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에서 갈릴리호수까지(3)
세째 날 ( 8월10일 ) - 별이 빛나는 밤에
새벽 1시 반에 기상해서 짐을 꾸려놓고, 2시까지 버스에 탑승을 완료하였다. 숙소에서 멀지않은
시내산 입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준비해간 랜턴을 켜고 칠흑같이 깜깜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내산은 홍해의 위쪽에 돌출한 시나이 반도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모세가 출애급의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았던 바위산으로, 일찍부터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서,
"야훼의 산"으로도 불렸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 해방의
소명을 받은 다음, 이집트로 가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고, 다시 이 산에 올라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곳이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도 이견이 많지만, 오늘날 가장 유력시 되는 곳은, 호렙산 줄기의 최고봉
무사산(아랍어로 모세의 산)이라 한다.
시내산의 중턱까지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걸어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낙타를
타고 가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베두윈족들이 낙타를 어릴 때부터 훈련시켜서 순례자들에게 비용을 받고
산중턱까지 태워준다.
윤 목사님으로부터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에, 일행 중 5명은 걸어서 가고 나머지는 낙타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낙타를 선택했을 때 주의할 점은, 타고 내릴 때가 조금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탄 낙타가 조금
문제아 낙타였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 미쳐 안장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깜짝 놀라게
하더니. 꾸물거리고 놀다가, 좀 뒤처지면 뛰다시피 올라간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서 낙타
등에 바짝 붙어 있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별똥별이다!”
문득,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주먹만한 별들이, 한꺼번에 모두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 같다’는 말이
그 상황과 그래도 비슷한 표현일 것 같다.
그렇게 밝고, 그렇게 많은 별들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결코 없었다.
하얀 꼬리를 흔들며 머리위로 휙 사라지는 별똥별도 3개나 보았다.
어느새, 알퐁스 도데의 ‘별’도 생각나고, 은하철도 999도 생각나고......
“츨츨츨츨......!” 가끔 들리는 낙타몰이꾼의 신호음외에는 너무나도 고요하고,
신비로운 별빛만이 머리위로 쏟아지는 꿈결같은 길을, 그렇게 1시간이나 올라갔다.
길이 험해지는 산중턱 부근에서 낙타를 능숙하게 내려서, 낙타를 타면서 헤어졌던 김 선생과 아들을
만났다.
두 사람의 표정이, 이제 아스라히 스러져 가고 있는 별빛보다도 더 밝고 환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약 760여개의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한다. 정상부근에서 일출을 보려면 부지런히
올라가야 한다고 윤 목사님이 재촉하신다.
한달 전부터 저녁마다 아파트 주위를 돌면서, 체력훈련을 열심히 해 온 김 선생이 처지기 시작한다.
나는 일출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처자식을 두고,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쉬지 않고 올라가서, 겨우 일출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검은 하늘을 수놓고 있던 자주빛 띠가 서서히 걷히고 바위산 뒤에서 노란해가 점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바위 계곡들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골이 진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더욱 붉은빛이 감돌고 신비로운 생동감을 주는데,
시간에 따라 그 빛깔이 바뀐다.
일출을 보고 있는, 세계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의 얼굴도 온통 붉은 색이고, 환희의 감격으로 마음도 점점 붉어진다. 정상부근에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예 정상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을 맞이한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의 진실되고 싱그러운 모습에서,
이 세상의 미래와 희망을 생각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시내산 정상에서의 산상 헌신예배는 장엄하고도 감격스러웠다. 성스러운 기운이 자욱한 산에서
일출을 배경으로, 윤 목사님의 열정적인 설교가 있었고, 성악가를 능가하는 솜씨로, 이숙연 교수님의
찬송가가 동트는 시내산에 울려 퍼졌다.
섬세하고도 호소력 깊은 찬송가는, 아침햇살에 잔뜩 움츠리고 있는 계곡마다 스며들어서,
남은 그림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고 새 아침, 새 날을 열었다.
하산하는 코스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험하긴 하지만 모세우물이 있고, 경치가 좋은 길을 택해서
내려왔다. 저 밑에 수도원이 보이기 시작하고도 1시간 이상이나 걸려서, 오늘 새벽에 낙타를 탔던
지점인, 성 캐더린 수도원까지 풀 한포기 없는 바위산을 2시간 동안 지겹도록 내려왔다.
성 캐더린 수도원은, 밤에는 불빛 몇 개만 보여서 형태를 짐작할 수가 없었는데, 낮에 보니 성곽으로
요새화된 아주 큰 규모의 수도원이었다. 베두윈족의 끊임없는 약탈 때문에 외부세계와 이렇게 높은 담을 쌓게 되었다 한다.
이 수도원은,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 사본과 희귀 성경들을 많이 소장한 곳인데, 바로 여기에서 19세기 중엽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이 발견되었다. 서기 300년대 후반에
필사된 것으로, 신약 성경 전체가 수록된 사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사본이다.
이곳은 또한 이콘이라고 불리우는 목판 성화의 보고이며, 이콘은 '아이콘'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내에 있는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주후 6세기 중엽에 건설 되었고,이 교회 제단 뒤에는 불붙는 떨기나무의 기념 에배당이 있고, 이곳은 지금도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한다.
이 교회 뒷 편의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에서만 자라나는 특수한 종류로써, 외지로의 이식은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한다.
수도원은 아침 9시이후에 개방하기때문에, 정원에서 쉬면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나무와 돌과 흙만으로 건축된 수도원은, 천년 세월의 흔적이 건물 곳곳에 녹아 있고, 공간구성 또한
예사롭지 않아서, 요즘 화두인 '생태건축'과의 접목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한된 일부 지역과 이콘과 떨기나무를 구경하고, 유일한 출입구인 좁은문으로 다시 나왔다.
지난 밤 숙소였던 캐더린 플라자로 돌아와서, 때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타바 국경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중간에 내린 누에바항의 한국식당에서, 처음으로 한식 점심을 먹게 되었다.
상추 비슷한 것도 있고, 기대 이상의 식단이라 모처럼 과식을 했다. 과식을 하더라도 소화시킬 자신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식사 후, 우측에 홍해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끼고 계속 북상하여, 타바 국경에 도착했다. 타바 국경의
이집트 출국심사는 간단했지만, 이스라엘의 입국심사는 소문처럼 까다로웠다. 앳띤 젊은 조사관들이,
일행들의 짐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한 후 통과 시켰다. 폭탄과 마약 때문이라고 한다.
1시간 반 정도의 입국심사를 마치고 이스라엘로 들어서니 현지 가이드 분( 변철우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출국심사와 짐 때문에 정신이 팔려, 이집트 가이드 분과 작별인사도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이스라엘의 도시 풍경은 이집트와는 사뭇 달랐다.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고, 도심은 수목이 우거져서
녹색자연 속의 인간적인 삶이 느껴지고, 높은 경제수준을 짐작케 한다.
사막지역에도 곳곳에 집단농장 (기부츠)이 조성되어 있고, 관개수로용 펌프시설을 일정 간격으로
설치하고 물을 공급하여, 사막에서도 농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국경도시 에이랏을 통과하여, 계속 북상하여 네게브 사막의 동북쪽 성서상의 도시,
아라드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었다.
한밤중에 시내산 등정으로부터 시작된, 오늘 하루 긴 일정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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