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에서 갈릴리호수까지 - 1
( 삼육대학교 교수 성지연수를 다녀와서 )
올해 초 김 선생(아내의 호칭)으로부터 이번 여름에 성지순례를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김 선생은 삼육대학교 간호학과에 재직 중인데, 자기학교에서 이집트 및 이스라엘로 교수 성지연수를
계획하고 있는데, 가족도 참석이 가능하고 일부경비도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한 해외여행이고, 모처럼 둘만의 여행이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여기에는 간단치 않은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나는 교인이 아니라는 점 이었다.
신혼 초에 김 선생을 따라 주일예배에 두세 번 따라간 적은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교인의 입장에서야 성지순례는 무엇보다도 영광된 일이겠으나,
비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역사기행일 수도 있고, 구성원간의 조화와 융화도 우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봄이 끝나 갈 무렵 갈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는 최후통첩이 왔다.
인생의 중반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세계 - 사랑과 봉사, 종교와 믿음에 대한 성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길 잃은 양’을 외면하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으로 참가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 후 40명으로 확정된 연수단에 1명의 결원이 생겨서, ‘길 잃은 양’이 한 마리( 아들, 이창석) 더
추가되어서 우리 가족은 3명으로 늘어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여행의 기본상식인데, 비행기 속에서라도 공부를 좀 하기 위해서
출발하기 하루 전날, 노원구 서점을 모두 뒤지었는데, 이집트에 대한 서적은 간혹 있는데,
이스라엘과 성지순례에 관한 서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교과서도 없이 학교 가는 심정으로
삼육대학교로 출발했다.
첫째 날 (8월 9일) -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
아침 8시45분 최초 집결지 대학 신학관 앞, 아침부터 김 선생이 꾸물거려서 늦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아침예배를 마치고 스쿨버스에 올라오신 총장님께서 축복과 기도로
배웅을 해 주셨다. 총장님은 오늘 처음 뵙는데, 교육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이상적인, 아주 인자한
이미지를 지니셨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쿨버스는 공항을 향해 출발하고 가이드 분으로부터, 성지연수의 개요와 일정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잘 정리된 이스라엘 안내서와 편람도 받았다. 친절하고 매끄러운 진행과 완벽한 준비들이
프로의 솜씨를 느끼게 한다.
역시 연수전문 여행사는 다르구나 싶어서, 나이 지긋한 저 가이드 분은 누구신가 김 선생에게 물어 보았
더니, 뜻밖에 학교 목사님 (윤병인 목사님) 이시란다.
목사님은 항상 멀리 있고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매사에 솔선수범하시고 이웃 같이 친근한 윤 목사님을
대하니 이번 연수가 알차고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팍팍 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참가자들끼리 간단한 인사가 있었다. 주로 교수부부 혹은 솔로이시고,
칠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 3분, 남자대학생 2명, 그리고 목사님까지 총 40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건축과에서는 3명이나 참석하셨다.
삼육의명대학 시절에, 내가 건축과에 2년 정도 시간강의를 나간 적이 있어서,
모두 아는 교수님인데, 이런 자리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역시 여행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집트까지 15시간의 긴 비행을 위하여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9시간의 긴 비행 끝에 경유지, 우크라이나 타쉬켄트 공항에 도착했다. 입.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내에서 1시간 정도 대기했어야 했는데, 유일한 구경거리는 딱 2개뿐인 면세점이었다. 윤 목사님의
설명처럼 우리나라의 동네 슈퍼마켓 수준이었는데, 기념품 하나라도 챙기기 위해서 두 번이나 둘러
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카이로행 대한항공에 다시 올랐다.
이집트까지는 5시간 정도 가야하는데, 준비해 온 이집트 관련 서적을 펼쳤다. 문고판 책의
전반부의 대부분은, 이집트 고대유적과 유물의 도굴과 약탈에 대한 역사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유럽 열강들의 문화재 해외밀반출은 무자비하고도 끈질기게 오랜 기간 동안 자행되었다.
1790년경, 나폴레옹이 군사적 목적으로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대규모 학술조사단을 이끌고 간 것이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의 시발점이 되었고, 이후 뜻있는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베일에 싸여있던
이집트 역사는 세계적인 관심과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전혀 도굴되지않고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된 투탕카멘의 황금 미이라와 유적 발굴은 한편의 드라마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열강들의 문화재 침탈행위는 일제시대의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누구보다도 공분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열강들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수많은 보물들이 도굴의 위험에서 벗어나, 모래 속에서
세상 밖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오늘날 유럽 유수의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이집트 유물들은, 식민 제국주의 시대에
자기 나라의 보물을 지키지 못한 약소국들의 아픔이 배여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카이로 공항에는 현지시각으로 거의 자정 무렵에 도착했다. 공항직원들도 거의 퇴근한 듯 몇 몇 소수의
근무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주 간단한 입국심사 후에, 공항터미널 유리문을 밀고 외부 주차장으로
나오니, 사막의 더운 모래바람이 콧속으로 훅 들어온다. 바람의 냄새는 분명히 다르고 이색적인데,
밤이라서 그런지 뜨겁지 않아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늦은 시각이라 이국의 밤공기를 제대로 느껴볼 겨를도 없이 바삐 전용버스에 올라, 현지 가이드
(최순자 씨)로부터 안내를 들으며 호텔로 향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시내 교통은 러쉬아워처럼 막히고
사람들은 거리에 흘러넘친다.
더운 나라라서, 낮에는 자고 밤에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이 시각에도 저렇게 거리에 사람이 많고,
이 나라는 결혼식도 밤에 한단다.
기후가 인간의 삶의 패턴을 뒤바꾼 경우라 하겠는데, 삶의 활기라기보다는 적응이라는 느낌이 든다.
시내 중심가의 피라미드호텔에 도착해서 오늘하루 긴 여정의 짐을 풀어 놓으니 벌써 새벽 2시다.
내일 아침 6시가 기상인지라, 호텔 창밖으로 야경 한 번 감상할 여유도 없이 서둘러 침대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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