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1943년 4월 26일 ~ )는 만드는 작품이 단호하면서 미니멀리스트로 언급되는 스위스인 건축가이다.[1]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을 관리하지만 그는 2009년 프리츠커상, 2013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RIBA) 로열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생애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캐비넷 제조자였고 이로써 페터는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노출되어 나중에 1958년 목수 수습생이 되었다. 1963년을 기점으로 자신이 태어난 도시의 Kunstgewerbeschule(예술공예학교)에서 공부했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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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sthaus Brege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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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Benedict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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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der Klaus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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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umba - Erzbischöfliches Diözesanmuseum
위키백과
2. 은둔자형 건축가 - Peter Zumthor(페터 춤토르)
Peter Zumthor(1943~)
춤토르는 상업적인 주류 건축계와는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은둔자형 건축가'입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공소에서 가구공으로 훈련받았고, 유물 보존 일도 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1979년 건축 일을 처음 시작했던 스위스 산골 마을 할덴슈타인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장인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는 세계에서 이름난 도시의 고층 빌딩이나 대형 교회를 설계한 것도 아닙니다. 주로 스위스ㆍ독일의 작은 시골 교회나 미술관, 노인요양원 등을 설계해왔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만들어낸 건축물은 세계 건축가들과 건축ㆍ예술 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2009년 '건축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그에게 주며 심사위원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터 춤토르는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모든 열정을 쏟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며, 매우 단호한 자세로 일한다.”
심사위원단은 그에게 ‘거장 건축가’(a master architect)라는 칭호를 붙였습니다. 산골 마을에서 마치 구도자 같은 자세로 일관해온 그에게 보낸 헌사였습니다.
건축물의 소리, 온도까지도 중시하는 그의 건축은 명상적입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축의 '분위기'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분위기에는 9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건축의 몸(구조), 물질의 양립성(재료), 소리, 온도, 주변의 사물(가구 및 인테리어), 동선, 내부와 외부의 긴장(동선), 친밀함의 수준(외적 형태), 빛(조명) 등이 그 요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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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Benedict Chapel, 1988, Switzerland
스위스 동부 알프스 깊은 계곡, 발스온천에서 멀지않은 섬비치(sumvitg) 라는 작은 계곡마을에 있는 성베네딕트 채플 입니다. 늦게 건축에 전념한 춤토르가 먼저 있던 교회가 눈사태로 허물어지자, 1988년 알프스 산기슭에 지은 작은 산골짝 동네 채플입니다. 춤토르의 건축이 알려지기 시작한 초기작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바젤 출신인 춤토르는 목가구공인 아버지 밑에서 목공일을 배운 목수였습니다. 바젤의 공예학교를 다니고 미국 뉴욕의 프랫(pratt)에서 디자인 공부를 더 하였는데 이때부터 건축에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귀국해서 목공예 일도 계속하며 고건축기념물보전 관련 군청공무원으로 오래 근무합니다. 이런 목공예에 관한 경험이 이 채플을 디자인하는데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목재 프레임과 마감들이 전부 노출되어 있습니다. 최종마감처리를 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데 이 점이 춤토르의 목공예 실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이 있어 보이고 혼이 들어가 있습니다. 목재 현관문짝, 신도석 벤치, 제단 등 모두 그의 디테일이며 심지어 십자가 촛대 성수대 도어손잡이 등의 금속공예품도 다 그의 작품입니다. 이 것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식"의 렘 콜하스나 프랭크 게리의 노출건축(unfinished architecture)과 다른 점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축이 아닙니다. (건축가 박영우 견해)
성수대
우드싱글 외벽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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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me Vals(발스 온천), 1996, Switzerland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온천 시설물인 '테르메 발스'(Therme Vals·1996)는 지역 주민들이 주로 지붕에 사용하는 규암을 내외장재로 사용해 지역만의 가치를 담아냈습니다. 취리히에서 3시간이나 걸리는 약 1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골 욕장은 개장 이후 매년 14만명이라는 방문자 수를 기록하며 10년간 마을과 호텔 방문객을 45%나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마을 전체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습니다.
이 건축물은 그에게 2009년 프리츠커상을 안겨주었습니다.
Therme Vals, Switzerland
2009년 Pritzker 수상자 Peter Zumthor가 최고의 완성 작품 중 하나로 칭송한 Vals Thermal Baths는 스위스 현대 건축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 중 하나일 것입니다. 1996년 완공된 지 불과 2년 만에 Therme Vals는 건축물의 걸작으로 인정받은 즉시 역사적 건축물로 등재되었습니다.
테르메발스 온천시설은 직육면체 형태로 암반에 반쯤 묻혀 있는 구조입니다. 지붕의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겉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 공간은 장인 정신 가득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Peter Zumthor의 온천은 6만개의 지역 규암 석판인 Valser Gneiss로 지어졌습니다. 이 돌은 수평으로 적용된 1미터 길이의 스트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부분 사이의 색상 변화와 엇갈린 배열로 인해 이 돌담은 은색 목재 클래딩처럼 보입니다.
Therme Vals는 모놀리식이지만 위압적이지 않으며, 건물의 많은 내부 성역에 창문이 없고 구성이 미로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밀실 공포증이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구조 전체에 걸쳐 엄청나게 높은 천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역할을 합니다.
잔디가 덮힌 옥상과 스파
테르메발스 온천 건축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유명해진 이유는 석자재 때문입니다. 테르메발스는 지역에서 나는 규암을 내외부 마감재로 사용했습니다. 페터 춤토르는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석재를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방안이라고 생각하고 석재 중에서도 이 지역 사람들이 지붕에 많이 사용하는 규암을 골랐습니다. 석판을 그냥 외장으로 얇게 붙인 것이 아니라, 6만여 개의 규암을 겹겹히 쌓았기 때문에 이 온천은 마치 석벽에 둘러싸인 동굴 느낌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 지역만의 가치를 갖고 있는 건축’의 이념을 실현시킨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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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sthaus Bregenz, 1997, Austria
오스트리아의 서쪽 끝, 보덴호에 연해 있는 작은 문화휴양도시 브레겐츠는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에 접해 있습니다. 취리히가 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브레겐츠에 있는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 (KUB, kunsthaus bregenz)는 페터 춤토르의 초기작의 하나입니다. 1989년 (46세) 춤토르가 설계하여 1997년 (54세)에 준공, 개관한 현대미술 아트갤러리입니다.
뮤지엄 벽체 외관
더블스킨 외피에서 전시공간으로 자연광이 유입된다.
유리천정을 통해 사방에서 자연광이 들어옵니다. 천정 속에는 인공조명도 숨어있습니다. 설치미술에 매우 효과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연광으로 충만해 스무스한 콘크리트 마감의 벽과 바닥으로 전시공간의 건축적 형태는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인지하기 힘들어지므로 설치되는 미술 작품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최상층만이 아니고 모든 층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혁신적 공간개념이 반영된 건축물입니다.
뮤지엄 내부 전경
외벽 가까이서 외벽과 평행한 두꺼운 내력벽이 건물을 지지해줍니다. 전시공간 내의 기둥을 없애려고 고안해냈습니다. 그러면서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위한 공간으로 처리한 것이 전부입니다.
걸려있는 파티션(hanging partition)
전시실의 걸려있는 hanging 칸막이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림, 회화 등 전통적 수직전시기법이 필요한 경우에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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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Bruder Klaus Chapel
독일 서부 쾰른 근교에 있는 농촌 마을의 작은 예배당 <Bruder Klaus Chapel>은 페터 춤토르가 설계하여 2007년 완공한 동굴같은 컴컴한 내부를 가진 특이한 채플입니다. 2년 후 2009년 춤토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합니다.
Bruder Klaus Chapel, 2007, Mechernich, Germany
작은 농촌마을 밀밭 벌판에 서있는 큰 돌덩어리같은 5각형의 채플(경당)은 이 동네의 15세기 수호성인인 농부 클라우스를 기리기 위해 동네 농부들이 직접 시공한 "빛이 쏟아지는 검은 동굴의 채플" 입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겨우 서너평에 불과한 자궁 모양의 내부는 작은 벤치 하나, 촛불대 1통, 그리고 클라우스의 흉상이 전부입니다.
클라우스 경당이 설계되는 과정의 일화는 '건축 이상의 건축'을 지향하는 그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춤토르가 독일 쾰른에서 콜룸바 뮤지엄을 지을 당시, 그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샤이트바일러 부부가 그를 찾아와서 작은 경당 설계를 부탁했습니다. 춤토르는 이들 얘기에 귀를 기울였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부부 형편을 고려해 설계비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경당을 구상하는데 그가 바친 시간은 3년이었습니다. 건축은 2005년에 시작하여 2007년에 완공하였습니다.
지역 농부인 건축주 Scheidtweiler의 개인 기도실인 클라우스 경당의 내부는 독특합니다. 통나무 패널을 세워 원뿔형으로 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은 다음 내부 원목을 태우는 독특한 기법을 적용했습니다.
클라우스 경당 외형은 그야말로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곳을 찾은 이들은 감동을 이야기합니다. 춤토르 역시 감동을 중시합니다. 그는 “나에게 있어 질 높은 건축은 나를 감동시키는 건물”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감동은 크기나 화려함으로 사람을 위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존재감을 뜻합니다.
클라우스 경당은 한 편의 시(詩)처럼 마음에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불에 탄 나무 패널 흔적이 투박한 결로 남은 내벽과 뾰족하게 열린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의 만남이 이뤄낸 조화인지도 모릅니다. 건축가 한만원씨는 “클라우스 경당은 한 번에 겨우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다. 하지만 감동은 그 어떤 대형 교회나 성당과 비교할 수 없다. 만약 사람들이 성령을 만나는 일이 실제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예배당 입구
“삶과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건물을 디자인하려면 형태와 구조를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Peter Zumthor의 이 인용문은 Bruder Klaus Field Chapel의 디자인에서 사실로 나타납니다. 이 예배당에서는 신비롭고 사려 깊은 내부가 매우 단단한 직사각형 외부로 가려져 있습니다.
채플의 벽체는 오랜 전통의 램드콘크리트(Rammed Concrete)를 사용하여로 동네농부들이 손과 발로 세게 다지면서 시공했습니다. 램드콘크리트는 진흙과 자갈, 석회 등을 섞어 철근보강없이 시공되는 오래된 전통 공법입니다. 100여년 동안 쓰이지 않다가 최근 환경친화적이라고 하여 주목을 받고있습니다. 하루에 조금씩 다지고 굳은 다음, 다음날 또 치면서 다지기 때문에 퇴적층 지형의 대리석 무늬를 띠게 됩니다.
대리석 무늬처럼 보이는 환한 베이지 색상의 콘크리트 외관과는 달리, 삼각형의 메탈 문짝을 열고 들어가면 시커먼 동굴이 나타납니다. 조금 들어가면 구멍이 뚫린 높은 지붕에서 골이 파져있는 내벽을 따라 빛이 흘러내립니다. 원추형의 공간이라서 높이가 12m가 아니라 120m정도로 여겨질만큼 까마득합니다. 게다가 골이 파져있는 내벽이라 빨려 올라갈 듯 합니다. 빛은 연기에 그을은 시커먼 콘크리트 골들을 따라서 뿌려집니다.
Floor
내부구조-Detail
이 교회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은 112그루의 나무 줄기로 만든 위괌(Wigwam, 소나무 줄기로 만든 내부 거푸집 역할을 하는 건축용어)을 사용하여 건축한 것입니다. 프레임이 완성되면 콘크리트를 부어 기존 표면 위에 각각 약 50cm 두께로 두드립니다. 24개 층의 콘크리트가 모두 굳었을 때 나무 프레임이 불에 타서 움푹 들어간 검은 구멍과 그을린 벽이 남게 됩니다.
채플 내부에 사용된 위괌 (모형)
위괌(Wigwam)은 북미 인디언들이 사용하였던 원추형 나무줄기 외관의 목재 주거 형태를 기원으로 합니다.
채플 내부 지붕구멍 오큘러스
내부의 독특한 지붕 표면은 얼어붙은 용융 납 바닥으로 균형을 이룹니다. 시선은 명백한 방향성을 통해 지붕이 하늘과 밤하늘에 열려있는 지점까지 끌어 올려집니다.
납으로 시공한 바닥
납으로 시공한 바닥-Detail
채플 내부에 들어가면 지붕구멍에서 검게 그을린 골을 따라 햇살이 흘러내리며, 벽에 있는 유리봉 구멍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높이는 12m 정도 되고 지붕의 눈물방울 모양 개구부로는 비가오면 빗물이 줄줄 떨어집니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뜨거운 납 물을 부어 식혀 만들었는데 건물의 균형을 잡기위해 납으로 시공했다고 합니다.
예배당과의 만남에서 피할 수 없는 매우 침울하고 반성적인 감정은 예배당을 현재까지 가장 인상적인 종교 건축물 중 하나로 만듭니다. 배관, 욕실, 흐르는 물, 전기가 없고 까맣게 탄 콘크리트와 납 바닥으로 되어 있어 겉으로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예배당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목적지로 남아 있습니다.
폼타이 구멍들(form-tie holes)
거푸집 공사시 벽에 수없이 만들었던 폼타이(form-tie) 거푸집 긴결철물 구멍(총 350여개)에는 유리봉을 집어넣어 빛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물결치는 듯한 수제 핸드메이드 램드콘크리트(Rammed Concrete)를 치면서 사용한 거푸집 폼타이 구멍들에 유리봉을 집어넣어 내부의 조명과 장식요소로 사용한 것입니다. 줌토르는 2년여에 걸쳐 공부하면서 설계, 시공했습니다.
브루더 클라우스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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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umba Museum, 2007, Cologne
Peter Zumthor는 2007년에 완공된 독일 쾰른의 대교구를 위한 콜룸바 박물관을 설계했습니다. 기독교 미술 협회(Society for Christian Art)는 1853년에 콜룸바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은 2000년 유럽 역사에 걸친 예술을 전시합니다. 새 건물은 폐허가 된 성 콜룸바 교회의 오래된 고딕 양식과 로마 시대 성벽 바로 위에 지어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회가 폭격을 당했을 때 성가대 부두에 성모 마리아상이 보존되어 기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교회는 "Madonna of the Ruins" 예배당을 팔각형으로 세우기로 계획했습니다. 기둥의 구조적 그리드는 강철 및 콘크리트 기둥으로 40피트 들어 올려졌습니다.
“Madonna of the Ruins” chapel
Zumthor는 재료의 사용, 특히 건설 세부 사항을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고 회색 벽돌을 사용하여 사이트의 파괴된 파편을 결합했습니다. 이 작업에는 고딕 양식의 교회의 나머지 조각, 로마와 중세 시대의 석조 유적, 독일 건축가 Gottfried Böhm의 1950년 작품 "Madonna of the Ruins" 예배당이 포함됩니다.
회색 벽돌의 파사드는 교회 파사드의 잔재를 현대 박물관의 새로운 얼굴로 통합합니다. 천공으로 연결된 벽돌 작업을 통해 확산된 빛이 박물관의 특정 공간을 채울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얼룩덜룩한 빛이 폐허를 가로질러 움직이며 연주'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평화로운 환경을 조성합니다. 박물관에는 16개의 다양한 전시실이 있으며 건물 중앙에는 비밀 정원 안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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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지 경당 설계 위해 방한한
페터 춤토르와 언론사 기자가 나눈 대담
2014.8.21
-2011년 당시 ‘젊었을 때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나이 들수록 풀과 꽃을 보며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깊이 깨닫고 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연이 중요해지고 있다. 갈수록 조경이 내 프로젝트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고 있다. 요즘 내 프로젝트에는 조경이 항상 같이 간다. 정원은 풍경(landscape)과 관련된 요소로 매우 중요하다.”
-당신에게 자연은 무엇을 의미하나.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믿음이라면 우리는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내게 위안을 준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 말이다. 나이 일흔이 넘으니 내가 나 자신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웃음) 분명한 것은 바다의 수평선이나, 산, 그리고 산자락에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풍경이 내 마음을 고요하게 달래준다는 것이다. 이런 풍경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것 같다.”
-당신이 설계한 종교 공간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항상 감성적인 공간(emotional space)을 염두에 둔다. 거대한 공간, 혁신적인 공간, 혹은 눈에 띄게 화려한 공간에 관심이 없다. 감정은 건축물의 용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부엌ㆍ술집ㆍ식당 등 각각의 장소는 그 쓰임새에 따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종교 공간을 설계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은.
“영성적인 공간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을 찾은 사람이 기도를 하는가 안 하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종교 공간이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는 베네딕트 교회를 지을 때 설계를 의뢰한 신부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줬다. 그가 신부에게 “솔직하게 저에게 문제가 있다. 나는 17세에 가톨릭 교회를 떠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부에게 “내가 만들 수 있는 교회는 17세 소년, 그때의 감정으로 디자인하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춤토르는 그의 책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기억'이야말로 가장 심오한 건축적 경험이라고 했다. 기억은 건축 작업을 할 때마다 그가 참고하는 '분위기'와 '이미지'의 저장고가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프로젝트를 고르는데 신중하다고 알려져 있다. 남양성모성지 경당 설계를 맡은 이유는.
“건축가로서의 열정이다. 나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건축가로서 언제나 좋은 집, 아름다운 집과 빌딩을 지을 기회를 찾는다. 누군가 내게 의뢰를 하면,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은 아닌지, 내가 정말 좋은 것을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본다. 또 의뢰인과 함께 내가 그 과정을 잘해나갈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때로 상업적인 제안도 들어오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의 질(quality)보다 내 이름이 필요해서 오는 제안도 받는다. 하지만 앞에 말한 것들이 내가 ‘예스’와 ‘노’를 말하는 기준이 된다. ”
-건축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도 여전히 산골 마을인 할덴슈타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우연(accident)이다.(웃음) 어쩌다 보니 그곳에 살게 됐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며 살아왔다. 나는 원래 할덴슈타인 출신은 아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히 잘한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 평화롭고 조용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 사람들이 내게 설계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이곳까지 찾아올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 우리 아틀리에(설계작업실)는 대가족과 같다. 상업적 (건축) 사무소라기보다는 마스터 클래스(전문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와 같다. 다들 모여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하다 보니 예술가 같은 생활이다. 작은 작업실이기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함께 매우 가깝게 일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아주 세밀한 것까지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것은 없다. 내 작업이라면 끝까지 내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당 설계할 곳을 두 번 찾았다고 들었다.
“현장에 가보았는데 좋았다. 사진으로 아무리 보아도 직접 가보면 장소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설계의 시작은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강한 느낌을 받았다. '산수화, 이상향을 찾아서' 전시를 보면서도 특별한 감정을 느꼈는데, 이 느낌도 거기에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세히 말할 수 없다. 기다려주기 바란다.(웃음)"
-당신은 지역성을 중시한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장소성은 어떤 것인가.
"장소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내게 어렵지 않다. 그 장소에 직접 가면 느낌이 온다. 그 다음에 그 장소의 배경에 관한 정보를 모아 그곳을 이해하려 한다. 사람들이 그곳을 어떻게 개간하고, 어떤 길을 만드는지, 자연을 어떻게 대하는지 등을 본다. 나는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어려운 건 사회적 연결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왜 그것을 원하는지, 그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바닥에 깔린 진짜 소망은 무엇인지…. 그것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작업 말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부분을 이해하는 재능이 있는데 내게는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당신의 장소에 대한 철학을 한국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다.
"남양성모성지에 대해, 이상각 신부님이 지난 20년간 일궈온 것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그곳의 풍경엔 독특한 공간적 해석과 특정한 신앙의 요소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곳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비판할 점을 얘기해야 하는데….(웃음) 이곳에 있는 목조 공간도 좋았다. 단순하고 긴 형태인데, 거기엔 가톨릭 특유의 제단이 있는 게 아니라 유리가 있었다. 그것은 유럽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양식이다. 그 공간을 보는 것을 통해 신부님이 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했다.(웃음)"
춤토르는 건축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건축을 만지고 보고 듣고 맛본다는 의미"(『건축을 생각하다』)라고 했을 정도다. 그에겐, 건축은 책에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의 모든 감각으로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그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 건물과의 감각적인 교감을 강조해왔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으로 돌아가면, 그건 총체적인 것이다. 어떤 형태(form)가 아니라 분위기다. 좋아했던 공간을 떠올려보라.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고, 어머니 손길에 따라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다. 그런 것은 모두 물질적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역시 그 총체적인 것을 그려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건축은 형태에 관한 거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건축에 대한 큰 오해다. 건축은 좀 더 본질(essence)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집에서 오지 않았나. 그래서 우린 집에 관한 전문가다. 좋은 건물이 왜 좋은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다.”
-당신은 빛의 퀄리티를 강조해왔다.
"당신이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남자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남자와 집에 가면 집안 스위치를 다 끄지 않겠나(웃음). 그것은 분위기를 만드는 거다. 아름다운 그림자를 이용하는 거다. 빛과 그림자는 중요하다. 그림자를 아름다운 양으로 갖는 것은 빛을 갖는 것만큼 중요하다. 어떤 것들은 그림자가 일정 부분 있어야만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
-공간에서 빛을 중시하는 당신은 어두움을 먼저 보고, 어두움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일한다고 했다. 당신이 남겨놓고 싶은 어두움은 뭔가.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교회인지, 철도 관련 프로젝트인지. 내 작업은 형태와 관련 있다기보다 '어디에 빛을 둘 것인가'에 관련된 것이다. 회화 작업과 같은 것이다. 빛이 테이블에 있어야 할까? 벽에 있어야 할까? 얼굴에? 아님 전체에? 이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이란 없다. 어떤 재료들은 강한 빛에서 더 좋아지고, 어떤 것은 그림자에서 더 좋아진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어느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을 자기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과 길, 장소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경험을 해야 한다. 진정한 건축은 사람들이 책 등을 통해 얘기하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니까.”
3. “현대 건축은 거만하고 독선적이다”... 살아있는 전설, 건축가 ‘페터 춤토르’
건축 / 유재형 기자 / 2022-09-12 23:23:23
페터 춤토르에게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건축가가 가지는 최고의 대중적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고도 은둔자로 불리는 그의 작품은 예술적 성취라는 바탕 위에 선 거대한 생각을 말해주고 있다. 취재 차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에 대한 질의를 이어가는 중 30대 후반의 한 젊은 건축가가 그와 연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때가 건축사사무소에 막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였을 겁니다. 선배의 말만 듣고, 피터 춤토로 작품집을 구하려 시내 대형서점에 나갔어요. 서점 여직원에게 물으니 이미 오래전 절판되어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이거 낭패다 싶어 해외 인터넷 서점을 무작정 뒤지기 시작했어요. 기껏해야 20~30만 원 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마존(Amazon.com) 사이트에서 확인한 거래가는 무려 2500달러에 달했습니다. 말문이 박혔죠. 무슨 대단한 고서적도 아닌 것이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치에 육박하다니. 그런데 더 큰 낭패감은 책이 배송되고 난 후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묵직한 것이 겸손하면서도 배짱이 넘치는 작품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마디로 ‘넘사벽’, 자신만만했던 나에게 페터 춤토르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할 수 밖에요(웃음).”
“공감할 수 없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
춤토르는 법정 스님의 유언이 그러했듯이 더는 작품집을 찍지 않겠다며 절판을 선언했다. 이후 그의 유명세를 좇아 책 가격은 무려 10배 이상 뛰었고, 이 일은 그의 작품을 교재로 삼길 원했던 전 세계 건축학도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세상과 등진 ‘알프스 산맥의 은자’가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수도사, 사도, 마법사, 신비로운 사람, 정신적 지도자 따위의 또 다른 별칭을 붙이며 그의 성격을 단정했다.
그러나 건축평론가 한노 라우테르베르크와의 대화에서 페터 춤토르는 “어리둥절해하며 지켜볼 뿐이다”라며 자신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것임을 지적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 학생이나 동료 건축가, 잡지사 기자, 고객들로부터 크고 작은 의뢰나 청탁을 받습니다. 조용히 일을 하고자 대부분 거절한 것이 일종의 전설을 만들어낸 셈이죠. 나를 세상과 단절한 채 TV도 없이 금욕의 생활을 즐기는 영적인 부류로 오해한 것 같습니다.”
그에게 타협을 모르는 투사라는 이미지를 심어 준 계기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건립 중단 사건이었다. 베를린시에서 나치 시절의 기록을 전시할 박물관을 춤토르에게 의뢰했다. 건축 부서 담당자는 부족한 예산은 나중에 승인 날 것이니 먼저 건축에 착수하라고 했으나 약속과는 달리 지원은 끊겼고, 그만 춤토르는 현장을 떠나 버렸다.
하지만, 예산은 겉보기일 뿐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의뢰인과의 의견 충돌이었다. 춤토르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는 건축물은 당시의 일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고요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라고 여겼다. 이른바 배후에 깔린 중용의 의미를 뜻한다. “역사적 상징성을 배제한 건물을 지으면 의미의 진공상태가 만들어지고 건물은 그 자체로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베를린 시는 춤토르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상처가 드러나는 건물을 원했다. 그래서 쉬운 방식으로 역사적 교훈을 드러내거나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의 등고선’이라는 테러의 토포그래피 의미 그대로 화나는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그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문틀과 난간 마무리 등 세목 하나하나까지 살핀다. 건축주의 취지에 공감할 수 없는 작업은 절대 맡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주관이 분명한 건축가였다. 까다로운 성격으로 비칠 수 있으나 건축가의 자존심을 강조했기에 이 일은 그를 응원하는 시민과 건축가들에 의해 전설로 남았다.
자존심의 영역은 건축가의 책임감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평소 “건축주의 간섭이나 건축 규제는 변명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건축가의 책임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도 훌륭한 건축가가 지녀야 할 덕목을 드러냈다. 이 일이 있은 후 콘크리트 골자마저 2004년 철거되었다. 베를린 시는 다시 한 번 현상 공모를 내걸었으며, 2006년 우르술라 빌름스(Ursula Wilms)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존재를 외면하지 않는 ‘포용의 건축’
▲ 테르메 팔츠(Therme Vals)는 미네랄워터 발저(Valser)의 생산지로 유명한 산골 마을 팔츠에 지은 온천 목욕탕이다. 춤토르는 팔츠에서 지붕에 쓰는 편마암을 켜로 쌓아 건물을 완공시켰다. |
페터 춤토르는 할델슈타인이라는 스위스 산간 마을에서 자신이 설계한 다른 건물들처럼 간소한 구조의 목조건축을 짓고 생활한다. 1943년생인 춤토르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평생 가구 목수의 길을 걷기를 희망했으나, 1979년 건축스튜디오를 설립하고 건축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발스에 있는 온천 단지는 알프스 산 중턱에 숨어 있는 데 편마암을 켜로 쌓아 건물을 완공시켰다. 완공된 지 2년 만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인구 1000명의 소도시가 유명 휴양지가 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또한, 브레겐츠 미술관과 쾰른의 콜롬바 미술관 등의 대표적 작품을 완성했다.
2009년에 이르러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필립 존슨, 루이스 바라간, 리처드 마이어, 프랭크 게리, 알바로 시자, 안도 다다오, 렌조 피아노, 노먼 포스터,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 클라우스 형제예배당 내부에서 바라본 천장의 모습, 위쪽의 작은 구멍을 통해 내려오는 빛은 원초적 신비감을 자아낸다 / 브러더 클라우스 교회는 내부를 지지하던 나무거푸집을 3주 동안 태워 외부의 간결한 모습과 대비를 이루는 새로운 조형미를 창출했다. |
유명세에서 뒤졌던 춤토르의 수상은 당시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30년 넘게 작업을 하면서 추종자가 생기긴 했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수상은 국적과 인종, 종교, 사상을 떠나 혁신과 철학적 사고 바탕에 이바지한 건축가에게 프리츠커상이 수여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김주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건축대학 교수는 페터 춤토르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건축의 본질적인 가치를 연구해온 춤토르는 ‘형태와 의미의 낭비’에 대항하여 ‘매우 강인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감을 지닌 건축’을 완성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의 엄격한 사고를 시적인 차원, 영적인 차원’으로 결합시켰다. 지역성과 물질성에 민감한 건축가의 접근법은 우리 건축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춤토르의 대표작인 <클라우스 형제 예배당(Bruder Klaus Chapel)>(2006)은 새로운 감각적 경험의 세계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한 농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스위스의 성인을 기념하는 건물 내부는 112개의 나무 텐트를 거푸집으로 세운 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었다. 3주간 불로 내부의 나무 거푸집을 제거해내고 탄생한 검고 거친 공간은 어둡고 고요하면서도 원시성을 내재한 성소로 탄생했다.
▲ 춤토릉의 목조건축은 목재가 수용하는 변화의 가치를 잘 표현해 준다. |
이 과정에서 생긴 나뭇결과 탄내, 거무스름한 옹이와 껍질 흔적이 그대로 남긴 새로운 건축 스타일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방문객들은 원시적이지만 강렬한 존재감, 빛이 빚어내는 현상으로 건축 자체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되며, 중세의 은둔자들이 침묵 속에서 기도를 올렸던 성소의 분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딸과 떠나는 건축기행> 시리즈로 유명한 이용재 건축평론가는 이곳을 방문해 “자연환경과 재료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는 게 건축이다.”라는 전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저서 를 살펴보면, 춤토르 건축의 특징인 ‘체감’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정적 시각인 ‘View’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 장소의 특성과 그곳에서의 느낌과 경험, 이면의 의미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세계는 “어떤 곳에 지어지는 건물은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철학자 하이데거가 주장한 ‘존재적 건축’과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예순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축계의 중심이 된 춤토르는 LA 카운티미술관 개축 작업을 이어갔다. 미국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현대 건축이 거만하고 독선적이다”라고 비판하고, 오랫동안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소규모 스튜디오 작업을 고집해왔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 외출 나선 춤토르가 선보일 작가적 자존심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세계 최대 건축 시장 미국은 긴장하고 있다.
[ⓒ 우드플래닛. ]
출처 - “현대 건축은 거만하고 독선적이다”... 살아있는 전설, 건축가 ‘페터 춤토르’ (woodplanet.co.kr)
4. 로스엔젤러스 카운티 미술관 -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페터 춤토르의
로스엔젤러스 카운티 미술관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david geffen galleries @ LACMA)
북서측 전경....아메바 형태 지붕의 페터 춤토르 LACMA. 왼쪽 상단에 LA다운타운이 멀리 보인다.
페터 춤토르의 미국 데뷰작인 로스엔젤러스 카운티 미술관 (LACMA) 의 새 갤러리가 순항을 못하고 있다. 얼마전 계획안이 승인을 받아 공사 준비에 들어갔지만 LA지역의 시민단체와 비평가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고있다.
2008년부터 시작한 춤토르의 계획안은 기존의 오리지널 미술관 건물 몇 개동을 허물면서 새로 짓는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이다. LACMA의 본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규모다. 여러번 안이 수정되면서 앞으로 못나가다가 2019년 카운티 의회의 계획안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지역유력지 LA타임스의 미술비평가가 페터 춤토르의 자질을 매우 비하하는 오픈 레터를 올리면서 미술관 디자인에 우려를 표시했다. 2020년 이 비평가는 춤토르의 LACMA 계획안을 분석하는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zumthor in trouble in america?
2020년 LA타임스의 퓰리처상 수상자인 미술비평가 크리스토퍼 나이트 knight 에 의하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페터 춤토르가 미술관 경험이 미약하고 특히 대형 수집 미술관에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중규모의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미술관도 기획전시 중심의 비수집 미술관이었다. LACMA의 어마어마한 콜렉션을 소화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면적이 10,000평 이 넘는다.(347,500 sqft).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제일 큰 콜렉션이다. 춤토르는 미술관을 떠나서도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본다. 사이즈만 보더라도 춤토르의 가장 큰 스위스 발스온천도 LACMA에 비교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소규모 건축에 익숙한 스위스 산골 목공예 출신 노장의 건축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 시민단체는 대로를 횡단하는 춤토르의 계획안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위한 설계경기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래동안 고운정 미운정으로 얼룩진 윌리엄 페레이라의 건물들을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LACMA의 계획은 새로 짓는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에 소장미술품들을 돌아가면서 전시하고, 렌조 피아노의 미술관 (브로드빌딩과 레스닉 파빌리온)에는 전후미술과 기획전시를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일본미술 파빌리온 등 여러 갤러리와 야외 조각공원들이 LACMA를 구성하고 있다.
1층 평면/배치도(위가 북쪽).....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LACMA
galleries over wilshire blvd.
데이비드 게펜 갤러리 david geffen galleries 로 명명된 춤토르의 LACMA 확장 프로젝트는 아메바 형태의 지붕이 윌셔대로를 가로 지르며까지 펼쳐진다. 이제는 LACMA의 대표적 상징 이미지가 된, 2010년경 개관한 렌조 피아노의 톱날 지붕 갤러리 2동이 서측에 접해있다. 1960년대 개관시 건립한 윌리엄 페레이라의 오리지널 빌딩들을 허물고 그자리에 춤토르의 게펜갤러리가 들어서는 것이다. 거기에다 윌셔대로 건너편 남측의 노상주차장까지 "에일리언 타액처럼 점령"하여 휘어감고 있다. 거대한 아메바 드론처럼 교통량이 많은 윌셔대로를 가로질러 일대를 덮고 있다. 갤러리에서 육교브릿지 처럼 수많은 차량의 흐름도 내려다 볼 수 있게 됐다. 대로 위의 미술관? 처음 있는 일이다. 비평가들의 공격 대상이기도 하다.
동측 전경.....윌셔대로를 횡단하는 춤토르의 갤러리
floating galleries
춤토르의 갤러리는 2층으로 구성되어 지상 2층을 전부 갤러리로 쓰고있다. 공중에 떠있는 갤러리 한 층에 모든 전시실이 계획되어있다. 끝에서 끝까지 300m 정도 길이 이다. 아래 지상1층은 9m 높이로 로비, 뮤지엄숍, 카페, 레스토랑, 강당, 사무실 등 지원편의시설이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다. 직사각형 형태로 기둥의 역할도 한다. 기둥이 안 보이는 이유이다. 춤토르 스타일.
동측 view.....floating above wilshire blvd.
1층 평면도 (위가 북쪽). 지원편의시설층....북쪽 끝에서 윌셔대로를 건너 남쪽 끝까지 대충 300m 길이 이다.
북서측 view.....윌셔대로를 가로질러 덮고있다. 하단 톱날 지붕의 건물이 렌조 피아노의 브로드 현대미술관과 레스닉 전시파빌리온이다.
렌조 피아노의 브로드 현대미술관에서 본 춤토르의 갤러리
2층 평면도 ....전시실층
3 types of gallery
세 (3) 타입의 갤러리
갤러리는 3종류로 분리하여 계획했다. 27개의 직사각형 박스를 영국 데본별장에서 처럼 매우 랜덤(?)하게 배치하고 박스 내부는 코어 갤러리, 박스와 박스 사이는 코트야드 갤러리, 그리고 투명 유리벽 외피에 면한 공간은 테라스 갤러리로 구분했다. 지븡 처마가 길게 뻗어나와 테라스 갤러리에 큰 그늘을 만든다.
_코어 갤러리
_코트야드 갤러리
_테라스 갤러리
자연채광
새로운 갤러리 공간 컨셉을 고안해냈다. 자연채광 가시광선의 양에 따라 갤러리를 구분했다. 가시광선에 예민한 미술품들은 박스 상태의 코어갤러리에 전시된다. 테라스 갤러리에서는 덜 예민한 작품이 전시된다. 하지만 첨단 유리 성능과 긴 처마 차양으로 빛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실험적인 컨셉이다. 대신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월등한 관람환경을 제공한다. 인공조명만이 아니고 자연채광이 섞이기 때문에 눈이 덜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자연채광에 노출된 갤러리를 사용하는 것은 보기드물다. 게펜이 처음일 것 같다. 외부 도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눈의 피로감이 덜 하는 것은 물론 방향감각을 잃지않아 가끔 야기되는 어지럼증도 없애준다. (박영우)
코어 갤러리
코트야드 갤러리
테라스 갤러리
테라스 갤러리
영국 데본별장에서 그랬듯이 노출콘크리트 구조와 마감으로 계획했다. 내부 벽체는 트래버틴 효과를 내는 램드콘크리트 rammed concrete 로 마감했다. 이렇게해서 철골구조물을 콘크리트 안에 숨겼다. 샌드 색상의 노출콘 마감이다. 테라스 갤러리에서는 지붕처마를 길게 뽑아 그늘을 떨어트려 최대한 가시광선을 적게하려고 했다. 유리벽 외피도 최고 성능의 빛(가시광선) 차단재를 사용하리라 예상된다. (박영우)
테라스 갤러리
1층 평면 배치도...왼쪽의 빌딩들이 렌조 피아노의 전시관들이다.
북서측 view.... 중앙 하단의 톱날지붕 건물들이 렌조 피아노의 레스닉 기획전시관과 브로드현대미술관 (오른쪽 쌍둥이)
브로드 현대미술관. broad contemporary art museum
렌조 피아노의 톱날지붕 브로드현대미술관(BCAM) 은 2008년 개관하면서 LACMA의 새로운 간판 이미지로 부상하고 있다. 2010년 레스닉 기획전시관이 연이어 오픈했다.
resnick exhibition pavilion. 레스닉 기획전시관
톱날지붕은 LACMA의 간판이미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층 평면 배치도
can he survive this LA controversy?
착공을 위해 일단 기존 윌리엄 페라이라와 HH&P의 건물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고반 govan 미술관장의 노력으로 건립 모금도 목표치(700만달러)에 접근했다. 그는 춤토르의 안을 강하게 변호하고 홍보하고 있다. 2008년 시작한 춤토르의 롤러코스터 LA여정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stay tuned. ciao.
ywp02022022
모래 색상의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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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geffen galleries,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 california, 2008-???
*architect: peter zumthor, haldenstein,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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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zumthor in his home/office, switzerland
peter zumthor in his home/office, switzerland
초기 계획안
references
architectural record (main source)
archdaily
LA times (christopher knight's open letter to peter zumthor)
lacma.org
youtube
wikipedia
flickr
inexhib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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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계획안
*Credits: This talk has been produced and written by Young Woo Park, aia, ncarb. The most of writing has been based on the reference materials above, u.n.o. Please email to the writer above (ywpark5293@gmail.com) in case of having questions or disagreements.
*Copy rights reminder: This talk can not be used or reproduced in other publications on-line or off-line, entirely or partially, without a written consent of the writer.
*Photo Credits: Photos and images are also from the reference materials above, u.n.o. Please email to the writer in case of having questions or disagreements. Thanks.
5.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 - ‘페터 춤토르’ 건축 철학 훔쳐보기
등록 2013-12-03
6. 페터 춤토르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과의 교감"
2019-03-09
대전시립미술관서 '페터 춤토르와의 대화' 성황리 열려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가 9일 대전시립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린 '분위기, 페터 춤토르와의 대화'에 참석해 자신의 철학을 밝히고 있다. 2019.3.9 soyun@yna.co.kr
(대전=연합뉴스) 김소연 기자 = "건축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속에 가지고 있는 영혼과의 교감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76)가 9일 대전을 찾아 자신의 작품 철학을 대중과 나눴다.
페터 춤토르는 "나의 건축에 있어서 분위기는 모든 것"이라며 "건축의 모양, 사용법,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 그 속의 소리까지 모두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또 "재료 간의 조화, 건물의 재질, 태양 빛을 반사하고 어둠을 조절하는 모든 것까지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분위기는 그의 작품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다.
그는 2009년 건축분야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2014년 국내 천주교 성지인 경기도 화성 남양성모성지 내 작은 경당 건축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등 이색적인 행보로 이목을 끌었다.
몇 해 전 남양성모성지 건축 등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선 관장과 맺은 인연으로 이날 대담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서는 최초로 열리는 그의 대중 강연이라 분위기는 뜨거웠다.
신청 첫날 미술관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됐을 정도다.
대강당 자리가 모자라 미술관 생활문화센터서 이원생중계까지 진행됐다. 이렇게 총 340명가량이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페터 춤토르는 작품에서 중시하는 '장소성'에 대해 "모든 장소는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각자의 역사가 있다"며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통해 영감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시를 만든 사람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도시와 그곳을 살아가는 일상에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남아있다"며 "나는 이렇게 역사를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을 건물에 담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다시 역사를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공통된 감정이 있는데, 그것은 기억이나 경험에서 생겨난 것들"이라며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어떤 장소에 가면 그림자는 어떤지, 빛은 어떤지 한 시간 반이 넘게 고민한다"며 "건물은 너무 유행이나 시류를 따라가서는 안 되며, 대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일상의 빛이나 그림자, 주변의 환경을 이용한 건물을 지으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담을 들으러 온 건축가 주서희(28)씨는 "살면서 한 번은 페터 춤토르의 건물을 볼 수는 있을까 하는 상상만 했는데, 이렇게 페터 춤토르를 직접 보게 돼 좋았다"며 "그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작업에 대한 태도와 방식에 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7. 신과 만나는 찻집 - 한은화의 생활건축
입력 2022.04.29 00:18
경기도 화성시 남양성모성지에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9년째 설계 중인 찻집이 있다. 대체 규모가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싶지만, 건축면적은 약 198㎡(60평)로 소박하다. 설계자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 ‘건축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라고도 불리는 이다.
건축주 대표 이상각 신부는 원래 경당(작은 전례 공간)을 건축가에게 의뢰했다. 남양성모성지가 병인년(1866년)에 박해를 받고 처형된 무명의 천주교 신자를 기리는 장소인 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기도처가 세워지길 바랐다. 경당은 춤토르의 전문분야이기도 했다.
독일에 있는 클라우스 경당은 그의 건축관이 집약된 건물이다. 겉에서 보기엔 직사각형 단순한 건물이지만 내부는 위로 작은 구멍이 뚫린 거칠고 검은 동굴 속 같다. 통나무를 움집처럼 쌓은 뒤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직사각형 건물을 만들고 안의 나무를 불태웠다. 나무가 탄 흔적이 콘크리트에 그대로 입혀졌고,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간단하지만 새롭고, 감각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춤토르 건축의 특징이다.
‘티 채플’이 들어설 곳을 둘러보는 페터 춤토르. [사진 이상각 신부]
2014년 남양성모성지를 찾은 춤토르는 경당을 찻집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티 채플’이다. 성지 내 모든 시설물이 충분히 종교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가장 종교적인 체험은 꼭 종교적인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는 오래된 차 문화가 있지 않나요. 종교적이지 않은 곳, 차 마시는 곳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과 만나는 찻집의 자리로 성지 내에 처음 점 찍어 뒀던 자리는 도시개발로 삽시간에 솟아오른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곳이 됐다. 건축가는 다른 곳을 찾아 성지 안으로 파고들었고, 대성당 아래 방치되어 있던 계곡에 새 자리를 찾았다.
티 채플은 한국의 정자 같은 컨셉트로 나무로 지어진다. 가장 독특한 점은 전기를 전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춤토르가 우스갯소리로 만약 전기를 설치하면 다 끊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한다”고 말했다. 찻집의 사용법은 이렇다. 속세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은 뒤 개개인이 차 도구를 들고 들어가 차를 마신다. 인근 아궁이에서 불을 때 물을 끓여야 한다. 편리함을 쫓아 오늘날에 이른 현대인에게 건축가는 가장 원시적인 경험을 권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 돌아보라는 주문이 아닐까 싶다.
원시적이라고 해서 허투루 짓는 것이 아니다. 건축가는 스위스에서 재료 실험에 더해 실물 크기의 모형까지 만들며 이 특별한 찻집에서의 경험을 9년째 매만지고 있다. 비용 걱정에 잠 못 이루면서도 이 모든 과정을 감내하는 건축주의 끈기 또한 대단하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찻집의 탄생이 기다려진다.
한은화 중앙일보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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