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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44. 「전숙열전(田叔列傳)」ㅡ 전숙(田叔)·전인(田仁)·임안(任安)의 삶을 통해 본 의리와 충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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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44편「전숙열전(田叔列傳)

 

Ⅰ. 서론

사마천의 『사기』 열전 제44편은 흔히 「전숙열전(田叔列傳)」으로 불린다. 표제에는 전숙(田叔) 한 사람의 이름만 올라 있지만, 실제 내용은 전숙과 그의 아들 전인(田仁), 그리고 전인의 벗 임안(任安) 세 사람의 생애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편의 중반부에 한무제 시기의 법리(法吏) 조우(趙禹)가 등장하여, 위청(衛靑) 장군의 문객들 가운데 전인과 임안의 재능을 알아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조우는 이 편의 공동 전주(傳主)는 아니지만, 인물을 알아보는 감식안을 지닌 조연으로서 이야기의 전환점을 만들어낸다.

 

이 편은 단순한 인물 열전을 넘어,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태도와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진면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전숙은 조왕(趙王) 장오(張敖)를 향한 변함없는 의리로, 임안은 여태자(戾太子)의 난이라는 격변 속에서 보인 처신으로 후대에 깊은 물음을 남겼다. 특히 임안은 사마천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당한 뒤 써 보낸 저 유명한 「보임안서(報任安書)」의 수신자이기도 하여, 이 편은 사마천 개인의 심경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본고에서는 전숙의 인품과 절의, 전인·임안의 우정과 비극, 그리고 조우가 담당한 서사적 역할을 차례로 살펴봄으로써 이 편이 전하고자 하는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전숙(田叔) — 청렴과 절의의 사표

전숙은 조나라 형성(陘城) 출신으로, 제나라 전씨(田氏)의 후예였다. 그는 검술을 좋아하였고 악거공(樂巨公)에게서 황로(黃老)의 학문을 배웠는데, 사람됨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청렴하였으며 나이 많고 덕이 있는 이들과 사귀기를 즐겼다. 조나라 사람들의 천거로 조나라 상국 조오(趙午)에게 알려지고, 다시 조왕 장오에게 추천되어 낭중(郎中)이 되었다. 왕은 곧 그가 정직하고 청렴결백한 인물임을 알아보았으나 미처 중용하기 전에 큰 사건이 벌어진다.

 

한고조 7, 고조가 대() 땅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나라를 지나며 조왕에게 무례한 언행을 보이자, 상국 조오 등은 이를 참지 못하고 은밀히 시해를 도모하였다. 조왕 장오는 손가락을 깨물어 결코 은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거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였으나, 조오 일파의 음모가 발각되면서 관고(貫高)를 제외한 관련자 대부분이 자결하였다. 고조는 조왕을 따르는 자는 삼족을 멸하라 명하였음에도, 전숙과 맹서(孟舒) 등 십여 명은 스스로 붉은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깎고 목에 칼을 쓴 채 조왕의 노비를 자처하며 장안까지 그를 호종하였다. 이는 죽음을 무릅쓴 충절이었으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조왕이 방면된 뒤에도 전숙은 그 절의로 말미암아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이후 전숙은 한중군수(漢中郡守)로 십여 년간 재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그가 임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노왕(魯王)은 그 아들 전인에게 제사 비용으로 황금 백 근을 보냈으나, 전인은 이를 사양하며 '백금으로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는 없다'고 답하였다. 이 한마디는 전숙 부자가 공유한 청렴한 가풍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사마천이 전숙을 '장자(長者)'로 평가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2. 전인(田仁)과 임안(任安) — 곤궁 속에서 빛난 우정과 재능

전숙의 아들 전인은 뒷날 위청 장군의 문객이 되어 임안과 한집에 머물게 되는데,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었다. 둘 다 집안이 가난하여 장군가의 청지기에게 뇌물을 쓸 형편이 못 되었으므로 사나운 말을 기르는 천한 일을 맡았다. 그럼에도 평양공주(平陽公主)를 배종하던 자리에서 기노(騎奴)와 같은 자리에 앉게 되자, 두 사람은 칼을 뽑아 자리를 갈라내고 따로 앉음으로써 자존을 지켰다. 이 일화는 궁핍한 처지에서도 스스로의 품격을 놓지 않은 두 사람의 기개를 잘 보여준다.

이후 황제가 위청의 문객 가운데 낭관(郎官)을 뽑고자 조서를 내렸을 때, 장군은 부유한 문객들만을 추려 보고하려 하였다. 마침 위청을 방문한 소부(少府) 조우가 천거된 이들을 하나하나 시험하였으나 십여 명 가운데 쓸 만한 인물이 없었다. 조우는 '장수 문하에는 반드시 장수가 될 만한 인재가 있는 법이다. 임금을 알려면 그가 부리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알려면 그가 사귀는 벗을 보라 하였다', 다시 문객 백여 명을 모두 불러 시험한 끝에 전인과 임안 두 사람만이 쓸 만하다고 판정하였다. 이 대목에서 조우는 단순한 법리를 넘어 사람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소유자로 그려지며, 편명에 그의 이름이 함께 오르내리는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황제 앞에 나아가 서로의 재능을 평가하게 되었을 때, 전인은 '북채를 잡고 군문에 서서 병사들이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게 하는 일은 임안만 못하다' 하였고, 임안은 '혐의를 가려내고 시비를 판단하며 관리를 다스려 백성이 원망하지 않게 하는 일은 전인만 못하다' 하였다. 무제는 크게 웃으며 임안에게 북군(北軍)을 감호하게 하고 전인에게는 하상(河上)의 둔전을 감독하게 하니, 두 사람의 이름이 곧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서로를 낮추면서도 정확히 상대의 장점을 알아보는 겸양과 지인지감(知人之鑑)을 함께 드러낸 장면이다.

3. 여태자의 난과 두 사람의 비극

전인은 훗날 승상사직(丞相司直)에 올라 삼하(三河)의 부패한 태수들을 과감히 탄핵함으로써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무제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여태자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성문을 지키라는 승상의 명을 받고도, 태자와 황제가 골육지친임을 들어 부자간의 다툼에 끼어들기를 거부하고 자리를 비켜 태자가 성을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이 일로 그는 황제의 명에 따라 옥리에게 넘겨져 처형되었다.

 

같은 시기 북군사자호군(北軍使者護軍)이던 임안은 태자로부터 부절(符節)을 받았으나 군문을 닫아걸고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무제는 이를 '승패를 관망하며 두 마음을 품은 것'으로 판단하였고, 때마침 임안에게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있던 하급 관리의 고발이 겹치면서 그 또한 사형에 처해졌다. 두 사람 모두 난세 속에서 나름의 원칙을 지키려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이 편은 짙은 비극성을 띤다.

특히 임안은 사마천과 오랜 교분이 있던 인물로, 사형을 앞둔 임안이 사마천에게 어진 이를 천거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던 데 대한 답신이 바로 「보임안서」이다. 이 편지에서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자신의 처지와 『사기』 저술의 뜻을 토로하였으니, 「전숙열전」의 말미에 저소손(褚少孫)이 임안의 행적을 보완하여 덧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것이다.

4. 태사공의 논평이 전하는 뜻

사마천은 찬()에서 전숙을 '장자로서 의를 중히 여기고 생명을 가벼이 여겼다'고 평하였고, 색은술찬(索隱述贊)은 전숙이 장왕(張王, 장오)의 억울함을 씻어준 일과 한중에서 명성을 얻은 일, 그리고 아들 전인이 일로 인해 처형된 사실까지를 간략히 요약하고 있다. 이는 한 집안 삼대에 걸친 절의와 강직함이 결국 정치적 격랑 속에서 파국을 맞는 과정을 압축한 것이다.

또한 사마천은 편의 말미에서 '달이 차면 기울고 사물이 성하면 쇠하는 것이 천지의 상도(常道)이니,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면 재앙이 쌓여 화가 된다'고 하며 범려(范蠡)가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난 일을 상찬하였다. 이는 전인과 임안의 죽음을 목도한 사마천이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나지 못한 이들의 운명을 성찰하며 후대에 경계를 남긴 것으로 읽힌다.

 

Ⅲ. 결론

「전숙열전」은 표제상 한 인물의 전기이지만, 실제로는 전숙·전인·임안 세 사람의 삶이 대를 이어 서로 공명하며 하나의 주제, 곧 신하로서의 의리와 절의가 시대의 격변 속에서 어떻게 시험받고 또 좌절하는가를 그려낸다. 전숙은 죽음을 무릅쓴 충절로 이름을 얻었고, 전인과 임안은 곤궁 속에서도 자존을 지키며 조우의 안목에 힘입어 세상에 나섰으나, 끝내 여태자의 난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이 편이 지니는 각별한 무게감은 임안이 사마천과 개인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보임안서」를 통해 우리는 사마천이 벗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꼈을 참담함과, 그럼에도 역사를 기록하는 사명을 저버리지 않은 의지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 결국 이 열전은 한 시대 관료들의 처세와 운명을 넘어, 사마천 자신이 겪은 굴욕과 신념을 투영한 거울이라 할 수 있으며, 인간이 권력과 의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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