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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54. 동월열전(東越列傳) ㅡ 변방 이민족 정권이 중원 왕조의 강력한 통제 아래 소멸해 가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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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54편 ㅡ  동월열전(東越列傳)

 

서론

 

『사기』 열전 53편인 동월열전(東越列傳)은 남월열전에 이어 중원 동남방 변경에 존재했던 민월(閩越)과 동구(東甌) 두 월족(越族) 정권의 흥망을 다룬 편이다. 오늘날의 푸젠(福建)과 저장(浙江) 남부 일대에 자리했던 이들 정권은 앞서 다룬 남월과 마찬가지로 진(秦)의 붕괴와 초한(楚漢) 쟁패의 혼란기를 틈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으나, 남월의 조타가 한족 출신으로서 스스로 왕국을 세운 것과 달리 동월과 동구의 왕들은 본래 이 지역의 토착 월족 수령으로서 한 왕조에 의해 그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마천은 이 편에서 동월과 동구가 한에 복속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 반목하고, 때로는 한의 변경을 침범하거나 반란 세력에 가담하는 등 불안정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결국 한무제(漢武帝) 대에 이르러 완전히 정복되고 그 백성들이 강제로 이주당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는 변방 이민족 정권이 중원 왕조의 강력한 통제 아래 어떻게 소멸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서, 남월열전과 짝을 이루며 한 제국 통일 질서의 완성 과정을 조명한다.

 

본론

민월과 동구의 왕들은 모두 스스로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예임을 자칭하는 월왕 구천(句踐)의 후손이라 하였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이들의 왕호를 폐지하고 그 땅을 군현으로 편입시켰으나, 진말(秦末) 진섭(陳涉)의 봉기를 계기로 천하가 다시 혼란에 빠지자 민월의 수령 무제(無諸)와 동구의 수령 요(搖)는 각기 군사를 일으켜 제후들의 반란에 호응하였다. 이후 초한 쟁패 시기에 이들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항우(項羽)를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고조는 무제를 민월왕(閩越王)에, 혜제(惠帝) 대에는 요를 동해왕(東海王), 즉 동구왕(東甌王)에 봉하여 각기 옛 월나라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경제(漢景帝) 대에 이르러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이 일어나자 오왕 유비(劉濞)는 민월과 동구에 원조를 요청하였다. 동구는 처음에는 오왕을 도와 군사를 보냈으나 오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는 형세를 보이자 한의 밀지를 받아 도망치는 오왕 유비를 단도(丹徒)에서 살해함으로써 한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였다. 반면 민월은 애초에 오왕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오왕이 패망한 뒤 그 아들 유구(劉駒)는 민월로 망명하여 몸을 의탁하였는데, 이후 유구는 민월왕을 부추겨 예전 동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일에 대한 원한을 갚고자 동구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동구는 한에 급히 구원을 요청하였고, 한무제는 처음에는 신중론을 펼쳤으나 중대부(中大夫) 엄조(嚴助)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회계(會稽)의 군사를 동원해 동구를 구원하게 하였다. 한의 군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민월은 포위를 풀고 물러났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동구는 민월의 재침을 두려워하여 그 백성 전체를 한의 내지인 강회(江淮) 지역으로 옮겨줄 것을 청하였고, 한무제는 이를 허락하여 동구는 사실상 소멸하고 그 땅은 빈 곳이 되었다.

 

이후 민월왕 영(郢)은 세력을 더욱 확장하여 남월을 침공하였는데, 남월왕이 신하로서 한의 승인 없이는 함부로 군사를 일으킬 수 없다며 한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한무제는 대행(大行) 왕회(王恢)와 대사농(大司農) 한안국(韓安國)을 파견하여 민월을 정벌하게 하였다. 한의 대군이 이르기 전에 민월왕 영의 동생 여선(餘善)이 형을 살해하고 그 목을 한에 바쳐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일단락되었고, 한은 영의 조카 요군(繇君) 축(丑)을 월요왕(越繇王)으로 세워 제사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실권을 쥔 여선이 백성들의 신망을 얻어 사실상 왕 노릇을 하자, 한은 이를 인정하여 여선을 동월왕(東越王)으로 봉하여 요왕과 병립하게 하였다.

 

훗날 한무제가 남월을 정벌할 때 여선은 출병을 청하고도 실제로는 관망하며 협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은밀히 남월과 내통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남월이 평정된 뒤 이러한 이중성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여선은 마침내 스스로 무제(武帝)를 칭하며 한에 반기를 들고 변경을 공격하였다. 이에 한무제는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과 여러 장수들을 보내 사면에서 동월을 협공하게 하였고, 동월 내부에서도 한에 항복하여 여선을 죽이는 자가 나타나면서 결국 동월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한무제는 동월 지역이 산이 험하고 반란이 잦다는 이유로 그 백성들을 모두 강회 일대의 내지로 강제 이주시켜 그 땅을 비웠다.

 

결론

동월열전은 남월열전과 더불어 한 제국이 동남 변방의 월족 정권들을 어떻게 흡수하고 소멸시켜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짝을 이루는 기록이다. 민월과 동구는 한고조 때 개국공신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아 왕으로 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서로 간의 오랜 원한과 반목, 그리고 한 왕조에 대한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결국 자멸의 길을 걸었다. 특히 여선이 겉으로는 한에 복속하면서도 안으로는 남월과 내통하고 기회를 엿보다 결국 반란에 이른 과정은, 강대한 중앙 왕조와 변방 소국 사이에서 생존을 도모하던 세력이 그 균형을 잃었을 때 어떠한 파국을 맞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동구가 스스로 내지로의 이주를 청하여 온전히 보전된 것과, 민월과 동월이 끝내 무력으로 진압되어 그 백성이 강제로 옮겨진 것을 대비시킴으로써, 변방 세력이 취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선택과 그 결과를 냉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 제국의 통일 질서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주변 이민족 정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멸해 가는 역사적 필연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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