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한스 콜호프
한스 콜호프 (1946년 9월 18일 튀링 겐주 바트로벤 슈타인 에서 태어남 )는 독일의 건축가이자 교수이다.
그는 포스트모던 과 신고전주의 건축 의 대표자이며 , 뉴어바니즘 의 주창자이다 .
초기 생애
콜호프는 새로 설립된 DDR 의 남쪽 끝에 있는 튀링겐의 가족 농장에서 생애의 처음 6년을 보냈습니다 . 1953년에 가족은 서독으로 탈출하여 북부 바덴에 정착했습니다.
경력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마인 광장(2001년 완공)Kollhoff는 1968년 Karlsruhe 대학교 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 학부생이었을 때 Kollhoff는 Eiermann이 작성했지만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 과목과 Eiermann의 협력자였던 건축가 Gerhard Assem의 Karlsruhe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간접적으로 Egon Eiermann 의 가르침에 접했습니다. 1974년 Kollhoff는 Vienna University of Technology 에서 공부했고 Hans Hollein 의 스튜디오에서 1년간 일했습니다 . 그는 1975년 졸업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Karlsruhe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다음 DAAD 의 장학금을 받아 Cornell University에 진학한 Kollhoff는 Rem Koolhaas 와 함께 건축 역사가 Colin Rowe 와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Oswald Mathias Ungers 사이의 학문적 경쟁에서 촉발된 자극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부했습니다 . Kollhoff는 1977년 Ungers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콜호프는 1978년 베를린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고, 1984년부터 헬가 티머만과 협력하여 스튜디오를 운영해 왔습니다.
1985년까지 그는 HdK( 베를린 예술대학교 )에서 조수로 일했고, 2012년까지 콜호프는 ETH 취리히 에서 건축 및 건설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 그는 국내외에서 여러 객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독일과 유럽에서 건축가로서 그의 프로젝트는 시정에서 주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규모에 걸쳐 있습니다.
콜호프는 2004년부터 " 바우아카데미 "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1962년에 철거된 베를린 1836년 건물인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건물을 재건하는 것이다 .
건축
한스 콜호프의 건축은 고전적인 건축 양식과 돌과 벽돌과 같은 견고하고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작업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콜호프는 경력 동안 점점 더 전통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종종 고전적인 모티브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때때로 전통적인 형식주의의 향수적 모방에 빠져드는 구식 "레트로 건축"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콜호프의 작업은 실내 공간에서도 세부 사항에 대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20세기 초 건축가의 작업의 연속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아돌프 로스를 참조하세요 .
독일
베를린에서 그는 다임러크라이슬러를 위해 포츠담 광장 에 오래된 뉴욕 벽돌 스타일의 고층 타워를 설계했습니다 .그는 또한 알렉산더 광장 에 있는 고층 빌딩의 마스터 플래닝을 담당했습니다 . 그의 작품 중에는 이전 라이히스방크를 새로운 외무부로 재건축한 것과 쿠르퓌르스텐 담 근처 샤를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 지구의 소위 라이프니츠콜론나덴이 있습니다.2005년에 그는 놀렌 도르프 광장 에 있는 고급 나이트클럽 고야 의 내부 방을 건설했는데 , 이 클럽은 이전에 메트로폴이 있던 건물에서 12월 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에서 그는 도이치헤른 비어 텔에 88m 높이의 주거용 건물인 메인 플라자를 세웠습니다 .1996 년에 그는 알테 메세 라이프치히 에서 독일 중앙은행 의 9개 본사 중 하나를 설계했습니다 . 1999년에 라이프치히 시 건축상 (Architekturpreis der Stadt Leipzig) 을 수상했습니다 .
네덜란드
독일 외에서 Kollhoff는 네덜란드에서 수많은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Piraeus 는 1994년 암스테르담 의 KNSM 섬 에서 실현되었습니다 .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로테르담 에서 지어졌습니다 .Binnenrotte 의 Statendam 고층 타워 와 Kop van Zuid 의 Compagnie 주거용 건물은 모두 각각의 지역에서 두드러집니다. 네덜란드에서 Kollhoff의 다른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로는 마스 트리흐트 의 De Colonel , 아메르스포르트 의 Foortse Towers Vathorst , 헤이그 의 Turfmarkt 에 있는 네덜란드 법무부 및 보안부 와 내무부 및 왕국 관계부 ( JuBi 건물 이라고도 함 ) 건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지금까지 가장 높은 프로젝트였습니다.
갤러리
출처 - 위키피디아
2.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작품
"한 개인이 건축 작품에 대한 모든 공로를 인정할 수는 없다"
-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교수는 고객의 요구와 열망을 수용하고 향상시키는 전통적인 건축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특별한 주택과 고층 빌딩을 설계하는 것으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는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콜린 로우(Colin Rowe)와 오스왈드 마티아스 웅거스(Oswald Mathias Ungers) 밑에서 공부한 후 1978년에 자신의 사무소를 설립했습니다.
가르치기
미국에서 돌아온 후 베를린 공과대학교(Berlin Technische Universität)에서 건물 개발 및 교육 조교수로 재직했습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그는 다시 미국과 베를린 쿤스트 대학과 도르트문트 대학의 객원 교수로 재직했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는 취리히의 ETH에서 객원 교수로 가르쳤으며, 1990년부터 건축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튜디오
1978년 그는 베를린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1984년부터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는 건축가 헬가 팀머만(Helga Timmermann)과 함께 베를린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1999년부터는 다른 국가로 사업을 확장해 스위스, 이탈리아, 2000년에는 네덜란드에 파트너 건축가 알렉산더 폴스(Alexander Pols)와 함께 사무실을 열었다. 오늘날 그는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주로 주거용 건물뿐만 아니라 상업 및 공공 건물과 같은 광범위한 건축 프로젝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정 프로젝트
포츠담 광장
베를린 (독일)
1997-2003
포츠담 광장은 독일 베를린 중심부의 중요한 광장이자 교통 교차로로 브란덴부르크 문과 독일 의회 건물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으며 티어가르텐 공원의 남동쪽 모퉁이와 가깝습니다.
메인플라자 하이라이즈
프랑크푸르트, 독일
1998 - 2002
메인플라자 하이라이즈
출처 -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 클래식 하우스 (the-classic-house.com)
3. 영원히 건설중인 도시 베를린
BERLIN – CITY UNDER PERPETUAL CONTRUCTION
역사의 상처를 감싸안고 변화를 지속해 가는 도시 베를린의 건축 세계
베를린 라이히스탁 독일 연방 국회의사당 건물중 영국의 거장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개조 설계를 맡아 완성된 천정 돔 © danda.
비행기편으로 베를린에 막 도착한 방문객은 우선 이 도시가 지닌 깊은 역사적 흔적을 느끼기 시작한다.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Tempelhof Airport)은 독일 나치 시대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어두운 독일 근현대 역사가 내리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채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서있다. 템펠호프 공항은 에른스트 자게비일 (Ernst Sagebiel)이 설계해 1937년 개항했다.
히틀러의 뒤를 이은 대독일 지도자 겸 독일 공군 총사령관이던 헤르만 괴링 (Hermann Goering)이 총애하던 건축가 에리히 멘델존 (Erich Mendelshohn)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던 건축가 자게비일은 이 공항 설계를 통해서 나치 정권이 강요하던 극도로 경직된 양식을 극적으로 표현해 이후, 1980년대 베를린 시내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의 설계로 지어진 베를린 과학센터 (Wissenschaftzentrum)가 탄생하는데 모형이 되어준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놀랍게도 이 공항은 미국의 펜타곤 국방부 다음으로 큰 면적을 자랑하면서도 좁게 설계된 항공기 이착륙로 때문에 개인 출퇴근용 항공기 경유지로 이용되어 오기도 했다. 오늘날 베를린 시민들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부터 이 도시를 보호해 준 옛 베를린 에어리프트 (Berlin AirLift) 공군 기지로서의 이 공항을 민주주의의 수호지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한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는 베를린을 두고 „사랑과 웃음이 결여된 도시“라고 일컫는 것으로써 이 도시가 지닌 역사적 무게와 상처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 지난 일세기여 동안 베를린은 파란만장한 역사와 격변을 거쳐 온 가운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베를린이 흔히 „항상 공사중에 있는 (in progress)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려 온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만큼 독일은 물론 유럽의 역사적 변화가 이 도시의 건축물과 도시 설계에 끼친 영향을 숨가쁘게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그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은 베를린을 둘러싼 성문(城門) 출입구로서, 18세기말경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치하 동안 지어져 현재는 나폴레옹 정권에 대한 프러시아군의 승리와 독일 비더마이어 (Biedermeier) 시대의 영광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어 당당히 서있다.
시도때도 없이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그 유명한 포츠다머 플라츠 (Potsdamer Platz)는 두 말 할 것 없이 통일 독일의 새수도 베를린으로서의 상징물이다. 포츠다머 플라츠는 19세기 프러시아 정권기 특유의 도시 설계 의도와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재공사 당시 각종 전문 건축 인부들이 지하수 밑으로 잠수해 콘크리트 공사를 하는가 하면 공사 전용 철로를 설치하는 등 독일이 자랑하는 최첨단 현대 건축 설계 기술을 일축해 과시해 보여 화재를 모은 곳도 바로 이 포츠다머 플라츠였다.
베를린 시내 구석구석과 스카이라인은 18, 19세기의 건축적 유산과 20세기의 국제적 건축 양식을 골고루 구비하고 있다. 시당국은 일명 „비판적 도시 재거설 (critical reconstruction)“, „역사적 요소에 대한 고려 (respect for the historical substance)“라는 도시 건설 원칙에 입각해 도시가 지닌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적인 신건축 공사를 단행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자랑해 왔다. 그같은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먼 포스터 (Sir Norman Foster) 경이 재디자인 개축한 라이히스탁 (Reichstag) 독일 연방 국회의사당 건물일 것이다.
90년대초, 크리스토 (Christo)가 라이히스톡 건물을 헝겊으로 포장하는 행위 미술을 전개했던 일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세계사 한가운데에 선 듯한 크나큰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본래 1894년 지어져 1933년의 화재 사건 (이로 인해 히틀러 나치 지도자는 한 번도 이곳에서 공식적인 집권을 해 보지 못했다), 1945년 2차대전중 소련군 침략 등을 거치는 등 격동의 독일 근현대사를 경험한 장소이기도 하다. 무려 4년에 걸쳐 완공된 라이히스탁은 현재 관광객들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어 그 유명한 노먼 포스터식 웅장한 풍의 유리 돔 천정을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20세기 초엽부터 1930년대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메트로폴리스 건설’을 겨냥한 중부 유럽 특유의 빽빽하고 밀도높은 건축 도시로서의 발전을 거듭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의 패전을 겪고난 이후 도시의 대부분은 폭격과 총알의 흔적만 남긴채 거의 폐허되다시피 했다. 1945년 제2차대전 종전을 끝으로 베를린이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뉜 후, 서베를린은 서방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 재건 노력을 통해서 전흔의 기억과 고통을 지우려는 몸부림을 계속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1998년에 설계한 베를린 유태인 박물관 © Jüdisches Museum Berlin Photo: Jens Ziehe.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친 냉전기 동안에는 정부 주도 도시 신건설 계획의 적극적인 추진하에 불도우저 바퀴흔적과 신축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가고 있는 가운데, 베를린은 루 리드 (Lou Reed)와 데이빗 보위 (David Bowie)를 앞세운 급진적 대중문화와 이어 히피문화의 중심지로 떠 오르면서 독일 전역의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든 희망과 해방의 도시로 받아들여 지기도 했다.
1989년, 동서독을 가로 막았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 진 이후 시정부가 주도한 도시 재건설 계획에 따라, 지난 10여년 동안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쿨투르포룸 (Kulturforum) 건물이 자리해 있는 도심 일대는 신소재 건축자재와 유리로 광채를 발하는 모던한 신주거지 및 사무용 건축 구역으로 탈바꿈 해 버렸다.
건축가 조세프 조반니니 (Joseph Giovannini)는 한때 베를린의 도시 설계 및 건축 지침을 두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타 건축가들의 이름을 내세운 도시 미화 작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0여년에 걸쳐 베를린를 메운 건축물들을 설계한 국제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하나둘 거명하다 보면 어딘가 수긍이 갈 정도로 그 목록은 제법 화려하다. 그리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정신이 담긴 건축물들도 자연스럽게 나란히 발견되곤 한다. 베를린 올림픽을 거행했던 베르너 마르흐 (Werner March)의 나치 올림픽 경기장은 지금도 옛 스와스티카 장식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유지한 채 보존되어 있다.이 경기장 바로 근처에는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설계한 위니뜨 다비따시옹 (Unite D’Habitation) 아파트 단지와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90년대 중반의 자하 하디드 (Zaha Hadid) 초기작으로 꼽히는 강철 구조의 아파트 건물이 스트레세만스트라세 거리상에 숨은듯 서있다.
베를린를 통틀어 가장 기이한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은 현재 베를린 주식거래소로 활용되고 있는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하우스 (Ludwig Erhard Haus). 니콜라스 그림쇼 (Nicolas Grimshaw)가 설계한 이 건물은 삐죽삐죽한 형태의 알루미늄 자재를 사용해 강렬한 표현성을 강조한 첨단 하이테크 빌딩으로서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아르마딜로 (Armadillo)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포츠다머 플라츠 마스터 플랜을 맡은 렌쪼 피아노 (Renzo Piano)를 비롯해서 리쳐드 로저스 (Richard Rogers), 헬뭇 얀 (Helmut Jahn), 한스 콜호프 (Hans Kollhoff) 등 포츠다머 플라츠 주변에 자리한 사무실, 상점, 아파트 건물들의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들은 가히 내노라할 만하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위치한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은 쟝 누벨 (Jean Nouvel)이, 브란덴부르크 문 뒤켠 파리저 플라츠 상에 있는 DC 은행 (DC Bank)은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가, 트라이앵글 오피스 및 아파트 건물은 요제프 파울 클라이후스 (Joseph Paul Kleihues), 프리드리히슈트라세, 마우어슈트라세, 크라우젠슈트라세의 건물들은 필립 존슨 (Philip Johnson)이 각각 담당했으며, 이탈리아의 알도 로시 (Aldo Rossi)도 그 주변 주거용 아파트 건물 설계를 책임진 바 있다. 콜호프와 머피/얀 설계팀이 설계한 머피/양 타워 (Murphy/Jahn Tower)는 일명 소니 센터 (Sony Center)로도 불리는 초대형 유리 건물로서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건축적 자랑거리로 꼽힌다.
그 같은 베를린 도심에서 벗어나 자리한 유태인 박물관 (Jewish Museum)은 다니엘 리베스킨트 (Daniel Liebeskind) 설계로 작년에 완공되어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유태인 박물관은 여러개의 타워식 건물들로 둘러 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을 끄는 것은 자우어브루흐 허튼 (Sauerbruch Hutton)설계팀의 GSW 에코 타워 (GSW eco-tower)로 독일과 영국의 건축 전통의 특유한 어우러짐을 선사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동서독의 통일 이후로 이 도시를 가로 막고 섰던 장벽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거리 위에 장벽이 서 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던 흔적이 이따금씩 보이지만 장벽의 물리적 존재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동서독 간의 심리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격차는 통일 이후로 그다지 완화되지 못했음을 베를린의 옛동독 구역에 발을 디딛는 자라면 느낄 수 있다. 신고 (新古) 건축물들이 뒤섞여 한데 녹아들어 있는 서베를린과는 대조적으로 동베를린에서는 지금도 옛 나치식 건물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곤 한다.
슐로스플라츠 (Schlossplatz)에 1967년 세워진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 (Palast der Republik: 공화국의 궁전이라는 의미) 동독 국회의사당 (Parliament) 본부는 하얀색 대리석과 동(銅)과 유리가 부서진채 그대로 방치되어 빈 건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서독에서는 이미 오래전 폐기해 버린 노랑색 거리 전차가 지금도 동부 베를린의 한산한 거리를 운행하는 모습과 서늘한 시민들의 표정에서 공산주의가 지배하던 옛동독의 과거상을 엿보게 해 준다.
* 이 글은 『ASIANA』 아시아나 항공 기내지 2003년 2월호에 실렸던 글을 다시 게재하는 것입니다.
4. 암스테르담의 바다와 건축
다섯째 날
암스테르담은 1900년대 이후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도시계획의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몇 안 되는 유럽의 도시들 중의 하나입니다. 중단되지 않은 건축활동이 일어난 곳이라 오랜 기간의 발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적용되고 있는 주요 사조를 연구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암스테르담의 도시계획은 어떠한 변덕스러운 개발도 없었고, 유토피아적인 계획도 없었으며, 오직 꾸준한 진보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다섯 째날 오후에는 부두가로 이동하여 바다와 어우러지는 1900년대 건물과 현대 건축을 보았습니다.
부두를 따라 걸으며 암스테르담이
어떻게 항만 지구에서
건축가들이 사랑하는 천국으로
탈바꿈했는지 살펴보세요!
The whale (Cie, 2000)
암스테르담 중정형 주택은 기후 특성에 순응하는 형태로, 특히 해안가 근처 집합주거에서 보이는 특성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래라고 이름을 붙인 집을 만든 건축회사 Cie는 주변 바다에서 영감을 받아 블록과 열린 공간의 변화에 따른 리듬을 감안한 저층 건물의 바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선으로 만든 스카이 라인으로 변화를 주고 저층부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는 뜻 같습니다. 그날 하필 중정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 보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이라 바다 바람으로부터 확실히 보호되고 위요되는 그들만의 중정은 조용한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해 보였습니다.
박인석 교수님께서 쓰신 아파트 한국사회라는 책에는 기후에 순응하는 일자형 배치와 중정형 배치에 대하여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왜 매일 성냥갑처럼 획일적인 남향 배치로 유럽처럼 중정형 주택을 만들지 못할까하는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입니다.
한국의 도시는 연중 월평균 일조 시간이 150~240시간 범위 내에서 고르게 분포하지만, 유럽의 도시는 겨울에는 50시간 이하 여름에는 200시간 이상으로 변화의 폭이 큽니다. 특히 겨울에는 일조 시간이 현저히 줄며 햇볕의 양적 부족으로 질을 따지기보다는 오전에는 동쪽 햇볕을 오후에는 서쪽 햇볕을 받을 수 있는 북북서 남남동 향이 유리하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사시사철 햇볕이 충분한 한국에서는 햇볕의 질을 따지는데 깊숙한 햇볕은 피하고 낮 시간 동안 적당한 깊이로 드는 남향을 태생적으로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남향집은 햇볕이 잘 든다라는 말은 햇볕이 많이 든다는 것이 아니라 좋은 햇볕이 적당하게 든다라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중정형 주거의 태생적 이유는 일조량이 적은 유럽의 도시에 속하며 바람이 많이 부는 암스테르담 해안가의 집합주거를 보면 절로 이해가 됩니다.
Piraeus (Hans Kolhoff, 1989-1994)
벽돌은 네덜란드 건축의 전통적인 재료입니다. 석재, 목재를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자연환경에도 기인하지만, 네덜란드가 라인강을 비롯한 여러 강들의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벽돌을 구울 수 있는 진흙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적인 이유로 짙은 색의 벽돌이 다시 사용되면서 90년대 후반의 흐름인 '신전통주의'(neotraditionalisme)와 연관을 맺게 되는데, 암스테르담에 이를 잘 표현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 독일 건축가 한스 콜호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설계한 덴하그 법원 고층 건물 외장에 벽돌을 현대적으로 사용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다시 KNSM eiland에 있는 중정형 주택에서도 네덜란드 벽돌의 맛?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정의 외부 계단과 필로티 밑의 너트를 끼운 듯한 열주는 저의식 표현으로는 쿨한 오브제입니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있겠으나, 우리는 잘 읽을 수 없는 쿨한 공간들. (사실 많이 찾아보지 않아 제가 의도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지어진 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유지관리 상태가 좋아서 백화현상도 없었고 벽돌면의 하자도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거만 있는 것이 아니라 1층에는 샵과 아뜰리에가 있고, 그 사이에 집으로 들어가는 나무로 만든 현관문이 벽돌과 잘 어울렸습니다. 실제로 사는 사람의 거주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30살을 달려가는 이 집은 낡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격과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다.
다양한 건축가와 아티스트의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통하여
100년 동안의 업사이클 디자인을 완성한 호텔
Lloyd hotel & Cultural Embassy (MVRDV, 2004)
1920년대에 지어진 로이드 호텔은 지어질 무렵에는 호화로운 이민자 호텔로, 종전 후에는 교도소로 사용되다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6년이 돼서야 암스테르담 시는 로이드 호텔을 주목했다고 합니다.
긴 역사를 가진 건축물을 최선의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공모했고, 암스테르담 시의 문화대사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수용해 디자인 호텔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건축 스튜디오 MVRDV가 리모델링을 맡았으며 완공 83년 만인 2004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호텔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문화 대사관과 1성부터 5성까지 다양한 룸으로 구성된 1백16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호텔로 운영되기 시작합니다.
1900년 풍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내부는 다이내믹한 공간을 품고 있습니다. MVRDV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협업해 완성한 현재의 인테리어는 현대적인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실제로 매스 사이에 걸쳐져 있는 빈 공간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 투어(1시간 14.5유로)가 있다고 하니 미리 예약하고 설명을 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곳에는 문화 대사관답게 포스트 패닉이라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가 있고, 광고와 장편영화 분야에서 유명하다고 합니다.1층 로비와 카페 뿐만 아니라 중앙의 빈 공간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이어지는 호텔 편의시설이자 문화시설로 쓰이는 공간을 볼 수 있고, 객실 복도까지도 들어 가 볼 수도 있습니다. 이후에 방문한 암래드 호텔도 그렇고 외부인에게 관대한 호텔입니다. 로이드 호텔 카페에서 파는 진저에일이 참 맛있었습니다. 카페만 들러보기에도 좋은 호텔입니다.
Hospitality. 본질을 놓고 봤을 때 호텔과 병원 심지어 교도소는 근본이 같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곳은 예전의 교도소의 분위기를 살린 방도 있다고 합니다. 성급만큼이나 가격대도 다양하니 암스테르담에 머무를 일이 있다면 꼭 머물러 보고 싶은 호텔입니다.
걷다 보니 큰 지붕 아래 공연장
Muziekgebouw aan 't IJ (3xn, 2005)
로이드 호텔을 나와서 걸어간 곳은 트램과 자동차 도로 항만지구가 혼재된 복잡한 풍경이었습니다.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인프라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고, 눈에 보인다고 걷다가 자칫 길을 잘 못 들면 뱅 돌아서 가야는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에 문화시설이 모여 있다는 것은 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는 곳일것 같은데, 뮤직 헤바우는 큰 지붕 아래 모여 있는 공연장으로 사람이 스미는 디자인을 잘 보여줍니다.
큰 지붕 아래는 공연장과 암스테르담 시내를 향해 돌출되어 박혀 있는 매스가 유리로 감싸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비워져 있는 공간은 물이 낮은 곳으로 고이듯이 사람들이 스미기 좋은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보행교에서 걸어 들어와서 내려가다 보면 암스테르담의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연장 로비를 만나게 되니까요. 결과적으로 비워진 커다란 매스 사이 공간들이 휴먼스케일의 이동통로와 휴식공간으로 잘 계획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멋진 테라스가 딸린 레스토랑이 두 군데 있는 공공도서관
Public library of amsterdam Jo Coenen & Co Architekten, 2007)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사설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관련된 활동, 모임, 공부 장소,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소규모 강당, 어린이 도서관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로 지역민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공공도서관의 이름을 갖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다 보니 다른 파트너 업체들과의 협업으로 벌어들이는 임대 수익 또한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특히 지속적인 운영을 위한 수익을 위해 맨 꼭대기 층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압도적인 멋진 테라스가 딸린 레스토랑 두 군데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일반시민이 카페를 왔다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책을 보다가 카페에 가서 커피와 식사를 즐길 수도 있는 도서관 사례로 유명합니다. 이 도서관을 보면 앞으로의 도서관은 일반시민의 생활기반시설과 결합되어 더 편하게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면서, 운영적 측면으로는 수익시설과 결합하여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보여주는 딱딱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도서관 기능을 말랑말랑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건축가 요코 넨은 로테르담에 있는 건축가협회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로,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도서관의 기능과 융통성 있는 내부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근처는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운하만 흐르던 개발 예정지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그 옆에 콘서바토리(음악대학)와 고급 호텔 등이 어우러진 비즈니스 타운이 되었고 NEMO과학박물관으로 연결되며 크게 문화 블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Amrath hotel
공공도서관 맞은편에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호텔이 보입니다. 1916년 문을 연 이 호텔은 쉽바타우스(Scheepvaarthuis·Shipping House라는 의미)라고 불리며, 암스테르담 학파의 1세대 건축물로 급진적인 표현주의 양식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100대 유산에 선정될 정도로 문화·역사적으로 가치 높은 건축으로 오후 5시가 넘어 무척 지치고 힘든 때에 갔지만 내부의 클래식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에 눈이 희번덕 뜨였던 기억이 납니다.
오후에 돌아본 암스테르담!
바다가 보이는 로이드, 암래스 호텔 등 1900년대 양식의 역사적인 호텔부터 뮤직 헤바우, 공공도서관 등 현재의 문화시설과 주거, 상업시설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활기가 넘치는 작은 워터프론트 도시입니다.
출처 - 08화 암스테르담의 바다와 건축 (brunch.co.kr)
5. 유럽 현지 가이드의 리얼 유럽 건축 명소 Best 5
한빛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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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by 조승모
Best 1 | 가우디와 구엘을 만나다
바르셀로나
"가우디가 구엘의 의뢰로 만든 건축물 중 '보데가스 구엘(Bodegas Güell)' 과 '콜로니아 구엘 성당(Cripta Gaudi) 지하 예배당'은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고, 나머지 세 곳은 시 내에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구엘 별장'은 가우디의 대표적인 건축 기법인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이 탄생 한 곳입니다. 또한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구엘의 섬유 산업 단지 안에 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이 작은 마을에서는 성당 지하 예배당으로 향하는 재미난 발자국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 가이드 이민경
- 가우디의 독창성이 시작되다
콜로니아 구엘 지하 예배당 Cripta de la Colònia Güell
'콜로니아 구엘'은 구엘이 바르셀로나 근교에 건설한 공장 단지를 일컫는다. 구엘은 학교와 기숙사, 공원, 성당까지 완벽하게 갖춘 공업 단지 설립을 계획했고, 그중 성당 건축을 가우디에게 맡겼다. 그때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에 자신의 스타일을 섞는 식으로 작업한 가우디는 이 작업부터 어느 양식에도 기대지 않고 완벽하게 독창적인 자신만의 건축 세계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부엉이를 닮은 벽면이나 나비를 형상화한 창문 등 자연물에서 모티브를 딴 디자인, 극도로 정교하게 설계한 아치 등이 이 성당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성 가족 성당 건립에 이때의 아이디어를 대거 도입했다.
Address. Calle Claudi Güell, Colònia Güell, Santa Coloma de Cervelló, Barcelona
Tel. +34-93-630-5807
Open. 10:00~19:00(토·일요일 ~15:00) Fee. €9
Web. www.gaudicoloniaguell.org
- 구엘의 자존심을 세우다
구엘 저택 Palau Güell
구엘이 가우디에게 두 번째로 맡긴 작업은 그의 집이었다. 구엘은 람블라 거리에 보유한 자신의 택지에 파격적이면서 아름다운 ‘궁전’을 지어달라고 주 문한다. ('팔라우 구엘(Palau Güell)을 직역하면 '구엘 궁전'이다.) 가우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철제 대문과 옥상 장식을 비롯해 곳곳에 그의 장기인 철제 공예 장식을 도입한다. 단단한 쇠를 부드러운 고무처럼 자유자재로 휘어서 만든 철제 공예품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택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Address. Carrer Nou de la Rambla 3-5, Barcelona
Tel. +34-93-472-5775
Open. 10:00~20:00(11/1~3/31 ~17:30) Close. 월요일
Fee. 일반 €12, 학생(18세 이상 국제학생증 소지자) €9, 어린이(12~17세) €7
Web. www.palauguell.cat
- 가우디와 구엘의 못다 이룬 꿈
구엘 공원 Park Güell
구엘과 가우디의 마지막 합작품으로 바르셀로나 시내에 있는 가우디의 작품 중 성 가족 성당 다음 가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구엘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그라시아 북쪽 언덕 지대에 부유층을 위한 대규모 주택 단지를 짓기로 하고 가우디에게 총지휘를 맡긴다. 가우디는 그동안 자신이 구축한 모든 스타일을 단지 구석구석에 유감없 이 발휘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공사의 진척이 늦어지고, 구엘의 건강이 악화된 데다 주택 선분양에 실패하면서 자금난까지 닥친다. 결국 구엘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사는 전면 중단되었으며, 그의 가족들은 부지 전체를 바르셀로나 시에 기증한다. 바르셀로나 시는 이를 공원으로 만들어 일반에 개방해 현재와 같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Address. Carrer d'Olot, Barcelona Tel. +34-93-409-1831
Open. 비수기(10/30~3/26) 08:30~18:15, 준성수기(3/27~4/30, 8/29~10/29) 08:00~20:00, 성수기(5/1~8/28) 08:00~21:30
Web. www.parkguell.cat
Best 2 |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피렌체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으로 전환된 위대하고 역사적인 흐름이었고, 피렌체는 바로 그 흐름이 시작된 곳입니다. 브루넬레스키는 건축 분야에서 르네상스의 문을 열고 들어간 가장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고대 로마 건축과 수학을 접목해 르네상스 양식을 만들었고, 선 투시 원근법을 발명해 당시 조각가들과 화가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 천재였지요. 우리는 그 천재가 남긴 많은 건축물을 피렌체 구시가지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시가지에서는 차를 타기보다 걸어 다니시기를 권합니다. 크기도 워낙 작거니와 차량 진입이 안 되는 골목이 많기 때문입니다." - 가이드 강화자
- 이것이 르네상스
피렌체 두오모의 돔 지붕 Cupola
피렌체의 두오모는 본체를 완공하고도 한동안 돔 지붕을 덮지 못했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지붕을 크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탈리아 전역의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고, 브루넬레스키가 최종에 올랐다. 그는 고딕 건축에서 정석으로 여겼던 내부 버팀벽을 전혀 쓰지 않고, 내벽과 외벽이 서로 지탱하는 구조만으로도 돔을 만들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가 로마에서 연구한 판테온의 돔 지붕 구조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브루넬레스키가 공사를 맡았고,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돔 지붕을 훌륭하게 완성해냈다. 중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고대의 지혜에서 해결책을 찾는 르네상스 정신이 건축에 최초로 구현된 것으로 평가된다. 브루넬레스키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긴 걸작으로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돔 지붕으로 기록되어 있다.
Address. Piazza del Duomo, Firenze
Tel. +39-(0)55-230-885
Open. 08:30~19:00(쿠폴라 전망대)
Web. www.ilgrandemuseodelduomo.it
- 르네상스식 균형미의 극치
파치 예배당 Cappella Pazzi
피렌체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인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의 부속 건물로, 피렌체의 유력 가문이었던 파치 가문의 전용 예배당이었다. 단순하지만 힘차고 완벽한 균형미가 돋보이는 르네상스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장기인 돔 지붕도 주목할 만한 볼거리. 브루넬레스키가 죽은 1446년까지 완공하지 못했고, 이후 파치 가문이 멸문을 당하며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Address. Piazza di Santa Croce, 16, Firenze
Tel. +39-(0)55-246-6105
Open. 09:30~17:30(일요일, 카톨릭 축일 14:00~17:30)
Fee. 성인 €6, 청소년(11~17세) €4, 11세 미만 어린이 및 장애인 무료 입장(산타 크로체 성당 통합 입장권)
Web. www.santacroceopera.it
- 브루넬레스키의 마지막 작품
산토 스피리토 성당 Basilica di Santo Spirito
브루넬레스키가 전체 설계와 시공까지 맡은 유일 한 건축물로 13세기까지 이곳에 있던 낡은 교회를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설계는 1428년 에 완성했지만 착공은 1440년경에 시작됐고, 본격적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곳에 첫 번째 기둥이 도착한 게 브루넬레스키가 죽기 겨우 열흘 전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은 브루넬레스키 사후에 안토니오 마네티(Antonio Manetti)가 브루넬레스키의 설계도대로 완공한 것이다. 피렌체의 다른 성당과 달리 외관이 아주 단순하고 깔끔해 오히려 현대적으로 보이는데, 내부는 브루넬레스키 특유의 힘찬 균형미가 돋보인다.
Best 3 | 근현대 건축 산책
빈
"빈은 현대 미술과 건축의 발상지 중 한 곳으로, 시내 곳곳에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 건축물들이 산재합니다. 다만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보, 지하철, 트램을 적절히 이용하며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건축물들만 돌아봐도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는 훌륭한 빈 여행이 됩니다." - 가이드 박정후
- 세기말의 충격
제체시온 회관 Secession
제체시온 소속 예술가들은 구태의연한 장르 분리에서 벗어나 미술·건축·음악 등을 아우르는 예술 세계를 추구했는데, 이러한 이상을 펼칠 전시 공간으로 건축한 것이 바로 제체 시온 회관이다. 1897년에 지었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새하얀 큐비즘 건물이 들어서는 것 자체를 세기말적인 충격으로 여겼다. 제체시온 회관은 유겐트 스틸 건축의 최고봉으로 꼽히며, 지금도 장르와 사조를 뛰어넘는 현대 미술의 장으로서 다양한 전시를 연다. 지하 전시실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Beethovenfries)'를 상설 전시한다.
Address. Friedrichstraße 12, Wien
Tel. +43-(0)1-587-5307 Open. 10:00~18:00(12/24 ~16:00, 1/1 12:00~18:00) Close. 월요일, 12/25
Fee. 성인 €9.50, 청소년·경로 €6
Web. www.secession.at
- 장식은 범죄다
로스 하우스 Looshaus
호프부르크(Hofburg) 궁전 정문과 마주 보고 있는 건 축물로 1911년에 완공됐다. 골트만 앤 잘라치(Goldman & Salatsch)라는 빈의 유명 양복점에서 신축 건물을 짓기 위해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고, 여기서 아돌프 로스의 건축안이 당선되 었다. 로스의 설계는 1층의 파사드만 대리석으로 장식하고 다른 곳에는 아무런 장식 요소를 넣지 않은,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안이었다. 이 건물이 완공된 뒤 빈 사교계와 건축계에는 일대 파란이 일었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이 건물을 보지 않기 위해 아예 궁전 입구를 폐쇄했다고 전해진다. 1987년 라이파이젠방크(Raiffeisenbank)에 매각된 뒤 현재까지 은행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Access. U반 3호선 헤렌가세Herrengasse 역에서 도보 5분.
Address. Michaelerplatz 3, Wien
Web. www.adolfloos.at
- 한 번쯤 살고 싶은 집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Hundertwasser Haus
1986년 빈 시에서 진행한 이상적인 서민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통해 지은 건축물로, 훈데르트바서 특유의 자연 친화적이고 동화적인 독창성이 한껏 드러나 있다. 복도와 벽면은 자연의 형태를 살려 울퉁불퉁한 곡면이고, 지붕은 인공으로 만든 산처럼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다. 주택이라기에는 심하게 파격적인 모습이어서 당시에는 찬반 격론이 벌어졌지만, 현재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훈데르트바서의 대표작이자 빈의 명물이 되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어 내부는 전혀 볼 수 없고 건물 외부만 둘러봐야 한다.
Address. Kegelgasse 36-38, Wien
Web. www.hundertwasser-haus.info
Best 4 | 체코인의 자부심
프라하
"프라하는 다양한 시대의 여러 가지 사조가 모여 있는 건축 박물관 같은 도시라서, 건축을 테마로 여행할 때는 정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프라하의 근대를 대표하는 사조인 아르 누보는 쉽고 친숙하면서 딱 봐도 매우 예쁘기 때문에 건축에 대해 큰 지식이 없는 분들도 편하게 즐기실 수 있어요." - 가이드 손윤미
- 프라하 아르 누보 건축의 대표주자
시민회관 The Municipal House, Obecní dům
공연장, 전시회장,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선 복합 문화 공간이다. 원래 보헤미아 왕국의 궁전이 있던 자리에 1905년부 터 1911년까지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건물은 네오 바로크 및 네오 르네상스풍이지만 창문, 파사드의 벽화, 유리 천장 등 건물의 모든 장식 요소는 아르 누보 스타일이다. 특히 내부 장식은 알폰스 무하를 비롯해 당시 체코에서 내로라하는 아르 누보 미술가들이 작업했다. 1층의 로비와 카페, 레스토랑 및 지하의 맥주홀도 아르 누보풍으로 꾸며져 있다.
Address. Namesti Republiky 5, Praha
Tel. +420-222-002-129
Open. 10:00~19:00
Web. www.obecnidum.cz
- 기차역도 아르 누보
프라하 중앙역 구 역사 Hlavní Nádraží
프라하와 체코는 물론 유럽 전역을 잇는 기차망의 중심이 되는 역이다. 1871년에 개통해 1901년 전면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는데, 이때 공모전에서 아르 누보 양식의 건축 안이 당선되었다. 파사드와 대합실 등에서 뚜렷한 아르 누보의 특성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매표소가 몹시 고풍스러우면서도 귀엽다. 2006년 신 역사 신축에 들어가며 잠시 폐쇄 했다가 2014년 완공과 함께 일반에 개방했다.
Address. Wilsonova 8, Praha
Tel. +420-840-112-113
- 아르 데코의 진수를 느낀다
호텔 임페리얼 Hotel Imperial
아르 데코(Art Deco)는 아르 누보를 계승한 장식 미술 양식이다. 아르 누보는 유려하고 불규칙한 곡선미가 특징이며 대부분 수공예로 작업한 반면, 아르 데코는 동심원이나 반복 패턴 등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즐겨 사용하고 대량 생산 시스템과도 연계되어 있었다. 프라하의 호텔 임페리얼은 아르 데코 양식으로 꾸민 건축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데, 특히 1층 카페 임페리얼의 타일 장식은 아르 데코 인테리어의 백미라 할 수 있다.
Address. Na Porici 1072/15, Praha
Tel. +420-246-011-663(호텔 예약), +420-246-011440(카페 예약)
Web. www.hotel-imperial.cz
Best 5 | 현대 건축을 만나다
베를린
"베를린 장벽이 놓여 있던 포츠다머 플라츠의 중심부는 분단 기간 동안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로 남아 있다가 통일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중심부에서 약간 떨어진 구 서독 지역에는 분단 시대에 지은 유명 건축가들의 뛰어난 현대 건축물도 다수 있고요. 이 건축물들만 돌아봐도 반나절 이상 훌륭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 마이리얼트립 이동건 대표
- 포츠다머 플라츠의 빛과 그림자
소니 센터 Sony Center
소니의 유럽 본사와 독일 본사를 중심으로 독일 철도 빌딩, 영화관, 호텔, 국제회의장,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는 빌딩 복합체다.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가장 화려한 핵심 공간으로 이곳에서 베를린의 주요한 이벤트가 수시로 열린다. 매년 베 를린 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베를린의 거리 응원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건물 중앙의 광장이다. 원뿔 모형 천장이 광장 전체를 덮고 있는데, 이는 후지산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개발과 건축에 들어간 비용은 총 750만 유로. 그러나 소니가 경영난 에 빠지면서 2008년 600만 유로도 안 되는 금액에 매각되었다. 포츠다머 플라츠의 명암을 한몸에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Web. www.sonycenter.de
- 렌초 피아노의 역작
다임러 콤플렉스 Daimler Complex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부지가 가장 넓은 빌딩 복합체로, 포츠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콜호프 타워(Kollhoff Tower)와 아르카덴(Arkaden) 쇼핑몰 등을 비롯한 총 19개의 빌딩이 들어서 있다. 세계 건축계의 대스타 중 한 명인 렌초 피아노가 부지 개발과 디자인의 총책임을 맡았는데, 단일 건물이 아닌 부지 전체가 그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다임러가 합병과 경영난 등의 진통을 겪으면서 2007년에 대부분 매각되었다. 일반 사무용 빌딩이 많아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쇼핑몰 아르카덴(Arkaden)과 몇몇 전시 공간 정도다. 그러나 아르카덴이 워낙 부지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핵심 스폿인지라 이곳만 돌아봐도 다임러 콤플렉스의 위상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Address. Potsdamer Platz Arkaden, Berlin
- 카라얀의 텐트
베를린 필하모니 Berliner Philharmonie
베를린을 대표하는 음악 공연장이자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 모니의 본 거지다. 옛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무 너졌고, 1960년에 새로운 설계와 디자인으로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건축가 한스 샤로운(Hans Scharoun)의 작품이다. 건물 모습이 텐트와 비슷해 당시 베를린 필하모니의 수석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의 이름을 따 '카라얀의 텐트'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Address. Herbert-von-Karajan-Straße 1, Berlin
Tel. +49-(0)30-25-4880
Web. www.berliner-philharmoniker.de
출처 - https://m.hanbit.co.kr/channel/category/category_view.html?cms_code=CMS7191864280
6. '분단의 흔적'만 남은 베를린.. '혼행의 기쁨' 주는 도시가 되다
조은영의 '무브무브' - '유럽의 새 수도' 베를린
공공녹지·공원 2500여개.. 도시 대부분이 평지인 '자전거 천국'
368m 높이 TV타워가 랜드마크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시청사
높은 천장·대리석·레드카펫 '눈길'
정전협정 체결 65주년, 연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목표라고 떠들썩합니다. 독일 수도인 베를린은 우리에게 관심 가는 여행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 도시이기도 한 베를린은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행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도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인 독일과 독일의 수도 베를린, 그리고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까지 돌아봅니다.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사진=무브매거진, 셔터스톡 제공
자전거로 돌기 좋은 개별 여행자의 천국
베를린은 서유럽의 동쪽 경계 부분에 있다. 해마다 많은 여행객이 유럽을 방문하지만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유럽 여행 루트나 패키지 여행에선 베를린이 빠지기 쉬웠다. 그래서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나 뮌헨보다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를린의 크기는 서울의 1.5배다. 독일의 도시 중 가장 크지만 인구는 400만 명도 되지 않아 쾌적하다. 슈프레 강이 중심부를 관통하고 서쪽으로는 스판다우 강이 슈프레와 만난다. 도시 내에 많은 호수와 정원이 있다. 2500여 개의 공공녹지와 공원이 있고 면적의 25%를 숲과 공원이 차지한다. ‘유럽의 새 수도’라 불리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도시의 한편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공존한다. 도시는 사람들을 넉넉히 보듬어줄 자연이 있고 평평한 평지로 구성돼 자전거 타기에 참 좋다. 그래서인지 베를리너들은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가 많다. 세계의 자전거 공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베를린에 앞다퉈 진출했다. 이는 여행자들도 원한다면 아주 손쉽게 아무데서나 길에 있는 자전거를 주워 타고 원하는 목적지에 자전거를 버려도(?) 된다는 이야기다.
베를린 도심을 관통하는 슈프레 강변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베를린 시민들.
시간만 있다면 운동화 끈을 잡아매고, 슬슬 걷기에도 참 좋은 도시다. 물가도 저렴하고 전철,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도 촘촘히 발달해 있으니, 베를린은 바야흐로 개별 여행자들의 천국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44년간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도시, 베를린의 분단 시대를 기억하며 하루는 동독 코스, 또 하루는 서독 코스를 잡아 천천히 거닐어보자. 일반버스 100번을 타면 앞으로 2회에 걸쳐 언급하는 주요 코스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즐겨타는 베를린 시민들.
쇼핑거리, 예술가의 본거지 알렉산더 플라츠
서베를린의 중심가가 ‘쿠담’이라면 ‘알렉산더 플라츠’는 동베를린의 중심지다. 쿠담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통일 후 쿠담보다 더 중요한 도시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알렉산더 플라츠는 동베를린 투어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장소다.
이곳은 만남의 장소이자, 쇼핑거리이며 예술가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 부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68m의 높이를 자랑하는 TV타워다. 서베를린에 있는 전승기념탑보다 더 높게 세워 동베를린의 위용을 보여주려 1969년에 지은 TV타워는 당시엔 동베를린의 자랑이자 상징이었고 지금은 베를린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됐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기도 한 이곳의 204m 높이엔 전망대가 있으며 바로 위층엔 30분마다 한 바퀴씩 도는 회전 레스토랑도 있다. 여행객이라면 근처에 있는 만국시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TV타워 바로 옆에는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마리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정확한 건축 시기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292년 역사서에 등장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본래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었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회가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됐다가 동독 정부가 1950년대에 재건한 것이다. 이곳에서 교회 앞의 마르틴 루터 상보다 더 볼 만한 것은 중세 예술작품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꼽히는 ‘죽음의 무도(Totentanz)’ 프레스코 벽화다. 이 교회는 붉은 시청사의 모티브가 됐다고도 알려져 있다.
박물관의 섬으로 이름 높은 슈프레 섬
알렉산더 플라츠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화려하고 웅장한 베를린 돔을 만날 수 있다. 베를린 돔은 1747년에 지어진 교회 건물로 ‘베를린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전쟁 때 폭격을 받아 많은 부분이 소실돼 단순하게 바뀌었음에도 검게 그을린 듯한 벽면과 푸른 빛의 돔 지붕의 조화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숨막히게 아름답다.
안으로 들어가보자. 높이 114m, 폭 73m의 거대한 천장 돔이 인상적이다. 프로이센 왕과 독일제국 황제를 배출한 명문가인 호엔촐레(Hohenzolle) 가문의 관들도 놓여 있다. 독일 최대 파이프 오르간을 구경하고 돔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을 즐기는 것도 놓치지 말자!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정원 루스트가르텐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사실 베를린 돔이 있는 곳은 슈프레 강의 작은 섬, 슈프레 섬이다. 슈프레 섬에는 구박물관, 신박물관, 구국립박물관, 보데미술관, 페르가몬박물관 등 5개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박물관이 모여 있는데, 이를 가리켜 박물관 섬(Museum Island)이라 칭한다. 이들은 아름답고 웅장한 건축물뿐만 아니라 각각 소장한 작품들의 예술적, 역사적 가치도 굉장해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루를 온전히 내어 베를린 돔과 관심 가는 박물관 투어만 제대로 한다 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다.
TV타워 옆에 있는 마리엔 교회와 더불어 베를린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회로 꼽히는 성 니콜라이 교회는 베를린의 핫 플레이스인 미테의 니콜라이 지구에 있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1220~1230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대성당과 1876년 증축한 후기 고딕 양식 구조가 잘 어우러진 건축물이다. 두 개의 탑은 전쟁 때 파괴됐으나 동독 시절 복원한 것이다. 현재는 박물관, 콘서트홀 등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데 내부 관람을 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매월 첫째 수요일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니 참고하면 좋다.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시청사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니콜라이 지구의 건물들, 레스토랑, 카페 등에선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데, 옛 독어로 쓰인 간판도 간간이 보여 향수를 자아낸다. 슈프레 강, 라트하우스 거리, 슈판다우어 거리, 뮐렌담 등과 인접한 니콜라이 지구에서 우린 베를린 옛 모습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지역은 1937년 베를린 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건축 계획을 시행하면서 많은 건물이 철거됐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폭격과 시가전으로 폐허가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역사적 건축물들을 재건해 왔고, 오래된 건물들은 이후 들어선 새 주택,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모습이 됐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베를린 시청사.
니콜라이 지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붉은 시청사는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1861년부터 1869년까지 헤르만 프리드리히 베서만이 건축한 이 건물은 동서독 시대엔 동베를린의 시청사였고, 통일 독일 이후 베를린 시청사로 제자리를 찾았다. 가운데 높이 솟은 시계탑은 프랑스의 라온 대성당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내부의 작은 갤러리가 시민에게 개방되며, 시청에서 행사가 열리는 날을 제외하면 평일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높은 천장과 대리석으로 꾸며진 건물 내부엔 레드카펫까지 깔려 있어 마치 화려한 궁전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독일 통일 후 변화 보여주는 포츠다머 플라츠
포츠다머 플라츠는 1990년 독일 통일 후 도시의 천지개벽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1920년대에만 해도 유럽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분단 이후 옛 동베를린 지역에 위치하는 바람에 약 50년간 방치돼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바로 지나가던 장소였던 만큼 장벽이 무너진 후 일대에 51만㎡ 규모의 거대한 공터가 생겼고, 오랫동안 비워둔 탓으로 잡초만 무성했던 이 땅을 두고 3년간의 긴 토론이 이어졌다.
세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개발 공모를 실시했고, 복합도시, 역사성을 살리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하자는 골자로 대대적인 도시재생이 시작됐다. 렌조 피아노를 비롯해 리처드 로저스, 헬무트 얀, 한스 콜호프 등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를 가운데 놓고 두 개의 거대한 건물이 들어섰다. 이들이 포츠다머 플라츠의 중심에 위치한 높이 100m가 넘는 크라이슬러타운과 소니센터다. 과거를 너머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베를린의 층고 제한인 35m보다 3배 가까운 높이를 허가해줬다. 유럽 최대의 건축 현장이 된 포츠다머 플라츠는 건축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성지로 알려져 있다. 소니센터의 중간 광장에 들어서면 후지산 모양을 형상화한 천막이 하늘을 덮고 있다. 이곳에선 매년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이외에도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 도이치반 빌딩, 복합영화관, 최고급 쇼핑몰과 식당가, 호화 아파트와 사무실 등이 들어서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로 꼽힌다. 소니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눈에 익은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장이다. 홈페이지의 콘서트 일정 캘린더에서 공연을 예매할 수 있고,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40분짜리 런치콘서트는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베를린=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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