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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주

전통건축-10415.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삼층석탑 —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려 한 왕의 유지(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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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와 삼층석탑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동해와 맞닿은 나지막한 평지에 두 기의 거대한 석탑이 나란히 서 있다. 절을 이루던 금당(金堂)과 강당, 회랑은 모두 사라진 지 오래이나,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이 삼층석탑 두 기만은 천삼백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적 제31호 감은사지는 경주 시내에서 감포 쪽으로 약 36km 거리의 동해변에 위치한 절터이며,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감은사(感恩寺)라는 이름 자체가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은혜의 주체는 다름 아닌 문무왕이다. 삼국을 통일한 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완성한 절이 바로 감은사다. 단순한 불교 사찰을 넘어, 통일신라 초기 왕실의 정치적 이념과 호국 신앙, 그리고 건축 기술의 정수가 응축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1. 창건 배경 — 문무왕의 유지와 신문왕의 완성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문무왕은 부처의 힘을 빌려 동해로 침입해오는 왜구를 격퇴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하였고, 그의 아들 신문왕 2년(682)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문무왕은 재위 시절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당나라 세력까지 몰아내며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도 신라의 동해안은 왜구의 침입에 늘 노출되어 있었고, 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동해에 산골(散骨)되었다고 전해진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해 바닷가에 터를 잡은 절이다.

 

이러한 배경은 감은사의 건축 구조에서도 특이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금당 아래에 공간을 두어 용이 된 문무왕의 혼령이 바다에서 절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실제 발굴조사에서 금당 기단 아래에 석재로 짜인 공간과 배수로 흔적이 확인되어 이 설화적 요소가 단순한 전설만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한다. 왕릉이 아니라 사찰이라는 형식을 빌려 왕권과 불교, 호국사상을 하나로 엮어낸 것이다.

 

 

 

 

 

 

 

 

2. 가람 배치 — 쌍탑식 가람의 시작

감은사지는 한국 사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감은사터의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두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 신라의 1탑 중심 가람에서 삼국통일 직후 석탑 두 기를 나란히 배치하는 쌍탑가람으로는 최초의 사례다.

삼국시대까지 신라의 사찰은 하나의 탑을 중심에 두고 금당을 배치하는 1탑 1금당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통일 이후 국력이 팽창하고 왕실의 위엄을 드러낼 필요가 커지면서, 좌우 대칭으로 두 개의 탑을 세우는 쌍탑식 가람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감은사가 그 효시로 꼽힌다. 이후 불국사를 비롯한 통일신라 후기 사찰들이 대부분 이 쌍탑식 구조를 따르게 되므로, 감은사지는 신라 사찰 건축 양식이 전환되는 분기점에 서 있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3. 동·서 삼층석탑 — 국보 제112호

감은사지 금당터 남쪽에 남아 있는 국보 제112호 삼층석탑 2기는 한국 석탑 중에서도 규모와 격조 면에서 손꼽히는 걸작이다. 두 탑은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높이가 약 13.4m에 달하며, 같은 크기와 양식을 한 탑이 나란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은 방문객을 압도한다. 이는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하며, 이후 등장하는 통일신라 석탑들—불국사 석가탑을 비롯한—의 전형적인 비례와 구조가 여기서 확립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석탑 양식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목조건축의 흔적이다. 백제계 석공의 기술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들은, 기단부와 탑신부의 결구 방식에서 목조 건축의 부재 결합 방식을 석재로 치환한 흔적이 뚜렷하다. 이는 삼국시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기법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증거다.

 

 

 

 

 

 

 

 

4. 사리장엄구의 발견 — 통일신라 공예의 정수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학술적으로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탑 내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때문이다. 1959년에 서탑을, 1996년에 동탑을 각각 해체하여 보수하였는데, 보수 도중 각 탑의 3층 몸돌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각각 보물 제366호, 제1359호로 지정되었다.

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를 살펴보면, 사리를 모시기 위한 청동제 사각함과 그 안에 있던 사리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각형 상자의 윗면에는 완만한 사각뿔 모양의 뚜껑이 있고 전체 높이는 약 31cm에 이른다. 사리함의 네 옆면에는 각각 사천왕상이 하나씩 별도로 주조되어 부착되었고 그 양옆에는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으며, 주위는 꽃무늬로 장식하되 이를 모두 동판에 따로 새겨 작은 못으로 고정한 정교한 공예 기법을 보여준다. 사리기는 정사각형 몸체 안에 안상형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존상을 배치하고, 위쪽 난간에는 주악상을 배치했으며 중심에는 화염보주를 두었다.

 

동탑의 사리장엄구 역시 유사한 구성과 양식을 보이는데, 사리를 담은 수정 사리병, 전각처럼 생긴 사리기, 상자 모양의 사리외함이라는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통일신라 사리구에서 자주 나타나는 형식이다. 사리외함 네 면에 부착된 사천왕상은 사천왕사터의 사천왕상과 양식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문무왕의 호국 이념이 감은사뿐 아니라 사천왕사와도 사상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다만 두 사리장엄구 모두 발견 당시부터 부식이 심각한 상태였다. 서탑의 사리장엄구는 1996년 발견된 동탑 것과 거의 비슷한 양식이지만 보존 상태는 더 나쁜 편이었고, 이는 오랜 세월 지하 사리공에 스며든 습기와 금속 자체의 부식이 겹친 결과로 추정된다. 현재 두 사리장엄구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통일신라 초기 금속공예 기술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5. 최근의 보존 처리 논의

천삼백여 년을 견뎌온 두 탑은 최근 들어 구조적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가유산수리기술위원회는 최근 회의에서 국보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의 보존 처리 안건을 심의해 조건부로 가결했다. 두 탑은 과거에도 부재를 해체해 보수한 적이 있으나, 최근 조사에서 주의 관찰이 필요하다거나 보존 처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온 상황이다.

이는 대형 석조 문화유산이 야외에 노출된 채 오랜 세월을 버텨온 만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과제이며, 향후 정밀 안전진단과 단계적 보존 처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6. 문무왕의 유언이 남긴 석조 유산

감은사지는 단순히 오래된 절터가 아니다. 그것은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왕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유지(遺志)와, 그 뜻을 받든 아들의 효심이 응축된 상징물이다. 금당 아래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이야기, 쌍탑식 가람이라는 건축사적 전환점, 그리고 탑 속에 봉안된 정교한 사리장엄구까지—감은사지는 통일신라 초기의 정치 이념과 신앙, 예술이 하나로 응결된 복합적 유산이다.

 

무엇보다 이 유적이 특별한 것은, 문무대왕릉이 바라다보이는 동해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지리적 맥락 때문이다. 바다에 잠든 왕의 혼과 그 왕을 기리는 아들의 절이 한 시야 안에 놓여 있는 이 풍경은, 문헌 기록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통일신라 왕실의 정서를 오늘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석탑이 서 있는 그 넓은 옛 절터에 서면, 천삼백 년 전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세운 마음이 지금도 바닷바람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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