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70. 찰스 젱크스 Charles Jencks

 

1.  건축가  찰스 젱

Charles Jencks

 

 
찰스 젱스

찰스 알렉산더 젱크스(Charles Alexander Jencks, 1939년 6월 21일 ~ 2019년 10월 13일)는 미국의 문화 이론가, 조경 디자이너, 건축사학자, 매기의  관리 센터의 공동 설립자였다.그는 3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고 198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가로 유명해졌다. 젠크는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랜드폼 건축에 시간을 할애했다.

이 풍경들에는 에든버러 외곽의 목성 아트랜드 우주 투기 동산과 토공들이 포함된다.그의 계속적인 프로젝트인 Crawick Multipus Buccleuch 공작이 의뢰한 것으로, 2015년에 Sanquhar 근처에서 문을 열었다.

 

초년과 가정생활

1939년 6월 21일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찰스 알렉산더 젠크스는 작곡가 가드너 플랫 젠크스와 루스 드윗 펄의 아들이었다. 젠크스는 매사추세츠주 노스앤도버 있는 브룩스 학교에 다녔고, 1961년 하버드대 영문학 학사, 1965년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965년 Jencks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스코틀랜드와 런던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1970년에 젠크스는 런던 대학교의 유명한 역사학자 레이너 반햄 밑에서 공부하면서 건축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이 논문은 20세기 건축학을 연구하기 위해 기호학 및 기타 문학적으로 비판적인 방법을 사용한 그의 근대 건축 운동(1973)의 원천이었다.

젠크스는 1961년 파멜라 발딩과 결혼했으며(결혼은 1973년 7월 종료), 두 아들을 두었다. 하나는 상하이에서 조경 건축가로 일하며 다른 하나는 베트남의 자르딘에서 일한다.그는 존 케스윅 경과 클레어 엘웨스의 딸인 매기 케스윅 젠크스(Maggie Keswick Jencks)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영화제작자 존 케스윅 젠츠는 에이미 애그뉴와 결혼했고 릴리 클레어 젠츠는 2014년 로저 킬링과 결혼했다. 젠크스는 2006년 루이자 레인 폭스와 세 번째 부인으로 결혼했고, 따라서 아들 헨리 레인 폭스와 딸 마사 레인 폭스의 양아버지가 되었다.

건축설계

Jencks의 첫 번째 건축 디자인은 숲 속의 스튜디오였고, 5000달러의 값싼 대량 생산 차고 구조였다 – The Garagia Rotunda라는 제목인데, 그곳에서 그는 가족과 여름의 일부를 보냈다.준비된 재료의 임시 사용은 Nathan Silver Adhocism - 1971년과 2013년에 Nathan Silver Adhocism - 즉흥연주를 위한 사례로 그의 극본에서 옹호되었다.젠크의 건축 디자인은 복잡성 이론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실험을 했다.

젠크스는 매기 케스윅과 테리 패럴, 마이클 그레이브스를 포함한 포스트모던 건축가들과 함께 자신의 런던 집을 설계했다.그는 이 집을 "테마틱 하우스"라고 이름 지었다.

매기즈 센터

1995년 두 번째 부인 매기 케스윅 젠크스가 사망한 후, 젠크스는 공동 설립과 매기의  관리 센터를 도왔다.자활의 개념과 암환자들이 길고 질질 끄는 투쟁에 자주 관여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센터들은 큰 병원 옆에 있는 매력적인 환경에서 사회적, 심리적 도움을 제공한다.그들의 건축, 풍경, 예술은 환자와 간병인 모두를 지원하고 과거에 종종 병을 숨긴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주기 위해 고안되었다.Maggie Keswick Jencks는 그녀의 남편이 일했던 "중국 정원"이라는 책의 저자다.

조경건축과 토지형식

 
우주 투기 정원 있는 블랙홀

젱크스는 매기가 찰스에게 스코틀랜드의 가정집과 정원에서 디자인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상징적인 탐험 장소로 풍경 디자인으로 바꿨다.2003년의 결과는 우주 투기의 정원이었는데, DNA 정원, 쿼크 워크, 프랙탈 테라스, 혜성 브리지와 같은 다양한 은유들을 중심으로 20개의 구역이 설계되었다.에든버러, 밀라노, 롱아일랜드, 뉴욕, 케임브리지, 순천, 대한민국(릴리 젠크스) 등에 하이브리드 랜드폼과 상징조형물이 추가로 세워졌으며, 그 중 일부는 2011년 The Universe in the Grounds에서 출판되었다.

2010년부터, 젠크스는 스코틀랜드 남서부의 55 에이커에 달하는 지역인 크로익 멀티버스(Crowick Multiverus)에서 작업을 시작했다.이 프로젝트는 2015년에 문을 연 리차드 북클루치를 위해 개발되었다.

 
목성 아트랜드 지형인 생명의 세포

형이상학적 풍경은 2011년 목성 아트랜드에서 열린 조각 전시회였다.젠크스는 이후 산콰르 2016년 메르스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부분적으로 젠크스에 의해 설계되어 1988년에 시작된 우주 투기의 정원은 젠크스의 죽은 아내 매기 케스윅 젠크스에 바쳐졌다.젠크스, 그의 아내, 과학자,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은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과정을 바탕으로 정원을 설계했다.젠크스의 목표는 자연을 기념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또한 현대 과학의 요소들을 디자인에 포함시켰다.그 정원에는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이 즐거운 식물 종들이 있다.길과 정원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것이 여전히 그의 관심사였지만, 젠크스는 새로운 도구와 인공 재료를 사용하여 우주 경관을 향상시켰다.일본의  정원,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 정원, 영국과 프랑스의 르네상스 정원이 우주의 유사점이었듯, 디자인은 현대 세계의 우주적이고 문화적인 진화를 상징한다.정원은 축소판이다. 정원을 거닐면서 그들은 우주를 축소하여 경험한다.젠크스에 따르면, 정원은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 비극, 그리고 주인과 가족의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자서전적인 것이라고 한다.

정원이 발전함에 따라 우주론 같은 과학도 발전했고, 이는 펼쳐지는 우주와 펼쳐지는 과학, 그리고 의문스러운 디자인 사이에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다.젠크스는 현대 과학이 잠재적으로 창조성의 위대한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우주의 방식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아름다움의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그의 저서 『경관 속의 우주』(2011년)에서 설명했듯이 그의 작품은 내용 중심적이다.그의 많은 지형들은 땅 형성이 정원, 경관, 도시주의, 건축, 조각, 경각심을 결합한 급진적인 잡종 활동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그러므로 지형은 수수께끼 같은 글쓰기와 복잡한 상징성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그들은 방문객을 자극하여 가장 크고 작은 규모로 경관을 해석하게 한다.

 
크로익 멀티버스 '북남선' 돌줄

젠크스는 영국의 조경 건축에 있어서 선도적인 인물이 되었다.그의 풍경 작품은 블랙홀, 프랙탈, 유전학, 혼돈 이론, 파도, 솔리톤에서 영감을 얻었다.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는 테리 파렐, 던컨 왓모어(Terry Farrell and Partners)와 협력하여 스코틀랜드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랜드폼을 디자인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덤프리스 근처의 포트랙 하우스에 있는 우주적 투기의 정원; 블랙홀 풍경을 위한 디자인, IUCAA, 푸네, 인도, 2002년; 밀라노의 포텔로 공원 (타임 가든 2004–2007)이 있다.Two Cells – Inverness Maggie's Centre, 2003–2005; Northumberlandia Landform, 2004; Cells of Life, Jupiter Artland, Bonnington House 2003–2010; Crawick Multiverse, 2006–; Memories of the Future landform and reclamation project, Altdobern, Germany; Wu Chi, Black Hole Oval Terrace, Beijing Olympic Park, 2008; and The Scottish World, St. Ninians, Kelty, 2003, 2010+.

젠크스 역시 가구 디자이너 겸 조각가로 2003년 큐 가든, 2005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DNA 조형물을 완성했다.

건축적 글쓰기

젠크스는 《포스트-모던 건축의 언어》(1977년)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논했는데, 이 이론은 7판까지 이어졌다.그는 현대 건축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으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조사하면서 현대 건축은 직각과 사각형 건물과 같은 단발적인 형태에 집중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포스트모던 건축은 정신, 신체, 도시의 맥락, 자연으로부터 파생된 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2007년에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의 다섯 번째 판인 'Critical Modernism'을 출간했다.

1969년 건축의 의미 서로에 대한 논평을 하는 선도적인 건축가들과 이론가들의 하이퍼텍스트 조지 베어드와 공동편집된 Jencks는 누가 건축의 최종 사용자인가, 건축에서 어떤 가치가 결정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공공건축이 무엇을 나타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다.이것은 기호학에 관한 다른 문집들이 그 뒤를 이었다.

1987년, 리졸리는 예술과 건축에서 고전주의 또는 네오클래식주의와 모더니즘의 혼합을 향한 새로운 발전에 대한 중요한 학제간 조사를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과 건축의 새로운 고전주의"로 발표했다.[7][8]

그의 저서 '아이코닉 빌딩'은 트렌드 배경과 유명인 문화를 탐구했다.그는 현대문화가 '아이콘 빌딩'을 추구하는 이유는 기세가 꺾이는 '혼란'이라는 경제 흐름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상징적인 건물이 생겨나고,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지며, 일반적인 평가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그는 '이해성 기호자'가 건물의 더 깊은 의미를 뒷받침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썼다.

그의 저서 비평 모더니즘 - 포스트 모더니즘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젠크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그 자체 내에서 나오는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응이라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요다.[9][10][11]2007년 3월 26일, 왕립 아카데미는 책을 중심으로 젠크스와 존 N. 그레이의 토론회를 개최했다.[12]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야기, 50년간의 아이러니컬하고 상징적이며 비판적인 건축, 2011은 1960년대 그 운동의 기원이 된 이후 그 운동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다.

기타 작품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 에든버러 정원에 있는 랜드폼
 
우주 투기의 정원에 있는 알루미늄 조각품인 윌로우트위스트
  • 1985년 런던 아람 디자인스 전시, 상징 가구.
  • 1976-77년 메사추세츠 트루로 가라지아 로툰다
  • 로스앤젤레스의 (버즈 유델과 함께 있는) 엘리먼트럴 하우스.
  • 1979-84년 런던 테리 패럴과 함께한 테마 하우스.
  • 롱아일랜드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서 제임스 왓슨을 위한 DNA 조각.
  • 1999-2002년 에든버러 현대미술관 랜드폼 우에다.
  • DNA Spiral, Centre for Life, Newcastle on Tyne, 2000년 5월.
  • The Cell and DNA, Maggie's Centre (Gatehouse), Glasgow, 2002–2003.
  • 2003-2005년 Maggie's Centre, Inverness, Divide Cells, Maggie's Centre.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숲 공원 우치.
  • 스코틀랜드 워디스의 레일 가든, 포트랙, 덤프리스, 2003–2006.
  • 시간의 나선, 2002~2012년 밀라노 파코 포르텔로
  • Cells of Life, 목성 아트랜드, Bonnington House, Kirknewton, nr Edinburgh, 2003–2010.
  • Cern, Cern, 제네바, In Development 2008+ (Jencks2 와 함께)의 우주 반지.
  • 스코틀랜드 월드, 세인트 니니아인, 켈티, 건설 2010+
  • DoubleWalk, Midpark Hospital, Dumfries, 2010–2012 (Jencks2 포함)
  • 2005~2012년 크램링턴, 북부의 부인 노섬벌랜드아.
  • Gretna Landmark, Gretna, In Development 2011+ (Cecil Balmond와 함께)
  • 한국 순천시 에코라인 개최, 건설 2012+ (Jencks2 와 함께 )
  • 2015년 스코틀랜드의 크로익 멀티버스.

출처 - 찰스 젱스 - 요다위키 (yoda.wiki)

 

 

 

 

 

 

 

 

2.  스코틀랜드의 다중 우주 정원 by Phillip Ball

 

 삼나무  2023. 1. 7. 19:52
 

걸으면 우주를 느낄 수 있는 곳

The place where you can walk through the Universe

스코틀랜드의 한 구릉은 놀랍기 짝이 없다. 한때 광산이었던 그 언덕은 다중 우주적 경관을 보여준다. 그곳 은하들과 이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미스터리를 소개한다.

On a Scottish hillside, a former mining site has been transformed into a landscape of the multiverse -- exploring both its galaxies and mysteries about how it all began.

필립 볼, 2016년 3월 1일

(원문: http://www.bbc.com/earth/story/20160229-the-place-where-you-can-walk-through-the-universe)

지난 여름 나는 다중 우주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크로윅 인근 덤프리스 앤드 갤러웨이 전원에서 다중 우주가 열렸다. 글래스고에서 남쪽으로 50마일 (8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다. 6월이었지만, 그 다중 우주는 꽤 추웠다. 비가 왔거든. 하지만 나는 기꺼이 추천하겠다, 여러분에게, 가서 직접 보라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매도록.

Last summer, I saw the multiverse open up. It happened in the wilds of Dumfries and Galloway, near Crawick, 50 miles (80km) south of Glasgow. It was June, but the multiverse was rather cold and rainy. Still, I do recommend that you go to see it for yourself. Take your boots.

크로윅 다중 우주는 시공간의 틈은 아니다. 건축가 겸 디자이너 찰스 젱크스가 지형을 조각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22헥타르(55에이커)의 이 부지는 바로크적 야망이 투사된 프로젝트로, 과거 석탄 광산의 잔해로 만들어졌다. 바로크적 야망? 신석기 유적의 미스터리와 최첨단 우주학의 사유 내용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The Crawick (pronounced “Croyck”) Multiverse is not a rift in space-time, but a landscape sculpture by architect and designer Charles Jencks. Constructed from the debris of a former coal mine, the 22-hectare (55 acre) site is a project of baroque ambition, speaking at the same time to the mysteries of Neolithic monuments and to the current speculations of cutting-edge cosmology.

Designed by Charles Jencks, the Crawick Multiverse is a project of baroque ambition. (Credit: Charles Jencks/Crawick Artland Trust)

각양각색의 이상한 물체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나선으로 소용돌이치는 봉분, 초승달 모양의 작은 늪, 비밀스런 식각 문자, 반원형의 계단식 극장, 묘실 같은 방 등등. 하지만 크로윅 다중 우주는 기이한 지상 표현물들의 구조체 이상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현하의 우주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우주론은 다른 우주가 복수로 존재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상 그것들을 볼 수 없다.

There are all manner of strange objects to explore: spiralling tumuli, crescent-shaped lagoons, cryptic inscriptions, amphitheatres and tomb-like chambers. But much more than a system of strange earthworks, the Crawick Multiverse is a representation of our current ideas about the universe -- and of the possible other universes that some theories predict to exist, but which, by definition, we cannot see.

젱크스는 이런 종류의 큼직한 이야기가 가당찮은 문외한이 아니다.

Jencks is not any stranger to this kind of grand statement.

크로윅에서 남쪽으로 약 30마일(50킬로미터) 떨어진 덤프리스에 있는 그의 집을 가보자. 주위가 완전 우주적 사유의 정원이다. 파도처럼 기복이 있는 테라스, 방죽, 화려하게 장식된 금속 조각은 갖은 과학 사유를 드러낸다. 테라스는 시공간을 구부리는 블랙홀의 기이한 거동을, 금속 조각은 DNA의 입체 나선을, 방죽과 각종 지형은 프랙탈 수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His house near Dumfries, about 30 miles (50km) south of Crawick, sits amidst the Garden of Cosmic Speculation: a landscape of undulating terraces, water pools and ornate metal sculptures representing all manner of scientific ideas. A terrace shows the space-time-bending antics of black holes, sculptures represent the helical forms of DNA, and lakes and landforms illustrate mathematical fractals.

우주를 사유하는 정원의 테라스는 블랙홀이 시공간을 휘는 것을 보여준다. (Credit: Gardenpics/Alamy)

A terrace at the Garden of Cosmic Speculation represents how black holes warp space-time.

젱크스는 에든버러 소재 스코틀랜드 현대 미술관 앞의 잔디밭도 설계했다. 계단식 흙더미와 방죽이 초승달 모양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카오스 이론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자연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식"을 따랐다는 것이다.

Jencks also designed the lawn in front of Edinburgh’s Scottish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a series of crescent-shaped stepped mounds and pools inspired by chaos theory and, in his words, by “the way how nature organises itself”.

젱크스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세른도 조경할 계획을 갖고있다. 제네바 인근에 있는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 말이다. 현재 기금 마련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

Jencks also has a plan for a landscape at CERN, the European particle physics cetre near Geneva, which is currently awaiting funding.

다중 우주 정원 사업이 시작된 것은 버클루치 앤드 퀸스베리 공작이 젱크스에게 당해 폐광 지역을 재생해달라고 요청하면서였다. (크로윅 인근에 공작의 조상대대로의 고향인 드룸란리그 성이 있었던 것이다.) 부지를 둘러싼 구릉들은 꽤 그럴싸했지만, 노천 채굴 과정에서 나온 광재더미로 인해 흉물스럽게 망가진 상태였다.

The Multiverse project began when the Duke of Buccleuch and Queensberry -- whose ancestral home of Drumlanrig Castle is near Crawick -- asked Jencks to reclaim the site. It was dramatically surrounded by rolling hills but disfigured by slag heaps from open-cast coal mining.

다중 우주의 남쪽으로는 원형 극장이 있다. 이것은 태양을 의도한 것으로, 5천 명이 들어간다. (Credit: Charles Jencks/Crawick Artland Trust)

The Multiverse’s south-facing amphitheatre, which can hold 5,000 people, is meant to represent the sun.

공사가 시작된 2012년 발굴 조사단은 반쯤 묻혀있던 바위 수천 개를 캐냈다. 당연히 젱크스는 이걸 활용했고, 그렇게 탄생한 열석과 봉분 조형물은 장관이다. 이것들이 조성된 방식도 보면, 지평선과 태양의 운동을 구조화하고있다.

When work began in 2012, the excavations unearthed thousands of boulders half-buried in the ground. Jencks used them to create a panorama of standing stones and sculpted tumuli, organised to frame the horizon and the movements of the sun.

젱크스의 말을 들어보자. "돌을 원형으로 조성해, 먼데 산과 주요 지점들을 구조화한다는 선사 시대 이론이 있다. 물론 나는 이 오래된 조경 전통을 잘 알지만, 과거가 아니라 현대의 우주학을 담고 싶었다."

“One theory of pre-history is that stone circles frame the far hills and key points, and while I wanted to capture today’s cosmology, not yesterday’s, I was aware of this long landscape traditon,” Jencks says.

그렇게 조성된 경관은 우리 우주가 여러 개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상도 탐구한다.

The landscape also explores the idea that our Universe is just one of many.

과거 10여년에 걸쳐 우주의 복수성을 지지하는 주장이 변방의 사유에서 진지한 가능성으로 이동했다. 선도적인 다중 우주 이론 하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항구적 급팽창"이 지속되면서 다른 우주들이 계속해서 슬어지는 중이라고. 137억 년 전 우리 우주의 빅뱅을 야기한 것도 이 "영원한 급팽창"이다.

Over the last decade or so, the argument for a plurality of universes moved from fringe speculation to seriously entertained possibility. One leading multiverse theory supposes that other universes are continually being spawned in an ongoing process of “eternal inflation” -- the same that caused our own Universe’s Big Bang 13.7 billion years ago.

스코틀랜드의 구릉에서 탐구되고 있는 것이 바론 이런 이론들이다.

These are the theories explored on this Scottish hillside.

돌로 조성된 입체 나선 경로를 지닌 흙더미 자체가 다중 우주이다. 그 각각이 다른 우주를 상징한다. (Credit: Charles Jencks/Crawick Artland Trust) The Multiverse itself is a mound with a spiral path of stones, each symbolising other universes.

흙무더기 자체가 다중 우주이다. 입체 나선 경로를 따라 이암 평판이 세워져있다. 일부 평판은 조각이 돼있는데, 끊임없는 급팽창이 예측하는 다른 우주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적용되는 물리 법칙이 달라진다.

The Multiverse itself is a mound up which mudstone slabs trace a spiral path. Some of the slabs are carved to symbolise the other universes that eternal inflation predicts, where different physical laws apply.

코르크 마개를 뽑는 도구처럼 생긴 작은 언덕도 두 개 있다. 이것들은 우리 은하와, 이웃한 안드로메다이다. 두 은하는 국부 무리라고 하는 단 소속이다.

Meanwhile, two corkscrew hillocks represent our own Milky Way galaxy and its neighbour the Andromeda galaxy, both of which belong to a cluster called the Local Group.

코르크 마개를 뽑는 도구 모양의 작은 언덕 두 개는 은하수와 안드로메다이다. (Credit: Charles Jencks/Crawick Artland Trust) Corkscrew hillocks represent the Milky Way and Andromeda.

젱크스가 말한다. "이것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초은하단에서죠." 그 초은하단이 자갈돌을 덮은 인공 빙퇴구로 표현돼있다.

“But where did they come from? From the supercluster of galaxies,” Jencks says -- which are represented in the landscape by a gaggle of rock-paved artificial drumlins.

"초은하단은 어디서 왔을까요? 우주의 가장 큰 구조들이죠. 필라멘트 그물 말입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지요."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From the largest structures in the universe, the web of filaments. And so on and on.”

"다수의 우주학자가 제기하는 근본 문제와 대결하"고 싶었다고 젱크스는 말한다. "우리 우주가 이렇게 조화로운 건 왜일까요? 아주 여러 면에서 말입니다. 겉으로 보매 또는 이 분명한 미세 조정은 도대체가 무얼 의미합니까? 우리가 이 사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손에 잡힐 듯 이해 가능한 방식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Jencks says that he wanted “to confront the basic question which so many cosmologists raise: Why is our universe so well-balanced, and in so many ways? What does [this] apparent fine-tuning mean? How can we express it, make it comprehensible, palpable?”

미세 조정 사안은 우주학자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물리 법칙이 조금만 달라졌더라도, 별도 없고, 행성도 없고, 생명도 없을 것이다. 소위 신의 존재를 지지할 때 사용되는 논변이다. 다중 우주는 무신론자의 대답일 수 있다. 다중 우주가 존재한다면, 우주마다 법칙들이 다를 테고, 우리한테는 우리한테 딱 맞는 우주를 신경써서 설계해준 하나님 따위는 필요없다. 생명 친화적인 판본의 우주 하나에서 우리가 살고있을 뿐인 것이다.

The issue of fine-tuning is one close to cosmologists’ hearts. If the laws of physics were changed even slightly, there would be no stars, planets or life -- an argument that has been used in favour of the existence of God. A multiverse could be the atheist’s answer. If a multiverse exists, with each universe having a different set of laws, we don’t need a God to have carefully arranged our universe to suit us; it’s just that we live in one of the life-friendly versions.

젱크스는 많은 우주학자가 제기하는 근본 문제와 대결하고 싶었다. 우리 우주의 조화와 균형은 대체 왜인가? (Credit: Philip Ball) Jencks wanted to confront the basic question which so many cosmologists raise: Why is our own universe so well-balanced?

하지만 크로윅 다중 우주의 주된 목표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우주 과학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광업으로 황폐해진 이곳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지역의 재료를 사용한다면 더 좋고.

But the main aim of the Crawick Multiverse is not to disprove God’s existence or even “teach” the science of the universe: it is to restore some meaning to this site of mining-induced desolation, using primarily local materials.

요컨대 이론들 자체가 실험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다. 따라서 20년만 지나도 상황이 매우 달라져있을 게 틀림없다. 한때 경관 속에 단단히 자리잡았던 대지 예술이 변함없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After all, the theories themselves are provisional. They will surely look quite different in 20 years, as wil the earthworks once they have had a chance to bed themselves into the landscape.

고딕 성당이 암호화하고 있는 중세의 우주처럼, 이런 조형물은 거개가 상징적이다. 우리는 그 조형물이 건네는 얘기를 듣는다. 미술사가 마틴 켐프는 이런 걸 가리켜 "구조 직관"(structural intuition)이라고 했다. 자연이 보여주는 패턴과의 본유적인 친밀성이라고 말이다.

Instead, like the medieval cosmos encoded in Gothic cathedrals, this sort of architecture is primarily symbolic. It speaks to us through what art historian Martin Kemp has called “structural intuitions”: innate familiarity with the patterns of the natural world.

크로윅 다중 우주가 신성한 곳으로 비칠 수도 있고, 모종의 이런 암시가 짜증스러운 과학자들이 있을 수 있다.

Some scientists might look askance at any suggestion that the Crawick Multiverse can be seen as a sacred place.

하지만, 크로윅 다중 우주 공원을 직접 방문해 걸어보라. 가장 세속적인 과학자라도 모종의 경이로움을 느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중세의 농부가 성당에 들어가 경험했던 것도 그런 경외감이리라. 우주가 표현된 미로 속에서 말이다.

But walking into the Multiverse, even the most secular of scientists must feel some of the awe that a peasant must have experienced on entering a medieval cathedral -- and stepping into its cosmic labyrinth.(끝)

 

 

 

 

 

 

 

 

 

3.  "환자에게 절실한 것은 아름다운 환경" 풍경디자이너 젠크스


입력 2019.10.15 12:38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이 된 순천만정원 전경.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인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호수정원이 보인다. [사진제공=순천시]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풍경 디자이너, 건축 이론가이자 비평가였던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0세.

영국왕립건축사협회(RIBA) 저널은 1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RIBA는 "우리는 찰스 젠크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게 돼 유감"이라며 "찰스는 매기 암 치료 센터 등 선구적인 작업을 이어간 건축학의 위대한 해석가이자 이론가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순천의 랜드마크 '호수정원'  

순천만국제정원 풍경. [사진 중앙포토]

국내에서 젠크스는 2013년 순천국제정원박람회 당시 박람회 공간의 메인 작품이 된 순천 호수정원을 설계한 인물로 친숙하다. 순천 호수정원은 그가 순천의 지형과 물길 흐름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호수와 총 6개의 언덕으로 만들어진 호수정원은 정상에 봉화산을 상징하는 언덕이 자리잡고 있다. 16m 높이에 이르는 이 언덕에 가기 위해서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데크를 거쳐야 하는데, 이 데크길은 젠크스가 순천의 순천시의 동천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이론가 

찰스 젠크스의 저서. [사진 Amazon]

1939년 6월 21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젠크스는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영국 런던대(UCL)에서 건축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생전에 30여 권의 책을 썼고, 특히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명성을 떨쳤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경관 건축에 대한 비평적 논의를 이끈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언어』(1977), 『비판적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디로 가는가?』(2007),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야기: 아이러니, 아이콘, 비판의 50년』등이 있다. 이밖에도 『우주적 사유의 정원』(2005)과 『랜드스케이프에 나타난 우주』(2011)등도 남겼다.

찰스 켄크스의 저서. [사진 현실문화]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이탈리아 광장(1979), 매기 암 치료 센터(2002~2003), 우치 베이징 숲공원(2008), 순천 호수정원(2011~2013) 등이 있다.

암환자를 위한 병원 

  "Above all, what matters is not to lose the joy of living in the fear of dying"  (매기 케스윅 젠크스) 

 ((암 환자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살아가는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젠크스는 특히 매기 암 치료 센터(Maggie's Cancer Care Centre)의 설계자 겸 공동 설립자로 유명하다. 1995년 사망한 그의 두 번째 아내 매기의 이름을 딴 이 치료센터는 "잘 설계된 환경을 통해 불치병 환자의 치료 결과가 현저하게 개선될 수 있다"는 그녀의 생각에 따라 설계됐다. 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암 환자들이 종종 지난한 투병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이곳은 큰 병원 옆에 자리한 매력적인 환경이 환자들에게 존엄성을 줄 수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매기 암 치료 센터는 후에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설계로 세계 곳곳에서 지어졌다.


 
 

"정원은 우주의 축소판"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순천만 호수정원. [사진 프리랜서 오종찬]

젠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자택과 정원을 디자인하며 이곳에서 풍경 디자인의 탐험을 시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탐험의 결과로 DNA 정원, 쿼크워크, 프랙탈 테라스 등 우주적 사유(Cosmic Speculation)를 담은 20여 개의 정원이 탄생했다. 그의 이런 철학을 담아 디자인된 풍경은 에든버러, 밀라노, 롱아일랜드, 뉴욕, 캠브리지 등에 만들어졌으며, 순천의 호수 정원도 이와 같은 작업의 하나로 평가된다.

젠크스가 부분적으로 설계하고 1988년에 시작된 '우주적 사유 정원(Garden of Cosmic Speculation)'은 젠크스의 고 매기 케스윅 젠크스에게 헌정됐다. 이 정원은 자연을 기념하면서도 현대과학에서 나온 요소들을 디자인에 접목하고, 정원에는 과수를 포함해 다양한 식물을 심은 것이 특징이다.

과학이 아름다움의 패턴을 보여준다 

젠크스는 새로운 도구와 재료를 사용해 우주의 풍경을 향상하는 데 특히 관심이 많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원이 우주와 닮았으며, 디자인은 현대 세계의 우주적이고 문화적인 진화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정원을 거닐면서 우리는 우주의 축소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젠크스는 또 현대과학이 창조성의 위대한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과학이 우리에게 우주의 방식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고 아름다움의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그의 저서 『The Universe in the Landscape』(풍경 속의 우주·2011)에서 그는 많은 지형은 정원(gardens), 풍경(landscape), 도시주의(urbanism), 건축(architecture), 조각(sculpture) 등이 결합한 '급진적 하이브리드'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복잡한 상징성을 담아내 그가 설계한 풍경은 관람객이 크고 작은 규모의 풍경을 해석하도록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 중앙일보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4.  영국의 뉴 포스트모던 건축

 

News / See ㅣ June 01, 2018

 

영국 문화재 관리국(Historic England)이 17곳의 포스트 모던 건축을 국가 유산 리스트에 추가했다. 건축 애호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세운 기발한 건축 유산을 안심하고 돌아볼 수 있는 셈. 영국 문화재 관리국의 특별 승인이 없는 한 이들 유산은 건축 변경이나 철거를 할 수 없다. 다음은 이번에 등재된 건축 유산 중 10곳이다. historicengland.org.uk

런던, 테마틱 하우스(Thematic House)

런던 노스 켄싱턴(North Kensington)의 테마틱 하우스. 건축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와 테리 파렐(Terry Farrell)이 공동 설계한 이곳 내부에는 독특한 미감을 보여주는 태양의 계단(Solar Staircase)이 자리한다. 

캠브리지 비즈니스 스쿨 대학원(Cambridge Judge Business School)

건축가 존 아우트램(John Outram)이 설계한 캠브리지 비즈니스 스쿨 대학원의 메인 아트리움. 색상과 문양, 구조의 과감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런던, 코스믹 하우스(Cosmic House)

찰스 젱크스와 테리 파렐과 함께 런던 켄싱턴 첼시(Kensington Chelsea)에 설계한 주택으로, 입구와 각 건물 상단을 기하학적 아치로 마감했다. 

런던, 캐스케이즈 타워(Cascades Tower)

타워 햄리츠(Tower Hamlets) 런던 자치구의 아일 오브 도그스(Isle of Dogs)에 있는 캐스케이즈 타워는 CZWG 건축 사무소가 설계했다. 

캠브리지, 캐서린 스테판 레어 북스 라이브러리(Katharine Stephen Rare Books Library)

캠브리지의 뉴넘 컬리지(Newnham College)에 있는 캐서린 스테판 레어 북스 라이브러리. 새하얀 천장과 검정 서가가 대비를 이루는 서쪽 서가는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콘월, 트루로 형사 법원(Truro Crown Courts)

콘월의 트루로에 있는 형사 법원은 포스트 모던 실내 장식이 돋보인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내셔널 갤러리의 샌즈버리관(The Sainsbury Wing) 또한 영국 문화재 관리국의 국가 유산 리스트에 새롭게 등재됐다.

브리스톨, 200-260 아즈텍 웨스트(200-260 Aztec West)

CZWG 건축 사무소가 1980년대 후반 브리스톨 근교에 세운 200-260 아즈텍 웨스트. 

런던, 스웨디시 키스(Swedish Quays)

런던 그린래드 도크(Greenland Dock)에 1990년 완공한 스웨디시 키스. 

도싯, 브라이언스턴 스쿨(Bryanston School)

영국 남서부 도싯주의 블랜드퍼드(Blandford)의 브라이언스턴 스쿨은 전면부의 스크루 기둥이 돋보인다. 

글. 편집부

출처 - 영국의 뉴 포스트모던 건축 < See < News - 론리플래닛 코리아 (lonelyplanet.co.kr)

 

 

 

 

 

 

 

 

5.  건축과 언어 (2001.10)

sonomad 2011. 9. 9. 17:48
 
건축과 언어: 1960년대 이후 서구건축의 이론과 실험
인문언어(Lingua Humanitatis) 제2집, 2001.10 제1권 2호, pp.107-121.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1. 머리말

1960년대 후반 영미의 건축학계는 20세기 전반기에 건축계를 지배해 온 근대건축을 비판하고 새로운 건축을 모색하게 된다. 거장건축가들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미국에서는 자본, 기술, 조직을 바탕으로 한 기업형 설계사무소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1920년대 근대건축의 아방가르드 운동과는 달리 절대적 건축의 원칙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본주의 기업이론을 도입하여 건축주의 요구와 현장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경영기법으로 전환하였다. 한편 학계에서는 유럽대륙의 인문학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학구적 건축이론 등장하였고, 이 때문에 대학과 현장이 점차 유리된다. 당시 인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인류학, 정신분석학, 미학뿐 아니라 현대건축에도 깊은 영향을 주게된다. 그러나 언어학을 건축에 적용하는 태도와 방법은 건축가나 이론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서로 상반된 경우도 있었다.

‘건축언어’라는 표현은 두 영역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인간은 말과 동작뿐만 아니라 사물을 통해 서로 의사를 주고받는다. 건축의 형태, 색상, 구성 역시 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사상, 가치관, 아이디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건축을 습득하는 과정도 언어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한정된 단어와 문법을 익힌 어린이는 점차 다양한 어휘와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성년이 되면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개성을 표현한다. 건축가 역시 기초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나 집단과 사회의 사상, 가치관 등을 표현하는 건축가로 성장한다. 이점에서 건축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 파생된 수사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언어학이 건축에 도입된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언어건축실험’의 경향과 그 영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언어학이 건축이론에 도입된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둘째, 건축이론 및 비평서 중 건축과 언어의 관계를 다룬 벤츄리(Rovert Venturi), 젱크스(Charles Jencks), 아이젠만(Peter Eisenman), 콜쿠훈(Alan Colquhoun), 간델소나스(Mario Gandelsonas)의 글을 중심으로 건축에 언어이론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으로 적용된 과정과 결과를 기술하였다. 마지막으로 시각예술, 건축, 언어의 구조적 동질성과 특이성을 비교하여 건축과 언어의 접목을 현대건축의 쟁점과 결부하여 논의하였다.

2. 탈근대건축과 언어학

건축과 언어의 접목은 두 영역이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 이론가 알베르띠가 건축이론을 집대성한 이후 건축계에는 건축의 요소와 이를 구성하는 문법적, 수사적 법칙들이 있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건축의 언어적 특성을 이론과 실험으로 전환한 계기가 바로 언어학을 비언어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기호의 과학’, 즉 기호학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어떤 이론을 수용하거나 차용할 때 배경과 맥락을 간과하여 이론을 왜곡하기가 쉽다. 건축에서의 기호학의 도입 역시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건축의 복합적 측면을 간과하고 시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 비평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비평의 대부분은 건축과 언어를 내밀하게 비교, 분석한 토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평 스스로가 시각적 측면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건축과 언어의 접목에 대한 비평은 ‘樣式批評’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1980년대 영미의 건축계를 지배했던 탈근대주의 건축에 대한 비평을 ‘언어건축실험’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실험을 현실과 유리된 관념이나 유희로 치부하기보다는 이 실험이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심도있게 고찰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시도는 사회와 유리된 건축의 독자적 실험이었다기보다는 당시 철학과 인문학과 연계된 사회문화적 현상의 일부였다. 근대건축을 새롭게 조망하고 접근하려는 최근의 건축의 동향은 바로 이들의 이론과 실험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0년 후반의 반근대주의 운동은 사회, 문화, 기술 등 건축외적 상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축외적 상황뿐만 아니라 근대건축 내부에서도 그 동인을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이후 근대건축은 서양건축사에서 천년 이상 이어져 왔던 ‘表象’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고 소거하려고 하였다. ‘표상’은 조형예술의 본질적 목적이다. 표상은 어떤 ‘매체’를 통하여 ‘매체’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 즉 의도하는 ‘내용’을 지칭하거나 함축하는 행위와 이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시대 이래 수 천년 지속되었던 석조건축의 기둥양식은 구조적 기능 이상의 표상 기능을 하고 있었다. 도리아식은 간결하고 힘있는 형태로 수려한 곡선의 코린트식 기둥과 대조를 이루고, 두 기둥 양식은 그리스신화의 남성과 여성에 비유된다. 기둥이 `형식'이라면 그 것이 함축, 지칭하는 남성과 여성은 `내용'이다. 조형예술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물리적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표상’은 ‘미’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미는 감각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집합적 상징체계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절대적 미는 상대적, 자의적, 관습적 미와 구별된다. 공통의 가치관의 붕괴하여 18세기 이후에는 표상의 기능이 약해지거나 와해된다. 건축형태와 그 의미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절정을 이룬다. 18세기 이전에 건축형태를 관습적 의미와 연결시켰다면, 18세기 이후에는 건축외적 지시대상을 배제하고 건축자체의 자율성을 추구하였다. 건축형태를 지배하는 법칙 혹은 질서는 매부에 있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표상은 사회적 규범에서 개인의 표현의 문제로 축약되었다. ‘문화적’ 요소를 배제한 자율성 이론은 그 후 근대건축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건축계에서는 소거되었던 ‘문화적 표상’, ‘상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근대건축의 특징인 형식상의 단조로움과 경직된 양식에 반대하고 건축형태의 문화적 의미를 재생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Colquhoun, 1981). 언어학의 도입된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언어학은 근대건축에서 억압되었던 건축의 형태와 그 의미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때문에 언어학을 건축에 도입하려했던 사람들은 전통적 의미의 건축가나 이론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건축인들이었다.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대학 울타리 밖에서 지속적 실무를 통하여 자신의 건축관을 정립하였다면 1960년대 이후 영미의 건축계는 대학과 현장이 분리되어 있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던 건축인은 대학에서 설계를 가르치면서 대학 밖에서 소규모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아틀리에형 건축가나 대학에 몸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학구적 성향을 띈 이론형 건축가들이었다.

3. 記號로서의 건축

건축과 언어의 접목을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은 필라델피아 건축가 로버트 벤츄리이다. 그는 몇 개의 실험적 주택작품을 설계한 후 자신의 건축을 이론화한 “건축에서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을 출간하여 근대건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그가 근대건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형태이다. 벤츄리는 단순한 형태는 하나의 의미, 고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립, 복합, 애매함, 긴장, 이중성이다. 이 책에서 벤츄리는 근대건축에서는 억압되었던 서양건축의 복합, 다층적 의미체계와 갈등 혹은 대립을 읽어내려 하였다. 고대 로마의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가 실용성(用, utilitas), 견고함(强, firmitas), 아름다움(美, venustas)을 건축의 요소로 삼은 것부터가 건축이 하나의 가치체계로 볼 수 없는 복합적, 대립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축을 다양한 관점과 차원에서 이해할 때 지각과 인식은 보다 생생해진다는 것이다. 부분이 전체를 위해 양보하거나 절충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았을 때 불완전한 것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Venturi, 1966).

벤츄리는 건축을 하나의 규범으로 이해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절대적 논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건축보다도 절충적인 매너리즘건축,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을 예로 들었다. 바로크 건축가 보로미니가 설계한 산카를로 알 꽈뜨로 폰타네 성당은 평면의 네 모서리가 모두 동일하게 처리되어 그리스의 십자형평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평면은 동서축으로 기울어져 라틴 십자형평면의 요소도 지닌다. 물결처럼 이어진 벽은 마치 원형 평면을 일그러뜨린 것처럼 인식할 수 있다. 벤츄리는 이처럼 고전 건축을 하나의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다의적으로 해석한다. 현대건축은 프로그램과 기술이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표현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과거보다 건축은 복합적, 대립적이라는 것이다. 르꼬르뷔제나 미스반데르로에보다는 알바알토와 라이트의 건축에서 자신의 논리를 설명했다. 미스의 격자형 틀보다는 루이칸이 설계한 필라델피아의 오피스 건축의 대각선 요소에서 대립성을 읽었다. 라이트의 존슨왁스사옥의 둥근 모서리는 에워싸인 느낌과 내부와 외부공간의 대비를 해석했다. 벤츄리의 이론에는 바우하우스 이후의 아카데미즘, 기술에 대한 허구성, 대중문화를 경멸하는 순수미학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1960년 설계한 필라델피아의 노인집합주거에서 벤츄리는 당시 그 도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붉은 벽돌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필라델피아의 도시역사를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료의 효율성, 경제성, 물성보다는 재료가 함축하는 문화적 의미를 더 강조하였던 것이다. 평면과 입면의 구성에서는 ‘관습적 요소’와 ‘비관습적 요소’를 대비시켜 대립, 이중성을 구체화하려고 하였다. 입구의 백색을 사용한 점, 중앙에 검은 색 기둥을 강조한 점은 색상과 구성에서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것이다. 지붕의 텔레비전 안테나는 텔레비전으로 소일하는 노인을 상징하려는 의도였다. 1962년 설계한 펜실베니아 체스터넷 힐의 주택에서도 ‘절대논리’와 ‘상황논리’를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대칭평면과 입면을 유지하기 위해 구조와 관계없는 가벽을 세우면서도 형태나 비례에서는 정형성을 의도적으로 탈피하려고 하였다. 기능에 따라 대칭을 부분적으로 파괴하는 점, 벽난로를 중심선에서 벗어나게 배치시킨 점, 창을 좌우대칭으로 하면서도 정형성을 탈피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대칭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 절대성을 의미하며 비정형적 요소는 현실세계 즉 도시, 사람, 정황을 나타낸다.

벤츄리의 복합성과 대립의 이론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건축은 기본적 용도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문은 집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경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문은 집 주인의 사회적 신분, 개성, 취향까지도 표현한다. 전자를 일차적 기능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차적 기능이다. 벤츄리는 근대건축이 일차적 기능은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이차적인 기능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고 보았다. 둘째, 이차적 기능은 대중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숙련된 건축가나 관심있는 소수의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세부적인 디테일, 재료보다는 대중이 선호하는 요소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실제로 벤츄리의 책에 인용된 대부분의 실례는 건축물의 입면도에 나타낼 수 있는 구체적 요소이다. 아파트 저층의 기둥, 안테나, 창의 배열 등을 통한 건축의 표현은 좋은 예이다.

벤츄리의 두 가지 전제는 바로 건축과 언어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소쉬르의 이론에 비유한다면 형태는 ‘기표(signifier)’이며 그 것이 지칭하는 문화적 의미는 ‘기의(signified)’이다.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임의적인 것처럼 건축형태와 의미 역시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나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결과이다. 미국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유럽의 고전양식을 빌려왔지만 그 건물은 미국사람에게 권위와 정통성을 나타낸다. 국회의사당의 의미는 미국의 심장부에 놓여있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가 더욱 강하다. 기호는 그 자체로서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어떤 체계내의 다른 기호와의 관계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 소쉬르의 이론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임의적 관계에 놓인 기표와 기의는 일단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되면 그 관계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소쉬르의 기호학이 건축에 제공하는 것은 건축 역시 언어처럼 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social institution)'라는 점이다. 벤츄리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건축의 아방가르드가 주장한 ‘건축의 자율성’은 창백한 엘리티시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벤츄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972년에 출간한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에서 저속하고 대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미국의 일상환경에서 건축설계에 필요한 자극을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라스베가스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네온사인에서 그는 미국만이 갖고 있는 버내큘러 건축의 가능성을 찾으려했던 것이다(Venturi, 1972). 20여 년전 미국의 논객 잭슨(J.B. Jackson)이 황량한 사막과 트레일러에서 미학을 읽어낸 것처럼 벤츄리 역시 상업화된 미국의 도시에서 근대건축의 문제를 탈출하려 했다. 라스베가스의 교훈은 ‘장식 헛간’과 ‘오리’의 비유다. ‘오리’는 조각처럼 다듬은 하나의 형태이다. 반면 ‘장식 헛간’은 실용적 건축에다가 상업적 간판을 붙인 건축이다. ‘헛간’은 자동차 도로의 시각적 풍부함에서 나온다. ‘오리’는 기표와 기의가 닮은꼴이므로 벤츄리의 관점에서 ‘아이콘(icon)’이다. ‘헛간’은 기표와 기의가 관습과 문화로 연결된 것이므로 ‘상징(symbol)’이다. 벤츄리에게 근대건축은 상징성을 잃은 ‘오리’이다. 벤츄리가 그리는 도시와 건축은 근대건축의 공간, 형태, 구조의 엄격함을 탈피한 ‘기호의 건축’과 ‘기호의 도시’이다.

벤츄리의 이론은 건축계의 반향을 일으켰지만 탈근대주의의 짧은 수명과 함께 더 이상의 이론적 깊이나 실험을 동반하지 못했다. 근대건축을 아이콘으로 보았던 그의 관점은 처음부터 근대건축을 시각적으로 보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중에게 호소할 건축 요소를 강조했지만 이 요소들을 통합할 전체적 질서와 논리는 없었다. 부분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과 이를 연결하는 위계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개의 부분이 모인 합집합으로서 그의 건축이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요소가 많을수록 다의적, 복합적, 인본적 건축이 된다. 벤츄리의 이론은 전통건축의 요소를 차용해서 혼성한 탈근대주의 건축의 시발점이 된다. 벤츄리가 추구했던 대중문화 속의 기호의 건축, 자동차에서 경험하는 기호의 도시는 그 후 20여 년간 근대건축의 공백을 메우게 된다.

벤츄리 이후 건축과 언어를 이론으로 정리한 사람은 건축이론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이다. 그는 1977년 출간한 “탈근대건축의 언어(The Language of Post Modern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기호로 보는 벤츄리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는 건축의 본질적인 기능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했지만 소통하는 방식을 상징(장식 헛간)과 아이콘(오리)으로 단순화 한 점은 극단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근대건축을 오리와 같은 아이콘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피와 기의가 형태상으로 닮은 경우가 아이콘인데 르꼬르뷔제의 롱샹교회의 경우 배, 손, 모자, 수도자의 모습으로 읽혀지기는 하지만 어떤 것과 뚜렷하게 닮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개로 해석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롱샹을 은유라고 해석한다(Jencks, 1977). 벤츄리는 근대건축가들이 공간, 구조, 프로그램의 건축체계를 아이콘으로 왜곡하였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오히려 근대건축가들이 아이콘의 은유적 의미를 부정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젱크스가 르꼬르뷔제의 작품 중 유독 롱샹교회를 예로 든 것은 다른 작품과 달리 아이콘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점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소비문화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묘한 일치를 보인다. 건축을 대중과 소통하는 기호로 보았고 근대건축이 경시했던 일상의 풍경에서 시각적 유희와 해학을 찾았다. 벤츄리는 목구조로 양산된 평범한 건축 위에 붙여진 간판에서 상징성을, 젱크스는 할리우드 배우가 사는 절충주의 호화주택이나 도넛 모양의 상업건축에서 상징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은 대중문화 속의 소수집단이 공통분모로 여기는 기호였다. 삶과 행위가 전개되는 공간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보다는 대중에게 주입된 시각코드(visual code)를 소통의 주요 매체로 보았던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상황을 돌아본다면 근대건축에 대한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과 실험이 이해된다. 대공황과 2차대전 동안 잠시 주춤했던 미국의 경제는 50년대에는 다시 만개하여 중산층의 소비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중산계층이 스스로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서 전환했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미국이 외부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하고 소련과의 냉전시대로 접어들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소비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대이기도 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는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미국의 과학기술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월터 크롱카이트의 목소리였다. 미디어의 힘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막강한 경제력과 이와 같이 등장하는 중산계층이 떠받치는 미국문화에서 근대건축의 엄격하고 절제된 미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대륙의 현학과 규범에 회의, 막강한 경제력, 소비문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이러한 흐름을 도출했던 것이다.

4. 건축의 의미론과 구문론

젱크스와 벤츄리가 옹호한 상징주의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에 의해 격렬한 비판 대상에 놓인다. 로버트 벤츄리가 ‘라스베가스의 교훈’을 출간하기 1년전인 1971년 아이젠만은 당시 그가 주간으로 있었던 건축지에 “오브제에서 關係로(From objects to relationships)”를 싣는다. 제목이 암시하듯 아이젠만은 오브제 중심의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배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전환하고자 했다. ‘오브제’가 시지각의 대상이라면 ‘관계’는 감각과 경험의 대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관념의 영역이다. 아이젠만은 건축 뿐 아니라 20세기의 회화도 오브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레거와 말레비치와 같은 근대주의 화가들은 고전회화의 한계를 넘고자 기하학적 추상성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오브제에 집착하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회화와 달리 건축은 필연적으로 공간을 가지므로 오브제 중심의 근대건축에 대한 아이젠만의 비판은 더욱 강하다. 근대주의의 정신을 신봉하는 건축가들은 고전건축의 첨탑, 아치, 기둥, 창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을 장식으로 간주하여 제거하려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순수한 형태를 추구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젠만은 건축을 시지각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근대건축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로 르꼬르뷔제는 고건축의 요소를 부정하는 대신 등장한 기계, 배, 비행기에서 새로운 건축형태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오브제에서 탈피했다기보다는 오브제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맥락에 놓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빌라 가르쉬의 기둥 간격의 리듬도 순수한 기하학적 질서라기보다는 르네상스의 이상적 세계관을 새롭게 구현한 것이라고 보았다(Eisenman, 1971).
아이젠만은 소쉬르의 언어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촘스키의 이론을 변용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따르면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 가치를 가진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고전 언어학의 전제를 뒤집고 소쉬르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언어를 명사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기피와 기의의 관계가 하나의 기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피와 기의에는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존재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건축을 기호로 볼 때 주체의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아이젠만이 촘스키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을 이론화한 부분 때문이다. 촘스키가 언어를 실용론(pragmatics), 의미론(semantics), 구문론(syntactics)으로 나눈 것처럼 건축 역시 유사한 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아이젠만의 생각이다. 실용론은 형태와 기능 혹은 기술과의 관계, 의미론은 형태와 사회적, 관습적 의미와의 관계로 각각 해석할 수 있다.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의 가치를 用, 美, 强으로 나눈 점이 언어학의 분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벤츄리와 젱크스는 근대건축이 의미론적 측면을 철저히 부정하였다고 본 반면 아이젠만은 근대건축이 여전히 실용론과 의미론에 치중하여 구문론적 측면은 간과했다고 보았다. 아이젠만은 구조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여 건축에서의 구문(syntax)을 정의하려고 했다. 구문은 중심과 주변, 선, 면, 볼륨 등 사회문화적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는 순수한 기하학적 요소들의 관계를 말한다. 이점에서 언어에서의 ‘구문’을 건축에 적용할 때 ‘구조’로 의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아이젠만은 촘스키의 이론에 따라 건축의 구조를 ‘표피 구조’와 ‘심층구조’로 나누었다. 촘스키는 표피구조가 곧바로 화자의 음성으로 드러나는 구조인 반면 심층구조는 언어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직관을 가지고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잠재적 능력이라 보았다.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언어는 구조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보편적 언어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한정된 단어를 갖고 다양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창조적 능력 때문이다. 소쉬르 언어학에서 설자리가 없었던 ‘주체’를 촘스키는 부각시켰다. 아이젠만이 관심을 두 것이 바로 언어의 심층구조와 같은 것이 건축에도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젠만이 건축의 심층구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고전건축에서 근대건축까지 계속된 형태와 그 것이 지칭하는 의미의 체계, 즉 표상을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의미를 완전히 소거한 순수한 건축형태의 문제로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벤츄리는 ‘절대논리’와 ‘상황논리’의 공존과 대립을 이론의 바탕으로 삼았다. 전자가 추상적인 원리와 질서라면 후자는 현실세계의 구체적 상황이다. 전자는 ‘개념(concept)’의 영역이고 후자는 ‘지각(percept)’의 영역이다. 벤츄리는 개념의 영역과 지각의 영역을 접목하려고 했다. 반면 아이젠만은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지각을 배척했다. 그는 지각보다 개념을 내 세운다. 지각은 물질의 표면, 재질, 색상, 그리고 구체적 형과 같은 감각적(sensual) 성질을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념은 앞과 뒤, 기울어짐, 후퇴, 연장, 압축 혹은 전단(剪斷) 등과 같이 감각으로 금방 체험할 수 없는 구조이므로 관념의 대상에 보다 가깝다. 개념적 구조는 결코 직설적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암시할 뿐이다. 때문에 심층구조는 다층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의 다층적 다면적 의미체계를 추구했던 점에서 아이젠만의 이론은 벤츄리의 복합성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그는 벤츄리가 추구하였던 건축의 요소나 오브제를 디자인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선, 면, 볼륨처럼 전통적 의미가 배제된 기하학적 도형과 이것들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건축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아이젠만의 이론은 당시 인본주의를 가장한 건축대중화 흐름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반향을 일으켰다. 근대주의의 영웅주의적, 규범적 옷을 벗어 던지면서도 탈근대주의의 천착함을 냉소하는 엘리티시즘이 이론적 경향을 띄어가던 당시 건축학계에서 설득력을 얻었던 것이다.

아이젠만은 이태리의 근대건축가 귀세뻬 떼라니(Giuseppe Terragni)의 건축에서는 르꼬르뷔제와는 다른 구문론적 설계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학의 이론을 빌어 해석하려고 했다. 자연히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분석적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가 떼라니의 건축을 해석한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공간을 입방체를 썰어 분할하는 과정이다. 둘째, 공간을 마치 카드를 겹치는 것처럼 면을 중첩하여 볼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전자는 중심을 가진 덩어리를 잘라내는(subtractive) 방식이라면 후자는 주변으로부터 점차 중심을 향하여 더하는(additive) 방식이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건축을 문, 창, 기둥, 아치 등 기능과 관련된 요소로 분할하였다면 아이젠만은 건축을 기능이 배제된 도형자체의 구성과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떼라니 건축을 ‘해체’했다면 자신의 설계에서는 이를 ‘재구성’의 과정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허와 실의 관계, 중심과 선의 관계, 그리고 선, 면, 입체간의 관계 등 그가 심층구조라고 정의한 것들에 의해 형태와 공간이 생성된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복원하려고 했던 대중문화코드나 기호의 건축의 천박함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의 심층구조를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층구조가 구체적 형상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기술, 예산, 대지 등 외적 상황과 독립적인 내부의 법칙에 의해서이다. 건축가는 이때 중립적 중재자가 된다. 형태와 연관된 관습적 의미를 철저히 분리함으로서 건축의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만이 시도한 것처럼 의미가 없거나 중립적인 형태나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건축설계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이젠만이 건축에서 표상의 역할을 배제하고 수수한 논리적 체계로만 해석하려고 했지만 그의 시도는 의미론의 완전한 부정이라기보다는 탈근대주의 건축가들이 옹호한 ‘명백한 의미’의 대중코드나 기호 대신 ‘암시적 의미’를 가진 새로운 형태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의 옷을 입힌 언어학적 이론에는 건축의 본질적인 구조, 물성, 프로그램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건축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단순화하는 것을 비판하였지만 언어의 심층구조에 해당하는 건축의 심층구조를 건축의 기본적 용도와 무관한 관념적 형태로 축약했다. 벤츄리의 기둥, 창, 안테나는 기능을 탈색시킨 기하학적 도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글을 출간하고 그 후 작품을 실현했지만 그는 언어학의 이론을 일관되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간델소나스는 언어학의 이론을 건축에 곧바로 대입하려했던 아이젠만의 모순을 지적한다 (Gandelsonas, 1973; 1974). 우선 촘스키의 이론에서 언어주체의 창의성을 건축에 대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말하는 창의성은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난 생물학적 특성으로 특정한 시기에 문법구조를 파악하고 보다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건축에서의 주체는 결코 모든 인간에 해당되지 않으며 교육과 경험을 쌓은 소수에 한정된다.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유년기가 아니라 오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성년이 되어서이며 이 과정은 죽음에 이르는 시기까지 계속된다. 촘스키의 창의성이 생물학적 특성이라면 건축의 창의성은 사회적 과정에서 습득하는 후천적이다. 둘째, 고전건축 이래 건축형태는 관습적으로 형성된 의미를 지녔지만 결코 언어와 같이 확고한 의미체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문의 예를 들어보아도 의미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문은 용도와 관련된 의미, 즉, ‘들어가는 곳’, ‘나오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문은 또한 창, 기둥, 벽과의 인접요소와의 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비례, 리듬, 수평, 수직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언어에서 단어와 같은 분명한 의미의 단위를 건축에서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점에서 간델소나스는 고전건축 이래 건축이 형태체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언어와 달리 사회구성원 전체가 건축형태를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비록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그 기간은 일시적이다. 언어에서의 구조적 관계를 물리적 형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젱크스 역시 구문론을 건축에 적용했는데 그와 아이젠만의 방법론을 비교해보면 ‘건축=언어’의 함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아이젠만은 근대건축에서 의미론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구문론이 압도했다는 상반된 견해를 가졌다. 젱크스는 문, 창, 기둥, 벽 등의 기능과 관련된 요소를 언어의 단어나 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구문은 이러한 요소를 조합하는 법칙이나 과정으로 해석했다. ‘바닥과 천장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바닥은 평평해야한다’ 등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 건축에서의 구문이라는 것이다. 뷔올레르뒥, 젬퍼, 쉬와지 등의 18세기 건축이론가 이후 근대건축은 이러한 기술적 구문론에 집착했다고 주장했다. 젱크스의 관점에서 아이젠만의 구문은 이성과 논리를 앞세운 기하학 구성에 불과 할 뿐이었다. 반면 아이젠만은 젱크스처럼 건축의 단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구문은 건설의 과정이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성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언어와 건축을 비교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언어를 건축을 투사하는 보편적 이론틀로 접근했기 때문에 오류는 필연적이었다. 간델소나스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언어의 구문론적 요소보다는 '문학적 담론(literary discourse)' 즉 수사학과 건축에서의 구문을 비교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했다(Gandelsonas, 1973, 119). 수사학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서구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나 건축에서 표상이 배척되었던 것처럼 근대주의 문학에서 약화되었었다. ‘수사’는 하나의 ‘담론(discourse)’을 토대로 또 다른 ‘담론’이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다. 한 두 페이지에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의 ‘삼각관계’는 한 권의 분량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간델소나스는 건축 역시 하나의 담론에 또 다른 담론이 구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처럼 건축의 담론도 소수만이 접근하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집’은 영구불변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 것이 구체화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용도, 기능과 관련된 전자의 의미를 ‘일차 담론’이라고 한다면, ‘집’의 의미를 전혀 왜곡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공존하는 의미는 ‘이차 담론’이다. 아이젠만의 실험에서 기둥에서 벽, 벽에서 볼륨으로 전환하는 기하학적 게임은 일종의 ‘이차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젠만이 정의한 심층구조가 건축의 물성을 배제한 유클리드 기하학이긴 하였지만 근대건축의 수사적 메카니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간델소나스의 평가이다.

5. 건축, 언어구조로 볼 수 있는가?

서양의 고전건축에서는 바닥, 벽, 기둥, 지붕, 문처럼 용도와 구축의 과정에 따라 건축을 요소로 분류하였고 각각의 요소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가졌었다. 그러나 근대이후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등장은 건축형태를 구축방식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현대회화와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1920년대 건축형태의 動因은 자연형태나 기계와 같은 다양한 참조체들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 후반 언어학의 도입은 건축형태를 언어와 같은 단위로 해체할 수 있는가 하는 근대건축의 본질적 물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앞의 논쟁이 시사하는 것은 건축을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 아니라 건축을 어떤 측면에서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자는 모음과 자음, 알파벳과 같은 단위로 쪼개진다. 영어 단어 a와 b를 아무리 붙여 쓰더라도 구성상(syntactically)으로나 의미상(semantically)으로 둘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리 갈겨쓰더라도 그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글자의 모양에 관계없이 문자는 일정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반면 그림에서 알파벳처럼 떼어 낼 단위체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잔느의 그림 ‘빅토와르산’에서 붓의 터치, 비례, 색상, 이미지는 구성상이나 의미상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과 같이 추상적 회화에서도 이점이 적용된다. 면과 면의 관계가 어우러져 하나의 총체적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한 부분의 위치와 색상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그림 전체의 의미도 바뀐다. 부분의 의미는 전적으로 전체와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넬슨굿만(Nelson Goodman)은 “그림은 연속적이고 글은 단속적이다"라고 말한다 (Mitchell, 1986, 68) 문자를 디지털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그림은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건축공간을 구문론적 관점에서 연구한 힐리어는 건축을 언어, 수학, 음악에 비교했다. 수학은 매우 한정된 숫자(어휘)를 갖지만 반면 많은 공식(구문)을 갖는다. 반면 언어는 수학에 비해 많은 어휘와 적은 문법을 가진다. 음악은 수학보다도 적은 어휘를 가지고 거의 무한정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건축에서의 구문은 공간과 공간이 연결된 체계로 해석할 수 있으며 공간의 관계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Hillier, 1984). 공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공간구문의 사회적 측면은 벤츄리의 대중기호, 아이젠만의 추상기하학의 오류를 보정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이후 상반된 ‘언어건축실험’은 건축과 언어는 동질성과 특이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벤츄리처럼 건축을 ‘어휘(lexicon)’로 보는 것이 극단인 것처럼 아이젠만처럼 ‘구문(syntax)’으로만 보는 것 역시 극단이다. 르네상스이후 서양건축은 ‘어휘’와 ‘구조’를 일관된 체계로 묶으려 하였고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시도는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근대건축이후 어휘와 구조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모호해졌다. 건축형태를 도출하는 동인이 무한해졌으며 건축가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확장되었다. 건축형태를 생성하는 동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구체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1960년대 이후 이론과 실험은 근대건축의 엄격한 규범과 원리가 있었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192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이 건축을 시각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면 ‘언어건축실험’은 건축을 인문학의 영역과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 탈근대주의 건축이 퇴조하면서 건축계는 근대건축과 탈근대건축을 보완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이점에서 ‘언어건축실험’이 던졌던 질문은 현대건축에도 살아있으며 때문에 지속적이고 내밀한 담론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인용문헌
Colquhoun, Alan. Assays in Architectural Criticism; Modern Architecture and Historical Change. The MIT Press. 1981.
Eisenman, P. “From objects to relationships II,” In Perspecta, V13/14, pp.36-65. 1971.
Gandelsonas, M. “From structure to subject: the formation of an architectural language,” In Michael Hayes (Ed.), Oppositions Reader.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pp.200-223. 1979.
Gandelsonas, M. "Linguistics in Architecture," Casabella 374 (February, 1973). 1973.
Hillier, B. & Hanson, J. The Social Logic of Spa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Jencks, Charles.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New York: Rizzoli. 1977.
Mitchell, W.J.T. Iconology: Image, Text, Ideology.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Venturi, Robert.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Papers on Architecture. 1966.
Venturi, Robert. et al. Learning from Las Vegas: The Forgotten Symbolism of Architectural Form. The MIT Press. 1972.

Architecture and Language: The Theories and Practice in Architecture since the 1960s.
Kim, Sung Hong, University of Seoul

Abstract
The paper discusses the way in which the notion of language has been introduced in architectural discourse since the late 1960s. The paper reviews the works of Robert Venturi, Charles Jencks, Peter Eisenman, Alan Colquhoun, and Mario Gandelsonas, which particularly explore the linguistic analogy with architectural form. All authors are sometimes implicatively and sometimes explicitly responsive to each other's theoretical positions. A system of sign can be studied concerning the question of how the lexicon and the syntax are proportioned. The same question arises: can architecture be understood as a lexicon or as a relational structure like language? The first approach advocated by Venturi and Jencks dramatizes architectural form as a problem of sign. In favor of the representational aspects of architectural form, they reduces architecture as popularized iconography. The second approach developed by Eisenman explores the possibility of finding new formal constructs in the abstract relationship of formal properties. As the syntactic structure dominates in Eisenman's theory,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erceptual and the pragmatic dimension is minimized. Yet, both perspectives address crucial problems at the heart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and expand the architectural discourse into the broad realms of human studies.

출처 - 건축과 언어 (2001.10)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