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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62. 혹리열전(酷吏列傳) ㅡ 법과 형벌보다 도리와 순리에 따르는 통치가 근본임을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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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62 편 ㅡ 혹리열전(酷吏列傳)

 

서론

 

『사기』 열전 60편인 혹리열전(酷吏列傳)은 앞서 58편 순리열전에서 법도와 순리로써 선정을 베푼 관리들을 다룬 것과 정면으로 대비되도록 배치된 편으로, 한 초기부터 한무제(漢武帝)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혹한 형벌과 준엄한 법 집행으로 이름을 떨친 관리들의 사적을 모은 기록이다. 사마천은 이 열전의 서두에서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하여 최상의 덕은 형벌에 기대지 않는 데 있으며 법령이 정교해질수록 도적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이치를 밝히고, 공자(孔子) 역시 정치를 형벌로 이끌면 백성이 형벌만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고 하였음을 상기시키며 이 열전의 근본 취지를 분명히 하였다.

 

즉 혹리열전은 단순히 가혹한 관리들의 일화를 흥미롭게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엄혹한 법치가 오히려 통치의 근본을 해치고 백성을 더욱 각박하게 만든다는 사마천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아낸 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열전에 실린 인물들 다수가 한무제의 총애를 받으며 황실의 위엄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는 점에서, 이 편은 한무제 치세의 엄혹한 통치 이면을 은밀히 비판하는 사마천의 역사적 필봉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난 대목으로 평가된다.

 

본론

혹리열전에 실린 인물들 가운데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한문제(漢文帝)와 경제(景帝) 시대의 질도(郅都)이다. 질도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황족이나 권세가라 할지라도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아 창읍왕(昌邑王)을 비롯한 여러 황족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창응(蒼鷹), 즉 매서운 매라고 불렀다. 그는 흉노와의 접경 지역인 안문(雁門)의 태수로 나갔을 때도 그 명성만으로 흉노가 국경을 침범하지 못할 정도로 위엄이 있었으나, 훗날 임강왕(臨江王) 사건을 가혹하게 처리한 일로 두태후(竇太后)의 미움을 사서 끝내 처형되고 말았다.

 

경제와 무제 시대에 활약한 영성(寧成)은 질도 못지않게 혹독한 관리로서, 그가 도위(都尉)로 있을 때 사람들이 차라리 젖먹이 호랑이를 만날지언정 영성의 노여움을 사지 말라고 할 정도로 두려워하였다고 전한다. 조우(趙禹)와 장탕(張湯)은 무제 시대를 대표하는 혹리로서, 특히 장탕은 율령을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 죄인을 다스리는 데 있어 황제의 뜻을 미리 헤아려 죄를 무겁게도 가볍게도 조율하는 교묘한 수완을 지녔다. 그는 회남왕과 형산왕의 모반 사건을 엄혹하게 처리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으나, 훗날 다른 관리들의 참소를 받아 결국 자결로 생을 마쳤다.

 

의종(義縱)은 원래 도적 무리 출신이었다가 관리가 되었는데, 정양(定襄)태수로 있을 때 하루아침에 중죄인 수백 명을 처형하여 온 고을이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왕온서(王溫舒)는 하내(河內)태수로 있을 때 겨울철에 죄인을 대거 처형하며 봄이 오는 것이 늦어져 형벌을 더 집행하지 못함을 한탄할 정도로 잔혹하였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윤제(尹齊), 양복(楊僕), 감선(減宣), 두주(杜周) 등의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하는데, 특히 두주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황제의 뜻에 따라 죄의 경중을 임의로 조절하면서도 겉으로는 법조문을 엄격히 따르는 척하여, 법이 근본적으로 군주의 뜻에 종속되어 있다는 당시 사법 체계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사마천은 이들 혹리들의 공통된 말로에도 주목하였다. 대부분의 혹리들은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아 위세를 떨쳤으나 그 가혹함이 극에 달하면 결국 다른 세력의 참소를 받거나 스스로 지은 원한으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니, 질도의 처형과 장탕의 자결이 대표적이다. 이는 형벌로써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 형벌로 인해 스스로도 화를 입게 된다는 인과응보의 이치를 사마천이 은연중에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

혹리열전은 순리열전과 정확히 대칭을 이루도록 편찬되어, 사마천이 통치의 두 극단적 양상, 즉 순리와 혹리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후대의 위정자들에게 통치의 근본을 성찰하게 하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혹리들의 잔혹한 행적을 가감 없이 기록하면서도, 그들 대부분이 한무제라는 강력한 군주의 뜻을 받들어 그 위엄을 세우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은밀히 암시함으로써, 혹리의 가혹함이 실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아울러 대부분의 혹리들이 제명에 죽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형벌에 의존하는 통치가 결국 그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자기 파괴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역사적 사례로써 증명해 보였다.

 

혹리열전은 순리열전과 짝을 이루며 『사기』 전체를 관통하는 사마천의 정치철학, 즉 법과 형벌보다 도리와 순리에 따르는 통치가 근본임을 역설하는 동시에, 한무제 시대의 엄혹한 통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역사적 증언으로서 후대에 깊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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