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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5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ㅡ 문장과 언어로써 한 제국의 위엄과 민심을 다스리는 데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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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57편 ㅡ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서론

 

『사기』 열전 56편인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은 앞서 다룬 남월, 동월, 조선, 서남이열전 등 변방 이민족과의 관계를 다룬 일련의 편들과는 성격을 크게 달리하는, 한(漢)나라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사부(辭賦) 작가 사마상여의 생애를 다룬 편이다. 사마천이 이 인물을 열전에 편입시킨 것은 단순히 그의 문학적 재능을 기리기 위함만이 아니라, 사마상여가 지어 바친 여러 편의 부(賦)와 격문(檄文), 봉선문(封禪文) 등을 통해 한무제(漢武帝) 치세의 정치적 지향과 그 문화적 자부심을 함께 드러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앞서 살펴본 서남이열전의 서남이 경략 과정에 사마상여가 직접 관여하였다는 사실로, 이 열전은 문학과 정치, 그리고 변방 경략이 어떻게 한 인물 안에서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울러 사마상여와 탁문군(卓文君)의 로맨스는 후대까지 널리 회자되는 일화로서, 사마천은 이를 통해 문인의 재능과 인간적 면모를 함께 포착하고자 하였다.

 

본론

사마상여는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검술을 익혔으며 본래 이름은 견자(犬子)였으나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신 인상여(藺相如)를 흠모하여 스스로 이름을 상여(相如)로 고쳤다고 전한다. 그는 재물을 바쳐 낭관(郎官)이 되어 경제(景帝)를 섬겼으나, 경제가 사부를 좋아하지 않았던 까닭에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 무렵 양효왕(梁孝王)이 입조하면서 유세하는 선비들을 데리고 왔는데, 사마상여는 이들과 교유하며 뜻이 맞아 병을 핑계로 낭관을 그만두고 양효왕의 빈객이 되어 그의 문하에서 여러 문사들과 함께 지내며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인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다. 양효왕이 죽은 뒤 사마상여는 고향 성도로 돌아왔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생계를 이을 방도가 없었다.

 

이때 평소 친분이 있던 임공현령(臨邛縣令) 왕길(王吉)의 초청으로 임공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의 부호 탁왕손(卓王孫)이 베푼 연회에 참석하여 거문고를 연주하며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었다. 탁왕손의 딸로 일찍이 과부가 된 탁문군은 병풍 너머로 이를 엿보고 사마상여의 풍모와 재주에 반하였고, 두 사람은 마침내 몰래 눈이 맞아 밤에 성도로 함께 달아났다. 그러나 사마상여의 집안은 몹시 가난하여 두 사람은 다시 임공으로 돌아와 술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탁문군이 직접 술을 팔고 사마상여는 잔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탁왕손이 결국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재물과 노비를 나누어 주어 성도로 돌아가 살게 하였으니, 이로써 두 사람은 마침내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이후 한무제가 즉위하여 우연히 「자허부」를 읽고 그 작자가 자신과 같은 시대 사람이 아님을 안타까워하였는데, 마침 사마상여의 동향인 양득의(楊得意)가 이 부의 작자가 바로 사마상여임을 아뢰자 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불러들였다. 사마상여는 「자허부」가 제후의 사냥을 노래한 것에 불과하다며 천자의 사냥을 노래한 「상림부(上林賦)」를 새로 지어 바쳤는데, 이 작품은 화려하고 웅장한 문사로 천자의 위엄과 상림원의 광대함을 극진히 묘사하면서도 말미에는 사치를 경계하고 검약으로 돌아갈 것을 넌지시 권계(勸戒)하는 내용을 담아 무제를 크게 만족시켰다. 이를 계기로 사마상여는 낭관에 제수되었다.

 

이후 당몽(唐蒙)이 서남이 경략을 위해 파촉 지역에서 무리하게 백성을 징발하자 그 지역이 크게 소란해졌는데, 무제는 사마상여를 보내 격문을 지어 파촉 백성들을 타이르게 하였다. 사마상여는 이 격문에서 나라를 위한 대의를 위해서는 다소의 희생이 불가피함을 논리적으로 설파하여 민심을 무마하였다. 이어 그는 중랑장(中郎將)에 임명되어 직접 서이(西夷) 지역인 공(邛)과 작(筰) 지역의 경략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부절을 지니고 파촉에 이르렀을 때 그의 위세가 대단하여 지방관들이 몸소 마중을 나오고 탁왕손을 비롯한 촉 지역의 부호들마저 다투어 예물을 바쳤다고 전한다. 사마상여는 이 지역에 새로이 도위와 현을 설치하는 데 공을 세웠으나, 한편으로는 뇌물을 받았다는 참소를 입어 한때 관직을 잃기도 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사마상여는 병이 깊어져 벼슬에서 물러나 무릉(茂陵)에 거처하였는데, 무제가 사람을 보내 그의 저술을 구하게 하였을 때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난 뒤였고 그 집에는 봉선(封禪)에 관한 일을 논한 유서 한 편만이 남아 있었다. 이 글에서 사마상여는 무제에게 태산(泰山)에 올라 하늘에 제사하는 봉선의 대례(大禮)를 거행하여 그 성덕을 천지에 알릴 것을 권하였는데, 이는 사마상여가 죽어서까지도 문인으로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그 치적을 문장으로 빛내고자 했던 마지막 충정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사마상여열전은 한 문인이 곤궁한 처지에서 출발하여 뛰어난 문재(文才)로써 천자의 인정을 받고, 나아가 문학적 재능을 국가의 변방 경략이라는 실제 정치에까지 활용하게 되는 입신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사마천은 「자허부」와 「상림부」, 격문과 봉선문 등 사마상여의 대표작들을 열전 안에 상당 부분 인용함으로써, 그의 문학이 단순한 미문(美文)의 유희가 아니라 화려한 수사 이면에 검약과 경계의 뜻을 담아 군주를 은근히 풍간(諷諫)하는 기능을 수행하였음을 부각시켰다.

아울러 탁문군과의 로맨스는 문인의 낭만적 면모를 보여주는 동시에, 재능이 결국 곤궁함을 넘어서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사마상여열전은 무력과 외교를 통한 변방 경략을 다룬 앞선 열전들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장과 언어라는 부드러운 힘이 한 제국의 위엄을 떨치고 민심을 다스리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기』 열전 전체의 다채로움을 더하는 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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