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
제임스 스털링(Sir James Frazer Stirling, 1926년 4월 22일 ~ 1992년 6월 25일)은 영국의 건축가이다.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박 기술자였다. 리버플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후 1953년 런던을 중심으로 다른 건축가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1956년 건축사무소를 개설하여 당시에 지배적이던 국제주의 양식과는 무관한 독특한 여러 근대적인 건물들을 내놓기 시작하였다. 케임브리지의 처칠대학 공모전(1959), 라이체스터 대학교 공학관(1959∼1963) 등이 그것이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하여 독창적인 많은 디자인이 나왔다. 그 이후부터는 그의 보조 건축가인 M.빌포드와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성(聖) 앤드류 대학 소재의 미술센터 계획안(1971), 발라프-리하르츠 박물관 공모전 출품작(1975),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확장 계획안(1977:1984년에 개장)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붉은 벽돌과 판유리로 된 온실이 서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형태의 정교함이 대담하게 드러난다. 또한 그는 모든 예술적 창조가 지니는 의도적인 성격을 받아들였고, 1945년 이후의 많은 건축물들을 병들게 했던 위선적인 결정주의로부터 그 자신 스스로 자유롭고자 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레스터 대학 공학부 건물>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학부 건물> <하버드 대학 포그박물관> 등이 있다.
2. 제임스 스털링 James Stritling
박영우 건축가
2019. 6. 19.
제임스 스털링
제임스 스털링은 1926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리버풀대에서 건축을 공부한다. 건축역사학자 콜린 로우 colin rowe 밑에서 사사도 했다. 후에 스털링의 진로에 영향을 준다. 학교를 떠나 1956년 런던에서 사무실을 연다. 파트너 제임스 고완 james gowan 과 함께 설계한 레체스터대의 엔지니어링빌딩과 캠브리지대의 역사학과 건물이 유명하다. 처음에는 코르뷔지에 등 모더니즘을 따라간다. 약간의 러시안 구성주의도 가미되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현란한 하이테크의 퐁피두센터와 찰스 무어와 마이클 그레이브스, 리온 크리어 등의 복고주의에서 안티모던의 힘을 얻는 것 같다. 이후 하이테크가 가미된 낭만적 고전주의 경향을 보이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몰입한다.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은 이런 건축적 태도의 집대성이다. 런던의 넘버원폴트리로 정점에 이르는 것 같다. 허지만 유작이 되고만다. RIBA골드메달 1980 과 프리츠커상 1981을 받았다. 작위도 받았다. Sir James Sterling. 탈장 증세로 1992년 66세의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타계한다.
partner james gowan (L) and stirling
1956년 제임스 고완 gowan 과 설계사무소를 시작한다. 파트너 고완과의 7년여동안 레체스터대학 엔지니어링빌딩과 캠브리지대 역사학과건물을 설계한다. 매우 많이 홍보된 건물들로 모더니즘의 경계에 있던 건물들이다.
1970년대 중반 독일 뒤셀도르프미술관 현상설계 (1975) 를 하면서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다원적 콜라주의 포스트모던 성향이 강해진다. 1977년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설계경기에서는 완전 포스트모던에 올인한다. 소위 하이테크의 낭만적 고전주의다. 당시 찰스무어의 피아짜 드이탈리아와 퐁피두센터의 영향이 커 보인다.
한편 1968년에 슈투트가르트대에서의 건축공부를 포기하고, 모더니즘에 회의적인 낭만적 복고주의자 리온 크리어 leon krier 가 런던 스털링 사무실에 합세한다. 4년여 동안 머무른 후 런던 AA 스쿨에서 유럽의 전통 도시를 재건해야한다는 뉴어바니즘 new urbanism 을 강하게 설교한다. 인터내쇼날 스타일에 반기를 든 안티모더니즘이다. 이런 상황이 스털링의 낭만적 고전주의에 크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뒤셀도르프 미술관 설계경기안, 1975, unbuilt
실현되지 못한 뒤셀도르프 미술관 계획안에서는 르 코뷔지에의 경사로에 이태리 팔라조, 로턴다, 아케이드 등 복고적 건축어휘들이 등장, 사용되기 시작했다. 안티모더니즘 용어들이다. 리온 크리어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and vice versa.
leon krier. 유럽의 전통적 도시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낭만적 고전주의의 안티모더니스트 리온 크리어.
콜린 로우 의 콜라주 시티 collage city,1979.
콜라주 시티에서는 천편일률적인 일원성 건축이 아닌, 문맥주의와 다원주의 pluralism 를 강조하는 건축과 도시를 제안한다.
colin rowe
contextualism
건축의 문맥주의와 다원성을 도입하는 스털링의 태도에는 콜린 로우 colin rowe 의 영향이 있다. 19세기 건축과 신과 구의 중첩을 많이 언급한다. 바우하우스의 "역사는 없다"는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는 있다"는 태도다.
물론 이런 안티모더니즘적 태도의 근저에는 리버풀대에서 스털링의 은사였던 건축역사학자 콜린 로우의 영향이 지대하다.
제임스 스털링. 40대
스털링 건축 key words.
context. 신과 구의 중첩. 진지함과 장난기. aloof. naughty. 도발적. 르코르뷔지에. 퐁피두센터. 브리티시 하이테크. 콜린로우. 리온크리어. 19세기. 낭만적 고전주의.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절충주의. 마이클윌포드. 제임스고완.
from britannica.com
제임스 고완과 함께...
슈투트가르트 에서
슈투트가르트 에서
selected works of james stirling
● neue staatsgalerie, stuttgart, germany, 1977-1984, with michael wilford
슈투트가르트 주립미술관, 독일
neue staatsgalerie, stuttgart, germany
"퐁피두센터가 가미된 코르뷔지에의 로마 유적들"
"로마의 유적"
"땅 속에 묻힌 로마의 유적들"
neue staatsgalerie, stuttgart, germany
● no. 1 poultry, london, uk, 1985-1997, with michael wilford
넘버원 폴트리, 런던
no. 1 poultry, london, uk
no. 1 poultry, london, uk
● engineering building, leicester university, 1959 (with james gowan)
레체스터대 엔지니어링빌딩, 영국
engineering building, leicester university
engineering building, leicester university
● history faculty building, cambridge university, 1964-1967
캠브리지대 역사학과 건물, 영국
history faculty building, cambridge university
history faculty building, cambridge university
ciao.
ywp06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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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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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국 건축계의 거장, 제임스 스털링 대표 작품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
영국의 현대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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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1926.4.22 ~ 1992.6.25
국적: 영국
활동분야: 건축
출생지: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주요수상: 알바 알토 메달(Alvar Aalto Medal)(1977),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 금메달(1980), 프리츠커상(1981), 프리미엄 임페리얼상(Praemium Imperiale)(1990)
제임스 스털링은 영국출신의 건축가로써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 3대 프리츠커 상 수상자입니다. 서거한지 14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영국의 건축가로서 이름을 남긴 유명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특정한 하나의 스타일보다는 자유로운 발상을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형태주의적인 건축가였으며, 초기 디자인은 건물의 미적 측면과 실용적 필요를 모두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리버풀 예술대학교에서 건축학을 배웠고, 그 시기 고전주의 건축의 디테일과 역사성의 건축물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다고 합니다. 또한 콜린 로우의 지도하에 근대건축의 원리를 접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이후 제임스 스털링의 건축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제임스 스털링의 건축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스털링의 건축 작품의 초기 경향이 모더니즘, 그 이후 브루탈리즘, 1960 - 70년도에는 기술적 낭만주의, 1975년 탈 근대주의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제임스 스털링의 대표 작품 입니다.
레스터 대학 공학관(1959)
(University of Leicester)
제임스 스털링과 제임스 고원의 공동 작품으로 유명한 레스터 대학의 엔지니어링 건물입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후기 디자인에 영향을 받은 적벽돌 건물이며, 탈 공업화 시대에 어울리는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은 건물입니다.
사선의 도입으로 건물 전체를 역동적으로 표현하였고, 명확한 기능의 배분(전면의 수직동은 승강기와 계단, 쐐기형 강당 공간 등 확장이 불가능한 시설)으로 과학적이며 교육적인 형태로 건물을 세웠습니다.
후면 건물은 창고처럼 계속적으로 공간을 재 정비 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전체건물이 고정된 특별한 행위와 다양한 변화 상황의 결합으로 읽혀져야 한다고 스털링은 말했습니다.
외벽의 주재료는 적벽돌, 타일, 유리, 콘크리트는 골조 프레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국 하이테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1977-1984)
고전주의 명작을 대담하게 활용한 미술관
싱켈의 베를린 구 박물관을 본떠 원형 중심에 둔 고적주의적인 설계를 활용한 제임스 스털링의 대표 작품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입니다. 이 미술관은 기존의 슈투트가르트 국립 미술관을 증축한 것이며, 국제현상설계에의해 포스트 모더니즘을 잘보여주는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근대와 고대를 적절하게 대립시킨듯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제임스 스털리은 자신의 작품은 현대건축의 진화론적 국면을 드러내어 전통주의적인것부터 극단적인것 모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독일의 슈트가르트 미술관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극단적인 방법을 대린하면서도 서로 균형을 취하며 같은 건물에 융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추상적이고 고전적인 동시에 장식적인 입구의 캐노피, 조각전시장이 있는 ‘마네크스 풍의 아치’, 회하전시장의 ‘이집트식 코니스’, 건물 내부 원형 공사간의 ‘돔 없는 돔’등 감각의 요소들을 교묘하게 대립시켜 놓아 극적인 효과를 연출합니다.
수준 높은 포스트모던 건축물로 꼽히며, 다양한 조형요소가 잘 통합되어 있습니다.
플로리빌딩(1966-1971)
제임스 스털링의 형태적인 건축 요소들에는 보행인의 흐름을 유도하는 것으로, 일종의 순환체계를 가진다. 원칙적인 요소는 접근방법, 입구형성방법, 통로의 구성, 통로와 공간과의 관계, 통로 공간의 구성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러싸인 긴 통로공간, 암시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스털링의 작품에서 보행로가 담당하는 역할은 블럭의 형태 및 배치 입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본형의 추구는 기하학적인 기본형에서 부분삭제를 하는 것은 보행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채택되며, 기하학적 조합은 스털링이 지나고 있는 신 고전준의적인 경향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변화는 건전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작품은 많이 변화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와 미래를 왕복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
[출처] 영국 건축계의 거장, 제임스 스털링 대표 작품|작성자 이아 건축
4. 3번째 프리츠커상 제임스 스털링의 이야기
오늘의 포스팅 주제는 바로 프리츠커상 3번째 수상자 제임스 스털링입니다.
1926.4.2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건축의 거장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그는 영국 출신의 건축가로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영국의 대표건축가로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그는 아직까지도 영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제임스 스털링을 추모하는 그의 이름 딴 스털링 상 까지 생길정도니깐요.
제임스 스털링 James Stirling(1926~1992)
영국 건축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
1945년에 제임스 스털링은 리버풀대학교에서 건축학과를 입학을 하며, 건축에 길을 걷게 됩니다.
제임스 스털링은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고전주의적 건축양식과 역사성이 있는 건축작품에
대해 깊은 지식을 쌓았고, 콜린 로우라는 건축가의 지도하에 근대 건축의 원리를 접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제임스 스털링의 건축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50년에 졸업을 하고 그해 초에 런던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렸으며,
1956~63년에는 제임스 고원이라는 건축가와 함께 일을 하고 71년부터는 마이클 월퍼드와 함께 건축의 역사를 썼습니다. 초창기에는 누구나 그렇듯 주택 작업을 많이 했으나, 신야수주의 양식을 사용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고,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9년만에 레스터대학 공학관 건물을 비롯한 3가지의 주요 건물을 신야수주의 양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변화는 건전한 것이다.
제임스 스털링의 작품은 초기에는 모더니즘의 성향을 띄는 건축을 많이 했고, 두번재로 변하게 된 양식은 브루탈리즘 60~70년도 사이에는 기술적 낭만주의 75년에는 탈 근대 주의의 성향을 뜨는 정말 많은 변화를 이룬 건축가 입니다. 모든 건축가는 자신의 독창성과 자신만의 세계관을 건축에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제임스 스털링의 대단한 점 하나가 바로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트랜드를 따라 변화면서도, 자신의 독창성을 잘 표현 한 점입니다.
모더니즘은 많은 분들이 많이 아실텐데, 브루탈리즘에 대해서는 많이 생소하실 꺼에요.
‘브루탈리즘’
5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건축의 양식으로 르 코르뷔지에 의 후기 건축과 그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을 말하는 것인데, 첫 시작 54년도 피터 스미슨과 앨리슨 스미슨 부부의 한스탄튼 학교 건축에서 시작이 되였고, 우아한 미의 중점인 서구 건축에 대하여 야수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건축양식입니다.
‘기술적 낭만주의’
지역성이 강한 건축 기능성과 기술을 최대한 조화롭게 선보이는 제임스 스털링의 건축방법 의 하나로, 실용성을 살리면서, 표준화된 공업 제품을 건축입면부의 재료로 사용하며 불리게 된 한시기의 건축양식
“건물형태가 거주인의 생활양식과 건물의 용도를 암시하고 있다”
제임스 스털링의 유명 작품으로는 건축 초창기 제임스 고원과 함께 작업한 레스터대학의 공학관 입니다. 사선의 도입으로 역동적인 표현을 살렸으면, 공간에 따른 기능의 배분으로 건물 형태가 정말 독창적이게 나왔으며, 이러한 건축은 르 꼬르뷔지에의 후기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탈 공업화 시대와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건축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유명 작품으로는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이 있습니다. 이 미술관을 작업했을 때 제임스 스털링의 건축성향은 포스트 모더니즘이였습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이 미술관에 근대와 고대를 정말 아름답게 조화시켰다고 할 정도로, 추상적이면서도 고전적인 건축물이 탄생하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이번에는 프리츠커상 3번째 수상자 제임스 스털링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출처 : 3번째 프리츠커상 제임스 스털링의 이야기 (tistory.com)
5. 전후 영국 건축계의 거장 제임스 스털링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으로 리버풀대학 건축학부에서 공부한 스털링은 특정한 하나의 스타일보다는 자유로운 발상을 근간으로 한 형태주의를 추구했으며, 초기 디자인은 건물의 미적 측면과 실용적 필요를 모두 강조하였다. 1950년대 당대 유행하던 모더니즘 영향을 받았다. 1956년 런던에서 제임스 고완(James Gowan)과 같이 사무소를 열었다.
스털링은 1971년 마이클 윌포드(Michael Wilford)와 협력하기 시작하여 미술관, 갤러리, 도서관, 극장 등 프로젝트 규모와 숫자를 확대한다.
1981년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후 후기 작업에서는 맥락주의(contexrualism)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결합하고 있다. 영국 런던 클로어 갤러리(1982. 데이트 갤러리 확장),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신관 등 미술관 건물들에서 역사적 건물을 참조·인용하여 세부를 설계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과 주변 도시 환경과 관계성을 중시하는 맥락주의를 적용하였다. 맥락주의는 언어는 단독으로 의미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문맥(context)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철학 사상에서 나온 개념이다.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신관은 중심가 문화지구 내에 있다. 구관 건물과 전면 도로, 뒤쪽 주택지를 오가는 동선까지 고려했다. 파동 치는 곡면 유리, 모자이크 효과를 주는 황톳빛 돌벽과 선명한 원색 파이프(난간) 등 조합으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태적 건축 언어를 나타낸다.
용지 서측 전면 큰 도로에서 들어오면 트래버틴 대리석과 샌드스톤의 줄무늬 벽을 끼고 경사로와 계단으로 갈라진다. 그 위에는 적색과 청색으로 도장한 스틸 프레임의 유리 박공 지붕 포털이 있다. 미술관 주출입구는 현관 입구에서는 폴리크롬의 스틸앤글래스의 캐노피와 새빨간 회전문 원통 두 개가 로마의 유적과 같은 석벽과 무척 대조적이다. 미술관의 중심은 조각 정원의 로텐더(rotunda : 지붕이 둥근 원형 건물) 테라스다. 미술관은 로텐더를 중심으로 전시관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왼쪽이 합쳐지는 구 미술관이다. 오른쪽이 캄머시어터(kammertheater)이다.
추상적이고 고전적이며 장식적인 입구의 캐노피, 조각 전시장에 있는 '로마네크스풍 아치', 회화 전시장의 이집트식 코니스(cornice : 건축 벽면에 수평의 띠 모양으로 돌출 부분), 건물 내부 원형 공간의 '돔 없는 돔' 등 각 요소들을 대립시켜 극전인 효과를 연출한다. '돔 없는 돔'은 중정의 전통적인 공간감과 상징성을 나타낸다. 내·외부 공간의 조합으로 건물과 하늘이 건물 내부에서 맞닿는 곳을 말한다.
스털링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고전적 양식과 도시의 전통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현대적인 기술을 도입하였고, 벽돌과 유리, 콘크리트 등 다양한 재료를 두루 사용하여 독창적인 형태의 공간을 설계하였다. 그의 작품은 1970년대 건축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1987년 스털링의 설계로 클로어 갤러리(the Clore Gallery)를 완공한다. 19세기 영국 최고의 풍경화가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가 기증한 1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후 '테이트 리버풀' '테이트 세인트 이브스' '테이트 모던'을 차례로 개관하면서 5개 미술관으로 이루어진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가 완성된다.
스털링 사후 1996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 최고상인 스털링 상이 제임스 스털링 이름을 따 제정되었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 자료 : 세계 건축가 해부도감, 박영우 건축가 블로그
6.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관 신관(Neue Staatsgalerie in Stuttgart, 1984)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에게 프리츠커를 안겨 준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이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스털링 커리어의 중반기인 1983년에 지어졌는데, 그의 또 다른 대표작들인 레이세스터 공학 대학Leicester Engineering Building과 캠브릿지 역사 도서관Cambridge History Faculty Building이 1960년대, 커리어 초기에 해당하는 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동선의 중첩과 건축적 산책로, 도시적 맥락을 고려한 건물이라는 점에서는 모더니즘을, 전시장의 구성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입면이라는 관점에서는 신고전주의를, 비교적 작은 요소들의 다양성과 콜라주적인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연상시키는 건축물로, 서로 다른 건축의 세 가지 설계 이론을 통합한 건물로 평가받는다. 다만 하나의 이론적인 갈래에서 평가받는 것을 꺼려하는 건축가들이 늘상 그렇듯이, 스털링은 이 건물을 포스트모더니즘 건물로 설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절반 정도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극히 역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석재 타일과 직선적인 매스와는 달리, 난간, 차양, 캐노피 등은 철제 부재들을 조립하여 공학적이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 필요한 비례와 디테일에 비해 다소 큰 비례와 과한 디테일이 적용된 점, 채도가 높은 색채를 이용해 건축 요소들이 장식적인 오브제로 읽히게 한 점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다.
노란 모서리 기둥은 역사적 형태의 기둥을 추상화한 것으로, 독특한 존재감을 뽐낸다. 전체적으로 밝고 장난스러운 인상을 건물에 더해주는 요소들.
입구의 방풍문 역시 흥미로운 형태와 색채를 띠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의 상징인 녹색 창틀의 개구부. 입구, 수직 동선, 카페, 중정 등의 공간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고전 건축의 균질한 입면과 단단함을 깨뜨리고, 외부와 내부를 섞어내어 외부에는 입구, 프로그램, 동선에 대한 정보를, 내부에는 채광과 공간감을 제공한다.
미술관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도 미술관을 둘러보고 관통할 수 있는 경사로가 배치되어 있다.
정형적인 건물과 대비되는 비정형적인 곡면 창은 이 창의 내부 공간이 위계가 높은 공간임을, 곧 입구이자 동선을 분배하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두꺼운 철제 파이프로 만들어진 난간은 독특한 무게감과 중압감으로 건물과 어울린다. 난간이 얇았다면 건물의 무게감에 눌려서 그냥 없으면 더 좋았을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 미술관의 중심 역할을 하는 원형 광장이 나온다.
원형 광장으로 들어가려면 미술관 내부를 관통해야 한다. 도시의 산책자가 가능한 것은 이 원형 광장을 두르며 올라가는 경사로를 따라 걷는 것이다. 광장과 미술관을 이어주는 문 앞에는 고전적인 기둥과 보를 두어서 역사적인 맥락, 코드화된 건축 어휘를 그대로 제공한다.
그 문의 반대편에는 미술관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동선이 배치되어 있다.
경사로 끝에서 바라본 광장. 부분적인 요소들은 자유롭지만, 전체 조형을 관장하는 축과 기하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는 길. 미술관이 가로에 길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보행자를 배려하기 위한 길이기도 하며 건축물이 단일 건물이 아니라 건물군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도시적 스케일의 아이디어이기도 하다(실제로는 단일 건물이다).
건물 뒤쪽의 환풍구가 재미있게 생겼다. 위트 있다.
성큰 가든에서는 고전적인 어휘와 포스트모더니즘 어휘의 어울림을 볼 수 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마감재는 의도적으로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석재로 골랐다.
음침한 날씨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광경.
미술관의 입구이다. 동선과 직각으로 조형된 캐노피가 흥미롭다.
로비의 모습. 오른쪽으로 로비의 창이 보인다. 학생이라면 모든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여기도 작품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미술 애호가라면 몇 시간이 있든 부족할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은 관람 동선이 정해져 있는 미술관이라, 동선이 자유로운 현대미술관에 익숙한 사용자라면 조금 어색할 수도 있다. 우리도 역순으로 가려다가 제지를 받았다. 아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미술관에 동선이 있냐?
2층에 전시장들이 모여 있다.
선박의 등 같은 이런 요소들은 또 굉장히 모던하다.
작품들에 관해서는, 미술을 잘 몰라 할 말이 없다. 대략 중세 유럽의 기독교 회화에서부터 시작해서 21세기의 현대 예술까지, 폭넓은 소장품들이 있다. 백남준, 파울 클레,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에두아르 마네, 마르크 샤갈, 외젠 들라크루아,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마그리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반니 자코메티,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 것이 이 정도다. 1700년대 이전 회화들은 아예 화가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자연광이 드는 천창이 아니라, 형광등이 설치된 이중 천장이 있다.
전형적인 신고전주의식의 전시장 배치를 따르고 있다.
이건 바우하우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좀 재밌는 작품이었다.
전시장을 반 바퀴 돌면 또 다른 동선 분배 지점인 스털링 홀이 나온다. 과장된 기둥이 대칭선 위에 딱 박혀 있다.
미스 반 데 로에의 의자가 미술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고급스럽고 편하다.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나같은 미술 문외한은 더더욱... 미술 미궁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다. 출구도 찾기 힘들고. 그림도 한두장 오래봐야 재밌지 이건 백화점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게 더 재밌다. 여기에 고급진 실링이 있어야 할 것 같지? 자 실링. 이런 말을 듣는 것 같다.
간신히 빠져나와서 광장으로 향했다.
신성한 기하학과 그렇지 않은 요소라고 할까? 어몽어스를 하는 귀족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참 재밌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완성도가 정말 높아서 좋았고, 내 취향이 아닌 건물임에도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엄격하고 숭고한 느낌을 주던 건물들과는 다르게, 시뮬라크르의 길티 플레저가 있는 건물이다.
바이바이 슈투트가르트 미술관~
[출처] 여행, D+11, 독일, 슈투트가르트|작성자 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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