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제 55편 ㅡ 조선열전(朝鮮列傳)
서론
『사기』 열전 54편인 조선열전(朝鮮列傳)은 한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벌하여 멸망시키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편으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에 관한 중국 정사(正史) 최초의 체계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각별하다. 조선열전이 다루는 위만조선은 앞서 살펴본 남월이나 동월과는 그 성립 배경이 사뭇 다르다. 남월의 조타가 진(秦)의 지방관 출신으로서 스스로 왕국을 세웠고 동월과 민월이 토착 월족 수령이 한의 책봉을 받은 경우였다면, 위만조선은 연(燕)나라 출신의 망명객 위만(衛滿)이 고조선(古朝鮮)의 마지막 왕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찬탈하여 세운 정권이었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위만조선이 한 초기에는 요동태수(遼東太守)를 매개로 한과 외신(外臣) 관계를 맺어 평화를 유지하다가, 손자 우거(右渠) 대에 이르러 한의 사신을 살해하고 주변 소국들의 입조(入朝)를 가로막는 등 강경한 태도로 돌아서면서 결국 한무제의 대규모 정벌을 자초하여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였다. 이는 변방 정권과 중원 왕조 사이의 외교적 신의가 무너졌을 때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남월열전 및 동월열전과 함께 한 제국의 대외 팽창과 통일 질서 확립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할 기록이다.
본론
위만은 본래 연나라 사람으로, 한고조(漢高祖) 때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흉노(匈奴)로 망명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그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패수(浿水)를 건너 고조선 땅으로 망명하였다.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은 위만을 신임하여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博士)로 삼고 백 리의 땅을 봉해주었는데, 위만은 이 지역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고 유이민들을 규합한 뒤,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거짓말로 준왕을 속여 왕검성(王儉城)으로 진입한 후 마침내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조선왕이 되었다. 쫓겨난 준왕은 뱃길로 남쪽으로 달아나 한(韓) 지역에 이르러 한왕(韓王)을 자칭하였다고 전한다.
위만은 왕위에 오른 뒤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 지역까지 세력을 넓혀 강역이 사방 수천 리에 이르렀다. 마침 한고조가 천하를 평정한 직후였던 터라, 한은 요동태수를 통해 위만을 외신(外臣)으로 삼아 국경 밖의 만이(蠻夷)들을 통제하여 한의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 소국의 군장(君長)들이 한에 입조하고자 할 때 이를 가로막지 말라는 조건으로 회유하였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위만조선은 한의 병력과 재물의 지원을 받아 오히려 주변 소국들을 침략하여 복속시키는 등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그 강역은 사방 수천 리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이러한 우호 관계는 위만의 손자 우거왕(右渠王) 대에 이르러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거는 한으로 도망쳐 오는 유민들을 계속 받아들여 세력을 키웠을 뿐 아니라, 애초 한과 맺은 약속을 어기고 진번을 비롯한 주변 소국들이 한에 직접 글을 올려 입조하려는 것을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이에 한무제는 원봉(元封) 2년(기원전 109년) 섭하(涉何)를 사신으로 보내 우거를 회유하려 하였으나 우거가 끝내 조서를 받들지 않자, 섭하는 귀국하는 길에 자신을 전송하러 나온 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살해하고 한에 돌아가 이를 공적으로 보고하였다. 한무제는 섭하의 이러한 행위를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요동동부도위(遼東東部都尉)에 임명하였는데, 우거는 이에 격분하여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습격하고 섭하를 죽여버렸다.
이를 계기로 한무제는 마침내 조선 정벌을 결심하고,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에게 제(齊) 지역의 병사를 거느리고 발해(渤海)를 건너게 하는 한편,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에게는 요동을 거쳐 육로로 진격하게 하여 수륙 양면에서 왕검성을 협공하게 하였다. 그러나 두 장군은 서로 공을 다투며 손발이 맞지 않아 여러 차례 패퇴하였고, 전세가 지지부진하자 한무제는 위산(衛山)을 보내 화의를 시도하였으나 우거가 태자를 보내 사죄하려던 과정에서 무장 병력의 규모를 둘러싼 상호 불신으로 인해 이마저 결렬되고 말았다. 이후 좌장군 순체가 누선장군의 군영을 병합하고 왕검성에 대한 포위를 강화하자 조선 조정 내부에서 항전과 강화를 둘러싼 분열이 일어났고, 마침내 조선의 대신 성기(成己) 등이 우거를 죽이고 항복함으로써 원봉 3년(기원전 108년) 왕검성이 함락되고 위만조선은 멸망하였다. 한은 그 땅에 낙랑(樂浪), 임둔, 현도(玄菟), 진번의 사군(四郡)을 설치하였다.
결론
조선열전은 위만이라는 한 망명객이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하여 세운 정권이 삼대에 걸쳐 존속하다가, 한과의 오랜 신의를 저버리고 강경 노선을 택함으로써 결국 한무제의 대규모 원정을 초래하여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마천은 정벌 과정에서 누선장군과 좌장군이 공을 다투며 불화하였던 사실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조선의 멸망이 한 측의 군사적 우위만이 아니라 조선 내부의 분열과 한군 지휘부의 갈등이 뒤얽힌 복합적 결과였음을 암시하였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정벌의 정당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지 않고 원정 과정의 난맥상까지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가(史家)로서의 균형 감각을 보여준다. 조선열전은 남월열전, 동월열전과 더불어 한 제국이 사방의 변경 세력을 군현으로 편입시켜 나가는 통일 과정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며, 동시에 고조선사(古朝鮮史) 연구에 있어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 기록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대체할 수 없는 사료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 사는 이야기 ■ >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마천의 『사기』 - 05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ㅡ 문장과 언어로써 한 제국의 위엄과 민심을 다스리는 데 기여 (0) | 2026.07.24 |
|---|---|
| 사마천의 『사기』 - 056. 서남이열전(西南夷列傳) ㅡ 서역 교통로 개척이라는 실리적 동기로 점진적으로 한 제국으로 편입 (0) | 2026.07.23 |
| 사마천의 『사기』 - 054. 동월열전(東越列傳) ㅡ 변방 이민족 정권이 중원 왕조의 강력한 통제 아래 소멸해 가는 사례 (0) | 2026.07.21 |
| 사마천의 『사기』 - 053. 남월열전(南越列傳) : 중원과 이민족 사이의 관계를 성찰 (0) | 2026.07.20 |
| 사마천의 『사기』 - 05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騎列傳)」 (0) | 2026.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