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일본 히메지성(姫路城)
효고현 히메지시 한복판, 나지막한 히메야마(姫山) 언덕 위에 눈처럼 흰 성곽 하나가 솟아 있다. 히메지성(姫路城)이다. 성벽 전체를 두껍게 뒤덮은 흰 회반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크고 작은 지붕들이 겹겹이 포개진 모습이 마치 백로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려는 순간을 닮았다 하여 '시라사기조(白鷺城)', 즉 백로성이라는 별칭으로도 널리 불린다. 1993년 나라현 호류지(法隆寺)의 불교 건조물군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히메지성은, 단순히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관광지가 아니라 일본 근세 성곽 건축이 도달한 기술적·미학적 정점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료(史料)다.
1. 축성의 역사 — 작은 사찰 터에서 천하의 명성으로
히메지성의 뿌리는 1346년, 남북조시대의 무장 아카마쓰 사다노리가 히메야마에 있던 사찰 쇼묘지(聖障寺) 터를 기반으로 소규모 성을 쌓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성은 오늘날의 위용과는 거리가 먼, 단층의 소박한 요새에 지나지 않았다. 성이 본격적인 근세 성곽으로 탈바꿈한 것은 전국시대 말기다. 구로다 요시타카에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고쿠 지방 공략의 거점으로 히메지성을 활용하며 천수(天守)를 증축했고, 세키가하라 전투(1600) 이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인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 1565~1613)가 하리마국의 영주로 부임하여 대대적인 개축에 착수했다. 1601년부터 1609년까지 8년에 걸쳐 진행된 이 공사에는 연인원 수백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전해지며,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히메지성의 골격은 대부분 이때 완성되었다. 이후 성주 혼다 다다마사가 니시노마루(西の丸)를 증축하면서 1617년 무렵 현재의 전모가 갖추어졌다.
2. 건축적 특징과 방어 체계 — 아름다움 속에 감춘 실전의 논리
히메지성의 미학은 방어라는 실용적 목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의 심장부인 대천수(大天守)는 지상 6층, 지하 1층, 높이 약 31.5미터로 에도시대 이전에 건립되어 현존하는 일본의 12개 천수 가운데 가장 높다. 대천수와 세 개의 소천수(小天守)가 회랑으로 연결된 '렌립식(連立式)' 구조는 히메지성을 대표하는 독창적 배치로,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오더라도 여러 건물이 서로 사각을 없애며 화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성벽을 두껍게 감싼 흰 회반죽은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화공(火攻)과 총탄에 견디는 내화·방탄의 기능을 겸했으며, 성곽 전체에는 궁수를 위한 화살구멍과 돌을 떨어뜨리는 창, 나선형으로 얽혀 적의 진입 속도를 늦추는 미로형 통로 등 정교한 방어 장치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정문에 해당하는 오테몬(大手門)은 세 겹의 문으로 이루어져 성 안에서 가장 격식 높은 관문 역할을 했다. 지붕 위에는 화재를 막아 준다는 전설을 지닌 물고기 모양 장식 기와 '샤치(鯱)'가 얹혀 있는데, 쇼와시대 대수리 당시 입을 다문 형태로 통일 복원되어 오늘날 히메지성만의 독특한 도상으로 남아 있다. 성 내부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층위의 정교함이 드러난다. 대천수를 떠받치는 두 개의 거대한 심주(心柱)는 지하부터 최상층까지 건물 전체를 관통하며 지진과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적 핵심으로, 근세 일본 목조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히메야마 정상에서 히메지 시가지를 향해 좌선회하며 겹겹이 펼쳐지는 내곽·중곽·외곽의 삼중 구조는 단순한 미로가 아니라, 적의 진격 속도와 시야를 계산에 넣은 치밀한 축성 논리의 산물이다.
3.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히메지성이 세계유산으로 평가받는 핵심은 '완전성'과 '진정성'이다. 일본 전역에 한때 170여 개에 이르렀던 근세 성곽 대부분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폐성령, 자연재해,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공습으로 소실되었지만, 히메지성은 대천수를 비롯한 8개 동이 국보로, 74개 동에 이르는 망루·문·담장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원형에 가까운 목조 구조물 대부분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가 투하한 소이탄이 대천수에 명중했으나 불발되었다는 일화는, 이 성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우연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네스코는 히메지성을 목조 건축 기술과 축성술이 결합해 만들어 낸 일본 성곽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하며, 봉건시대 무가 사회의 정치·군사 체제를 물리적 공간으로 구현한 드문 사례로 인정하고 있다.
4. 보존과 복원 — 시간과 싸우는 목조 유산
나무와 흙, 회반죽으로 이루어진 히메지성을 원형대로 지켜내는 일은 끊임없는 보수의 역사이기도 하다. 1950년 문화재보호법 시행 이후 여러 차례 대규모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1964년에는 이른바 '쇼와의 대수리'가 완료되어 국보급 가치를 대내외에 확고히 알렸다. 이후에도 목재의 부식과 회벽의 균열 등 노후화 문제가 이어지면서 2009년부터 약 6년에 걸친 '헤이세이의 대수리'가 진행되어 2015년 마무리되었다. 이 공사에서는 대천수의 옻칠과 기와를 전면 교체하고 내진 보강을 병행하면서도, 관람객이 공사 과정 자체를 견학할 수 있도록 개방해 보존 기술을 대중과 공유하는 실험적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거대한 목재의 조달과 전통 미장 기술의 전승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히메지시는 장인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백로성을 지탱하는 손기술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데 힘을 쏟고 있다.
5. 맺음말
히메지성은 전란의 시대가 낳은 군사 시설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가 도달할 수 있었던 미의식의 절정이기도 하다. 적을 막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회벽과 미로 같은 통로가 오늘날에는 백로의 날갯짓을 닮은 우아한 곡선으로 읽히는 역설 속에, 이 성이 지닌 문화유산으로서의 깊이가 있다. 400여 년의 세월과 전쟁, 재해를 견뎌 낸 이 목조 성곽은 일본 근세 건축사의 정점이자, 파괴와 보존이라는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함께 되짚어보게 하는 세계유산으로 오늘도 히메야마 위에 조용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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