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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건축 갤러리 ■/국 내

포항 스페이스워크(Space Walk) — 철의 도시가 건네는 초대장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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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스페이스워크(Space Walk)

 

1. 환호공원, 바다와 만나는 언덕

포항 시내를 벗어나 영일만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 환호공원의 가장 높은 능선 위로 낯선 실루엣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흰색과 은빛이 뒤섞인 철제 구조물이 마치 정지된 파도처럼, 혹은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앉는 롤러코스터의 궤적처럼 굽이친다. 이것이 바로 포항 스페이스워크(Space Walk).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길에 자리한 이 조형물은 완공 이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체험형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으며, 개장 이후 누적 방문객이 4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만큼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바다를 낀 언덕 위에 놓인 이 은빛 곡선은 멀리서는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처럼 고요히 서 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걷는 이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 여느 랜드마크와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2. 철강 도시와 예술가의 만남

 

스페이스워크의 탄생은 포항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포항시와 포스코는 2019 4, 환호공원을 포항의 상징적인 장소로 조성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포스코는 조형물에 쓰일 철강재를 생산해 포항시에 기부하기로 했고, 그 결과 총 317톤에 달하는 철강이 이 구조물 속으로 녹아들었다. 해안가의 염분과 습기를 견디기 위해 부식에 강한 프리미엄 스테인리스 강재가 사용되었고, 법정 기준을 웃도는 풍속과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되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그려낸 이는 독일의 부부 작가 하이케 무터와 울리히 겐츠다. 두 사람은 설계를 위해 포항을 세 차례나 방문해 도시 곳곳을 걸으며 시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인상을 작품 속에 새겨 넣었다. 겐츠는 이전에도 독일 뒤스부르크의 체험형 조형물 '타이거 앤 터틀  매직 마운틴'을 설계한 바 있는데, 흥미롭게도 뒤스부르크와 포항은 철강을 주력 산업으로 삼는 공업도시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스페이스워크에는 뒤스부르크 현지에서 생산된 철강도 함께 쓰였다고 하니, 두 도시의 인연이 작품 안에서 다시 한번 맞닿은 셈이다.

 

 

 

 

 

 

 

 

3. 333미터의 궤적, 717개의 계단

스페이스워크의 몸체는 총 길이 333미터, 높이 25미터에 이르는 철제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뜻 보면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곡선의 연속이지만, 레일 대신 717개의 계단이 놓여 있어 관람객이 직접 그 위를 걸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트랙은 두 갈래로 나뉘어 오르내리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예술과 인간, 기업과 시민, 그리고 포스코와 포항시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360도로 회전하는 구간은 안전을 고려해 도보 통행이 제한되어 있으며, 최대 250명까지 동시에 오를 수 있고 풍속이 초당 8미터를 넘거나 악천후가 닥치면 체험이 제한된다. 이를 위해 매일 여섯 명의 안전 요원이 상주하며 관람객의 안전을 살핀다.

 

멀리서 바라보면 스페이스워크는 움직임을 멈춘 거대한 철의 파도처럼 고요하지만, 막상 그 위에 올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감각이 펼쳐진다. 곡선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따라 시야가 끊임없이 틀어지고, 발을 멈추는 지점마다 눈앞의 풍경이 다른 비율로 재구성된다. 317톤이라는 무게가 무색하게 걸음걸이는 가볍고 경쾌하며, 가장 높은 지점에 다다르면 포항제철소의 위용과 영일만의 푸른 바다, 영일대해수욕장 주변의 고층 아파트 단지까지 한눈에 담긴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발밑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바람 소리는, 이 구조물이 단지 눈으로 감상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지형임을 새삼 일깨운다.

 

 

 

 

 

 

 

4. 구름에서 우주로, 이름이 품은 뜻

스페이스워크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겐츠는 이 구조물의 원래 명칭이 '클라우드(Cloud)'였다고 밝힌 바 있으며, 한동안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이 옛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을 걸어본 이들이 마치 구름 위, 나아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점에서 '스페이스워크'라는 이름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곡선의 트랙을 따라 걷는 경험이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중력을 벗어난 듯한 부유감으로 다가온다는 뜻일 것이다. 해가 진 뒤에는 구조물 전체에 조명이 밝혀지는데, 겐츠는 이를 두고 포항이 지닌 '빛과 철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반영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낮 동안 태양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던 철의 곡선은, 밤이 되면 스스로 빛을 내는 또 다른 표정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5. 걷는 조형물, 머무는 풍경

 

스페이스워크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직접 걸어 들어가 체험하는 대상이라는 데 있다. 대부분의 공공 조형물이 광장이나 공원 한쪽에 서서 시선을 받아들이는 존재라면, 스페이스워크는 관람객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시간대와 날씨, 그리고 각자가 멈춰 서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경이 열리기 때문에, 같은 구조물이라도 찾는 이마다 저마다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참여적 성격 덕분에 스페이스워크는 세계적인 디자인 순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했으며, 2023~2024년에 이어 2025~2026년에도 한국관광 100선에 재선정되며 국가가 공인하는 관광명소로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6. 상생과 화합이 새긴 랜드마크

 

스페이스워크는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으며, 인접한 환호공원의 식물원과 함께 둘러보면 반나절 일정으로도 충분하다. 완공 당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 조형물이 "포스코와 포항시의 상생과 화합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 대표 랜드마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작가 울리히 겐츠를 비롯해 7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이 조형물이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기업과 도시가 함께 써 내려간 약속의 결과물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실제로 스페이스워크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만들어낸 공공예술의 사례로, 산업도시라는 포항의 오랜 정체성 위에 문화와 관광이라는 새로운 층위를 포개어 놓았다. 종풍을 앞둔 포항 1고로를 박물관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마무리되면, 스페이스워크는 인근의 Park1538과 함께 포항의 산업 유산을 문화 자산으로 되살리는 두 축을 이루게 될 전망이다.

 

 

 

7. 동해안 여행길 위의 한 정거장

 

스페이스워크가 자리한 포항 북구 일대는 그 자체로도 동해안 여행의 좋은 출발점이 된다. 근대 어업 도시의 정취가 남은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 기암 절벽 위에서 수평선을 조망할 수 있는 이가리 닻 전망대, 오랜 성곽의 흔적을 간직한 장기읍성, 그리고 바다 위를 걷는 또 다른 체험형 시설인 해상스카이워크까지, 스페이스워크를 기점으로 다양한 동선을 이어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이스워크는 당일치기 나들이는 물론 1 2일 여행 코스의 중심으로도 자주 꼽힌다.

 

한여름 밤에는 인근 해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와 맞물려 늦은 시각까지 인파가 이어지기도 하는데, 낮의 스페이스워크가 철과 하늘이 빚어내는 조형미를 보여준다면, 밤의 스페이스워크는 조명과 불꽃이 뒤엉킨 또 다른 축제의 무대로 변모한다. 이렇듯 스페이스워크는 하나의 고정된 표정을 갖기보다, 계절과 시간과 주변 풍경에 따라 끊임없이 다시 읽히는 유동적인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8. 맺음말

 

철은 본디 차갑고 단단한 소재이지만, 무터와 겐츠의 손을 거쳐 포항의 하늘 위에 놓인 317톤의 강재는 더 이상 산업의 부산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걸음을 옮기는 이의 시선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풍경을 열어 보이는 살아 있는 조형물이 되었다. 제철소의 굴뚝과 영일만의 파도, 도심의 아파트 단지가 한 시야 안에 겹쳐지는 그 순간, 관람객은 이 도시가 지나온 산업의 시간과 지금 맞이하고 있는 문화의 시간을 동시에 걷고 있는 셈이다.

 

스페이스워크라는 이름 그대로, 그것은 구름 위를 걷듯 가볍게, 그러나 포항이라는 도시가 쌓아 온 철의 역사를 두 발로 딛고 걷는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형물은 포항이라는 도시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하나의 초대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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