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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38. 부근괴성열전(傅靳蒯成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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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제 38편 — 부근괴성열전(傅靳蒯成列傳)

 

서론: 이름 없는 충성의 기록

 

역사는 흔히 빛나는 이름들로 채워진다. 소하와 장량, 한신과 조참처럼 시대를 설계하고 전략을 좌우한 이들의 이름은 후대에까지 또렷하게 남는다. 그러나 사마천은 『사기』 열전을 엮으면서 그러한 화려한 이름들 사이사이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삶들을 끼워 넣었다. 부근괴성열전이 바로 그러한 자리다. 부관(傅寬)과 근흡(靳歙), 그리고 괴성후 주설(周緤)—이 세 사람은 한 고조 유방이 패현에서 처음 깃발을 든 그 순간부터 함께 걸었던 이들이지만, 역사서의 큰 무대에서는 조연으로만 스쳐 지나간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굳이 이들을 하나의 열전으로 묶어 기록한 까닭은 분명하다. 천하를 얻는 일은 몇몇 영웅의 계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흔들림 없는 충성과 반복된 전공이 그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열전은 그러한 '무명(無名)의 유공자'들에 대한 사마천의 조용한 헌사라 할 수 있다.

 

본론

1. 부관(傅寬) — 전장을 따라 쌓은 신뢰

부관은 유방이 패현에서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합류하여, 이후 항우와의 오랜 쟁패 과정 전체를 함께한 인물이다. 그는 특출한 전략가로 이름을 알리지는 않았으나, 크고 작은 전투마다 성실하게 공을 세우며 신망을 쌓아갔다. 한신의 군에 배속되어 위(魏)와 조(趙), 제(齊) 지역을 평정하는 전역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성을 함락시키고 적장을 사로잡는 전공을 기록했다. 사마천은 그의 행적을 나열하면서 화려한 수사를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어느 해에 어느 성을 쳤고, 어떤 벼슬에 봉해졌는지를 건조하게 나열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는데, 이 담담한 문체 자체가 부관이라는 인물의 성격—요란하지 않고 꾸준한 무인의 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그는 끝내 양릉후(陽陵侯)에 봉해지고 제나라의 재상으로까지 나아가는데, 이는 전공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흔들리지 않은 충성심이 함께 평가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2. 근흡(靳歙) — 기병을 이끈 맹장

근흡 역시 패현 거병 초기부터 유방을 따른 인물로, 특히 기병을 지휘하는 데 능했다. 그의 열전 기록은 부관보다도 더 촘촘하게 전공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는 근흡이 실제로 매우 잦은 전투에 투입되었던 정황을 반영한다. 항우 진영의 여러 장수들과 맞서 싸우면서 적의 수급과 포로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거두었고, 형양과 성고를 둘러싼 초한 쟁패의 격전지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마천이 근흡의 전공을 서술하면서 유독 구체적인 수치—벤 목의 숫자, 사로잡은 포로의 수—를 반복해서 기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관료적 기록의 답습이라기보다, 근흡이라는 인물이 지닌 존재 가치를 가장 정확하게 증명하는 방법이 바로 그 숫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언변이나 계책으로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니라, 전장에서의 실질적 성과로만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무장의 숙명이 그 건조한 나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신무후(信武侯)에 봉해지며 그 공을 인정받는다.

3. 괴성후 주설(周緤) —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

세 사람 가운데 사마천이 가장 공들여, 그리고 가장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는 인물이 바로 주설이다. 주설은 부관이나 근흡처럼 눈부신 전공의 목록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특징은 오직 하나, 패현에서 유방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초한 쟁패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들, 유방이 팽성에서 대패하여 목숨을 잃을 뻔했던 순간에도, 형양성이 포위되어 함락 직전에 이르렀던 순간에도 주설은 언제나 유방의 곁을 지켰다. 사마천은 이 '떠나지 않음'이라는 행위를 다른 어떤 전공보다도 무겁게 다룬다. 전란의 시대에는 형세가 불리해지면 주군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오히려 흔했다. 그렇기에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신의(信義)의 문제였다. 유방 스스로도 그의 충성을 특별히 여겨 '괴성후'라는 봉호를 내리면서, 다른 공신들과는 구별되는 대우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나라 초기 논공행상의 기준이 반드시 전공의 크기만은 아니었음을, 그리고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신뢰 또한 국가를 세우는 데 필수적인 자산으로 평가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4. 세 인물이 나란히 놓인 이유

부관과 근흡, 주설을 하나의 열전으로 묶은 사마천의 편집 의도를 헤아려보면, 이는 단순히 시대가 비슷한 인물들을 편의상 합친 것이 아니다. 세 사람은 각각 '성실한 반복', '수치로 증명되는 전공', '흔들림 없는 곁자리'라는 서로 다른 방식의 충성을 대표한다. 사마천은 이 세 가지 유형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한 제국의 건립이 단일한 영웅서사가 아니라 여러 결의 충성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구조물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계책을 낸 장량도 필요했고, 병권을 총괄한 한신도 필요했지만, 동시에 묵묵히 성을 함락시킨 부관과 근흡, 그리고 그저 곁을 지킨 주설도 똑같이 필요했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역사의 무게중심이 반드시 '두드러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됨'에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결론: 기록되어야 할 조용한 이름들

부근괴성열전은 화려하지 않다. 극적인 반전도, 인상적인 명언도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담담함이야말로 이 열전의 진정한 가치다. 사마천은 역사서를 쓰면서 영웅만을 기록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전장의 이름 없는 성실함과, 위기의 순간에도 곁을 떠나지 않은 신의를 똑같은 무게로 죽간에 새겼다. 오늘날 우리가 부관과 근흡, 주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해도, 그들이 없었다면 한 제국의 기틀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열전은 결국 묻는다—역사에 남을 자격은 오직 눈부신 성취에만 있는가, 아니면 묵묵히 자리를 지킨 시간에도 있는가. 사마천의 답은 분명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그 답이야말로 『사기』라는 거대한 기록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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