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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45.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ㅡ 의술에 앞선 절제와 겸허함이라는 삶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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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45편 —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Ⅰ. 서론

 

『사기』 열전 45편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은 전숙열전에 이어지는 편으로, 춘추전국시대의 명의 편작(扁鵲)과 전한 문제 때의 명의 창공(倉公) 순우의(淳于意)의 생애를 함께 다룬다. 제왕과 제후, 정치가와 협객이 주를 이루는 여느 열전과 달리, 이 편은 온전히 '치료하는 자'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술이라는 전문 영역을 역사서의 정식 기록으로 끌어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사마천이 신분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사기』 제105권에 해당하는 이 편은 옛 판본으로 60여 쪽이 넘을 만큼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며, 후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도 의가류(醫家類) 기록의 원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일본에서는 이 편을 별도로 떼어내어 주해서를 여러 종 펴낼 만큼 중시했는데, 이는 편작창공열전이 단순한 인물 기록을 넘어 고대 동아시아 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함께 전하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Ⅱ. 본론

1. 편작신의로 불린 명의

편작의 본명은 진월인(秦越人)으로, 발해군 출신이다. 젊어서 객사를 관리하던 그는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은자로부터 비방을 전수받아 사람의 몸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진맥술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는 괵()나라에 이르렀을 때, 태자가 이미 죽어 장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직 죽지 않았다며 진찰을 자청했다. 침과 뜸으로 태자를 되살려낸 이 일화는 후대에 '기사회생(起死回生)'이라는 성어로 남아, 죽은 사람도 능히 살려낼 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는 제나라 환후를 진찰한 이야기다. 편작은 환후를 볼 때마다 병이 피부에서 혈맥으로, 다시 장위로, 마침내 골수로 깊어지고 있음을 경고했으나, 환후는 자신이 병들지 않았다고 여겨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병이 골수에 이르자 편작은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자취를 감추었고, 환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휘질기의(諱疾忌醫)'라는 성어는, 병을 숨기고 의원 만나기를 꺼리다가 화를 키우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로 오늘날까지 쓰인다. 사마천은 편작의 입을 빌려 '사람의 병은 많으나 의원이 근심하는 것은 병을 치료할 방법이 적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병자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는 뜻을 전하며, 이를 통해 통치와 처세의 이치까지 은유하고자 했다.

2. 창공 순우의진료 기록으로 남은 의술

창공 순우의는 제나라 태창(太倉)의 장을 지냈다 하여 '창공'이라 불렸다. 그는 공승 양경에게서 황제와 편작이 남긴 맥서를 전수받고, 안색으로 병을 진단하고 생사를 가늠하는 의술을 익혔다. 그가 남달랐던 점은 스스로 진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소상히 기록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사마천은 순우의가 무제의 질문에 답하며 밝힌 스물다섯 건의 진료 기록, 이른바 '진적(診籍)'을 열전에 그대로 옮겨 실었는데, 이는 병명과 증상, 진단 근거, 치료 경과까지 담긴 것으로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의료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순우의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그가 억울하게 형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아들 없이 다섯 딸만을 둔 그가 죄를 지어 육형에 처해질 처지에 놓이자, 막내딸 제영(緹縈)이 몸소 장안으로 올라가 문제에게 상서를 올려, 자신이 관노가 되어 아버지의 죄를 대신 갚겠으니 부디 아버지가 새사람이 될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이 효심에 감동한 문제는 순우의를 사면했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코를 베거나 발꿈치를 자르는 등의 잔혹한 육형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조서를 내렸다고 전한다. 한 의원의 딸이 올린 탄원이 국가의 형벌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은, 사마천이 이 편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인의(仁義)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마천은 순우의가 밝힌 자신의 한계 또한 가감 없이 옮겨 적었다. 순우의는 무제의 물음에 답하며, 자신이 진맥에 능하다 해도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세상에는 치료할 수 없는 여섯 가지 경우, 이른바 '육불치(六不治)'가 있다고 밝혔다. 교만하여 이치를 따지지 않는 자,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만 중히 여기는 자, 입고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 등이 그 예로 거론되는데, 이는 병을 낫게 하는 힘의 절반은 의술에, 나머지 절반은 환자 스스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명의로 이름났던 편작과 순우의가 한결같이 강조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절제와 겸허함이었다는 사실은, 이 편이 단순한 의술의 기록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가르침으로도 읽히는 이유다.

 

Ⅳ. 결론

편작창공열전은 제왕과 공신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사기』 열전 가운데서도 이채로운 자리를 차지한다. 사마천은 권력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던 의원들의 삶을 통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 역시 나라를 다스리는 일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편작이 보여준 통찰력과 병을 숨기지 말라는 경계, 순우의가 남긴 정밀한 진료 기록과 그 딸의 지극한 효심은 오늘날까지도 의술과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결국 이 편은 치료라는 행위를 통해 생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 대한 사마천의 존중이 응축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편은 의술이라는 전문 지식이 어떻게 스승에서 제자로, 세대를 넘어 전승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장상군이 편작에게, 양경이 순우의에게 자신의 비방을 아낌없이 전수한 장면들은 후대의 의원들에게 스승을 공경하고 의술을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는 귀감으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병을 고치는 기술만이 아니라 그 기술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기록했다는 점에서, 편작창공열전은 중국 의학사의 정신적 뿌리를 이루는 편으로 오늘날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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