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史記)』 열전 제 47편 ㅡ「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서론
『사기(史記)』 열전 제47편은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으로, 전한(前漢) 경제(景帝)와 무제(武帝) 시기를 풍미했던 두 척신(戚臣) 두영(竇嬰)과 전분(田蚡)의 흥망을 다룬 편이다. 두영은 경제의 생모인 두태후(竇太后)의 조카로 위기후(魏其侯)에 봉해졌고, 전분은 무제의 생모인 왕태후(王太后)의 동생으로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졌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태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조정에서 권세를 다투었으나, 결국 둘 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사마천은 이 편을 통해 단순히 두 척신의 개인사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척(外戚) 정치가 지닌 근본적 불안정성과 권력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두영은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서 한때는 두태후의 총애와 함께 재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었으나, 두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 권세도 급격히 기울었다. 반면 전분은 두영이 몰락하는 바로 그 시점에 왕태후의 후광을 업고 승상의 자리에 올라 조정을 좌우하게 된다. 사마천은 이 두 인물의 대비되는 궤적을 통해 권력이 개인의 능력이나 덕망보다 태후의 생사와 총애 여하에 좌우되는 한대(漢代)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 이 서론에서는 본론에 앞서 두 인물의 배경과 이 열전이 갖는 사학적 의의를 개관하고, 본론에서는 두영과 전분의 대립 구도, 그리고 그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인 관부(灌夫)의 옥사(獄事)를 중심으로 상세히 살펴본다.
본론
두영은 한 문제(文帝) 시기부터 벼슬을 시작하였으나, 그의 정치적 입지가 확고해진 것은 경제 즉위 초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는 대장군에 준하는 지위로 군대를 통솔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위기후에 봉해졌다. 이후 그는 두태후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한때 승상의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두영은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던 까닭에, 두태후가 양왕(梁王)을 경제의 후계자로 세우려 했을 때 이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태후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다. 이 일화는 두영이 단순히 외척의 특권에 안주하는 인물이 아니라 나름의 정치적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강직함은 훗날 그가 고립되는 원인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전분은 두영보다 한 세대 뒤에 등장한 인물로, 무제가 즉위하고 그 생모 왕태후의 위세가 높아지면서 함께 부상하였다. 사마천은 전분의 인물됨을 두영과 대비하여 묘사하는데, 전분은 언변이 뛰어나고 처세에 능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교만함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두영이 두태후의 사망 이후 급격히 실권한 반면, 전분은 왕태후의 비호 아래 승상 자리에까지 올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 무렵 두영은 이미 한직으로 밀려난 상태였고, 그의 곁에는 오직 관부라는 인물만이 의리를 지키며 남아 있었다.
관부는 성정이 거칠고 술을 좋아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무장(武將) 출신의 인물로, 두영과는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사마천은 관부의 형상을 통해 몰락해가는 두영에게 마지막까지 의리를 지킨 인물상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바로 이 관부의 강직하고 거친 성품이 결국 두영 일파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도화선이 되고 만다. 전분의 혼인 잔치 자리에서 관부는 술에 취해 좌중의 인사들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전분의 측근을 힐책하다가 오히려 전분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이는 곧 전분이 관부를 탄핵하는 빌미가 된다. 두영은 옛 벗을 저버릴 수 없어 필사적으로 관부를 변호하고 나서지만, 이미 권력의 축은 완전히 전분 쪽으로 기울어진 뒤였다.
이 사건의 전말을 두고 무제가 조정 대신들에게 시비를 묻는 장면은 이 열전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이다. 어사대부 한안국(韓安國)을 비롯한 대신들은 전분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명확한 판단을 피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데, 사마천은 이 장면을 통해 권력 앞에서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고 침묵당하는지를 신랄하게 그려낸다. 결국 관부는 멸족의 화를 당하고, 두영 또한 무고의 죄를 뒤집어쓴 채 처형되고 만다. 흥미로운 것은 승리를 거둔 전분 역시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죽는데, 그 임종의 순간에 두영과 관부의 망령에게 시달리며 죄를 자백하는 헛소리를 했다는 일화를 사마천이 굳이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 인과응보라는 도덕적 심판을 은연중에 서사에 각인시키려는 사마천 특유의 필법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위기무안후열전」은 표면적으로는 두 척신의 권력 다툼을 그린 편년적 기록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마천의 깊은 역사적 통찰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다. 두영과 전분, 그리고 관부라는 세 인물은 각기 강직함과 의리, 교만과 권모술수라는 상반된 가치를 체현하며, 이들의 충돌은 결국 권력의 정당성이 태후의 총애라는 우연적이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마천은 승자인 전분에 대해서도 결코 관대한 평가를 내리지 않으며, 그의 임종 장면을 통해 부정한 권력의 말로를 암시함으로써 역사가로서의 준엄한 필치를 잃지 않는다.
특히 이 열전은 관료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지를 한안국을 비롯한 대신들의 처신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력의 향배 앞에서 침묵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처세는 결국 정의의 실현을 가로막고, 힘없는 이들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마천의 문제의식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다. 두영의 강직함이 끝내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비극적 결말은, 사마천이 즐겨 다루는 '정직한 자의 불우한 운명'이라는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어, 「백이열전」이래 그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역사관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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