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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59. 순리열전(循吏列傳) ㅡ 법도와 순리에 따르는 통치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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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59편 ㅡ 순리열전(循吏列傳)

 

서론

 

『사기』 열전 58편인 순리열전(循吏列傳)은 앞서 다룬 회남형산열전의 골육상잔과 반역이라는 어두운 주제와는 전혀 다른 결의 인물들, 즉 법을 준수하고 직분에 충실하며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위엄이나 형벌에 의존하지 않고도 선정(善政)을 이룬 관리들의 사적을 모은 편이다. 순리(循吏)란 문자 그대로 법도를 따르는 관리를 뜻하는 것으로,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위정자가 굳이 가혹한 법령이나 강압적인 통치술에 기대지 않더라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근본에 힘쓰는 것만으로도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편에 실린 손숙오(孫叔敖), 자산(子産), 공의휴(公儀休), 석사(石奢), 이리(李離) 등 다섯 인물은 시대와 나라를 달리하지만 한결같이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적인 도리를 앞세우고, 법의 엄정함과 인간적 도리 사이에서 흔들림 없는 자세를 견지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이 열전은 이후 이어지는 혹리열전(酷吏列傳)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사마천이 통치의 두 극단적 양상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후대에 위정의 근본을 성찰하게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본론

순리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물은 초(楚)나라 재상 손숙오이다. 그는 초야에 묻혀 있던 선비로서 우구(虞丘)의 천거를 받아 재상에 올랐는데, 석 달 만에 초나라의 정치를 크게 안정시켰다. 그는 위로는 도리에 순응하고 아래로는 시령(時令)에 맞추어 백성을 다스리니 관리들 사이에 간사한 자가 사라지고 도적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초나라의 화폐가 너무 가벼워 백성들이 불편을 겪자 시장의 형세를 헤아려 자연스럽게 무거운 화폐로 바꾸게 하는 등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는 정치를 펼쳤다. 그가 죽을 때 아들에게 봉록이 박한 땅을 봉해 받도록 유언한 일화는, 그가 죽어서까지도 청렴과 겸양의 도리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은 형제간의 우애로 그 집안이 화목했던 것에서 나아가, 정치에 임하여서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절묘하게 병행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가 재상이 된 지 1년 만에 방자하던 젊은이들이 경박한 짓을 그치고 노인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으며, 3년이 지나자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을 정도로 정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그가 죽었을 때 정나라의 장정들은 통곡하고 노인들은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 하니, 이는 그의 선정이 백성들의 마음 깊이 새겨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魯)나라의 재상 공의휴는 법도를 지킴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청렴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기르는 채소가 맛이 좋음을 알고는 즉시 텃밭의 채소를 뽑아버렸으며, 자기 집 여인이 짜는 베가 품질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그 베틀을 불태우고 아내를 내쫓기까지 하였다. 이는 재상이 스스로 집안에서 생산과 이익을 도모하면 그만큼 백성과 상인들의 이익을 빼앗는 셈이 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공직자가 사사로운 이익을 철저히 경계해야 함을 극단적으로 실천해 보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초나라의 석사는 재상으로서 나라를 순행하다가 살인 사건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조사 결과 그 범인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놓아주고 대신 자신이 그 죄를 받겠노라 자청하였는데, 초왕이 죄를 사면해 주려 하자 법을 굽혀 죄를 면하는 것은 불충(不忠)이요 아버지를 법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은 불효(不孝)라 하여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공적인 법과 사적인 효도라는 두 가지 도리가 정면으로 충돌하였을 때 어느 한쪽도 저버리지 않고 자신의 목숨으로써 그 딜레마를 감당한 처절한 사례이다.

 

진(晉)나라의 이리는 옥관(獄官)으로서 사건을 잘못 심리하여 죄 없는 사람을 죽게 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스스로 그 죄를 물어 죽음을 청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이 관리에게는 각기 등급이 있어 아랫사람의 과실을 윗사람이 대신 책임질 수 없다며 그를 용서하려 하였으나, 이리는 자신이 옥관의 우두머리로서 그 직위와 봉록을 아랫사람과 나누지 않았으면서 잘못만을 아랫사람에게 미룰 수는 없다 하여 끝내 사양하지 않고 스스로 칼에 엎드려 죽었다. 이 역시 관리로서의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짊어지는 준엄한 자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론

순리열전에 실린 다섯 인물은 비록 시대와 나라를 달리하나 한결같이 법과 도리를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안위보다 앞세웠다는 점에서 공통된 정신을 보여준다. 손숙오와 자산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강압보다 순리를 앞세워 큰 효과를 거두었고, 공의휴는 공직자의 청렴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지를 극단적으로 실천해 보였으며, 석사와 이리는 법과 인륜, 그리고 관리로서의 책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목숨을 걸고 그 도리를 지켜냈다. 사마천이 이들의 사적을 짧고 간결하게 서술하면서도 그 안에 깊은 울림을 담아낸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극적인 사건보다 담백한 실천 속에서 진정한 위정의 도리가 드러남을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열전은 뒤이어 배치된 혹리열전의 가혹한 통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도록 의도된 것으로, 사마천은 이러한 병치를 통해 후대의 위정자들에게 형벌과 위세에 의존하는 통치와 법도와 순리에 따르는 통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성찰하게 하려는 깊은 뜻을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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