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32. 루이스 바라간 Luis Barragán

 

1.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Luis Barragán

 

 

멕시코 출신의 건축가. 3세계의 문명과 자연을 현대 건축공간과 조화시킨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1980년 건축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1902년 멕시코의 과달라하라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며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24년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으로 건너 가 프랑스와 그리스, 에스파냐를 여행하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이론 및 국제주의와 모더니즘 건축을 체험했다. 특히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궁전에서 감명을 받았다.

 

루이스 바라간은 고향에서 주택과 조경 일을 하다가 1931년 다시 파리로 가서 르 코르뷔지에의 강의를 듣고 건축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정원을 마술적인 공간으로 인식한 화가이며 조경학자인 페르디난드 바크(Ferdinand Bac)를 만나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흐르는 물을 공간에 삽입하는 방식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건축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후 그는 화가 추초 레이예스(Chucho Reyes), 마티아스 고에리츠(Mathias Goeritz)와 교류하며 토속 문화의 향취가 깃든 현대 건축의 가치관을 확립했다.

 

바라간의 건축은 간결함과 최소한의 건축언어로 고요함 속에서 강렬함을 추구한다. 더불어 평화와 휴식, 기쁨 그리고 종교적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바라간은 멕시코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1980년 건축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47년 설계해 1948년부터 거주한 자택 '바라간 하우스'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는 1988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활동했다.

 

바라간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집은 내 삶의 피난처다. 나는 차가운 기능적 편리함의 건축보다 따뜻한 감성의 건축을 믿는다. 현대 건축은 기술적 문제에 천착해 미()의 메시지와 감성을 잃고 있다... ''의 원래 역할은 공간의 기능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주요 작품에는 바라간 하우스 Barragán House(1947~1948, 멕시코시티), 카푸친 수도원 Chapel for the Capuchinas Sacramentarias(1952~1955, 멕시코시티 트랄판), 산 크리스토발 주거단지 San Cristóbal Stable, Pools and House(1967~1968, 멕시코시티) 등이 있다.

 

[출처] 루이스 바라간 | 두산백과

 

 

 

 

 

 

2.  프리츠커상 2번째 수상자 루이스 바라간

 
Cheol LEE 2020. 3. 12. 16:01

 

루이스 바라간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역대 프리츠커상 2번째 수상자 이며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고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가로 뽑혔습니다멕시코의 전통적인 건축과 서구의 모더니즘을 절묘하게 조합신 그는 스스로를 조경가라 말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건축가로 분류하고 있어요그의 작품 또는 건축물들은 조형성을 강하게 띄고 있고건축과 정원과 조형물을 서로 구분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오브젝트라는 개념으로 다루는 그의 건축일생 지켜보시죠.

 



루이스 바라간 / Luis Barragan 1902~1988

 

어린시절 기억들의 대부분은 우리 집이 가지고 있었던 시골 농장이 많이 남아있다.

언덕에 인디언 토속 주택이 많이 있던 곳으로 주택의 타일지붕과 호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 처마들이 기억납니다.

.

.

.

애석하게도그 마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은 없습니다오직 제 기억 에만 살아있습니다.”


 

 

그는 독특하게도 여행을 다니면서 건축을 독학을 한 정말 멋진 건축가 중 하나입니다그는 자비를 털어 황량한 땅을 사서 수년간 직접 집을 지으면서, 22세 때 2년동안 유럽을 여행하며전세계의 건축을 건축을 체험을 했다고 해요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는 자연을 이용하는 모로코등 북아프리카 건축을 여행을 통해 습득하며추초 레이예스마티아스 고에리츠와 교류를 하며 토속문화가 깃들은 현대 건축의 가치관을 확립을 했다고 해요.

 

 

문명과 자연을 현대 건축공간과 조화시킨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


나의 집은 내삶의 피난처다

.

.

.

의 원래 역할은 공간을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보호하는 것임을 돌아봐라

 

 

 

 

루이스 바라간은 사비를 털어 하날 멕시코시티 외곽에 집을 건축합니다.

그것은 훈날 현대 건축의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온 멕시코 전통적요소와 현대적,예술적요소를 접목 시킨 집과 스튜디오(Barragan House)라고 불리게 됩니다그렇게 그의 건축은 모더니즘 운동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한 하나의 건축물로 다른 문화의 전통화 예술 형식을 통합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물은 소박한 외관을 가진 것 말고는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더니즘 운동이 강하였고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과 당시 건축의 사상은 맞지 않아서 더욱더 빛을 바라지 못하였지만, 20세기 시작된 지금 그의 건축물은 또하나의 표본이 되어 덧없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는 20세기 멕시코 미니멀리즘의 건축의 기반을 다진 20세기를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루이스 바라간은 감성적인 디자인의 명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의 정원의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소화시킨 최초의 디자이너 이며폐쇄적인 장애요소로 인식될 수 있던 담장을 작품으로 소화시켜 당시에 장식벽을 유행을 시키는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예술가였습니다.

 

출 처 : 철이의 Issue&Interior Life

 

 

 

 

 

 

 

 

 

 

3.  미국 소크 연구소 설계에 조언

 

 

위키백과

 

 

 
소크 연구소 정면

 

 
소크 연구소 중앙의 실개천
 
 
 

소크 연구소(영어: 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라호이아에 있는 세계적인 생명과학 연구소의 하나이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이 1960년 설립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연구 성과와 품질 측면에서 높이 평가되었는데, 특히 2009년 사이언스와치는 신경과학과 행동 연구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했다. 11명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교수 혹은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엘리자베스 블랙번, 로저 귈레민이 교수진에 포함되어 있다.


건물은 루이스 칸이 설계하였다. 조너스 소크는 세계 최고의 연구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아름다운 시설을 원했고,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계 유태인이란 공통점을 가진 건축가 루이스 칸을 만나서 깊이 교감하며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소크 연구소 건물이다.

루이스 칸은 두 건물 사이의 마당을 완전히 비운 것에 대해서는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의 조언을 받았다.

이 건물은 1991년 미국 국립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al Landmark)로 지정되었고, 이 일대는 2006년 미국 국립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되었다.

 

출처 :나무위키

 

 

 

 

 

4.  루이스 바라간의 유산을 대하는 태도: 바라간 재단

 

바라간 재단(별도표기 외)
진행
한가람 기자

 

「SPACE(공간)」2022년 9월호 (통권 658호)

 

바라간 재단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루이스 바라간(1902~1988)에 관련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한다. 이 단체를 이끄는 페데리카 찬코는 아카이브란 완전하고 체계화된 문서의 집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과 연구 방법은 개별 자료 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드러내기도 하고 몰랐던 정보를 이끌어내기도 해서 그녀는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카이브를 정리했다고 전한다. 26년 전 재단을 설립하고 올해 바라간 갤러리를 열기까지, 바라간 재단이 걸어온 여정을 찬코와 되짚어봤다.

 

 

문서 보관소 Image courtesy of Barragan Foundation / ©Lake Verea 

 

페데리카 찬코 바라간 재단 이사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1996년에 조직된 바라간 재단은 스위스에 기반을 두고 멕시코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의 아카이브를 관리한다.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누가 재단을 세웠나?

페데리카 찬코(찬코): 바라간은 죽기 전 본인의 유품을 동료 건축가 라울 페레라 토레스(Raúl Ferrera Torres, 1942~1992)에게 물려주었다. 페레라 토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내가 이 유산을 이어받았다. 그녀는 멕시코에서 아카이브를 매입할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1994년 가을, 바라간 아카이브가 뉴욕 경매시장에 나왔다. 그녀가 입찰자를 구하지 못해 그 자료들을 뉴욕의 건축 전문 딜러에게 넘긴 것이다. 그 당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바라간 전시를 위해 딜러에게 소장품을 대여받았다. 이 일은 비트라 측이 민간자본으로 바라간 아카이브를 인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아카이브가 흩어져 통합성을 잃는 불상사를 막고자 했다. 그 후 자료를 검토하는 첫 단계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특별한 조직체가 필요함을 느꼈다. 그 결과 바라간 재단은 비트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독립적인 비영리 기관으로 설립됐다. 사명은 아카이브 보존, 연구, 관리이다.

 

한: 활동 초기, 아카이브를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자료 분류 기준과 방식, 작업 기간, 참여자 등을 알려 달라. 

찬코: 재단 설립 초반에는 연구차 몇 차례에 걸쳐 멕시코를 방문했고 학자 및 기관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자료를 살피고 분류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전시나 책을 통해 연구 결과를 보여주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시품을 점검하고 취약하거나 손상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 소장품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그중 몇 개는 전문적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2006년 말부터는 소규모 연구팀을 꾸려 완공 및 미완공 건물들을 조직적으로 검토하는 일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마다 위치, 날짜, 협업 대상, 설계 과정에 대한 주요 설명 등을 표로 정리했다. 현장에 찾아갈 때 부정확한 정보로 길을 잃거나 답사 제한과 같은 여러 난관에도 부닥쳤다. 그럼에도 설립 후 10년이 흘러 새로운 연구 방법과 기술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몰랐던 정보를 발견하거나 기존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필요했다.

 

한: 연구의 중심에는 「도무스」 에디터였던 페데리카 찬코가 있다. 무릇 에디터란 흩어진 정보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아카이브에서 이러한 직업적 강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어디였나?

찬코: 소장품을 구분할 때 바라간의 사무소에서 개발하고 적용했던 아카이빙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겉으로는 아무 관련도 없어 보이는 문서 간의 혹시 모를 ‘밀접한 관계성’에 특별히 주의했다. 역사적 층위 속에 숨어 있던 관계가 추후에 명확하게 드러나거나 새로운 정보로 이끌 수 있음을 감안한 까닭이다. 바라간 아카이브는 시각적으로 매우 풍부하다. 그중 건축 사진이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외에 시대별 풍습 사진과 출판물, 예비 조사 등은 설계 생산물인 드로잉과 스케치를 보완한다. 아카이브란 마치 모자이크 기법처럼 각각의 자료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건축가의 본래 의도, 작업 방식, 작은 아이디어에서 발전한 설계 구상안, 물리적 실체로 구현되기까지 거쳐온 지난한 과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바라간 재단은 민간투자 기관으로 자원과 인력이 충분치 않았다. 나는 연구자, 학자, 편집자, 아카이브 관리자로 일하면서 사무 업무까지 맡아야 했다. 자료를 분석하고 기록물을 편집하며 느끼는 부담과 보람 중 상당 부분을 큐레이터 마르틴 요세피(Martin Josephy)와 나눴다. 이외에도 동종 업계 종사자와 협업자 등으로 소규모 팀을 구성해 일시적 혹은 장기적 도움을 받기도 했다.

 

 

 

멕시코시티 내 아즈텍 공원 설계 제안(1954, 미완공)

 

한: 한편 2010년대까지만 해도 자료 접근과 이용에 어려움이 있어 비판이 일기도 했다. 2016년 「더 뉴요커」 기사에 따르면 당신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바라간 건물의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복제되어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에 관한 재단의 입장이 궁금하다. 

찬코: 아카이브와 더불어 그와 관련한 저작권 관리는 우리의 의무다. 저작권법은 나라마다 구체적 내용과 해석이 다른 복잡한 사안이다. 바라간 재단은 문화기관으로서 스위스의 저작권협회 프롤리테리스(ProLitteris)에서 지정한 약관을 따라 비영리 정책을 엄격하게 고수해왔다. 지난 몇 해 동안 재단의 우선순위는 아카이브와 관련된 업무와 조사였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이 일에 쏟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출판, 전시, 교육, 연구를 위해 정보를 제공할 여지는 남겨두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의 인기와 과다한 노출이 끼치는 영향이 염려됐다. 한 작품이 과소비를 통해 아이코닉한 작품이 된다면 그 작품에 대한 대중과 학계의 인식에 어떤 파급이 미칠지, 창작자의 노력과 의도를 읽어낼 때 작품의 인기가 해석 방향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말이다. 따라서 담론과 비평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재단의 활동은 약 20년의 연구 기간을 거치는 동안 출판, 전시 참여 등으로 확장됐다. 나아가 작년에는 웹사이트를 개편하여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전과 상반된 행보에는 어떤 계기와 의도가 깔려 있나? 

찬코: 우리의 사명과 목적에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존이 1순위였고, 면밀한 연구가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데 필수 조건이었을 뿐이다. 아카이빙에는 시간 외에도 자원과 인력이 요구된다. 연구 주제가 미개척 분야이든 표면적으로만 드러나 있든 연구에는 성실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1996년도에는 바라간의 업적이 멕시코 외부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었고, 사실 멕시코에서조차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기존 문헌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었고 모순적이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개정이 시급했다. 특히 미완성 건물에 관한 정보는 희박하여 해석하거나 추적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바라간이란 인물이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작업도 사진으로 널리 유포된 것을 보며 그에 대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아카이브가 연구 질문에 해답을 내리는 완전하고 체계화된 문서의 집합은 아니다. 특히 바라간 아카이브는 복잡한 토지취득과 개발 방식, 건축 계획과 설계, 그리고 시공에 있어 꽤 비정통적인 사업 과정을 거치고 남은 유적의 총체이다. 이 대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수년의 연구, 조사, 검토 및 분석이 필요했다. 이 준비 작업은 전시와 도록이라는 결과물로 귀결된다. 〈루이스 바라간: 조용한 혁명(Luis Barragán: The Quiet Revolution)〉 전시는 2000년 6월에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을 시작으로 발렌시아, 런던, 비엔나, 도쿄, 멕시코시티를 순회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전시는 그 기간이 바라간이 태어난 100주년 기념일과 겹쳐 멕시코 문화부와 밀접한 협력으로 이뤄졌고 개회식에는 멕시코 전 대통령 비센테 폭스(Vicente Fox)가 참석했다.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전시, 출판, 강연 등과 같은 행사를 이따금 개최했다.

 

 

바라간 갤러리 Image courtesy of Vitra Design Museum / ©Mark Niedermann

 

바라간 갤러리 Image courtesy of Vitra Design Museum / ©Mark Niedermann 

 

한: 지난 5월, 독일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에 바라간 갤러리가 들어섰다. 

찬코: 기존에 쓰던 사무실과 수장고는 사내용이었다. 앞서 언급한 연구 단계를 마치고 대중에게 결과를 공유할 시점에 다다라서 공공 출입이 자유로우면서도 예전과 같은 수준의 안전과 보존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설로 이사했다. 전시 공간 외에도 문서 보관소, 연구 공간을 마련했다. 아카이브로는 약 1만 3500개의 스케치, 도면, 계획 및 기타 문서, 사진 및 필름, 모델, 가구 등을 모두 옮겨왔다.

 

한: 갤러리는 디터 틸이 설계한 기존 건물을 변형했다.

찬코: 비트라 캠퍼스 내에는 헤르조그&드 뫼롱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설계한 비트라 샤우데포트(Vitra Schaudepot)가 있다. 바라간 갤러리와 보관소는 이 건물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산업용 건물의 한 구역을 차지한다. 기존 건물의 특징은 톱니 지붕이다. 전시 공간은 지붕의 북향 채광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이용했다. 내부 공간은 콘크리트 바닥과 흰색 벽으로 단순하게 마감했다. 보관소는 갤러리 옆에 위치한다. 일반인 접근이 불가하고 전문 장비를 갖췄다. 연구실은 갤러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을 방문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이 이용한다.

 

한: 전시는 건축가의 작품과 삶에 대한 소개를 넘어, 멕시코 건축사의 거대한 흐름을 보여준다. 

찬코: 전시실은 테마 중심으로 계획했다. 기획에는 큐레이터 마르틴 요세피, 그리고 우리와 몇 해 동안 협업했던 라틴아메리카의 근대 건축학자인 루이스 카란사(Louis E. Carranza)가 참여했다. 카란사는 멕시코 근대 건축사의 큰 맥락 속에서 바라간의 업적을 삽화로 보여주는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타임라인 앞에는 지구라트(El Ziggurat)라 불리는 프로젝트의 모형이 있다. 지구라트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업인데 바라간이 1964년부터 3년간 건축가 후안 소르도 마달레(Juan Sordo Madaleno, 1916~1985)와 함께 멕시코의 위성도시 로마스 베르데스(Lomas Verdes)를 대상으로 설계했다. 이는 10만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계획이자 한 도시의 중심축으로서 건물뿐만 아니라 공공장소가 어우러진 모델이었다. 실제로는 마스터플랜의 일부분만 실현됐다. 전시장 벽에는 드로잉, 1:1 크기로 복제한 스케치, 시대별 사진들을 진열했다. 선별 기준은 아카이브의 다양성과 바라간 작품의 대표성을 보여주는가이다.

 

 

 

루이스 바라간 주택의 계획 도면(작성 일자 미상)

 

한: 재단은 설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거쳤다. 특히 멕시코 건축가의 유산을 타 국가에 있는 재단이 관리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대립된 것으로 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다. 

찬코: 우리는 바라간에 관한 아카이브가 흩어져서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해지는 사태를 원치 않았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문화 및 국가적 가치가 있는 자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에서 오는 특혜와 책임을 의식하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을 향한 열정이 사명을 다해내려는 헌신을 불러일으킨다.

 

한: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치려 한다. 연구-출판-갤러리 개관에 이은 그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찬코: 현존하는 바라간의 건물과 그것을 보완하는 정보출처 대부분이 멕시코에 있다. 유산의 일부는 공적이고 일부는 개인 소유로, 소유에 따라 접근 가능 여부가 다르다. 앞으로 바라간 아카이브에 관한 관리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맡는다. 이들은 아카이브와 연계한 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미래 발전에 적합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예정이며, 바라간 재단은 아카이브의 보존과 관련 주제들에 대한 지식 확장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루이스 바라간 주택의 옥상 테라스(1948)

Image courtesy of Barragan Foundation / ©Armando Salas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