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43.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728x90
반응형
SMALL

 

 

 

 

『사기』 열전 43편 ㅡ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서론

『사기』 열전 가운데 만석장숙열전은 앞서 다룬 장석지풍당열전과는 또 다른 결의 인물상을 보여준다. 이 편은 석분(石奮)을 중심으로 한 만석군(萬石君) 일가와 장구(張歐, 장숙)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뛰어난 언변이나 과감한 직언이 아니라 지극한 근신(謹愼)과 공손함, 그리고 몸으로 실천하는 효행과 예법이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한나라 초기 통치 계층 안에 존재했던 또 다른 유형의 처세술, 즉 말보다 행동으로, 논쟁보다 침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신하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석분은 특별한 학문이나 문장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과 네 아들이 모두 이천석(二千石)의 고위 관직에 올라 합쳐서 만석(萬石)의 녹봉을 받게 되었다 하여 "만석군"이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다. 장구 역시 형벌을 다루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각박함이 아닌 관대함과 신중함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 열전이 흥미로운 지점은, 화려한 공적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한 가문이 여러 대에 걸쳐 존경받으며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본론

석분은 어린 나이에 고조 유방을 섬기게 되었는데, 특별한 재주는 없었으나 공손하고 삼가는 태도로 신임을 얻었다. 그의 누이가 미인으로 뽑혀 궁에 들어가면서 온 집안이 장안 부근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문제 대에 이르러 석분은 태중대부를 거쳐 마침내 그와 네 아들이 모두 이천석에 이르렀다. 경제(景帝)는 이를 두고 그를 만석군으로 부르며 예우했다.

 

만석군 집안의 가풍은 극도의 예법과 근신으로 유명했다. 자손들이 조정에서 물러나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부친을 뵈었으며,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아들들을 직접 꾸짖지 않고 밥상을 마주하고도 먹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의 질책을 표현했다. 그러면 자식들은 서로 옷을 벗어 웃통을 드러내고 사죄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밥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엄격함은 억압적인 통제라기보다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이었으며, 만석군 일가는 이로써 대대로 효성과 근신으로 이름을 떨쳤다. 심지어 말단 자손들까지도 관직에 나아가 이천석에 이르는 자가 십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가르침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넷째 아들 석경(石慶)의 일화는 만석군 가문의 신중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석경이 태복(太僕)으로서 황제의 수레를 몰던 중, 문제가 말의 수를 묻자 그는 채찍으로 말을 하나하나 세어본 뒤에야 대답했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이 행동은 사실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가풍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석경은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자리만 지킬 뿐 적극적으로 국정을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구(장숙)는 만석군 집안과는 다른 경로로 등장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매우 닮아 있다. 그는 형벌과 옥사를 담당하는 자리에 오래 있었으나, 성정이 돈후하고 자애로워 죄인을 심문할 때도 각박하게 몰아붙이지 않았다. 사건을 심리하다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억지로 죄를 단정하지 않고 다시 살폈으며, 만약 부득이하게 중형을 내려야 할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애석해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그는 관리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신망을 얻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임명되는 등 조정의 신임이 두터웠다.

 

결론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화려한 언변이나 극적인 공적이 아니라, 근신과 공손, 관후함이라는 조용한 덕목으로도 충분히 존경받는 신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석군 일가의 이야기는 특히 가정교육과 가풍의 힘을 강조하는데, 아버지의 무언의 꾸짖음과 자식들의 자발적인 반성이라는 방식은 강압이 아닌 감화를 통한 교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는 유가적 예교(禮敎) 질서가 한나라 초기 지배층의 일상 속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장구의 사례 역시 법을 다루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각박함이 아닌 관용으로 다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선 장석지의 엄정한 법 집행과는 대조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통치의 또 다른 얼굴을 제시한다. 사마천이 태사공왈에서 이들을 두고 각박하지 않고 근후(謹厚)함으로 이름을 남겼다고 평한 것은, 결국 통치란 법의 엄정함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우와 배려가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만석장숙열전은 그래서 화려하지 않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조용한 처세의 미덕을 오래도록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로 남는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