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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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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의성김씨 대종가 - 2 (2006.10) 의성 김씨의 종가로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던 것을 김성일(1538∼1593) 선생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구분되는데,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고 형태는 一자 형이다. 안..
안동 하리동 일성당 -1 (2005.08,2006.09)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풍산으로 내려온 이웅의 후손으로 숙종 때 사람인 이문한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이름을 '일성당(日省堂)'이라 한 것은 '외당에 독서실을 만들어 하루하루를 반성한다'는 뜻으로 현판을 달았기 때문이다. 참나무숲이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비교..
안동 예안 이씨 종택 -1 (2005.08.) 이 집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이홍인 부자의 충과 효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집이다. 이홍인 공의 후손들이 사는 집으로서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정되며 ‘충효당’이라 부른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붙어 있고 안동지방에서 흔히 볼..
안동 예안이씨상리종택(2006.09) 예안 이씨 7대손 이훈 선생의 종가댁으로 중종 20년(1525)경에 세웠으며 상리종택이라고 부른다. 선생은 연산군 10년(1504)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해 남하하여 이 집을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ㅁ자형 평면으로 앞쪽 중앙에 중문을 두고, 왼쪽으로 사랑채 3칸을 두었으며 뒤..
안동 청원루(2006.09) 중종(재위 1506∼1544) 때 김반(1479∼1544)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인조 23년(1645)에 청음 김상헌 선생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 김상헌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굴욕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매우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우두머리로, 청군의 지원병 요청에 반대하는 ..
안동 시습재(2006.09) 조선 전기 문신인 권주(1457∼1505)가 생전에 살던 집이다. 그는 성종 11년(1480)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주서를 거쳐 성종 20년(1489) 공조정랑으로 요동을 오갔으며 도승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11년(1504) 갑자사화 때, 그가 성종 13년(1482) 승정원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안동 권성백고택(2006.09) 양반집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는 조선 후기의 기와집이다.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건축 양식으로 보아 19세기 후반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완벽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방과 왼쪽에 위치한 부엌의 배치관계는 남부지방의 민가형을 따르고 있다. 부..
안동 남천고택(2006.09) 권장(1802∼1874)이 셋째 아들 권숙의 살림집으로 지은 집이다. 조선 철종 1년(1850)에 세웠고 권숙의 호를 따라 ‘남천고택’이라고 부른다. 앞면 6칸·옆면 6칸 규모의 기와집으로 튼 ㅁ자형 구조이다. 안채에는 벽장이 있어 19세기 전통 주택의 변화과정을 보여 주고 있으며, 사랑채는 후학양성을 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