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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건축 갤러리 ■/국 내

진주 철도문화공원 ㅡ 기차가 떠난 자리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시민의 일상과 예술을 겹쳐 놓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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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철도문화공원

 

1. 진주역, 100년의 시작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 진주역이 들어선 것은 1923 12월의 일이다. 마산과 진주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진주는 처음으로 기차를 맞았고, 이 노선은 훗날 순천까지 이어져 경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서부 경남 교통의 중심축이 되었다. 여객과 화물을 함께 다루던 진주역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 통일호와 비둘기호가 오가는 역이자, 진주성과 논개, 남강 유등축제로 대표되는 이 도시의 관문이었다. 1925년에는 기차의 몸체를 정비하는 차량정비고가 역 곁에 세워졌고,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역사는 1956년 다시 지어졌다. 이렇게 진주역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쟁과 재건을 모두 통과하며 90년 가까운 세월을 도시와 함께했다.

 

 

 

 

 

 

 

2. 이전과 폐쇄, 그리고 10년의 공백

진주역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10년대 국가 철도망 개편 속에서였다. 경전선의 여러 구간이 단선에서 복선 전철로 바뀌는 사업이 추진되었고, 마산과 진주 구간도 그 대상이 되었다. 선로의 선형이 새롭게 짜이면서 시내 한복판 강남동에 있던 옛 역은 더 이상 새 노선과 맞지 않게 되었다. 결국 2012 10, 진주역은 이미 폐지된 개양역 자리인 남쪽 가좌동으로 옮겨 갔다. 옛 진주객사의 모습을 재현한 한옥 형태의 새 역사가 그 자리에 들어섰고, 90년 가까이 도심의 관문 역할을 하던 옛 역은 그날로 문을 닫았다.

 

역이 떠난 자리, 4 2000㎡에 이르는 철도부지는 오히려 도시의 짐이 되었다. 접근성 좋은 원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도 이렇다 할 쓰임이 없는 유휴지로 남으면서, 인근 지역의 노후화를 가속하고 생활환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까지 지목되었다. 정비고 외벽에 남은 한국전쟁 총탄 자국처럼, 기관차의 방향을 돌리던 전차대우리나라에 하나뿐이라는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시설처럼, 옛 진주역의 흔적들은 그렇게 약 10년 가까이 방치된 채 시간을 견뎌야 했다.

 

 

 

 

 

 

 

3. 재생의 밑그림과 조성 과정

진주시는 이 방치된 부지를 지우는 대신 되살리는 길을 택했다. 옛 진주역 철도부지 재생은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 이전과 함께 '부강진주 3대 프로젝트'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고, 시는 이를 네 단계에 걸쳐 완성해 나가는 구상을 세웠다. 그 첫걸음은 2020 12,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인정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시작되었다. 국비와 도비를 합쳐 60억 원을 지원받은 이 사업은 철도부지에 서식하던 멸종위기급 야생생물 맹꽁이의 이주를 지역 주민, 환경단체와 함께 완료하고, 정비고를 비롯한 옛 시설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마무리하는 등 세심한 사전 절차를 거쳤다.

 

선행 사업으로는 옛 진주역사 건물을 리모델링해 철도 유물과 사진, 기록물을 전시하는 '일호광장 진주역'으로 다시 열었고, 역 앞 사거리에는 광장과 '소망의 거리'를 조성했다. 2022년 한 해 동안 이러한 성과가 먼저 가시화되었고, 같은 해 4월에는 공원 조성과 차량정비고 리모델링이 함께 착공되었다. 총사업비 480억 원이 투입된 이 공사는 약 1년여의 시공을 거쳐 2023 6 14일 준공식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그해는 진주에 철도가 놓인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준공식에서 조규일 진주시장이 '1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철도문화공원의 준공은 진주 미래 100년을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비어 있던 부지는 100년의 시간을 품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4. 공원이 품은 것들

철도문화공원의 구성은 옛 철도 시설을 헐어내는 대신 새로운 쓰임으로 바꾸어 놓은 결과다. 중심에는 리모델링된 옛 역사 건물 '일호광장 진주역'과 국가등록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된 차량정비고가 자리한다. 정비고는 붉은 벽돌과 목조 트러스, 외벽에 남은 총탄 자국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목적 문화시설로 활용되고 있으며,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커뮤니티 공간도 함께 조성되었다. 기관차의 방향을 돌리던 전차대는 물에 비친 풍경을 담는 미러폰드로 다시 태어나 옛 철도 시설의 흔적을 조경 요소로 되살렸고, 그 주변으로 자연놀이뜰과 야외전시마당이 자리를 잡았다.

 

공원 전체에는 기존 수목과 어우러지도록 교목과 관목 약 1만 그루, 초화류 약 20만 본이 새로 심겼다. 철로 부지 한편에는 멸종위기종 맹꽁이의 서식처를 보전한 맹꽁이생태공원이 들어서 도심 속 자연학습의 장소가 되었다. 2023 3월에는 한국철도공사로부터 무궁화호 객차 두 량을 매입해 공원에 설치했고, 이를 리모델링해 전시와 체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 2025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화물과 사람을 실어 나르던 철길이 이제는 시민이 거닐고 쉬어 가는 공원으로 바뀐 셈인데, 한 전문가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파크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5.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 ㅡ 총탄 자국이 남은 근대산업유산

1920년대 진주역과 함께 세워진 차량정비고는 기차의 몸체를 점검하고 고치기 위한 실용적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 조적과 노출된 목조 트러스 지붕이 특징인 이 건물은 장식을 덜어낸 단순하고 세련된 구조로 건축적 완성도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이 품은 것은 아름다운 형태만이 아니다. 외벽 곳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투기의 기관총 사격을 받은 총탄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쟁을 관통해 온 근현대사의 굴곡이 벽돌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음을 증언한다.

 

건물 곁에는 기관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사용했던 전차대(轉車臺) 시설도 남아 있다. 앞뒤가 구분되던 옛 기관차들은 종착역에 이르면 이 원형 장치 위에서 몸을 돌려야 했다. 지금은 양방향 동력차가 늘면서 그 쓸모를 다했지만, 녹슨 궤도와 콘크리트 피트는 철도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시절의 노동과 반복의 리듬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정비고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의 물리적 저장고라 할 수 있다.

 

 

 

 

 

 

 

 

 

 

 

 

 

 

 

 

 

6. 문화의 무대로

완공 이후 철도문화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진주의 문화 예술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건축문화제, 진주공예비엔날레, 세계민속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고, 드라마 '연인' 한복 전시회처럼 대중적인 기획전도 이 공간을 거쳐 갔다. 2026년에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국립진주박물관과 함께 세 곳을 잇는 대규모 기획전 '이미지의 미래들서사하는 기억, 채색화를 넘어'가 열려, 차량정비고 안에 마련된 '광장의 기억' 섹션에 열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도 했다. 노동의 궤적이 새겨진 옛 정비고가 신학철·서용선·이우성 같은 화가들의 회화와 정현·이동욱 같은 조각가들의 작업을 품으면서, 이 공간이 지닌 장소성 자체가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외부의 평가로도 이어졌다. 철도문화공원은 2024 11월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에서 최우수상을, 같은 해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는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전국적인 도시재생 모범 사례로 인정받았다.

 

 

 

 

 

 

 

 

 

 

 

7. 남은 이야기, 다음 100

철도문화공원은 진주시가 그리는 큰 그림의 1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이 철도부지 일원으로 이전을 추진 중이다. 2019 6월 진주시와 협약을 맺은 이 사업은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하며, 최근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해 국제설계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박물관이 이전한 뒤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기존 박물관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 진주관으로 활용하려는 구상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아울러 가좌동 새 역사에서 진치령터널을 지나 남강변 다목적문화센터까지 잇는 384억 원 규모의 '문화거리' 조성 사업도 설계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결국 오늘의 철도문화공원은 완결된 결과물이라기보다, 폐선이라는 상실의 순간에서 출발해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기차가 떠난 자리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시민의 일상과 예술을 겹쳐 놓은 이 공원은, 한 도시가 자신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옛 것을 허물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얹어 가는 이 더딘 작업이야말로, 진주가 다음 100년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광장의 기억 > ㅡ 장소가 기억을 읽는 방식 ( 진주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 2026.07.19.)

 

< 광장의 기억 > ㅡ 장소가 기억을 읽는 방식 ( 진주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 2026.07.19.)

―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 1. '이미지의 미래들' ― 채색화를 넘어선 실험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과 국립진주박물관, 그리고 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까지 진주 시내 세 곳의 문화 공간을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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