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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6-044. 의령 백산 안희제 생가 <백산매白山梅>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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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2026-044. 의령 백산 안희제 생가 <백산매白山梅> (2026.03.14.)

 

 

경남 의령군  설뫼마을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에

수령 200년의 백매 <백산매白山梅>가 있었다

 

백산 안희제선생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로서 

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 보급에 힘쓰고 민족언론의 선구자였던 분으로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그 휴유증으로

해방 직전에 돌아가셨다

 

 생가의 사랑채 옆 화단에 있는 <백산매>는

원둥치는 오래전에 고사하였지만 그 곁가지 하나가 살아 남아서

꽃잎은 작지만 유독 향이 짙은 눈처럼 하얀 홑꽃을 피웠는데

지금은 고사한 것으로 보인다

생가 내부에는 10여 그루의 어린 백매가

담장을 따라 생가를 지키고 있어서 매화 필 때 생가를 방문하면

집안에 잔잔히 감도는 매향으로

백산 선생의 체취와 이른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올해는 아직 덜 피었다

 

 

 

 

 

 

 

 

 

 

 

의령 안희제 생가는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언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백산(白山) 안희제(1885~1943) 선생의

탄생지이자 유년기를 보낸 고향집이다.

이곳은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 위치하며,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의령군 유형문화유산 가운데에서도 특히 인물사건·탄생지 관점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다

 

안희제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 등

3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조선 후기 남부지역 민가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8자 형태의 지붕선과 기둥·마루·창호 등이 당시 가옥의 기능과

미적 융합을 잘 보여준다

 

사랑채는 부속용도의 건물로

가족과 종사자 생활 공간을 나누는 평면 구조를 반영하며,

대문채는 마당과 길을 연결하는 외부공간의 경계 역할을 하여

전통 마당가의 배치를 이어간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1885년 이 생가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한학과 문장을 배우며,

19세 즈음 수학·신학문에 눈을 뜬 뒤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헌신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는 1907년 창남학교, 1908년 의신학교, 1909년 동래 구명학교

대구 교남학교 등을 설립해 신학문과 애국정신을 보급하는 데 기여했고,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세워

상해 임시정부에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는

민족자본가·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민족언론의 선구자로도 평가받으며

1926년에 시대일보를 인수해 일본의 언론통제를 돌파하려 한 점,

그리고 194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순국한 점이

후대에 깊이 회고된다

이처럼 생가가 지니는 의미는 단순한 개인의 출생지가 아니라,

독립운동과 민족교육, 민족언론이 교차하는

역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크다

 

 

 

 

 

 

 

 

 

 

 

 

 

 

 

 

 

 

 

 

[ 함안 소포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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