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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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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정원채고가(2005.02) 조선 후기에 지은 살림집으로 원래는 행랑채 등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던 큰 규모의 집이었으나 현재는 안채·사랑채·문간채만이 남아 있다. 대문에 쓰여진 기록에 의하면 광무 8년(1904)에 지었다고 되어 있으나 안채는 이보다 이른 19세기 후반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구성은 ㄱ자형의 안채..
화성 정용채가옥(2005.02) 나즈막한 동산이 둘러있는 명당 터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큰집이다. 솟을대문에 적힌 기록에는 "고종 24년(1887)에 문을 세웠다"고 적혀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이 문보다 약 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은 정면으로 내지않고 북쪽측면으로 내어 언뜻보면 집이 커보이지 않지만 실..
남한산성(2004.12)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
여주 김영구가옥 - 1 (2004.11) 한강이 멀리 내다보이는 터전에 자리하고 있는 주택이다. 뒷산을 배경으로 정남향을 하고 있는 이 집은 1753년(영조 29년)에 지은 것을 상량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안채·사랑채·작은사랑채·곳간채가 모여 'ㅁ'자를 이루고 있으며, 원래 대문은 바깥행랑채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
남양주시 여경구 가옥(2004.11,2006.07) 현재의 소유자 여경구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180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산을 뒤로 하고 있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안채와 사랑채·문간채·행랑채·사당채가 연결되지 않고 각각 떨어져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집안 ..
남양주시 홍유릉(2004.11)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
구리시 동구릉(2003.11) 조선을 세운 태조의 무덤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뒤 조선시대를 통하여 가족무덤을 이루고 있는 왕릉군이다. 동구릉이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무덤이란 의미로, 무덤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동칠릉이라 불렀는데 철종 6년(1855)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태조가 죽은 뒤 태종은 ..
보은 최태하가옥(2006.09) 안채에 적힌 상량문에 따르면 고종 29년(1892)에 지어진 집임을 알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함께 지은 것으로 보이고, 문간채·곳간채·헛간채는 그 뒤에 따로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넓은 공터를 지나 동쪽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바깥대문채, 그 왼쪽에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앞에는 그리 크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