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에서 갈릴리호수까지 - 5
다섯째 날 (8월 13일) - 시련의 땅
성지연수단의 하루일정은 보통 아침 6시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6시 반에 아침예배, 7시에 아침식사,
정확하게 8시에 목적지로 버스는 출발한다. 저녁식사는 일정하지 않고, 일과가 마무리 되는대로
저녁예배 후에 식사를 한다. 시내산을 올라가던 날 외에는 항상 이 스케줄대로 진행되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아침 8시에 버스는, 예루살렘을 떠나 에인카렘과 베들레헴을 향해 출발하였다.
에인카렘
올리브 나무들과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언덕들 사이에 자리한 에인카렘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로부터
서쪽으로 대략 8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께서 요한의 모친이자 사촌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하는 현 성당은 17세기경에 세워져, 보수 및 개축이 이루어졌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1945년 이곳 성전주위를 발굴하여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의 성전터를
찾아내어서, 구전으로 막연하게 전해져 오던 세례자 요한의 기념 성전터를 입증하였다 한다.
성전 안에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이라고 전해지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의 동굴과 아주 흡사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베들레헴 성탄교회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마치 국경을 넘는 것처럼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 안전 요원들이 여권과 통행
허가증을 요구하고, 주변에는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킨다. 우리는 외국인이라 간단히 통과했다.
검문소를 나오면 8-9미터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만나는데, 이는 분리 장벽으로,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가로막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고립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탄교회는,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베들레헴에 순례 온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 성녀의
청에 따라, 예수 탄생지로 전해 오는 동굴 위에 339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 교회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성탄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완공한
것인데, 이 후 지붕과 내부 장식 정도만 바뀌었고,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온 역사가 배여있는 건물이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장소는 은별 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알아 볼 수 있으며, 그 옆의 요람은 아기예수를
처음 모신 장소인데, 순례객들이 워낙 붐벼서 가까이 접근조차 쉽지가 않았다.
성탄교회 왼편에는 1881년에 프렌치스코회에서 세운, 성 캐더린 성당이 있다.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의 성녀 캐더린과 동일 인물이다.
이 캐더린 성당이, 해마다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 자정미사가, 온 세계로 중계 방송되는 바로 그 성당이라고 목사님이 알려 주셨다.
그 옛날, 예수께서 태어난 평화롭고 축복받은 마을 이었지만, 현재은 도시의 섬처럼 장벽으로
격리되어서, 통행마저 자유롭지 않은 베들레헴을 무거운 심정으로 빠져나와,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 왔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으로 들어가는 성문은 8개가 있는데, 황금문은 막혀있고, 7개의 문만 통행이
가능한데, 예고도 없이 성문을 폐쇄하는 경우가 많아서, 순례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는 문 앞에서 대기하다가, 헤롯문으로 들어갔다.
이 문은 성벽의 북쪽에서 성 안의 무슬렘 지역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문으로, 문안으로 들어서면 온갖
상점과 상인들로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성안은 기독교도ㆍ유대인ㆍ무슬림ㆍ아르메니아인의 4개 지역으로 엄격하게 나뉘어져 살아가고 있는데,
미로와 같은 이슬람 상가지역을 통과하여 처음 도착한 곳은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베데스다 연못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이라는 의미로서, 구약시대에는 제물로 사용할 양들을 씻겼던
못으로 쓰였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환자들이 연못의 물로 병이 나았다는 소문 때문에, 수많은 병자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라 한다.
특히 이곳은 예수께서, 38년 된 난치병 환자를 고쳐주신 장소로서, 성스러운 성지로 지켜져 오고 있다.
십자가의 길
베데스다 연못을 나와 조금 올라가니,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처형장까지 십자가를 메고 간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의 입구가 나왔다.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메고가서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시기까지의 전 과정의
의미 있는 장소마다 표시를 하여, 모두 14지점으로 구분하고 있다. 성경시대에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골고다 언덕길을 증언하는 갖가지의 흔적들이 생생한 역사처럼 우리 앞에 펼쳐졌다.
예수께서는 약 70Kg 정도의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가셨다 한다. 우리 일행들도 각자 약 30초 정도씩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올랐다. 고난의 길이자, 슬픔의 길 이었다. 소리죽인 흐느낌들이 행렬의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성묘교회로 이어졌다.
성묘교회
성묘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곳과 예수님의 무덤 자리 전체에 걸쳐 건립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가 이곳을 순례한 후 십자가의 자리를 발굴하고, 처음 그 곳에 기념 교회를 세웠으며, 그 후 페르시아 군에 의해 파괴된 것을, 1149년 십자군이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층에는,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 언덕의 바위 구멍이 제단 아래 보존되어 있으며, 아래층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눕인 바위와, 천창을 통한 부드러운 빛이 가득 쏟아지는 예수님의 무덤이 있다.
마가의 다락방
성묘교회를 나와서 바로 들린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이며, 성만찬식의
기원이 된 곳으로, 예루살렘 성 밖의 시온문 입구 근처에 있다.
1세기 경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614년에 페르시아군이 교회를 파괴하였고, 십자군들이 12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1176년에 다윗 왕의 무덤이 아래층에 모셔지고, 윗 층은 회교도들이 뽀족탑과 기도 장소를 세워서,
지금의 회교 사원으로 변형시켰다.
다락방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서, 3개의 중심 기둥과 주위 벽을 따라 세워진 기둥들이 곡선으로
연결되어 아치를 이루며 천정을 받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이 건물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베드로 통곡교회
예루살렘 성 밖, 시온 산 남동쪽 키드론 계곡과 게헨나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는,
베드로 통곡교회의 정식 이름은 ‘베드로 칼리칸투 교회’이다. ‘칼리칸투’라는 말은 ‘닭이 운다’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이 교회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베드로가 닭이 울 때 통곡한 것을 연상하여
‘베드로 통곡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베드로의 배신과 회개를 기념하여 건축한, 이 교회의 지하에는 예수께서 하루 동안 갇히셨다는 감옥이
있고, 이 교회 바로 북쪽 옆에는 예수님 당시의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계단이 있는데, 이 돌계단은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에게 체포된 후에, 이 길을 통해 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걸로
추정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라 한다.
오전내내 예루살렘 성 안과 인근 지역의 성지참배 및 기념예배를 마치고, 북쪽의 갈릴리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계속 위로올라갔다.
도중에, 주전 9000년경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여리고와
팔레스타인의 고도, 벳산을 거쳐서, 저녁 무렵에 갈릴리지역에 도착하였다.
갈릴리지역의 호수 주변은, 아름다운 경치와 비옥한 토양으로 주거환경이 뛰어난 지대로서, 여러 도시들과 키부츠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땅의 중요한 식수원이며 생명선이자, 예수님의 복음 선교활동의 중심지였다.
대부분의 예수님 제자들이 이곳에서 부름을 받았고, 베드로가 살았던 곳도 이곳 갈릴리 호수변의
가버나움 마을이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던 장소도, 그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바로 이곳의
호수 연안과 언덕에서 이루어졌었던 공생애의 땅이다.
갈릴리 호숫가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나가, 안식일 환영 선상음악예배를 올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배위에서, 30분 정도의 찬송예배가 진행되었다.
너무 넓어서 바다로 불리기도 하는 호수는, 오후의 화창한 햇살을 받아 은빛 물결로 출렁이다가, 잔잔하게 뱃전으로 다가와서 하얀 포말로 부서졌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예외 없이 일정을 함께 해온 어르신 3분께서, 안식일 환영 선상음악
예배의 대미를 경건하고도 멋있게 장식해 주셨다.
저녁 햇살이 따가운 갈릴리 호수의, 부드러운 바람을 뒤로하고 숙소로 가는 도중에, 이 해인 수녀님의
시 중에 갈릴리 호수에 대한 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이 해인
하늘이 호수 같고
호수가 하늘 같은
6월 어느 날
어부의 배를 타고
물 속을 들여다봅니다
갈릴리 호수보다
더 깊고 넓은 사랑으로
세상과 사람을 껴안았던
예수의 그 얼굴을 찾아보려고
이마를 적십니다
그물을 치던 제자들을
나직이 부르시던 당신의 음성이
오늘은 이토록 푸른 호수가 되어
내 안에 출렁입니다
더 이상 자신 안에 갇히지 말고
넓고 깊은 사랑의 호수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되라고
당신은 나를 부르십니다
오늘의 숙소는 갈릴리 호숫가의 저층 리조트형 현대식 건물이었다.
프론트와 식당의 매력적인 썬큰 가든과 언덕지형을 잘 살려 설계한 상큼한 리조트였다.
저녁예배와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 왔다.
여느 때보다는 저녁 일과가 조금 일찍 마무리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샤워 후에, 호숫가로 밤 산책을 나가자고 분위를 잡았더니, 김 선생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나오니, 김 선생은 벌써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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