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 성리학이 빚어낸 향촌의 학당
1. 개관과 등재 과정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에 걸쳐 건립된,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기관의 유형을 대표하는 9개 서원으로 이루어진 연속유산으로, 한국의 성리학과 연관된 문화적 전통에 대한 탁월한 증거로 평가받는다.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9곳을 세계유산 목록에 최종 등재하였다.
이 등재는 순탄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국의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2015년 1월 정식 등재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반려(Defer)' 의견에 따라 2016년 4월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유사한 국내외 유산들과의 비교 연구를 보완하고, 9개 서원이 갖는 연속유산으로서의 논리를 강화한 신청서를 새로 작성하여 2018년 1월 재제출하였고, 약 1년 반의 심사 끝에 2019년 5월 이코모스로부터 '등재 권고(Inscribe)' 의견을 받았다. 재도전 끝에 이루어진 이번 등재로 대한민국은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2. 9개 구성 유산
'한국의 서원'을 구성하는 9개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이며, 이들은 경상북도·경상남도·대구·전라남도·전라북도·충청남도 등 한국의 중부와 남부 여러 지역에 걸쳐 위치하고 있고,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3. 등재의 의의 — 중국 서원과의 차별성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이 서원들이 단순히 과거시험 준비기관에 그쳤던 중국의 서원과 달리, 지역 문화의 거점이자 지역 성현들을 배향하는 곳이라는 점에 있었다. 서원은 중국에서 도입된 성리학을 향촌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변형시켜, 학습에 정진할 수 있는 교육체계와 유형적 구조를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학습과 배향, 상호교류라는 세 기능이 서원의 건물 배치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는 점이 특출한 가치로 인정받았다. 즉 한국의 서원은 성리학이라는 외래 사상이 특정 지역과 특정 인물(선현)에 뿌리내리며 토착화되어 간 과정을 건축적으로 증언하는 유산이라는 데에 그 보편적 가치가 있다.
4. 서원 건축의 공간 구성 원리
서원에는 학문에 힘쓰며 마음을 수양하는 이른바 장수(藏修)의 공간이 구현되어 있다. 강학공간은 강의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중심 건물인 강당과, 유생들이 기숙하는 동재·서재의 재사(齋舍)로 구성되며, 여기에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 그리고 자연을 완상하며 휴식하는 유식(遊息)공간이 더해져 서원의 3대 공간 축을 이룬다. 유생들은 학문하는 긴장에서 벗어나 유식공간에 해당하는 누각에 올라 자연을 감상하며 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러한 공간 구성은 서원이 자리한 지역의 자연환경과 긴밀히 어우러지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배치하는 방식은 서원마다 차이를 보인다. 도산서원은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을 서로 다른 축으로 배치하였으며, 이러한 배치 방식은 이후 병산서원을 비롯한 인근 서원 건축에 영향을 끼쳤다. 반면 필암서원은 강당이 사묘(祠廟)를 바라보는 구조를 취한, 사묘 중심 배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도동서원의 경우 중심축을 경계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진입·강학·제향 세 공간의 위계를 뚜렷하게 구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학술적으로도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공간구문론(Space Syntax)으로 비교 분석한 연구에서, 진입공간·강학공간·제향공간·지원공간 모두에서 두 서원이 서로 다른 공간적 연결성과 통제성, 접근성을 보인다는 점이 확인된 바 있어, 같은 성리학적 이념을 공유하면서도 각 서원이 저마다 개별적인 건축적 해法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5. 소수서원 — 최초의 사액서원
9개 서원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곳은 소수서원이다. 1543년(중종 38)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성리학을 한반도에 처음 도입한 고려의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과 후진 양성을 위한 학교를 함께 건립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처음에는 백운동서원이라 불렸다. 흥미롭게도 이 서원은 숙수사(宿水寺)라는 사찰의 옛터에 세워졌는데, 이는 고려 이래의 불교적 공간이 조선의 성리학적 공간으로 전환되는 상징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향촌 사회에 서원을 본격적으로 정착·보급시킨 인물은 퇴계 이황으로, 그는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1549년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현판과 국가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에 1550년(명종 5)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소수라는 이름은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사액서원이 되면서 왕의 친필 현판과 함께 서적·노비·토지, 면세·면역의 혜택까지 뒤따라 다른 서원들과 격을 달리하게 되었다.
소수서원은 해마다 30명가량을 뽑아 1888년 마지막 원생을 받을 때까지 4,000여 명의 선비를 배출한 인재 양성의 요람이었다. 본전인 문성공묘는 안향을 비롯해 안축·안보·주세붕을 모시고 있는데, 다른 서원과 달리 '사(祠)'가 아닌 '묘(廟)'라는 격 높은 명칭을 사용하는 점이 이례적이다. 1868년 흥선대원군이 전국적인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최초로 세워진 서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유일하게 훼철을 면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6. 도산서원 — 이황의 학문과 건축적 실험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그가 생전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다. 강당인 전교당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이 서원의 건축적 특징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강당의 평면 구성이다. 대부분의 서원 강당이 5칸의 대칭적 구성을 취하는 것과 달리, 도산서원의 전교당은 한쪽으로만 방을 들인 4칸의 비대칭 평면을 취하고 있다. 아울러 도산서원 강 건너편에는 18세기 이곳에서 시행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한 시사단이 남아 있으며, 도산서원을 둘러싼 주변 경관을 주제로 한 시문이 3,000여 편 넘게 현존하는데, 그 대표작이 이황이 지은 「도산잡영」이다. 이는 도산서원이 순수한 강학 기능을 넘어, 사림 문학의 창작과 교류가 이루어지던 문화적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7. 병산서원 — 만대루와 자연의 조화
병산서원은 이황의 수제자였던 서애 류성룡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의 백미는 자연경관을 마치 병풍 안에 담아 놓은 듯한 대형 누각, 만대루로 꼽힌다. 복례문을 지나 들어서면 유생들이 산천의 풍광을 바라보며 강학하고 여가를 즐기던 만대루가 자리하는데, 탁 트인 공간 사이로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서원 건축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만대루는 아름다운 주변 산수와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이 맺는 조화로운 관계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유식공간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대루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강학공간인 입교당과 유생들의 기숙 공간이 이어지는 구성을 취한다.
8. 나머지 서원들과 배향 인물
이 밖에 도동서원은 김굉필을, 필암서원은 김인후를 각각 배향한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호남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 강당이 사묘를 바라보는 구조를 취한 사묘 중심 배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남계서원은 정여창을, 무성서원은 최치원과 신잠 등을,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을 각각 제향하는 서원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나 유현을 모심으로써 향촌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
9. 서원의 흥망과 오늘의 가치
서원은 17~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아 전국에 600여 개소나 존재할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서원이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면세·면역의 특권을 악용한 폐단이 심각해졌고, 그 결과 1868년 흥선대원군은 대대적인 서원철폐령을 단행해 전국 대부분의 서원을 훼철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는 9개 서원이 바로 이번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산들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정과 함께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이에 따라 관련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한국의 서원'이 지닌 가치는 단순히 아름다운 옛 건축물의 집합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이라는 사상 체계가 조선의 향촌 사회 속에서 교육·제향·유식이라는 세 기능을 하나의 건축 공간 안에 통합시키며 독자적으로 토착화되어 간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지역이 자신들의 정신적 스승을 기억하고 계승해 온 방식이 9개 서원 저마다의 배치와 조형 속에 살아 있다는 점, 바로 여기에 이 연속유산의 진정한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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