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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68. 이토 토요 Toyo Ito

1. 건축가 이토 도요

이토 도요
伊東豊雄
いとう とよお
인물 정보
 
국적 일본
출생 1941년 6월 1일 (82세)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출신 대학 도쿄 대학 공학부
소속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
업적 바람의 탑
건축물수상
2006년 RIBA 골드메달
2013년 프리츠커상

이토 도요오(일본어: 伊東豊雄 이토 토요오[*], 1941년 6월 1일 ~ )는 일본의 건축가이다.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의 대표이며, 도쿄 대학도호쿠 대학다마 미술 대학 비상근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RIBA 골드 메달일본 건축 학회상 작품상 2회, 굿디자인상 대상, 프리츠커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내력

1941년에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기도 경성부 (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2세부터 중학생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나가노현의 스와군 시모스와정에서 자랐다. 도쿄도립 히비야 고등학교도쿄 대학 공학부 졸업 후 기쿠타케 기요노리 설계 사무소에 근무하였다.

1971년에 독립하여 어번로봇(일본어: アーバンロボット, 현 이토 도요오 건축 설계 사무소)을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White U", "실버햇" 등 개인 주택을 중심으로 다루었고, 저렴하면서 금욕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소비 사회에 살고, 물뿐만 아니라 생활 공간까지 소비하는 젊은 여성들 도시 "유목민"(노마드)을 테마로 "도쿄 유목 소녀의 포 (파오)"라는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도시를 비판하는 활동을 했다.

1986년, 요코하마역 서쪽 출구에 만든 심볼 타워 겸 지하 환기탑 "바람의 탑"은 무수한 구멍을 뚫은 금속판 (펀치 메탈)과 다수의 조명으로 구성된 단순한 반투명 탑처럼 보이지만, 바람 등 주변의 기상 조건에 따라 표면에 화려한 빛이 뜨게 프로그램 되어 있으며, 금속판의 참신한 사용 방법이나 환경에 대한 상호 작용성에서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센다이 미디어테크"를 대표로 점차 구조에서도 실험적이고, 게다가 관능적인 외관 · 내부 공간이 있는 작풍으로 옮겨갔다.

 

 

센다이 미디어테크.

 

2006년에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에서 골드 메달을 수상하는 등 세계에서 중요한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디자인 건축을 위한 가구 디자인도 실시하고 있다. 건축가를 많이 배출하는 교육자로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현재 다마 미술 대학 객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오미시마정(大三島町) 우라도(浦戸)에 이마바리시 이토 도요오 건축박물관(今治市伊東豊雄建築ミュージアム)을 설치하였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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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이토 도요오 - 공식 웹사이트
  •  
  •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  토요 이토[Toyo Ito] 작품모음

 
 
 
 
 
 
 




TOD'S OMOTESANDO


Serpentine Gallery Pavilion
 


Matsumoto Performing Art Center
 

Mikimoto Ginza 2
 


Sendai Mediatheque
 
 


 Tama Art University Library




Vivo city shopping complex



ISLAND CITY CENTRAL PARK GRINGRIN
 

Tower Of Wind
 


Ito Mahler 4, Amsterdam
 

WTC Amsterdam 
Toyo Ito Building en Viñoly Building, op Gustav Mahlerplein
 

M Building,Kanda
 
 

Recinto Fira Barcelona
 

 東雲キャナルコート1街区
 



  "Egg of Winds", Tokyo
 
 

瞑想の森 市営斎場 
 
 


八代市立博物館




 
Toyo Ito 
 


1941년 일본 출생. 1965년 동경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키요노리 키쿠타케 건축 사무소에서 짧은 기간 동안 근무한 후, 1971년 자신의 스튜디오 '어번 로봇 : 어봇(Urban Robot : Urbot)'를 오픈했다. 이 스튜디오는 1979년 이후로는 ‘토요 이토 & 어소시에이츠, 아키텍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토요 이토는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며 영향력 있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이토는 실재와 가상 세계를 혼합한 극단적 개념의 건물을 창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대의 '인공적' 도시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본에 건축한 ‘화이트 유(White U, 1976)’와 ‘실버 헛(Silver Hut, 1984)’으로 토요 이토는 인구밀집 지역의 생활이라는 개념의 기초를 새로이 창조해냈다.
그는 또한 '도쿄의 노마드 여성을 위한 주택’이라는 ‘파오 프로젝트 (The Pao Project, 1985)’로 유동적인 거대 도시 속 커뮤니티의 비전을 제시했다. 요코하마에 세운 ‘바람의 탑(Tower of Winds, 1986)’과 ‘바람의 달걀(Egg of Winds, 1911)’은 미래적 기술의 가능성을 창조적으로 이용한 작품으로 공공 시설에 인터랙티브한 성격을 제시한 획기적인 건물들로 꼽힌다.
그 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야츠시로 시립 미술관(1991)’과 ‘야츠시로 노인 회관(1994)’ 등이 있으며, 2001년 1월 26일에 일본 센다이에 오픈하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공공 문화센터, ‘센다이 미디어테크’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235:1의 경쟁률을 뚫고 공모에 당선하여 만들어낸 이 놀라운 복합 건물은 도서관, 갤러리, 시청각 도서관, 필름 스튜디오, 카페를 갖추고 있다.
토요 이토는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교수와 유니버시티 오브 노스 런던 대학의 명예교수직을 맡은 바 있다.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실버 헛’으로 1986년 일본 건축협회상, ‘야츠시로 시립미술관’으로 33회 마인리히 미술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1997년 불가리아 건축협회 그랑프리, 1998년 일본 교육부 예술 장려상, 미국 예술 문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2000년 아놀드 W. 브루너 추모 건축상, 그리고 2001년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널리 전시되어 왔는데, 주요 전시로는 런던 V&A 뮤지엄의 ‘비전 오브 재팬(Vision of Japan, 1991)’, 루이지아나 현대미술관의 ‘비전 앤 리얼리티(Vision and Reality, 2000)’, 도쿄와 앤트워프 오클랜드에서 열린 순회전 ‘블러링 아키텍처(Blurring Architecture, 1999~2000)’, 그리고 비첸차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에서 열린 아름다운 전시 ‘토요 이토 아키텍토(Toyo Ito Architetto)’를 꼽을 수 있다.

 

하루  가장 기분 좋은 때는 언제입니까?
저녁이요. 일하기엔 아침이 좋지만, 저녁이 되면 도시가 완전히 변하잖습니까. 술 한 잔 하러 갈 수도 있고요.

 
주로 어떤 음악을 듣습니까?
음악은 거의 안 들어요. 그 나마도 클래식이 아니면 더더욱요. 하지만 바하와 타케미츠 토루의 음악, 그리고 토루의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침대 곁에 두고 보는 책은 어떤 것들인가요?
아무 것도 없는데요.

 
건축이나 디자인 잡지를 보십니까?
최근에는 본 적이 없고, 본다 해도 그냥 훌쩍훌쩍 넘겨봅니다.

 
새로운 뉴스 같은 것은 어디서 들으시나요?
여러 도시들을 산책하며 받는 느낌들에 의존하는 편이죠.

 
여성들의 패션에 관심이 있습니까?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면?
여성들의 패션에 대해 특별한 취향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관심 있게 보긴 합니다. 현대적 감성이 가장 잘 집중되어 있거든요.

 
특별히 피하는 옷차림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입는 정장이요. (웃음)

 
애완동물을 기르십니까?
아니오.

 
디자인 작업이나 프로젝트 관련 작업은 주로 어디에서 하십니까?
최근에는 거의 사무실에서 붙어 있지를 않아요. 아침에 집에서, 아니면 사무실에서 스탭들과 있을 때 스케치하기가 좋더군요.

 
누구를 위해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으신가요?
특정한 종류의 디자인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만. 글쎄요, 최근에는 개인 주택을 한 번 디자인해 보고 싶어요.

 
작업하면서 동료들과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기도 하십니까?
예전 젊었을 때는 시간도 남아 돌았고, 그래서 동료나 다른 건축가들과 토론도 자주 했어요. 아주 복잡하고 긴 토론이 되기 십상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어요. 이야기를 나눈다 해도 생각을 공유하는 몇몇의 사람들 정도로 한정되어 버렸지요.

 
당신의 스타일을 어떤 말로 묘사할  있을까요? 당신의 친한 친구가 설명한다면 어떻게 표현할지요.
대체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 작품은 가볍고 투명하다고 하더군요.

 
가장 만족스러운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센다이 미디어테크’. 장장 6년 동안 작업한 프로젝트입니다. 또 제게는 매우 고무적인 작품이었고요.

 
과거의 건축가나 디자이너  당신이 특히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면요.
많죠.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데 로에, 아라타 이소자키처럼 제 작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축가들은 물론이고, 함께 작업했던 키요노리 키쿠타케 역시 존경스럽습니다.

 
현재 활동하는 디자이너들 가운데서는요?
렘 콜하스가 보여준 건축에 대한 비전을 좋아합니다.

 
미디어-수트(media-suit)로서의 건축이라 함은
인간을 타잔에 비교하고 싶군요. 정글의 타잔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서 신체를 단련하고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서 신체를 발전시켜 가지요. 현대의 인간 역시 미디어 세계 속에서 고도로 발달한 테크놀로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축은 인간이 환경과 하나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미디어-수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메타포라고 보시면 됩니다. (웃음)

 
원래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으셨나요?
아니오.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지요. 운동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야구를 즐겨 했습니다. 야구로 대학을 들어갈 수 없어서,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최근의 뉴스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은 실업과 범죄, 그리고 공해 문제 등을 걱정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래에 관해 당신이 근심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옷에, 똑같은 음식, 똑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이죠.

글발췌 : http://www.designflux.co.kr/
  

출처: 인간, 공간 조형 ,건축 (HUMAN,SPATIAL FORM,ARCH.)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 형

 

 

 

 

 

 

 

 

 

 

3. 타이중 국립오페라극장

 

 

타이중 국립오페라극장(臺中國家歌劇院)

 

타이중 국립오페라극장은 2005년에 개관한 대만 최초의 오페라 전용극장입니다.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일본인 건축가 토요 이토가 총괄책임을 맡아 완성하였습니다.
 

 

오페라극장의 구조는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연주가 모두 가능한 구조로, 개폐식 무대와 직선 벽면이 아닌 곡선 벽면으로 마감하였고, 천장 또한 이동과 개폐가 가능한 형태로 설계하였습니다.
 


민속 공연, 전통 희곡,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가능하며, 타이중 국립오페라극장과 국립공연예술센터의 합작을 통해 양질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타이중 국립 오페라극장은 단순한 극장 건물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하나의 오페라 작품입니다. 입구, 문 앞, 극장 내 싯당, 공중화원 등, 어느 장소 어느 각도에서든 소리와 빛, 그리고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 오페라 극장의 큰 울림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자료, 이미지 출처: 타이중시정부관광국

타이중 국립오페라극장 - 대만 여행지 DB - 아이타이완 (itaiwan.co.kr)

 

 

 

 

 

 

 

 

 

 

4.  White U House

 

Nakano-Ku, Tokyo, Japan, 1976. (demolished in 1997)

건축가: 이토 토요

 

 

이토 토요가 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자신의 누나에게 의뢰를 받아 설계한 집이다. 한쪽으로 경사진 박공지붕으로 덮인 좁고 긴 통로가 말발굽 형태로 중정을 만들고 있다. 현관을 통해 통로 중간으로 들어오면 양쪽 날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왼쪽 날개는 중정으로 이어진 거실과 부엌, 깊숙히 자리한 누나의 방으로 통하고, 오른쪽 날개는 두 조카의 방으로 통한다. 극히 제한적으로 개구부를 두었다. 복도는 지붕의 슬릿창만을 통해 빛을 들여온다. 동굴 같은 복도 깊숙히 들어가야 중정으로 열린 창과 부엌, 누나의 침실로 향하는 작은 복도가 모여있는 공간이 나온다. 누나(어머니)와 조카들(딸)의 침실은 복도의 양 극단에 위치하고 있어 집 안의 그 어떤 관계들보다도 가장 멀어보인다. 그러나 말발굽 형태의 배치 때문에 두 극단은 서로 붙어있으며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작은 창을 통해 서로의 인기척만은 확인할 수 있다.

 

21년이 지나 세 명의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이 집은 철거된다. 어디까지나 사후적으로 생각하건대, 세상에 남은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달래고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며 새로운 형태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생활공간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소멸된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 집은 애초에 박물관으로 남거나, 아니면 철거될 운명이지 않았을까? 생활공간이라기엔 시퀀스가 강렬하고 단순하고 절제된 복도는 갤러리 같다. 도판에선 사는 사람의 생활양식이나 취향을 짐작할 만한 장식이나 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철저히 재활을 위한, 한껏 웅크린 짐승의 동면을 돕고 봄을 준비하는 땅굴 같은 집을 떠올린다. 만약 이 집에 살아야할 당위가 강했더라면 충분히 고쳐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허물었던 이유는, 제 기능을 다한 후 소멸되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었을까?. 다른 내막이 있을 수 있고 어디까지나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특정한 삶의 시기에 놓인 가족을 표상하면서도 함께 세월을 보내온 그 집이 갖는 강렬한 서사가 참으로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

 

 

 

 

 

 

 

 

 

 

1) 파사드, 2) 현관

3) 현관에서 바라본 왼쪽 복도, 4) 왼쪽 복도 진입 

5) 거실, 6) 어머니의 침실

7) 중정, 8) 현관에서 바라본 오른쪽 복도

9) 딸의 침실, 10) 딸의 침실에서 바라본 중정과 어머니의 침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k_zVp9jf1E

 

출처 - White U House (tistory.com)

 

 

 

 

 

 

 

 

 

5.  칸다M빌딩(神田Mビル)/이토토요(伊藤豊雄)

 LEE | 10월 14, 2016 | JADB, Tokyo Metropolitan | 

 

설계: 이토토요건축설계사무소(伊藤豊雄建築設計事務所)  시공:   대지면적:   건축면적:   연면적:   규모 : 지하층, 지상층  구조:   공사기간: 년월 ~ 1987년월  주소지: 동경도(東京都)

 

칸다M빌딩은 이토토요(伊東豊雄)의 1987년도 작품으로 오차노미즈와 아키하바라사이의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SANNA의 세지마카즈요(妹島和世)가 이토토요 설계사무실에서 근무할 당시 설계를 담당한 건물이기도 하다. 콘크리트의 기둥과 보 사이에 대각선을 이용하여 삼각형 프레임을 만들고, 이 사이에 알루미늄 패널, 고정창, 알루미늄 펀치 패널을 넣었다. 1~4층은 임대사무실이며, 5,6층은 건축주가 사용한다. RC프레임은 4층까지 그 위는 알루미늄으로 지붕 등을 마감 하였다. 건물 내부의 계단은 노란색으로 건물전체의 색인 회색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출처 -  칸다M빌딩(神田Mビル)/이토토요(伊藤豊雄) | LeeYongGeun.com 

 

 

 

 

 

 

 

 

 

 

6.  이토 토요 일본 ‘센다이 미디어테크’…실험적 건축물에 가상을 입히다

 

 

입력 :  2013-07-15 09:28:45

 

 
 
 
 
인구 103만명의 일본 동북부 지방 미야기현 중심도시 센다이 아오바구엔 그냥 보면 평범한 유리건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기하학적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특이한 건물이 있다. 일본 센다이시 교육위원회가 관할하고 있는 복합문화시설인 센다이 미디어테크가 그 주인공이다. 첨단 건축소재인 철재기둥과 유리로 된 이 건물은 문화예술과 관련해 정보량과 매체의 비약적 증가로 디지털 정보의 접근과 활용을 중시하게 됨에 따라 정보와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교류를 증대시키는 정보와 사교의 장이 되게 할 필요성에 의해 탄생됐다.

1989년 새로운 미술관 겸 도서관 건립계획이 제시되면서 이 건물의 건축이 시작됐는데 약 10여 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의 활발한 참여와 논의를 거쳐 탄생했다. 설계는 1994년 공모전을 통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토 토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담당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미술과 영상문화의 활동 거점이자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공문화시설이다. 건축 작품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 앞서가고자 만들어진 실험적 건축물이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매체의 결합을 통해 건축물에 가상의 세계를 접목시키는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첨단 지식과 문화를 제공하고 이용자의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네트워크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모든 장벽으로부터 자유롭고 정상인과 장애인, 이용자와 운영자, 언어나 문화 등의 장벽을 뛰어넘는 시설로 계획된 것이 이 건물의 이념이다. 그런 만큼 누구나 정보를 수집하고 축적하고 편집하고 전송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정보 이용에 있어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 마련에 더욱 신경을 써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도서와 녹음된 도서가 갖춰져 있다. 이곳 프로그램은 미술, 영상 및 미디어에 관한 전시회나 영화 상영, 워크숍,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언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과 제휴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도서관이나 다양한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사업 개발 등도 진행하고 있다.

이 건물은 부지면적 3948.72㎡이고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건물 연면적은 2만1682.15㎡가 된다. 2000년 준공했으니 공사기간은 약 32개월로 3년이 채 안 된다. 공사비는 약 130억엔이 소요됐다고 한다.

건물은 1층 내부 광장을 통해 도서관과 갤러리, 최상층 문화시설로도 연결된다. 각 층별 시설 구성을 살펴보면 지하 1층엔 활판인쇄 연구소, 유료주차장 등이 있다.

 


지상 1층은 공개공지와 광장, 안내카운터 등 열린 공간으로 미디어테크의 관문인데 전면 거리와의 일체감을 연출한다.

2층은 아동도서관과 안내시설로 시각·청각장애인의 상담 카운터와 도서관이 있으며, 시민도서관의 아동서적 코너가 배치돼 있다.

3, 4층은 공공도서관으로 구성되며 센다이시에 있는 7개 도서관 중 하나로 중앙도서관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5, 6층은 고정 및 오픈 플랜 전시실이 있으며 최상층인 7층은 영상도서관, 강당, 편집실 등으로 구성돼 정보의 편집과 제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각 층 실내디자인 각기 다른 건축가 작품 이 건물의 첫 번째 특징은 건물의 구조시스템이다. 건물 전체는 13개의 튜브 형태 강관 트러스 구조로 된 철골 독립 샤프트와 하니컴 강판 형태의 샌드위치 구조 슬라브인 철골 플랫 슬래브로 각 층마다 다른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에 소장된 매체의 형태별로 7개 층을 모두 다르게 설계해 서로 다른 매체와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부구조는 지하 1층에 지진에너지 흡수장치를 갖추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건물의 공조시스템. 더블스킨(Double Skin)으로 된 유리면과 상부 개폐장치를 설치해 공조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공조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여름에는 개폐장치를 개방해 안쪽에 상승기류를 일으켜 유리면을 냉각하고 반대로 겨울철에는 이중외피의 상부 개폐장치를 닫아 단열성이 높은 공기층을 만든다.

세 번째 특징은 수직 튜브를 통해 전달되는 자연광과 설비 배관 및 수직 동선. 이것은 옥상의 채광 장치가 햇빛을 반사해 튜브를 통해 건축 내부에 도입한다. 네트워크 및 공기 조절 설비 배관, 배선, 엘리베이터, 계단 등의 수직 동선도 파이프 구조로 형성했다. 기둥을 포함하는 건물의 코어는 중요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외된 공간이나 채광이 확보되지 않는 공간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디어테크는 건축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구조적 역할을 하는 이 부분을 각종 설비의 이동통로이자 건축적으로 수직이동 역할을 하며 동시에 채광이 확보된 특별한 공간으로 형성했다. 이러한 건물의 특징을 통해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 요소가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했다.

 


이 건축물은 투명성을 강조한 외부 형태가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외피는 내외부의 연결을 강조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매체의 정보를 저장하고 운영하고 또한 활용하는 방식 자체가 미래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 공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문화와 예술의 거점이자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정보를 이용하는 공간이다.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문화와 예술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해 지역 주민들의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각 층의 실내 공간 디자인은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각기 독특하게 디자인됐다. 이 건물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형태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져 편리하고 쾌적한 장소로 많은 이들이 예술과 미디어를 탐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현대 건축의 대표적 첨단 건축소재인 유리와 철을 통해 혁신적이고 독특한 구조와 개방성을 강조한 품격 있는 외피를 세련되게 구현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경량의 투명한 건축물로 매우 경쾌하게 보이지만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장시간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일부 천장 마감을 제외한 구조와 외장 마감 모두 잘 보존되어 더욱 유명해진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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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의 아이콘! 이토 토요 이토 토요는 건축물을 설계함에 있어 형태의 규칙성이나 공통적인 건축 어휘를 갖지 않는다. 그는 건축의 개념을 굳이 설명하려고 하지 않으며 현재 처해진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그의 건축을 전개하고 있다. 건축물이 들어설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먼저 고민하고 용도에 따른 특성과 부지의 가능성을 찾아내 그것이 표출되는 건축물을 설계해 왔다.

그는 자신을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건축가”라고 설명할 정도로 프랑스 거장이자 세계적인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토 토요는 1941년 경성에서 태어났고 1965년 동경대학 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졸업 작품으로 제출한 ‘도쿄 우에노 공원 리노베이션 계획’이 최고 졸업작품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71년 도쿄에서 자신의 ‘어번 로봇(Urban Robot)’ 스튜디오를 개설했고 1979년 자신의 이름을 딴 토요 이토 건축사무실로 이름을 변경했다. 1984년 제3회 일본건축가협회 신인상을, 1986년 ‘Silver Hut’으로 일본건축학교상 수상했고 요코하마의 ‘Tower of Wind’로 이름을 날렸다.

 


1990년 삿포로의 게스트하우스 토고 무라노상을 수상했고 1992년 야츠시로 시립박물관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1993년 나가오카 시립문화예술관 현상설계에서 1등에 당선되는가 하면 2002년 센다이 미디어테크로 세계건축상 동아시아 최고 건물상을, 2003년 센다이 미디어테크로 일본건축협회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그는 다카마츠 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 RIBA골드메달, 일본건축학회상 작품상 2회, 굿디자인상 대상, 프리츠커상 등을 다수 수상했다.

최근에는 동경대학 교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의 부 책임자, AIA의 명예회원, 북 런던대학 명예교수 등을 역임하고 있다.

 
 
 
 
TOD’S 오모테산도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연면적 2548㎡, 동경 오모테산도에 있는 상업업무시설이다. 이탈리아의 구두, 가방 브랜드인 TOD’S의 매장이다. 외벽에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구조와 외피를 일체화시키면서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하는 독창적 디자인이 돋보인다. 하나의 커다란 나무가 외관인 형상의 건물은 수목의 생장을 표현한 상징적인 형태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가로수 느티나무 가지의 실루엣 모습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두께 30cm의 노출콘크리트와 유리로 외관을 형성했다. 콘크리트 외벽 사이의 유리는 재료의 대비로 인해 더욱 강한 인상을 준다. 또한 가로수 모양이 변형되어 콘크리트로 바뀌어 가는 듯한 형상이다. 실내공간도 나무의 줄기나 가지를 확대한 듯한 입체감이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옥상에는 유리로 된 미팅룸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 전면이 유리로 된 경쾌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콘크리트로 중후한 느낌을 불어넣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자연채광을 하도록 했고 내부공간은 천연 인테리어 소재인 목재, 가죽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무형상의 구조는 올라가면서 형태가 변하기 때문에 각 층별로 색다른 공간을 연출한다.

후쿠오카 ‘아일랜드 시티’ 중앙공원
 
 
 
 
‘아일랜드 시티’는 하카타 만 동쪽에 있는 대략 400헥타르의 인공섬이다. 이 건물은 후쿠오카 시립 식물원으로 단층 건물이며 연면적은 약 5000㎡이다. 평면적인 인공섬에 새로운 특성을 만들기 위해 계획했다. ‘웃음 GRIN’라는 이 공원의 핵심 시설은 이 섬의 첫 번째 건물이다. 대지와 건축물이 하나가 되어 지면에서 다시 지붕으로 걸어 다닐 수 있고 구조물 지붕은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내부로 빛이 들어온다. 벽은 녹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을 닮은 건축, 자연을 담은 건축으로 인공섬 위에 만들어진 식물원으로서 종이를 꼬아서 만들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각각의 매스 안에 식물들이 들어 있는 형태로 평면상 동선이 연결되며 3개의 매스가 상호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게 돼 있다.

건물 위 외부 산책로는 다시 내부 공간으로 연결되며 다시 외부로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전체는 세 개의 매스로 구성되며 각각의 공간은 내부와 외부 사이에 연속적으로 나선형 형태를 통해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옥상은 잔디를 식재했는데 전체 섬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타마 예술대학 도서관
 
 
도쿄 교외에 있는 예술대학을 위한 도서관으로 2007년에 완공됐다. 2층 건물로 외부는 대형 아치 형태로 유리벽으로 구성해 열린 공간을 만들어 캠퍼스 주변 자연환경을 내부로 확장되게 계획했다. 계획 개념은 전체 교직원에게 오픈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상에 넓은 오픈 갤러리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과 캠퍼스를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통로 역할을 한다. 1층은 각종 행사, 전시회를 위한 다목적 갤러리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대형화면을 갖춘 극장공간이 있다. 1층 후면에서 학생들은 최신 잡지를 읽고 영상자료도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적인 전문능력을 중시하는 대학에 걸맞게 도서관도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자칫 차가워 보이는 콘크리트를 노출시켜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처리해 감수성이 풍부한 미술학도들에게 무한한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적합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강성찬 한미글로벌 엔지니어링팀 부장]

출처 -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7.  <이젠 DSR이다>이토 도요 “공동체와 괴리된 서구 디자인은 한계”

  • 2013.09.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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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하남현 기자]이토 도요는 지난 2011년 벌어진 동일본 대지진 후 후배 건축가들과 함께 하는 재해지역 재생 프로젝트인 ‘모두의 집(Home-For-All)’을 이끌고 있다. 이는 재해 지역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적극 사용해 지역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지어 주는 작업이다.

건축, 디자인에서 사람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토 도요 건축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 현대 건축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지난 3월 건축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프리커츠상을 수상한 이토 도요는 오는 10월 열리는 ‘헤럴드디자인위크2013(Herald Design Week 2013)’ 참석에 앞서 헤럴드경제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건축과 디자인이 사람, 공동체를 담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했다. 또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건축과 도시의 미래를 찾아야 하는 시기”라고도 일갈했다. 기술에 의존한 채 자연과 건축물 사이에 ‘깊은 우물’을 패고 개인과 사회와 괴리된 서구식 모더니즘 건축과 디자인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은 일본에 부족한 역동성이 넘치는 나라”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 지진과 쓰나미 피해와 관련해서는 “이는 사회와 괴리된 모더니즘의 폐혜인데, 이같은 재해 지역을 방문해 건축의 기본적인 책임이 무엇인가 다시 깨닫고 ‘공동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며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고뇌했음을 엿보게 했다.

이토 도요 인물사진. 요시아키 츠츠이(Yoshiaki Tustusi) 작(作).

- 당신의 건축과 디자인은 매우 창조적이다. 창조적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새로운 영감을 얻는 비법이 있다면.

▶나는 작품을 새로 창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건축 형태에 도전한다. 건축물들은 대부분 너무 정형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공 건물일 경우 그 건물의 기능이 사회와 전혀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 건축과 커뮤니티와의 괴리감을 좁히기 위해서는 사회가 변화하는 동향과 시대의 흐름을 잘 인지해야 한다. 나의 작품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인터뷰 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 당신에게 건축이 가지는 의미는.

▶건축의 우선순위는 사람이 돼야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지못한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 건축은 사람들에게 편안함, 자유, 안락함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당신은 건축이 사회를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녔다고 했다. 여기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나.

▶건축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클라이언트는 물론 내 건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창조의 과정에 개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디자인으로 대중을 사로잡기 보다는 대중이 참여하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

-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다른 꿈이 있었나.

▶어쩌다보니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사실 어릴 적에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건축가 키요노리 키쿠타케(Kiyonori Kikutake)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됐는 데 그때 그의 날카로운 감각과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서 나오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경험하며 많은 감명을 얻었다. 그 때부터 건축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 당신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가.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했기 때문에 1941년에서 한국에서 태어나게 됐고 2살 때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부모님의 대화 내용을 제외한 한국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한국은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다. 일본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 한국 건축에 대한 당신의 느낌은 어떤가. 한국의 예비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최문규 씨의 쌈지길 같은 공간이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또한 김수근 씨가 창조한 쌈지길과 같은 공간도 매우 역동적이라고 느꼈다. 서양의 모더니스트 건축들은 많은 부분에서 제약이 돼있어 일정 기준 이상의 어떤 것을 이루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제 그야말로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건축과 도시의 미래를 찾아야 하는 시기다. 해법은 자연에 대한 열린 구조를 통해 찾을 수 있다.

-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 희생자들을 위한 당신의 건축과 디자인이 화제가 됐다. 건축과 디자인이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는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지진과 쓰나미 피해는 사회와 괴리된 모더니즘의 폐혜다. 나는 이러한 재해 지역을 방문해 건축의 기본적인 책임이 무엇인가 다시 깨닫고 ‘공동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이런 중요한 가치들을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건축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airinsa@heraldcorp.com

▶이토 도요 프로필

▷1941년 서울 출생

▷1986년 일본건축학회 작품상

▷1997년 제8회 불가리아 소피아 트리엔날레 그랑프리

▷1999년 제55회 일본예술원상

▷2001년 일본 굿디자인상

▷2004년 황금콤파스상

▷2006년 왕립건축가협회 금메달

▷2013년 프리커츠상

<경력>

▷1971년~ 이토 토요 건축설계사무소 대표이사

▷199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건축학부 객원교수

▷2002년 타마미술대학교 미술학부 객원교수

▷2005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커미셔너

출처 -  "<이젠 DSR이다>이토 도요 “공동체와 괴리된 서구 디자인은 한계”"- 헤럴드경제 (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