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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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7년 12월 4일 이태리, 팔라콜로 델로 스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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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2012년 10월 31일(84세) 이태리 밀라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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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여성 | |
국적 이탈리아 | |
학력 밀라노 공과대학 건축학과 | |
경력 오르세 미술관 등 | |
직업 건축가, 디자이너 | |
상훈 레지옹 도뇌르 훈장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본명 가에타나 아우렌티 Gaetana Aulenti, 1927년 12월 4일 - 2012년 10월 31일)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조명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이다.
그녀의 작품 중 유명한 것에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1980년부터 1986년)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퐁피두 센터의 국립근대미술관, 베네치아의 박물관 팔라초 그라시(1985년부터 1986년), 샌프란시스코의 샌프란시스코·아시아 미술관(2000년부터 2003년) 등 기존 건축물을 개수하고, 능숙하게 빛을 이용한 미술관 건축물이 있다.
경력
이탈리아 북동부의 프리울리 지방의 우디네도 팔라촐로 델로 스텔라에서 태어나 밀라노 공과대학 건축학부에서 건축을 배우고 1953년에 졸업했다. 그녀는 1955년부터 1965년까지 건축 디자인 잡지 《카사벨라 콘티누이타》(Casabella Continuità)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편집장 엘네스트 로저스(Ernesto Nathan Rogers)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젊은 디자이너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나 발터 그로피우스 등 근대 건축 거장들의 영향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모색한 그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네오리버티’(Neoliberty)라고 불렀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1960년부터 1962년까지 베네치아 건축대학에서 주세페 사모나 (Giuseppe Samonà) 아래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4년부터 1969년에 걸쳐 밀라노 공과대학 건축학부에서 엘네스트 로저스 아래에서 가르쳤다. 이 시기에는 밀라노 백화점 라 리나셴테를 위해 상품 디자인을 했고, 조명 기기의 마르티넬리 루체(Martinelli Luce)를 위해 테이블 램프 '고모리'(pipistrello)를, 디자인 가구의 자노타(Zanotta)를 위해서 스테인리스제의 접이식 의자 「에이프릴」(April)이나 판유리를 천판에 사용한 테이블 「산 마르코」(Sanmarco)를 다룬다. 또 이탈리아 산업디자인 협회의 부회장도 맡았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는 빅토르 라루가 설계하여 1900년에 완성된 파리의 구 오르세역 역사를 보존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를 위한 건축 설계 콘테스트가 1980년에 있었고, 아우렌티의 방안이 승리했다. 이것이 1848년부터 1915년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오르세 미술관이며, 1986년 12월에 개관했다. 기존 구조와 장식 등을 존중하면서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는 트레인 쉐드 아래를 거대한 조각품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플랫폼 부분에 석조 갤러리를 만들어 쓰레기 같은 건물을 우아한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퐁피두 센터의 국립근대미술관의 악평 높았던 전시 공간의 개수도 그녀에게 맡겨졌다. 또한 베네치아의 팔라초 그래시를 수리하여 미술관에 전용하는 프로젝트, 베를린의 구 이탈리아 대사관을 과학 아카데미로 개조하는 프로젝트,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 정부관에 입주하고 있던 카탈루냐 미술관을 대규모 개수하는 프로젝트 등 미술관 관련 프로젝트를 잇달아 맡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보자르 양식의 구 도서관을 개수하여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으로 삼을 프로젝트를 실행해 2003년에 개관했다.
미술관 외에도 2011년에는 페루자 공항의 확장 계획을 감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2년에 도큐 본사 빌딩 터(현재 세루리안 타워가 세워져 있는 장소)의 콘페에 이시모토 건축 사무소와의 공동으로 참가해, 높이 180m로 정상이 끝나고 있는 초고층 빌딩의 디자인 안을 제출했지만, 미완으로 끝났다. 2005년에는 도쿄에서 새로운 이탈리아 문화회관 빌딩을 완성했지만, 고쿄 옆에 붉은색 빌딩이 세워졌다는 경관 논쟁을 일으켰다.
아우렌티는 유명한 연출가인 루카 랑코니(Luca Ronconi)와도 무대 미술의 일을 한 적이 있으며, 대표작에는 빛의 토요일(Samstag aus Licht, 1984년) 등이 있다.
평생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다. 2012년 10월 16일에는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평생공적상을 수상했으며, 이것이 공공장소에 나온 마지막 자리였다. 2012년 10월 31일, 밀라노의 자택에서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수상경력
1964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거울이 있는 방에 잘라낸 여성의 실루엣을 배치한 작품 「Arrivo al Mare」를 이탈리아관에서 전시 수상했다. 이 트리엔날레에서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임원을 맡았다. 1991년에는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을 수상한 것 외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을 받았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근 인스타그램에서는 토고 소파와 함께 많이 보이는 조명이 있습니다. 바로 마르티넬리 루체(Martinelli Luce)의 피피스트렐로(Pipistrello)입니다. 1960년대에 탄생한 이 조명은 ‘박쥐’를 뜻하는 이름처럼 박쥐의 날개를 닮은 전등 갓과, 세련된 스탠드의 조화로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이 조명을 디자인한 사람은 세기의 여성 건축가인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1927-2012)입니다. 피피스트렐로를 포함하여 세상을 떠난 그녀가 남긴 제품들은 인스타그램 피드에 보이면 ‘저장’을 누를 수밖에 없는 매우 특이한 디자인으로 가득한데요, 오늘은 가에 아울렌티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가 만든 독특하고 아름다운 가구와 조명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빨간색이 유행이라고 소리친다, 초록색 옷을 입을 것이다.’
이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마을인 ‘Pallazo Dello Stella’에서 태어난 가에 아울렌티는 보수적인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피아노를 연주하고 책을 읽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고 싶은 건 건축가였습니다. 그녀는 유년기에 종종 Gae라는 이름이 Guy(남자)와 발음이 유사하여, ‘남자다운 여자’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이러한 농담에 오히려 힘을 얻어 그녀는 밀라노 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배출된 20명의 건축학도의 여성 두 명 중 한 명으로 졸업하여 완곡히 건축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졸업 이후 건축잡지인 카사벨라(Casabella)의 아트 디렉터로 입사합니다. 이때 그녀의 디자인 철학이 자리 잡게 되는데요,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제시한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전통을 보존하며 시대의 개성을 존중하는 ‘신자유운동(Neo-Liverty Movement)’을 펼치며 그녀의 철학이 담긴 건축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백화점, 오피스 등 수많은 실내 건축을 진행하며 그녀의 업적들을 조금씩 쌓아 가다가, 1981년 프랑스의 기차역을 오르셰 미술관(Musée d ‘Orsay)으로 개조하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오래된 건물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기술을 접합하는 자신만의 무기를 오르셰에 과감하게 접목했고, 오르셰는 1800년대의 기차역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최적의 미술관으로 아름답게 재탄생한 랜드마크가 되었죠. 이후 그녀는 팔라쪼 그라시(Palazzo Grassi)라는 18세기 베네치아의 건축물과 샌프란시스코의 도서관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며 최고의 리노베이션 전문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가에 아울렌티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진행하면서, 공간 안에 들어가는 가구들도 함께 디자인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가구 디자인 또한 기하학적인 모양이 많이 들어가며 전통적인 패턴과 산업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한가지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긴 아울렌티는 정말 다양한 그녀만의 표현들이 담긴 가구와 조명들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그녀의 디자인 중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꼽히며, 약 60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가 되는 피피스트렐로(Pipistrello) 조명입니다. 1965년 이탈리아의 조명 회사인 마르티넬리 루체 (Martinelli Luce)를 위해 디자인한 조명은 박쥐를 닮은 유기적인 디자인의 전등 갓과 그와 대비되는 기하학적인 원통형 기둥, 그리고 살짝 변주를 준 원뿔형 베이스를 매칭시켜 전등갓과 기둥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피피스트렐로를 이어 디자인 명맥을 잇는 두 번째 조명을 만듭니다. 바로 콰드리폴리오 (Quadrifoglio)라는 조명인데요, 아름다운 곡선의 플라스틱 전통 갓과 간결하지만, 독창적인 크롬 베이스가 특징입니다. 마늘종과 구름을 닮은 독특한 색상의 플라스틱 조명 갓은 불을 켰을 때 따뜻한 빛을 발산하고, 70년대의 이탈리아 디자인이 그대로 담겨있어 생산되지 않지만, 현재도 빈티지 마켓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유명한 조명 회사인 아르떼미데(Artemide)를 위해 디자인한 Pileino 램프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 반구형 흰색 몰드 플라스틱이 서로 움직이며 유연하게 빛을 조절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우주에서 사용될 것 같은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정신이 담긴 디자인으로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때문에 이 조명 또한 빈티지 마켓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1980년대 가구 회사인 놀(Knoll)을 위해 제작한 Tavolo Con Ruote 테이블과 폰타나 아르떼(Fontana Arte)를 위해 디자인한 Tour 테이블입니다. 철저히 산업 재료만을 이용하고, 팝아트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타볼로 테이블은 미니멀하고 날렵한 디자인을 보여주며 쉽게 위치를 이동할 수 있고, 하나의 디자인 요소가 되는 카트의 바퀴가 달려있어 마치 레디메이드 (Ready-Made) 작품 같은 느낌을 연출합니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어, 컴퓨터를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이 테이블은 현재 바퀴가 달린 컴퓨터 책상의 시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폴트로노바 (Poltronova)를 위해 제작한 혁신적인 리빙 컬렉션인 로커스 솔루스 (Locus Solus)도 빼놓을 수 없는 아울렌티의 주요한 디자인 작품입니다. 한두개의 미니멀한 철제 파이프를 이용하여 테이블, 의자, 플로어 램프 등을 제작한 로커스 솔루스 컬렉션은 깔끔한 라인과 미니멀한 미학을 기조로 디자인하는 아울렌티의 디자인 정신이 녹아있으며 전통적인 패턴이 담긴 천을 이용하여 과거를 존중하며 실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용 공간의 유연성 또한 고려한 컬렉션입니다.
가에 아울렌티는 그녀의 재능과 독특한 디자인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산업에서 다양성과 평등을 촉진하려는 노력으로도 유명했는데요, 그녀는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나 디자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일까요. 그런 믿음은 그녀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디자인 유산들은 전 세계의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계속 영감을 주고 있으며, 그녀의 작업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판매되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에 아울렌티의 제품 중 어떤 것이 가장 창의적으로 느껴지셨나요?
출처 - 모든 관념을 깬 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3. [디자인·건축 이야기]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옛 오르세 기차역과 호텔 활용해 개관… 유명한 인상주의 걸작들 많이 보유했죠
입력 : 2024.03.26 03:30 조선일보
https://blog.naver.com/ceta211/223401001236
오르세 미술관
▲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외관. /위키피디아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파리 1874, 인상주의의 발명'을 주제로 한 특별 전시회가 26일(현지 시각) 시작됩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다양한 인상주의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입니다. 올해 인상주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뜻깊은 전시를 여는 거예요. 1874년 4월 15일 화가와 조각가 등 미술가 30명이 정부 주최 전시인 '살롱전'에 맞서 첫 민간 전시회를 열었는데요, 당시 한 평론가는 이 민간 전시회에 걸린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에 대해 '대충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라고 비꼬았습니다. 인상주의는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됐어요.
오르세 미술관은 '첫 번째 소장품이 미술관 건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해요. 오르세 미술관은 처음부터 미술관으로 지어진 게 아닙니다. 건축가 빅토르 랄루가 1900년에 지은 오르세 기차역과 부속 호텔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거예요.
오르세 기차역은 반원형 유리 천장에서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는 구조였어요. 내부는 철골로 지어져 탄탄했고, 센강변 쪽 외관은 석조로 만들어져 우아한 모습이에요. 하지만 기술 발달로 기차는 길어졌는데 오르세 기차역은 플랫폼이 짧아 기차들을 수용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1940년대 기차역은 문을 닫았고 포로수용소, 영화 촬영장 등으로 쓰였어요.
1970년대 들어 프랑스 정부는 방치됐던 오르세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활용하기로 했고, 1978년 미술관 건립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전시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새로운 국립 미술관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리모델링 후 국립 주드폼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던 1848~1914년 사이 예술품들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오게 됐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ACT 건축사무소와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 등이 설계와 인테리어를 맡아 1986년 개관했어요. ACT와 아울렌티는 오르세 기차역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면서 미술관에 맞게 공간을 바꿨어요. 전철이 다니던 선로는 중앙 통로로 바꾸고, 양옆으로 벽을 세워서 전시 공간을 마련했어요. 관람객들은 벽면 사이를 오가면서 전시를 감상하기 때문에 골목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 기차역보다 센강변 쪽에 있는 옛 호텔 건물에서 훨씬 더 많은 인상주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작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건축 애호가가 놓칠 수 없는 작품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극장으로 꼽히는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모형입니다. 이 모형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극장 내·외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 ㈜ 파우스트 칼리지
전 화 : (02)386-4802 / (02)384-3348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 ceta2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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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자인·건축 이야기] 오르세 미술관(Musé..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파리를 방문할 관람객이 5천만 명에 이를 걸로 보입니다. 이들을 실어 나를 새 기차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프랑스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프랑스 정부는 4월 14일~11월 12일 만국박람회 기간 중에 국내외 방문객이 5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서 방문객을 실어 나를 기차 운행 횟수를 늘리기로 하고 새로운 기차역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만국박람회 장소 가까운 곳에 역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손쉽게 행사장에 갈 수 있게 하자는 뜻이었다.
새 기차역 건설 부지로 선택된 곳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센강 건너편 오르세 궁전이 있던 콰이 오르세 지역이었다. 18세기 초 이 지역에서 개발이 시작될 때 자문 역할을 한 사람이 파리 남서쪽 오르세 출신의 상인이었던 오르세 경이었기 때문에 그이름을 행정구역명에 붙인 것이었다.
나폴레옹 황제의 지시에 따라 1838년에 완공된 오르세 궁전은 원래 대법원 감사위원회와 국가위원회 사무실로 이용됐다. 그런데 1871년 이른바 ‘파리 코뮌’ 병사들의 방화 때문에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프랑스 정부가 이곳을 새 기차역 건설 부지로 골랐을 때에는 잡초만 우거진 공터였다.
프랑스 정부는 오르세역을 설계할 건축가를 세 명 골랐다. 뤼시엥 마니, 에밀 베나르, 빅터 랄루였다. 오르세역 공사의 첫 삽은 1898년에 떴다. 완공일은 만국박람회가 진행 중이던 1900년 5월 28일이었다. 당초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불과 2년 만에 역 하나를 만드는 놀라운 일이 이뤄진 것이었다.
오르세역의 길이는 175m, 폭은 75m에 이르렀다. 중앙 홀은 길이 140m, 폭 40m, 높이 32m였다. 오르세역을 짓는 데에는 에펠탑보다 더 많은 철근 12t이 사용됐다. 유리는 3만 5천㎥가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유리를 쓴 것은 역 내부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오르세역은 완공하자마자 폭발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상 최초의 전기 기차역이었고, 기차역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설계를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문을 듣고 역을 일부러 찾아간 에두아르드 데타이유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는 역을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야! 정말 대단한 걸! 기차역보다는 미술관으로 바꾸는 게 더 낫겠어!”
반면 오르세역은 100% 철근 구조물이어서 일부에서는 외관이 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건축 총책임자였던 랄루는 이러한 비판을 감안해 역 앞에 호텔을 지어 역을 가리기로 했다. 그는 역 남서쪽에 객실 370실 규모의 호텔을 건설했다. 호텔은 파리를 찾는 국내외 여행객은 물론 각종 행사에 참가하는 지역 주민, 정치인에게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텔 인기는 시들었고 결국 1973년 문을 닫고 말았다.
오르세역이 개장할 때만 하더라도 손목시계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큰 건물을 지을 때 벽에 대형시계를 설치하는 게 유행이었다. 당연히 오르세역에도 대형시계가 설치됐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세 개였다. 두 개는 북쪽 외벽에 설치됐다. 하나는 센강을, 다른 하나는 튈르리 정원을 바라보는 방향이었다. 마지막 하나는 역 안에 설치됐다. 시계 3개는 오르세역이 우여곡절을 겪는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도 째각거리고 있다.
오르세역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기차 운행을 잠시 중단했다. 대신 이곳은 전쟁포로에게 보내는 우편물을 다루는 우편집중국 역할을 맡았다.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귀환포로가 갈 곳이 없어 애를 먹자 정부는 오르세역을 이들의 임시숙소로 사용됐다. 오르세역 한쪽에는 이곳이 귀환포로 임시숙소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판이 있다.
오르세역이 들어서고 40년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역을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철도 기술의 급격한 발전 때문이었다. 역 플랫폼이 첨단기술을 갖춘 철도를 운행하기에는 너무 짧은 게 문제였다.
“오르세역은 기차역으로서 더 이상 가치가 없습니다. 역 플랫폼 구간이 너무 짧은 데다 시설도 낡아 쓸모가 없습니다. 철거해서 다른 공간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파리 시청은 결국 오르세역의 기차역 역할을 중단시키기로 했다. 시청은 오르세역을 어떻게 재활용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제안이 접수됐다. 주차장으로 사용하자는 사람도 있었고, 사격장으로 활용하자는 이도 나왔다. 극장으로 탈바꿈시키자는 주장도 있었다. 시청은 오랜 논의 끝에 1970년 최종 결론을 내렸다.
“역을 부숴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곳에 초대형 호텔을 짓겠습니다.”
파리 시청의 결정에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자크 뒤아멜 문화부 장관이었다.
“오르세역은 귀중한 자산입니다. 정부의 역사적 기념물 예비리스트에 올려 보존해야 합니다. 다른 활용 방안을 찾도록 합시다.”
사실 뒤아멜 장관도 오르세역을 어떻게 재활용할지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역을 호텔로 바꿀지 말지를 놓고 파리 시청과 뒤아멜 장관은 물론 모든 프랑스 국민이 편을 갈라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때 오르세역의 운명을 바꿀 일이 생겼다. 뒤아멜 장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든 일이었다.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 주드폼국립미술관 등이 넘쳐나는 전시품과 협소한 공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감안해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세 박물관, 미술관에 보관한 19세기 후반 예술작품들을 전시할 새 박물관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르세역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해 새 박물관으로 활용하겠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1978년 오르세역 리모델링 공모전을 열었다. 6개 업체에서 제안서를 냈는데, ACT 아키텍처라는 곳에서 낸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르노 바르동 등 젊은 건축가 3명이 공동 운영하는 회사였다. 공사는 이듬해 시작됐다.
1981년에는 이탈리아의 가에 아울렌티가 실내 장식, 가구 배치 등을 담당할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그녀의 작업은 프랑스에서 부정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무솔리니의 전체주의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은 ‘오르세미술관은 장례식장, 무덤, 영묘, 공동묘지에 비유할 수 있다’고 힐난했다. 각종 건축물 건설 공사 때마다 비난을 쏟아붇는 것은 프랑스 언론과 문화계의 관행이었다.
여러 논란 속에 오르세미술관 리모델링 공사는 1986년 6월 마무리됐다. 개장식 날짜는 12월로 확정됐다. 남은 시간은 불과 여섯 달이었다. 다른 박물관, 미술관에서 인수받아 설치해야 할 작품은 그림, 조각 등 무려 2천500여 점이었다.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전 작업에 필요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6개월 만에 모든 작업은 제대로 정리됐다. 오르세미술관 개장식은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대로 12월 1일에 열렸다. 모두 이색적으로 아름다운 새 미술관을 보고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르세미술관이 대중에게 개방된 것은 그로부터 8일 뒤인 12월 6일이었다. 이날 새 미술관을 보러 몰린 사람은 무려 2만 명에 이르렀다.
오르세미술관은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그림을 많이 보유한 곳으로 유명하다. 각각 500점, 1100점이나 된다. 유명한 화가를 나열해 보면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쿠르베, 세잔, 피사로, 마네 등이다. 그래서 이곳은 ‘인상주의 박물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오르세미술관 주변에서는 구리로 만든 조각 6개를 볼 수 있다. 지구의 6대륙인 유럽, 아시아, 남미, 북미, 대양주,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원래 1878년에 열렸던 파리만국박람회 기간 중 트로카데로 궁전에 설치하려고 만든 것이었는데 행사가 끝난 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말았다. 조각은 낭트에 폐기되다시피 내버려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르세미술관은 조각 6개를 구해오기로 결정했다. 미술관은 그림 한 점을 주는 대신 조각 6개를 받아왔다. 물론 결과는 오르세미술관의 ‘흑자’로 귀결됐다.
이태리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은 원래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든것이 브레라 미술관이며 피나코테카(회화관)으로 불린다. 1층은 예술학교로서 사용되고 미술관은 2층만 사용된다. 밀라노의 루브르를 만들고자 했던 나폴레옹의 지원하에 1809년에 개관하였다. 북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한 걸작으로 안드레아 만테냐의 "그리스도의 죽음", 조반비 벨리니의 "피에타", 틴토레토의 "성마르코 주검의 발견", 라파엘로의 "성모 마리아의 결혼", 카라바지오의 "엠마노의 식사", 프란체스카 하예즈의 "키스", 루벤스의 "최후의 만찬", 안토니오 카바노의 "나폴레옹 조각상" 등이 있다.
가에 아울렌티 광장(Piazza Gae Aulenti)은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으로 광장주위로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가에 아울렌티는 여성 건축가로서 그녀의 유명 건축물로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퐁피두 센타 등이 있다. 그녀는 건축가로서 뿐만아니라 조명, 인테리어, 산업디자이너로서도 활동했다. 밀라노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나왔다. 가에 아울렌티 광장에서 보면 녹색나무들로 뒤덮인 보스코 베르티칼레 건물이 가장 눈에 띄게 들어온다. 숲을 의미하는 이태리어 보스코와 수직을 의미하는 베르트칼레가 합쳐진 말이다. 이 건물은 주거용 아파트건물이다.
브레라 미술관
가에 아울렌티 광장
보스코 베르티칼레
VAUT 베스트 아이템
마르티넬리루체 피피스트렐로
1960년대의 오브제 디자인의 상징인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단순히 빛을 내는 조명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램프는 단순한 조명 용도를 넘어서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피피스트렐로의 독창적인 디자인 가치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이탈리아 디자인 역사상 가장 높이 평가되는 램프 중 하나입니다.
1960년대에 디자인되었으며, 그 독특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예술과 산업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1965년 파리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Olivetti 매장에 놓기 위해 처음 디자인되었습니다.
이후 마르티넬리 루체에서 대량 생산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수많은 미술 및 디자인 전시회에 전시되었으며, 1972년 뉴욕 MoMA에서 열린 ' 이탈리아 : 새로운 국내 풍경 ' 전시회를 전환점으로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국제 무대로 진출하여 글로벌 디자인으로서의 위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프랑스 인테리어 장식과 잘 어울리는 아르누보적인 디자인으로 프랑스에서 대중들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특징으로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박쥐에서 영감을 받은 피피스트렐로
베트맨 영화 속 피피스트렐로 램프
이탈리아어로 박쥐를 뜻하는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이름 그대로 박쥐의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습니다.
원뿔 모양의 베이스 위에 펼쳐진 피피스트렐로의 독특한 곡선은 박쥐의 날개 형상을 담고 있습니다.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그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화이트 오팔 메탈크릴레이트의 쉐이드와 망원경처럼 높이 조절이 가능한 원뿔 모양의 베이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인기에 여러 가지 색상으로도 제공되어 어떤 장식과 공간에도 잘 어울리며, 스몰 미디엄 라지와 같이 컴팩트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독성등이나 침대 옆 테이블 램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높이 조절이 가능한것과 함께 디머 스위치로 조도 조절도 가능합니다. 이 덕분에 다양한 조명 환경이 조절 가능합니다.
클래식이 된 시대를 초월한 우아한 피피스트렐로의 디자인은 어느 공간에서나 아늑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여성 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 Gae Aulenti의 디자인
여성 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는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20세기 중후반 유럽의 건축 및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1927년에 이태리 Palazzolo에서 태어나, 밀라노 폴리테크닉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그녀는 디자인 매거진 Casabella의 에디터를 시작으로 그래픽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무대 디자인, 그리고 제품 디자이너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 위주의 디자인 업계에서 이탈리아의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서 활약하면서, 모더니즘에 의문을 품고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는 뛰어난 작품을 낳았습니다.
가에 아울렌티는 1939년에 페쇄된 오르세 기차역을 1977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건축물의 개조 및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고, 그녀의 가장 큰 대표작으로 Musee d'Orsay, Palazzo Grassi 복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마르니텔리 루체의 대표인 Elio Martinelli는 가에 아울렌티의 독창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그녀와 협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피피스트렐로 램프는 이후 마르티넬리 루체의 대표 모델로 자리잡았으며, 이탈리아 디자인의 명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가에 아울렌티는 자신의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이탈리아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공로를 쌓았습니다.
왜
마르티넬리 루체의 디자인이
특별한가요?
마르티넬리 루체는 1950년대에 Elio Martinelli에 의해 설립된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로,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입니다.
마르티넬리 루체는 20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디자인 역사에 크게 공헌하며, 일상적이고 기능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부합하는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습니다.
마르티넬리 루체는 주로 자연의 다양한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독창적인 선과 형태의 상징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냅니다.
마르티넬리 루체는 역사가 깃든 시그니처 모델뿐만 아니라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개발된 새로운 모델들까지 다양한 조명 제품을 선보이며, 세계시장을 선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마르티넬리 루체는 그 독특한 디자인과 높은 품질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명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출처] [BEST ITEM] 마르티넬리루체 : 피피스트렐로 조명|작성자 바우트 VAUT
7. 가에 아울렌티의 '로커스 솔루스' 컬렉션의 재해석
자크뮈스가 브랜드 최초의 협업가구 컬렉션을 출시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가구 회사인 엑스테타와의 파트너쉽으로 제작됐다.
" OBJETS "
가죽으로 된 화병, 접시,등의 제품부터 엑스테타,가에 아울렌티와 함께 협업한 가구, 빈티지 포토북 제품
메인 컬러로 옐로우 색상을 사용하여 산뜻한 아웃도어 제품들로
요즈음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크뮈스 온라인 스토어와 파리의 자크뮈스 매장에서 독점 판매를 하고 있다.
8. 가에 아울렌티 Gae Aulenti ‘Pileino’ 조명 시리즈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제가 애정하는 이탈리아 대표 건축가 가에아울렌티‘Pillion’
조명에 대해서 풀어볼게요 🤍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본명 가에타나 아우렌티 Gaetana Aulenti, 1927년 12월 4일 - 2012년 10월 31일)는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조명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이다.
생애 및 작품활동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는 1927년 12월 4일 이탈리아 팔라쫄로 델로 스텔라(Palazzolo dello Stella)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가에 아울렌티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Milano)에서 건축으로 유명한 폴리테크니코 대학(Politecnico di Milano)에서 건축을 전공하였다. 그 후 1955년부터 1965년까지 건축 잡지사 카사벨라-콘티누이타(Casabella-Continuità)에서 에디터로 근무하며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수행하였다.
1960년부터 1962년까지 가에 아울렌티는 베니스 건축 학교(Venice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건축 조교로 재직하였으며 1964년부터 1967년까지는 밀라노의 폴리테크니코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쳤다. 이와 더불어 가에 아울렌티는 1955년부터 1961년까지 밀라노의 건축학 연구 운동(Il Movimento di Studi per l'Architettura), 1967년부터는 미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협회(American Society of Interior Designers)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가에 아울렌티는 밀라노의 백화점인 라 리나센테(La Rinascente)의 설계 작업을 수행하였다.
한편, 가에 아울렌티는 건축가 빅토르 랄루(Victor Laloux)가 1900년 설계한 프랑스 파리(Paris)의 오르세 역(Gare d 'Orsay)을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변경 설계를 담당할 건축가로 선정되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건축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때 가에 아울렌티는 '오르세 미술관, 내부 정비, 절단면'(Musée d'Orsay, aménagement intérieur, coupe, 20세기경), '오르세 미술관, 내부 정비, 종단 절단면, 센강 방향'(Musée d'Orsay, aménagement intérieur, coupe longitudinale, côté Seine, 20세기경) 등의 건축 설계도를 제작하였다. 특히 가에 아울렌티는 오르세 미술관 설계 시 바닥과 벽에 균일한 석재를 사용해 어느 각도에서나 통일된 형태를 이루도록 구현하는 것에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가에 아울렌티는 1982년부터 1985년까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1985년부터 1986년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동양미술관(Asian Art Museum) 등 세계적인 미술관, 박물관 건축물의 개조, 보수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후 2012년 10월 31일 가에 아울렌티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 8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는 가에 아울렌티 조명중
‘Pileino lamp’ 를 애정합니다 .
플라스틱을 주로 사용하는 회사인 아르떼미데(Artemide)를 위해 디자인한 Pileino 램프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 반구형 흰색 몰드 플라스틱이 서로 움직이며 자유롭게 빛을 조절하여 사용하는 조명이며 우주에서 사용될 것 같은 스페이스 에이지(Space Age) 무드의 조명이에요 . 현재는 생산이 단종되어 빈티지 제품으로만 구매가 가능하답니다.
세가지 디자인이구요 ☺️
-1960 s ‘Pileino’ table lamp by Gae Aulenti for Artemide
-1970s ‘Pileino’ table lamp by Gae Aulenti for Artemide,
-1970s ‘Pileino’ floor lamp by Gae Aulenti for Artemide
제가 바잉한 ‘Pileino’ floor lamp 가 배송 과정에서 베이스 부분이 파손 되어 들어왔어요. 살릴수 있는 방법을 고민 하다가 조명이 파손되고 베이스 부분이 깨끗한 제품을 바잉 하여 두개를 합쳐 수리를 해서 사용중이에요. 플라스틱이다 보니 어쩔수 없은 파손이라하지만 …
시세가로 1000만원 정도의 조명이에요
ㅋㅋㅋ(웃픈 조명)
수리전 사진
수리후 사진
애정이 담길 수 밖에 없는 과정이죠?
‘Pileino’ table lamp 는 두가지 사이즈 입니다.
180도 회전을 하여 조명을 밝기를 유연하게 조절 할수있어요 . 제일 작은 조명 헤드 부분만 철제 입니다.
삼총사를 다 바잉하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
이맛에 빈티지 제품 바잉 하고 판매 해요 🫶🏻
제가 애정하는 브랜드 #Artemide
여성 건축가이자 산업디자이너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 ‘Pileino’ table lamp 에대해서 설명드렸어요 .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
[출처] 가에 아울렌티 Gae Aulenti ‘Pileino’ 조명 시리즈|작성자 쭈니
9. 伊 선구적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 하늘로
기차역을 개조해 명물이 된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의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던 이탈리아의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아울렌티의 가족들은 그녀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고 1일 밝혔다.
아울렌티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건축계에서 여성의 영역을 넓힌 선구적 건축가다. 밀라노 공과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1950년대부터 건축잡지 카사벨라 콩티누이타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건축계에 발을 들여놨다. 1980년 오르세 미술관 인테리어 디자인 설계 경기에서 우승하면서 건축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프랑스 퐁피두센터, 이탈리아의 팔라조 그라시와 스쿠데리에 델 퀴리날레 등 유명 미술관 작업을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세계에 선보였다.
아울렌티는 건축뿐 아니라 산업디자인 영역에서도 업적을 쌓았다. 그녀가 디자인한 피피스트렐로 조명은 디자인의 고전으로 남아있다. 아울렌티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이탈리아인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렌티는 여성운동이 발흥한 1960년대에 여성 건축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후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한 이탈리아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건축은 남성의 직업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의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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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선구적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 하늘로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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