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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36.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ㅡ 율법과 강직함으로 세운 조정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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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제36 편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

 

서론 — 창업 이후, 다스림의 시대

 

『사기』 열전이 30편을 넘어서면서 그 서술의 결은 미묘하게 바뀐다. 앞선 열전들이 진(秦)을 무너뜨리고 천하를 다투던 창업(創業)의 시대—칼과 군사, 책략과 배신의 이야기였다면, 장승상열전(張丞相列傳)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이미 한(漢)으로 정해진 뒤, 그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수성(守成)의 문제로 무게 중심이 옮겨간다. 이 열전의 주인공은 칼을 휘두른 장수가 아니라 법령과 문서, 조정의 논쟁 속에서 살아간 문신(文臣)들이다.

 

장승상열전은 한나라 초기의 재상 장창(張蒼)을 중심인물로 삼고 있지만, 그의 어사대부 승진 직후에는 전임 어사대부였던 주창(周昌)·조요(趙堯)·임오(任敖)의 기록이 삽입되며, 장창이 은퇴한 뒤에는 후임 승상인 신도가(申屠嘉)의 일대기로 마무리된다. 즉 이 열전은 한 사람의 단독 전기가 아니라, 한나라 초기 승상과 어사대부의 자리를 거쳐간 여러 인물들을 연쇄적으로 엮은 군상의 기록이다. 그 형식 자체가 이미 이 열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암시한다—제국의 통치란 한 영웅의 업적이 아니라, 법을 다루고 직언을 서슴지 않은 여러 신하들이 이어달리듯 떠받쳐온 결과라는 것이다.

이 열전을 관통하는 인물들의 공통된 미덕은 강직함이다. 장창은 음률과 역법에 정통한 학자적 관료였고, 주창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황제 앞에서 굽히지 않았으며, 신도가는 청렴하고 위엄 있는 재상의 전형이었다. 사마천은 이들을 통해 창업의 시대를 넘어 제도와 법치가 자리 잡아가는 한나라 초기의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어떻게 직언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보기를 제시한다.


본론 — 법과 강직함을 세운 사람들

1. 장창(張蒼) — 박속처럼 흰 피부의 학자

장승상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인물은 장창이다. 장창은 양무(陽武) 출신으로 평소 독서를 좋아하고 음률과 역법에 능했으며, 진나라 때 이미 어사(御史)가 되어 궁전 기둥 밑에서 사방 지방정부의 문서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죄를 지어 도망쳤다가, 패공(沛公) 유방이 그의 고향을 지날 때 객으로 종군하게 되었다.

장창의 일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건이다. 남양(南陽)을 공격하던 중 법에 연좌되어 참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형을 집행하려 옷을 벗기고 참수대에 엎드리게 했을 때, 그의 장대한 체구와 박속처럼 흰 피부를 본 왕릉(王陵)이 참으로 아름다운 선비라 감탄하여 패공에게 말해 참수형을 면하게 해주었다. 이 일화는 다소 기이하게 들리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사소한 인연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초 시대 특유의 서사다.

 

이후 장창은 학식을 바탕으로 한나라 조정에서 율령과 역법, 도량형의 정비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음률과 역법에 정통했던 만큼, 한나라 초기의 제도적 기틀을 세우는 데 실질적인 공헌을 했다. 마침내 어사대부를 거쳐 승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그의 일생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한 인재가 어떻게 제국의 법과 제도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2. 주창(周昌) — 말 더듬는 자의 곧은 혀

장창의 어사대부 승진 직후 삽입된 인물 중 가장 인상 깊은 이는 주창이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으나, 그 더듬는 말 속에 누구보다 강직한 뜻을 담아냈다. 한고조 유방이 태자 유영(劉盈, 훗날의 혜제)을 폐하고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여의(如意)를 새 태자로 세우려 하자, 조정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으나 누구도 황제 앞에서 그 뜻을 꺾지 못했다. 이때 주창이 나섰다.

유방이 그 이유를 묻자, 말을 더듬는 데다 잔뜩 화가 난 주창은 "신은 입으로 능히 말을 잘하지 못하나, 신은 기필코, 기필코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압니다. 폐하께서 비록 태자를 폐하고자 하셔도, 신은 기필코, 기필코 조서를 받들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유방은 그 말에 흔쾌히 웃었다. 더듬거리며 반복되는 "기필코(期期)"라는 말은 후대에 말더듬이를 가리키는 '기기애애(期期艾艾)'라는 고사성어의 어원이 되었을 만큼 유명한 장면이다. 이 일화에서 중요한 것은 언변의 유려함이 아니라, 말이 어눌해도 신념이 분명하면 군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폐태자 논쟁이 가라앉은 뒤, 유방은 주창을 조왕(趙王) 여의의 상국(相國)으로 보내 그를 보호하게 했다. 여후가 권력을 잡은 뒤 여의를 해치려 여러 차례 조왕을 소환했으나, 주창은 조왕의 어린 나이와 병을 핑계로 응하지 않으며 끝까지 막아섰다. 여후는 주창에게 무릎을 꿇고 존칭을 써가며 "그대가 아니었다면 폐태자가 이루어졌을 것"이라 감사를 표할 정도로 주창의 충심을 인정했다. 그러나 결국 여후는 주창을 먼저 장안으로 소환한 뒤 조왕을 불러들여 한 달 만에 독살했다. 고조의 부탁을 끝내 지키지 못한 주창은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주창의 이야기는 강직한 신하조차 권력의 흐름 앞에서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비극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직언의 용기는 사마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일화는 후대까지 신하의 충간(忠諫)을 대표하는 고사로 전해졌다.

3. 조요와 임오 — 짧게 스쳐간 자리

주창의 후임으로 어사대부 자리에 오른 조요(趙堯)는, 유여의의 보호자로 주창만 한 사람이 없다고 고조에게 진언하여 주창을 조나라 상국으로 보내고 그 빈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로도 순탄치 않았다. 주창이 죽은 지 5년 후, 조요가 일찍이 주창을 조나라로 보내라 진언했던 사실이 여후에게 발각되어 괘씸죄로 파면당했다. 한 사람의 정치적 계산이 시간이 지나 부메랑처럼 돌아온 사례다.

조요의 후임으로는 광아후(廣阿侯) 임오(任敖)가 임명되었다. 임오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은 길지 않으나, 그가 어사대부의 자리를 거쳐간 것 자체가 이 열전이 의도하는 바—한나라 초기 조정의 핵심 관직이 어떻게 인물들 사이에서 계승되고 단절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연표적 기능을 한다.

4. 신도가(申屠嘉) — 청렴하고 깐깐한 마지막 재상

장창이 물러난 뒤 승상의 자리를 이은 신도가는 이 열전의 결말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그는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했으며, 사사로운 청탁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원앙(袁盎)이 처음 그를 찾아왔을 때 "나라 일로 온 게 아니면 그냥 얼른 가라"라고 할 정도로 깐깐했던 신도가였지만, 막상 원앙과 대화를 나눠본 뒤에는 그를 상객(上客)으로 대접할 만큼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도 갖추고 있었다.

신도가의 강직함은 한문제(漢文帝) 시기 권신들과의 갈등에서도 드러난다. 한문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 조조(晁錯)는 재능은 있었으나 지나치게 비정하고 강직하며 융통성이 없는 성격으로, 승상 신도가와 원앙을 비롯한 많은 대신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는 신도가가 단순히 고지식한 인물이 아니라, 조정의 기강과 격식을 중시하며 권력의 전횡을 경계하는 재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신도가를 끝으로 사마천의 본래 서술은 마무리되고, 이후 저소손(褚少孫)이 후대 승상들의 기록을 덧붙여 열전을 보충했다.


결론 — 법치의 기둥, 직언의 전통

장승상열전이 그려내는 풍경은 칼과 전장의 시대가 저물고, 법령과 조정의 논쟁이 새로운 무대가 된 한나라 초기의 모습이다. 장창은 학식으로 제도의 기틀을 세웠고, 주창은 어눌한 말 속에 곧은 신념을 담아 황실의 후계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신도가는 청렴함으로 재상의 권위를 지켰다. 이들 모두는 한신이나 팽월처럼 거대한 무공을 세운 인물들은 아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국의 존속이 전장의 승리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법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신하들의 강직함이 함께 작동해야 함을 보여준다.

 

특히 주창의 "기필코, 기필코 조서를 받들지 않겠다"는 말은 이 열전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언변이 유려하지 않아도, 지위가 절대적인 황제 앞이라 해도,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는 신하의 존재가 결국 한 왕조의 후계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는 권력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신하가 아니라, 때로는 군주의 뜻에 맞서면서까지 직언하는 신하야말로 진정한 충신이라는 유가적 신하상(臣下像)을 구현한다.

장승상열전은 또한 관직의 계승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한 인물의 영웅적 서사가 아니라 제도와 직위 자체가 시간을 두고 어떻게 이어지고 단절되는가를 보여준다. 조요가 주창을 멀리 보낸 계산이 훗날 자신의 파면으로 돌아오고, 임오가 그 뒤를 이어받는 식의 연쇄는, 권력의 자리란 결국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 속에서 잠시 맡겨지는 책무임을 암시한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창업의 영웅담 너머, 법치와 직언의 전통이 어떻게 한 제국의 토대를 다져갔는지를 담담하면서도 또렷하게 기록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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