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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38. 고트프리트 뵘 Gottfried Böhm

 

1. 건축가 고트프리트 뵘

 

고트프리트 뵘  인테리어 디자이너 / 인테리어디자인   
2017. 6. 7. 21:12


https://blog.naver.com/indian2014/221023934735
 

 


 

 

고트프리트 뵘

 

1920년 독일 오펜바희 암마인에서 출생한 그는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교회 건축가 도미니쿠스의 아들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까지 4대에 걸친 건축가 집안이다. 1946년 뭔헨 기술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파인 아트 아카데미에서 조각공부를 마쳤다. 1947년 부터 아버지 도미니쿠스 뵘의 사무실에서 근무했으며 루돌프 바르의 지도하에 퀄른 재건협회 활동을 하게 된다. 1951년에는 바우만의 사무실에서 6개월간 근무하였으며 미국 여행 중 미스 반 데 로에와 월터 그로피우스를 만나서 영감을 얻게 된다. 1955년에는 아버지의 사무실을 이어받게 되었고 1982년에는 미국 AIA 명예 펠로로 추대 받게 된다. 1986년에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96세의 뵘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가 교육을 받았지만 미술 쪽으로 수학하기로 한 뵘은 건물을 설계할 때 그가 마든 점토 모형을 보면 이때의 경험이 건축가로서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교회, 미술관, 주택 등 다양한 건물들을 설계했지만 특히 공공건축을 많이 설계하였으며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세계, 건물과 주변환경사이의 관계를 창조하는 건축가로 정의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불필요한 형태를 반대하며, 지나친 미니멀한 황량함과 브루탈리즘을 거부하고 하나의 작품에 그 시대를 표현하는 바우하우스의 윤리적 원칙을 신봉하는 건축가였다. 항상 주변 환경과 관계속에서 형태와 재료, 색깔을 고려하여 계획하였으며 따라서 과거의 무의미한 모방이나 역사적인 동향에 대한 과장을 경고하고 인간의 가치를 영적으로 풍부하게 하는 건축을 주장하였다.

 





 

stadtbibliothek ulm

마르크트 광장에서 구 시청사 옆에 있는 거대한 유리피라미드 모양을 한 도서관 입니다. 구 시가지 한복판 위에 위치한 현대식 건물이지만 주변과 잘 어울어 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중앙 도서관이라는 이름처럼 지역주민들의 복지와 연구를 위한 공간이다. 건물의 지하에는 열람실과 행사를 위한 대형 홀이 있다. 모두 54만여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인간 사이의 소통을 모토로 하고 있는 만큼 도서관 내부에 토론에나 소규모 회의가 가능한 작은 방들이 마련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출처] 고트프리트 뵘|작성자 백석대학교

 

 

 

 

 

 

 

 

 

2. 1986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고트프리트 뵘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öhm

1920.1.23 ~

독일 헤센 주 오펜바흐 만하임

 

고트프리트 뵘의 아버지 도미니쿠스 뵘은

(Dominikus Böhm) 독일 전역에 수많은 교회를 설계한 저명한 건축가였으며, 그의 할아버지와 아들까지 4대에 걸친 건축가 집안이다.

 

 

아퍼지 Dominikus Böhm& Gottfried Böhm

2014

1946년 뮌헨기술대학교를 졸업하고, 근교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조각 공부를 마쳤다. 이때 배운 미술적 소양은 이후 뵘이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뵘은 조각 공부를 하며 익힌 점토 모형 제작 기술을 이후 건물 디자인 과정에 적용하고 통합하였다.

1947년:부터 아버지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 루돌프 슈와르츠(Rudolf Schwarz)의 지도 하에 쾰른재건협회(Society for the Reconstruction ofCologne)에서도 재직

1948년: 뮌헨에서 공부할 당시 만난 동료 건축가 엘리자베스 하겐뮐러와 결혼

하겐뮐러는 (Elizabeth Haggenmüller) 뵘의

여러 작품에서 실내 디자인 등을 도왔다.

1951년: 뉴욕 여행 중에 건축가 카제탄 바우만

(Cajetan Baumann)의 건축사무소에서도 6개월을 근무

독일의 저명한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

월터 그로피우스를 만나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다.

 

1955년: 아버지의 사망 이후 사무실을 이어받은 후, 독일 전역에서 교회, 박물관, 사무실, 개인주택, 아파트, 주민센터 등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였다.

*

건축방식의 계보에서 표현주의자 및 포스트-바우하우스 건축가로 여겨지며, 과거와 현재, 이상적 세계와 현실 세계, 건물과 도시 환경 사이의 "연결(connections)"을 창조해내는 건축가로 정의되는 것을 선호하였다.

건물의 색감, 형태, 자재를 대지 및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구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초기 작품은 주조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삼았으나,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점점 철강과 유리를 더 활용하였다.

□ 건축 작품

☆Rathaus Bensberg

1963–1969

bensberg town hall, 1962-1967


 

 

 

 

 

 

☆kirche christi auferstehung

1963-1970

köln

 

municipal theatre ltzehoe ?

☆Böhm's Department Store

1995

Berlin

 

 

☆Kinderdorf Bethanien Refrath

2009

 

☆Nevigeser Wallfahrtsdom

네피게스순례교회

(Pilgrimage Church in Neviges)

2011

Gottfried Böhm의 대표적인 건축

이 교회는 포스트모던 표현주의의 독특한 예로 손꼽히며, 비탈 위에 자리한 순례교회는 비탈을 계단 형태로 변형하여 순례자들이 행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실내 조형에서는 바우하우스의 장식을 배제한 엄격함과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콘크리트 조각이 인상적이다.

 

 

 

 

☆울름 중앙도서관

Uulm Zentralbibliothek

지역 주민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

 

 

 

 

 

 

 

 

 

☆ 한스 오토 극장(Hans Otto Theater)

2006

 

 

 

 

 

 

 

 

3.  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효효 아키텍트-47] 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매일경제  2020.07.31



▲ 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 /사진=wikipedia


[효효아키텍트-47] 1986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ohm, 1920~)의 아버지 도미니쿠스 뵘(Dominikus Bohm, 1880~1955)은 독일 전역에 수많은 로마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교회를 설계했다. 고트프리트 뵘의 할아버지와 아들까지 4대에 걸친 건축가 집안이다.

대성당처럼 중요한 건물의 웅장한 정문을 '포털(portal)'이라고 부른다. 성당의 포털은 단순히 벽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를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도미니쿠스 뵘이 설계한 노이 울름(Neu-Ulm)의 성 요한 세례자성당(1927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울름 성채에서 나온 돌을 사용해 세워졌다.



이 성당의 긴 정면에는 높은 아치형 포르티코(Portico·列柱廊) 3개가 겹쳐 있다. 붉은 벽돌 띠가 포르티코의 아치 위를 지나게 해 아치 형태를 더욱 뚜렷하게 했다. 성당에 들어가는 문 5개 중 3개는 높은 아치로 된 포르티코 안에 있다. 건축가 김광현은 '로마네스크적 포털을 근대적으로 번안한 탁월한 설계'라고 평가한다.

전통적인 바실리카 평면에 기초를 두면서도 표현은 독창적이다. 측랑의 외벽과 내부 기둥이 모두 제단을 향해 틀어져 있어 방향성이 고조된다. 육중한 내부 열주에 비해 상대적인 중량감을 소멸시킨, 마치 접어 구긴 종이와 같은 천장 볼트(Vault, 벽돌·돌 혹은 콘크리트의 연속 아치로 견물을 싸는 자립형 구조)가 디자인의 요체다.



도미니쿠스 뵘은 독창적인 볼트 시공을 위해 그가 직접 고안한 기술을 사용했다. 진한 모르타르를 사용해 라비츠 타입(Rabitz type, 카를 라비츠가 고안한 철사 그물로 보강한 석고벽)의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바닥에서 천장까지 커브진 볼트를 만들었는데 당시 이 건물이 건축 토론의 주제가 됐다.

도미니쿠스 뵘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공과대학에서 수학할 때, 테오도어 피셔(Theodor Vischer, 1862~1938)는 그에게 재료의 적절한 사용과 건설 방식의 감각을 계발시켰다. 피셔는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 1868~1940)에 비견되는 건축 교육자이자 도시 계획가로서 독일공작연맹(Werkbund) 창설 멤버로 제1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08년, 도미니쿠스 뵘은 오펜바흐(Offenbach)의 건축 미술학교에서 선생이 된다. 이후 18년 동안 이 학교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이곳에서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가 2년 동안 뵘에게 배우며 현상 설계에 협동 작품을 내기도 했다. 오펜바흐에서 뵘은 그의 학생인 마틴 베버(Martin Weber, 1890~1941)에 의해 가톨릭 전례 운동(Liturgical Movement)에 접근하게 되고 전례의 새로운 인식에 대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버는 제대 위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로 가톨릭 성당 건축에 최초로 제대를 회중석 가운데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도미니쿠스 뵘은 쾰른 공작학교의 교회미술과 과장이 되어 1934년 나치에 의해 해임될 때까지, 그리고 2차 대전후 다시 교수로 재직했다(1947~1953). 2차 대전 후 1950년대 교회 건축의 두 번째 부흥기에 뵘에게 많은 재건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교회 30개를 포함한 70여 개 실행 작품과 80여 개 계획 작품을 남기고 195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업은 아들 고트프리트 뵘과 손자에게 계승되고 있다. 고트프리트의 네 아들 중 3명(Stephan 1950~, Peter 1954~, Paul 1959~)이 건축을 한다.

뵘의 영향은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대성당의 국제 현상설계(1953·미실행)와 작품집, 제자, 동료들을 통해 국제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건축가로서뿐만 아니라 유리공예가, 제의 디자이너, 작곡가, 문필가로 천부적인 재능의 '총체적 예술가'였다.

도미니쿠스 뵘과 루돌프 슈바르츠는 한국 교회 건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의 독일인 신부 알빈 슈미트(Alwin Schmid, 1904~1978)는 20년간(1958~1978) 한국 내 126곳의 성당 건축을 포함해 가톨릭 건물 188곳을 설계함으로써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현대 교회 건축의 혁신적인 개념과 다양한 실험을 국내에 소개했다. 슈미트의 작품에서는 도미니쿠스 뵘과 슈바르츠의 아이디어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고트프리트 뵘은 1946년 뮌헨기술대를 졸업하고, 근교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조각 공부를 마쳤다. 이때 배운 미술적 소양은 이후 뵘이 건축가로서 활동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뵘은 조각 공부를 하며 익힌 점토 모형 제작 기술을 건물 디자인 과정에 적용하고 통합했다.

1947년부터 아버지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루돌프 슈바르츠의 지도하에 쾰른재건협회(Society for the Reconstruction of Cologne)에서도 재직했다. 1955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독일 전역에서 교회, 박물관, 사무실, 개인주택, 아파트, 주민센터 등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고트프리트 뵘은 과거와 현재, 이상적 세계와 현실 세계, 건물과 도시 환경 사이의 연결(connections)을 창조해내는 건축가로 정의된다. 그는 건물의 색감, 형태, 자재를 대지와 주변 환경 간 관계 속에서 구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초기 작품은 주조된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삼았으나,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점점 철강과 유리를 더 활용했다.

뵘은 기능과 디자인의 독자성, 순수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에 조용히 반기를 든 건축가다. 그에게 건축은 '연결 고리 만들기'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관심을 부정하거나 미화하지 않으면서 건축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된다.

벤스베르크 시청(City Hall Bensberg, 1964~1969)은 근처에 있는 바로크식의 옛 성채에 분위기를 맞춰 고전적인 형상의 중앙 탑과 중앙 광장을 둘러싸는 사무동의 날개들이 조화를 이루는 형식을 취했다. 마치 시민의 광장이면서 동시에 성당 같기도 하고 성채 같기도 한 독일 도시의 고전적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다. 시청 사무공간이 시민들에게 스며들듯이 자리하고 있다.




▲ 네피게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72) /사진=flickr


네피게스 순례교회(Pilgrimage Church in Neviges, 1968~1972)는 포스트모던 표현주의의 독특한 예로 손꼽히며, 교회는 비탈을 계단 형태로 변형해 순례자들이 행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실내 조형에서는 바우하우스의 장식을 배제한 엄격함과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콘크리트 조각이 인상적이다.

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 울름 시내 중심가에 있다. 유리로 된 피라미드 형태로 아랫부분은 가로 29m, 세로 29m이며 전체 높이는 36m다. 건물의 전체 면적은 약 4600㎡다. 지역주민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한다.

[프리랜서 효효]

※ 참고자료 : 교회 건축가 알빈 슈미트 신부의 성당 건축 유형과 디자인 원천에 관한 연구: 도미니쿠스 뵘과 루돌프 슈바르츠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한국건축역사학회, 2007년), 건축가 김광현 칼럼

나홀로 테마여행 | [효효 아키텍트-47] 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 Daum 카페

 

 

[효효 아키텍트-47] 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효효 아키텍트-47] 독일 현대 건축가 도미니쿠스 뵘, 고트프리트 뵘 父子 매일경제  2020.07.31▲ 울름중앙도서관(Uulm Zentralbibliothek) /사진=wikipedia [효효아키텍트-47] 1986년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cafe.daum.net

 

 

 

 

 

 

 

 

4. 고트프리트 뵘 & 피터 줌터 - 콜룸바 미술관 Kolumba museum

 
 

안녕하세요! 작은 건축가 입니다.

이번 건축 답사기는

피터 줌터의 콜룸바 미술관입니다!

저번 포스팅에서는

피터 줌터의 클라우스 수사 예배당을 다뤘었는데요.

이번에 다룰 콜룸바 미술관 또한 줌터의 것이자

쾰른에 지어졌고, 2007년에 완공됐습니다!

이걸 보면서 줌터가 콜룸바 미술관을 설계하러

쾰른에 온 김에 클라우스 수사 예배당까지

설계하고 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콜룸바 미술관은 참 흥미로운 곳입니다.

이곳에 가면 총 세가지의 건축물을 볼 수 있는데요!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폐허,

독일 건축의 거장 고트프리트 뵘의 건물,

그리고 피터 줌터의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한 자리에 세가지 건물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슬픈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독일과 슬픈 역사 하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세계 2차대전을 떠올리실 겁니다.

이 콜룸바 미술관 또한 2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된 성당의 자리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은 로마네스크 형식의

성 콜룸바 성당이 있었습니다.

이 건물이 세계 2차 대전 중에 파괴가 됩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에

고트프리트 뵘이 그곳에 성당을 짓습니다.

성당의 별명은 "Madona of Ruins"

즉 폐허의 성모라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에 성 콜룸바 성당의 폐허,

고트프리트 뵘의 성당을 모두 포용하는

콜룸바 미술관이 들어오게 됩니다.

 

콜룸바 미술관의 전경 출처 : 위키피디아

먼저 고트프리트 뵘의 성당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건물에는 두개의 출입구가 있는데요,

위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입구가 성당의 입구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입구가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성당에 들어오면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요,

"Madona of Ruins"가 있는 성당,

안쪽으로 더 들어오면 성체조배실이 있습니다.

폐허의 성모님이라 불리게 된 계기는

이 성당이 2차세계 대전중에 거의 완파된 가운데,

그 사이에서 저 성모상만큼은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었답니다.

그 후로 많은 신자들이 생겼다고 하네요!

골룸바 성당, 안쪽의 성모상이 "Madonna of Ruins"이다.

이 성당은 평소에는 잠가놓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쪽으로 더 들어오면

성체를 모시는 감실이 있습니다.

뒤에는 기도할 수 있게 의자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럼 콜룸바 성당을 나

콜룸바 미술관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프런트가 있고,

뒤뜰로 나갈 수 있는 문과

콜룸바 성당의 폐허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습니다.

콜룸바 미술관 뒤뜰

뒤뜰로 나오면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의

무너지지 않고 남은 외벽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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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통하는 문을 나오면 성당의 폐허와

그 곳을 지날 수 있는 통로가 나옵니다.

통로는 폐허로부터 간격이 띄어져 있어

폐허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게 합니다.

첫번째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아까 봤던 콜룸바 성당의 성모상 뒤에 있던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이 공간의 특징은 벽돌을 불규칙적으로 쌓아

외부의 자연광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아래쪽에는 원래 성당의 외벽을 그대로 남겨놓고

그 위에는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게

설계한 벽을 설치한 모습이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미술관을

지으려고한 건축가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이됩니다.

또한 앞서 소개해드렸던 클라우스 수사 예배당이

벽에 유리구슬을 박아 내부로

자연광을 끌어들인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겠습니다.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은

꺾이지 않고 일자로 쭉 올라옵니다.

이런 공간은 자칫하면 공간을 낭비할 수 있지만,

층고를 잘 보여주고,

좁고 높은 공간에서 주는 특별한 느낌때문에

저는 이런 계단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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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여러 전시물이 전시돼있는데,

주로 가톨릭 종교에 관한 전시물이었습니다.

설명이 따로 적혀있거나 하진 않아서

어떤 작품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ㅎㅎ;;

그리고 전시실에서 볼 수있는 특징은

위에 달린 창문에서 빛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줌터의 다른 작품인

'성 베네딕트 예배당'의 느낌과 비슷합니다.

 

성 베네딕트 예배당 출처 : @afasiaarchzine

이와 같은 빛은 지금까지 살펴 본

'클라우스 수사 예배당', '콜룸바 미술관',

'성 베네딕트 예배당'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줌터는 이런 빛으로 그 공간 안의 사람으로 하여금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게끔 합니다.

줌터의 여러 건물들을 직접 가보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줌터는 빛을 잘 이용하는 건축가구나 느끼게 되네요.

이번 주말에는 남양 성모성지를

직접 가보기로 계획을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건물을 개방할지는 모르겠네요...

집에만 계시기 답답하신 분들도 인적 드문 곳에

숨겨진 여러 건축물들을 답사해보는 게 어떨까요?

남양성모성지를 가게 되면 사진을 많이 찍어

꼭꼭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출처 - 피터 줌터 - 콜룸바 미술관 Kolumba m..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5. 나의 사적인 미술관, 콜룸바

 
 

 


Kolumba

 

거대한 유리창에 드리운 손으로 짠 실크 커튼을 뚫고 햇살이 들어온다. 미술관 바닥에 한 점의 추상회화처럼 기하학적 패턴의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 옆 벽에는 14세기에 상아로 만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 흘리는 하얀 육체가 걸려 있다. 금욕적 질서로 채워진 수도원 같은 이곳은 독일 쾰른에 있는 미술관 콜룸바. 이곳은 시간, 성스러움, 아름다움에 관해 가장 사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이다.

위대한 예술이 그렇듯, 그것은 범우주적이기도 하다. 쾰른 대성당에서 도보로 6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나는 훌륭한 미술관이 지녀야 할 덕목을 다시금 생각했다. 미술관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술관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품기 마련. 세월을 이겨낸, 역사의 모진 풍파를 피해 살아남은, 멸종위기의 동물처럼 기필코 보호되어야 할 운명에 처했던 물건들이 모인 장소가 미술관 아니던가. 노아의 방주처럼, 미술관은 아름다운 것들의 피난처인 셈이다. 콜룸바가 전쟁으로 파괴된 성당 위에 세워진 미술관이라는 점은, 그러한 미술관의 본질로 우리를 인도한다.

콜룸바의 터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한 건물에서 2천 년의 서양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라는 미술관의 안내처럼, 그곳에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다투지 않고 앙상블을 이룬다. 본래 고딕식 성당이 있던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 대부분과 함께 파괴됐다. 1949년, 머나먼 고대의 유적지처럼 폐허로 남은 이곳에 건축가 고트프리트 뵘(Gottfried Böhm)의 설계로 작은 팔각형 성당이 지어졌다. 고딕 양식의 마돈나상을 안치해 ‘폐허의 마돈나’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1989년 쾰른 대교구가 이곳을 인수했고, 1997년부터 미술관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공모를 통해 미술관 설계를 맡은 주인공은 ‘건축계의 수도승’이라 불리는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그는 장소의 역사를 감싸안는 미술관을 설계한다. 콜룸바는 서구 현대건축 거장들의 조우이자, 건축 속의 건축, 미술관 속의 미술관, 미술관 속의 성당, 미술관 속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하지 않은 미술관의 건축 때문에, 그리고 고대유물과 현대미술을 병치한 특유의 전시 방식 때문에, 2007년 문을 열자 곧장 명소가 되었다. 회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단조로운 외관의 건물로 들어서면, 페터 춤토르 특유의 강박에 가까운 절제미가 공간 곳곳에서 오라를 풍긴다. 1층 로비를 가로질러 안쪽의 공간으로 들어서면 미술관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고고학적 유적지’처럼 펼쳐진다.

 

관람객은 로마와 중세 시대의 석조 유적을 다리 아래로 가만히 들여다본다. 페터 춤토르는 미술관을 위해 특별 제작한 연한 회색 벽돌 사이에 구멍을 만들어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미술관 내부에 다채로운 모습이 연출되도록 하였다. ‘필터 벽’이라 불리는 건축적 장치는 중세 성당의 스테인리스글라스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창을 통해 들어온 영롱한 빛이 ‘말씀’처럼 공간을 감싼다. 다리를 지나, 비밀스러운 야외 정원으로 나가면 리처드 세라의 강철조각과 만난다. 먼 옛날 건축의 일부였던 붉은 벽돌과 미술관의 회색 벽돌, 세라의 조각이 대조되니 시간의 흐름을 명징하게 시각화한다.

페터 춤토르는 미술관이 열린 날 이렇게 말했다. “좋은 삶은 많은 인내가 필요해요.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많은 도시가 센세이셔널한 형태의 건축에만 관심을 두고, 작품은 마이너한 역할을 합니다. 흔히 ‘빌바오 효과’라고 하죠. 이곳에 오면 다른 걸 느낄 겁니다. 그것과는 반대의 의미로, 미술에서 시작하는 거죠.” 그의 말대로, 콜룸바가 단순히 유명 건축가의 명성에만 기댄 허울 좋은 미술관이었다면, 이토록 많은 이에게 회자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의 컬렉션과 전시는 건축만큼이나 훌륭하다. 아니 그것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수집품은 건축처럼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을 아우른다. 미술관은 모든 예술 창작물의 결합 요소인 측정, 비율,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컬렉션의 주요 테마라고 강조한다. 이런 컬렉션이 16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전시실 곳곳에 놓여 끝말잇기를 하듯 사색의 순간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예를 들어, 황금색 벽과 옷걸이, 코트 등으로 구성된 야니스 쿠넬리스의 연극적 설치작품은 로마 황제의 두상들과 함께 놓여 한 편의 시적 풍경을 만든다. 소장품 대부분이 종교에 관한 상징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탐색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재석(<아트인컬처> 편집장)

 

출처 : 나의 사적인 미술관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harpersbazaa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