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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63. 대원열전(大宛列傳) ㅡ 동서 문명 교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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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63편 ㅡ 대원열전(大宛列傳) 

 

서론

 

『사기』 열전 63편인 대원열전(大宛列傳)은 장건(張騫)의 서역(西域) 사행을 계기로 한(漢)나라가 처음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후 이들과 교류하며 흉노(匈奴)를 견제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편이다. 이 열전은 단순한 이민족 열전의 하나를 넘어, 이른바 실크로드로 널리 알려지게 될 동서 교통로가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문헌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획기적인 편이라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각별하다.

사마천은 장건이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 십여 년을 억류당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사명을 잊지 않고 서역 깊숙이 들어가 대원(大宛), 대월지(大月氏), 대하(大夏), 강거(康居) 등 여러 나라의 지리와 풍속, 물산을 상세히 탐문하여 돌아온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아울러 이 열전은 앞서 서남이열전에서도 언급되었던 신독(身毒)으로 통하는 길의 탐색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그리고 한무제(漢武帝)가 대원의 한혈마(汗血馬)를 얻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는 과정까지 포괄함으로써, 한 제국의 대외 팽창 정책이 서방으로 뻗어나가는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본론

장건은 한중(漢中) 사람으로, 한무제가 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이주한 월지(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하고자 하였을 때 이 사명을 자원하여 건원(建元) 연간에 백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서쪽으로 떠났다. 그러나 도중에 흉노의 영역을 지나다가 붙잡혀 십여 년 동안 억류되었고, 그 사이 흉노의 여인을 아내로 얻어 자식까지 두었으나 한나라 사신으로서의 부절(符節)을 잃지 않고 끝내 탈출하여 서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는 대원에 이르러 그 왕의 환대를 받았는데, 대원왕은 한나라와의 교역을 원하던 터라 장건 일행을 강거를 거쳐 대월지까지 무사히 호송해 주었다. 그러나 이미 대월지는 대하의 땅을 정복하여 비옥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기에 흉노에 대한 복수심이 사라진 뒤였고, 결국 장건은 월지와의 군사 동맹이라는 애초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대하 지역까지 둘러보고 귀국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 흉노에게 붙잡혀 억류되었으나 마침 흉노 내부에 내분이 일어난 틈을 타 탈출에 성공하여, 원래 함께 떠났던 백여 명의 수행원 가운데 오직 부인이 된 흉노 여인과 종자(從者) 감보(甘父) 두 사람만을 데리고 십삼 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장건은 귀국 후 자신이 직접 다니거나 전해 들은 서역 각국의 사정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대원은 페르가나 분지에 위치하여 포도로 술을 빚고 명마(名馬)가 나는 나라로, 특히 피와 같은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가 유명하였다. 강거는 유목 생활을 하는 강성한 나라였고, 대월지는 본래 돈황(敦煌)과 기련(祁連) 사이에 있다가 흉노에게 쫓겨 서쪽으로 옮겨가 대하를 정복한 나라였다. 대하는 성곽과 시장을 갖춘 문명국이었으며, 장건은 이곳에서 촉(蜀)의 베와 공(邛)의 대나무 지팡이가 유통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이것이 촉에서 신독(身毒), 즉 인도를 거쳐 대하로 이어지는 남방 교역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 추론하였다. 이 보고는 앞서 서남이열전에서 다룬 바와 같이 한무제로 하여금 서남이 지역을 통한 신독행 교통로 개척을 재차 시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곤명(昆明) 부락의 저지로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장건의 보고에 크게 고무된 한무제는 서역 각국과의 통교를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였다. 오손(烏孫)과의 동맹을 통해 흉노를 견제하고자 장건을 다시 서역에 파견하였으며, 이후 오손을 비롯하여 대원, 강거, 대월지, 안식(安息, 파르티아) 등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한편 이들 나라의 사신들도 장안을 오가며 교역이 크게 활발해졌다. 그러나 대원과의 관계는 한혈마를 둘러싸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한무제가 사신을 보내 대원의 명마를 구하고자 하였는데 대원 측이 이를 거절하고 사신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무제는 이광리(李廣利)를 이사장군(貳師將軍)에 임명하여 대원 정벌을 명하였다. 첫 번째 원정은 병력과 물자 부족으로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으나, 무제는 이에 굴하지 않고 훨씬 대규모의 병력과 물자를 재차 투입하여 두 번째 원정을 감행하였다. 이광리의 군대는 마침내 대원의 수도를 포위하는 데 성공하였고, 대원 내부에서 왕을 죽이고 명마를 바치며 항복하는 자들이 나타나 전쟁은 한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 원정을 계기로 서역 각국은 한의 위세를 크게 두려워하여 다투어 사신을 보내 조공하게 되었고, 한은 돈황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요새와 봉수(烽燧)를 정비하여 서역과의 교통로를 확고히 장악하였다.

 

결론

대원열전은 장건이라는 한 인물의 불굴의 의지와 인내가 뜻밖에도 동서 문명 교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과정을 감동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장건은 애초의 군사 동맹이라는 목적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가 가져온 서역 각국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정보는 이후 한 제국의 서방 정책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오늘날 실크로드로 불리는 동서 교역로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장건의 인간적 고초와 인내를 상세히 서술하는 한편, 대원 원정 과정에서 나타난 막대한 인적 물적 희생과 무리한 원정 강행의 이면 또한 가감 없이 기록함으로써, 한무제의 서역 경략이 지닌 성취와 그 대가를 균형 있게 조명하였다. 대원열전은 남월, 동월, 조선, 서남이열전과 더불어 한무제 시대 사방으로 뻗어나간 팽창 정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동시에, 중국이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와 서방 세계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교류를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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