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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주

전통건축-10414. 경주 태종무열왕릉 ㅡ 신라 왕릉 비정에서 갖는 독보적 위상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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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태종무열왕릉(慶州 太宗武烈王陵)

 

경주시 서악동 선도산 자락, 서악동 고분군의 한 자리에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능이 자리하고 있다. 무열왕릉은 신라 왕릉 연구에 있어 실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는데, 그 까닭은 다름 아니라 능 앞에 세워진 능비의 명문을 통해 피장자가 누구인지가 명확히 밝혀진, 몇 안 되는 신라 왕릉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이래 비정된 대다수의 신라 왕릉들이 문중의 전승이나 정황적 판단에 의존하여 그 주인을 추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무열왕릉은 능비에 새겨진 "태종무열왕지비(太宗武烈王之碑)"라는 여덟 글자의 전서(篆書) 명문 덕분에 그 피장자가 확실히 증명되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사실은 무열왕릉이 단순히 한 인물의 무덤을 넘어, 신라 왕릉 전체의 편년과 양식 변천을 가늠하는 절대적 기준점으로 기능하게 된 근본적 이유가 되었다.

 

무열왕 김춘추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 직전 승하하였으나, 그가 이룩한 나당연합(羅唐聯合)의 외교적 성취와 왕권 강화의 기틀은 아들 문무왕대에 이르러 마침내 백제와 고구려를 아우르는 통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역사적 위상에 걸맞게 무열왕릉과 그 능비는 신라 석조 예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1.왕릉의 위치와 외형

무열왕릉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지정면적은 1만 4,169㎡이다. 무덤은 미발굴 상태이나 그 구조는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로 추정되며, 서악동 구릉의 동사면에는 이 무열왕릉을 포함하여 종렬로 배치된 다섯 기의 대형 원분(圓墳)이 있는데, 무열왕릉은 이 가운데 가장 아래쪽, 즉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의 높이는 약 13m, 둘레는 112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분구의 언저리에는 자연석으로 된 호석을 돌려 봉분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그 장식 수법이 후대의 통일신라 왕릉들에 비해 오히려 소박하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 능묘는 분구 언저리에 잘 다듬은 돌로 호석을 두르고 여기에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십이지신상을 배치하거나 다시 석책을 두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비하면 무열왕릉의 봉분 장식은 훨씬 소박한 편에 속한다. 이는 무열왕릉이 삼국통일이 완성되기 이전, 아직 신라 왕릉 양식이 십이지신상이나 화려한 조각 장식을 갖춘 완성형으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에 조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물증이라 할 수 있다.

 

 

 

 

 

 

2. 능비의 형태와 조각 예술

무열왕릉의 전방 동북쪽에는 능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비신은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비신은 조선시대까지도 그 잔존 상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25호로 지정된 이 능비는, 귀부의 길이가 약 3.33미터, 폭이 2.54미터에 이르며 이수의 높이는 약 1.1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비석의 받침돌인 귀부는 장방형의 대석 위에 올려져 있는데, 거북의 네 발과 머리를 표현한 조각 수법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어 신라 조각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귀부의 머리는 거북의 모양을 하고 목을 높이 쳐들고 있으며 발을 힘차게 뻗어 전체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듯한 역동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감한 기상을 드러내면서도 표정만큼은 과격하지 않고 오히려 명랑한 인상을 준다. 등의 전면에는 거북등무늬를 새기고 그 주위에는 구름이 나는 듯한 비운문을 둘렀다.

이수는 여섯 마리의 용이 능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는 형상으로 윤곽을 이루는데, 그 웅장한 구성과 자세는 당시 신라 석조 예술이 도달한 뛰어난 솜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수의 전면에는 여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받들고 있는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그 중앙에는 김인문의 글씨로 전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라는 명문이 전서체로 2행 8자에 걸쳐 양각되어 있다. 비석의 아래에 귀부를 놓고 위에 이수를 얹는 형식 자체는 본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비의 조각 수법은 매우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3. 능비 건립의 내력과 비편의 발견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이 능비는 무열왕이 승하한 661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김인문이 썼다고 전하나 이를 뒷받침할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무열왕이 승하하고 문무왕이 곧바로 즉위한 그해에 능비가 세워졌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신라 왕실이 통일 전쟁의 와중에도 선왕의 업적을 기리는 예제(禮制)를 신속히 정비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20세기에 이르러 실제 비신의 파편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태종무열왕릉비의 비편은 1935년 4월 2일 경주 무열왕릉 앞에서 최남주에 의해 발견되어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 크기는 약 8×8cm에 불과하다. 비문은 사방 약 3.3cm씩의 방격을 그리고 그 안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남아 있는 조각에서는 여덟 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두 칸에서는 '중례(中禮)'라는 글자가 완벽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된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의 크기는 각각 1.7×2cm, 2×2.5cm 정도로, 이 비편은 660년 이후 문무왕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편이 발견되기에 앞서 무열왕릉의 서북편인 경주시 서악동에서는 이미 국보로 지정된 귀부와 이수가 먼저 발견된 상태였으며, 당시 비신은 이미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4. 신라 왕릉 비정에서 갖는 독보적 위상

이러한 명문의 존재로 인해 무열왕릉은 신라의 역대 능묘 가운데 피장자가 명확히 밝혀진 유일한 능묘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경주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신라 왕릉들 가운데 어느 왕의 무덤인지가 확실하게 밝혀진 능은 극히 드문데, 그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경주 김씨 문중 측에서 정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비정한 것이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며, 이렇듯 명확하게 주인이 밝혀진 능은 전체 가운데 단 일곱 기에 불과하고 무열왕릉은 바로 그 일곱 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무열왕릉이 실제로 무열왕의 능임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이 태종무열왕릉비였던 것이다. 귀부의 네 모퉁이에는 초석이 남아 있어, 당초에는 능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碑閣)이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 신라 왕릉 연구 방법론의 토대를 놓은 살아 있는 사료

경주 태종무열왕릉과 그 능비는 신라 왕릉 연구에 있어 단순한 한 유적을 넘어서는 방법론적 이정표의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후대의 전승과 문중의 비정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달리, 무열왕릉은 능비의 명문이라는 일차 사료를 통해 피장자를 확증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바로 이 점에서 다른 신라 왕릉들의 편년과 양식적 변천을 가늠하는 절대적 준거점으로 기능해 왔다. 소박한 봉분 장식은 십이지신상과 화려한 호석 체계가 완성되기 이전, 통일 직전 신라 왕릉 양식의 원형을 보여주며, 귀부와 이수에 남아 있는 역동적이면서도 명랑한 조각 수법은 7세기 신라 석조 예술이 도달한 성취를 웅변한다.

 

특히 1935년 발견된 손톱만 한 비편 하나가 신라사 연구에 미친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다. 단 몇 글자에 불과한 잔편이 능비 건립 시기와 서체, 나아가 신라 금석문 연구 전반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었다는 사실은, 문화유산 연구에 있어 거대한 유적뿐 아니라 지극히 작은 물증 하나하나가 지니는 학술적 무게를 새삼 일깨워 준다. 무열왕릉은 그러므로 삼국통일이라는 신라사 최대의 전환점을 이루어낸 군주의 안식처이자, 동시에 신라 왕릉 연구 방법론 자체의 토대를 놓은 살아 있는 사료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이 있는 조명을 받아 마땅한 유산이라 하겠다.

 

 

 

 

 

 

 



[ 김인문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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