반구천의 암각화
서론
2025년 7월 12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이 신청한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영어 명칭은 '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이다. 이 유산은 2010년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 만에 세계유산으로서 빛을 보게 되었다. 등재와 함께 한국은 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을 합쳐 모두 17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유산의 진짜 이야기는 등재라는 행정적 사건보다 훨씬 오래전, 울산 태화강 상류의 한 지류에서 시작된다. 신석기 사람들이 바위에 고래를 새긴 순간부터, 반구천은 이미 인류 최초의 기록물 가운데 하나를 품고 있었다.
본론
1. 하나의 이름, 두 개의 바위
'반구천의 암각화'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함께 아우르는 단일 유산이다. 두 유적은 서로 약 2㎞ 떨어져 있으며, 천전리 각석이 반구대 암각화보다 1년 앞선 1970년에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반구대라는,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인근 기암절벽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중류 절벽에 새겨져 있으며, 1971년에 발견되어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암각이 집중된 주 암면은 너비 약 8~10m, 높이 약 4~5m에 이르고, 주변 10여 개의 바위에서도 그림이 확인된다.
발견 경위 또한 흥미롭다. 유적은 천전리 각석을 발견한 이듬해인 1971년 12월 25일, 문명대·이융조·김정배 세 사람이 천전리 각석을 답사하던 중 지역 주민의 제보를 받아 이루어졌다. 암면은 북향으로 되어 있어 해 질 무렵 잠깐만 빛이 들어오며, 윗부분이 앞으로 돌출된 암음 구조를 이루고 있어 오랜 세월 그림이 비교적 보호될 수 있었다.
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기록
반구대 암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소재에 있다. 300여 점의 사냥·어로 관련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그중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약 7천 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고래 사냥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유적 전체는 약 7천 년에서 3,500년 전 사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 초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유적을 세계 선사미술사에서 독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묘사의 정교함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 사냥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세계 선사미술학계에 널리 알려진 유적으로,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작살에 맞은 고래, 사냥해 배에 묶어 끌고 가는 장면 등을 세세하게 표현했다. 노르웨이 알타의 암각화에도 선사시대 고래 사냥 장면이 남아 있지만, 반구대처럼 고래 사냥의 전 과정이 표현된 예는 없으며, 해양 수렵과 육지 수렵이 한 화면에 겹쳐 나타나는 것도 다른 곳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고래 외에도 야생동물 수렵 장면과 의미를 알기 힘든 다양한 문양·기호들이 함께 새겨져 있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너비 약 9.8m, 높이 약 2.7m 규모의 중심 암면과 주변 4곳의 암면에 걸쳐 620여 점의 그림과 문자가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의 기하학적 문양뿐 아니라 신라시대에 이르러 새겨진 명문까지 함께 남아 있어, 한 장소에 수천 년에 걸친 인간 활동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는 셈이다.
3.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유산에 대해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인 그림과 독특한 구도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며, 다양한 고래와 고래잡이의 주요 단계를 담은 희소한 주제를 선사시대 사람들의 창의성으로 표현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암각화 관련 유적으로는 이탈리아의 발카모니카 암각화, 포르투갈·스페인의 코아 계곡과 시에가 베르데 선사시대 암각화 등이 이미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데, 반구천의 암각화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4. 반세기의 수몰 위기
이 유산의 역사에는 그늘도 짙게 드리워 있다. 암각화는 사연댐이 완공된 1965년 이후인 1971년 12월에야 발견되었는데, 이 때문에 매해 대곡천 수위가 상승하는 6~8개월 동안 물속에 잠기며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보존과 용수 확보를 둘러싸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오랫동안 대립했고, 구체적인 보존 방법을 놓고도 갈등이 이어져 왔다. 발견 초기에는 300개가 넘는 그림이 육안으로 확인되었지만, 이후 50년간 침수로 인한 훼손이 누적되면서 현재는 식별 가능한 그림의 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를 결정하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위원회는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할 것, 반구천세계암각화센터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것, 관리 체계에서 지역 공동체와 주민의 역할을 공식화할 것,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주요 개발계획을 세계유산센터에 알릴 것을 권고했다.
5. 등재 이후, 지역의 움직임
등재 1주년을 맞아 울산은 후속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근 동매산 습지 경관을 정비하고 반구천 순환버스를 운영하는 한편, 하반기에는 세계유산 표지석 설치와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 대곡마을 진입로 정비 등 기반시설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결론
반구천의 암각화는 단순히 '오래된 그림'이 아니다. 7천 년 전 고래를 쫓던 사람들의 손끝과, 그로부터 수천 년 뒤 같은 바위에 이름과 문구를 새긴 신라인의 손끝이 한 장소에 겹쳐 있는, 시간 그 자체의 지층이다.
동시에 이 유산은 개발과 보존이 반세기 동안 충돌해 온 현장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지금, 반구천에 새겨진 것은 선사인의 창의성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내야 할 우리 세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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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 바위에 새긴 시대의 층위
서론
울산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상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국보급 암각화가 있다.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새겨진 암각화로, 1970년 12월 동국대학교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고 1973년 5월 8일 국보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2025년 7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대곡리 반구대가 선사인의 고래 사냥을 생생히 증언한다면,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신라 화랑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인간 활동의 지층을 한 바위 위에 겹겹이 새겨두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본론
1. 바위, 그 자체의 조건
천전리 각석은 가로 9.5m, 높이 2.7m의, 마치 인위적으로 다듬은 듯한 바위면에 조각이 가득하다. 바위면이 아래쪽으로 약 15도 기울어져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위치에 있었던 덕분에, 자연적인 풍화로부터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런 지형적 조건이야말로 수천 년에 걸친 여러 시대의 기록이 한 바위 위에 겹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2. 상부 — 선사시대의 기하학적 문양
각석은 크게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상부에는 선사시대의 점각 기하학적 문양과 각종 동물상 및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구체적으로 바위면 왼쪽 상단에는 사슴, 물고기 같은 신석기시대 그림이, 중앙 상단에는 동심원·마름모·물결무늬 같은 청동기시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상부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 문양을 이어받은 것으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3. 하부 — 신라인이 남긴 방명록
하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하부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으며, 명문에는 신라 화랑의 이름과 관직 등이 담겨 있어 신라사 연구 자료로 널리 활용된다. 전체적으로 오른쪽을 먼저 새기고(원명), 왼쪽을 나중에 새겼다(추명).
가장 핵심적인 두 명문이 바로 원명과 추명이다.
「천전리서석」 원명은 각석 하단부 중앙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자리하며, 새길 부분을 구획한 뒤 편평하게 다듬어 12행에 이르는 긴 명문을 새겼다. 원명 첫머리의 을사(乙巳)라는 간지와 주인공인 사부지갈문왕이 문헌 기록의 입종갈문왕에 해당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 을사년은 법흥왕 12년(525)으로 추정된다.
원명의 실제 내용은 뜻밖에 소박하다. 신라 법흥왕 12년, 사탁부를 다스리던 사부지 갈문왕과 그 누이 어사추여랑왕을 비롯한 여럿이 놀러 왔다가 글씨 새기기 좋은 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을 '서석곡'이라 이름 짓고 일종의 방명록처럼 새겨 남겼다는 내용이다. 함께 온 사람들 가운데 사냥을 즐긴 사람, 음식을 준비한 사람, 명문을 직접 새긴 사람까지 모두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추명은 이보다 14년 뒤에 이어진 기록이다. 추명의 연대는 명문 5행에 나오는 기미년칠월오일을 기준으로 법흥왕 26년(539)으로 비정된다. 명문에 따르면 14년 전 이곳을 방문했던 사부지갈문왕과 어사추녀랑왕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이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지몰시혜비, 부걸지비, 심맥부지 왕자 일행이 새벽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을 남겼다. 즉 왕과 왕비가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법흥왕 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추명을 새기는 과정에서 원명 옆에 크게 새겨져 있던 귀족 복장 인물상이 다듬어지며 지워졌고, 지금은 무릎 아랫부분만 남아 있다. 후대의 기록이 앞선 시대의 그림 위에 덧새겨지는, 이 유적 특유의 중층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4. 신라 사회를 비추는 창
명문의 역사적 가치는 단순한 방문 기록을 넘어선다. 명문 중에는 사탁부라는 부명이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 이는 이곳이 신라 6부 가운데 하나인 사탁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였음을 뜻하며, 사탁부 고유의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여러 화랑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어, 당시 많은 화랑이 이곳을 찾아 수련의 도량으로 삼았음을 전해준다.
나아가 명문 중에는 고구려 관등 '대형(大兄)'이 '대형가(大兄加)'로 표기된 사례가 있는데, 이는 이 명문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표기로, 삼국 간 교류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5. 함께 남아 있는 것들
각석 주변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또 다른 흔적도 공존한다. 반구천 맞은편에는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울산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모바일 앱을 통해 백악기 시대 이 일대에 서식했던 22종의 공룡을 증강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선사시대 기하학 문양, 신라 왕실의 방명록, 그리고 중생대 공룡의 발자국까지—한 계곡 안에 지질시대부터 역사시대까지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셈이다.
결론
천전리 각석은 '하나의 유적'이라기보다 '겹쳐 쓰인 여러 개의 유적'에 가깝다. 신석기인의 기하학 문양 위에 청동기인의 그림이, 그 곁에 신라 왕실의 나들이 기록과 화랑들의 방명록이 새겨졌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인류의 첫 고래잡이를 증언하는 자연사적 기록이라면, 천전리 각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서다.
두 유적이 '반구천의 암각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세계유산에 오른 것은, 이 계곡이 단절 없이 이어져 온 인간 기록 행위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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