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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6-019. 산청 <정당매> - 단속사는 사라져도 어제도 오늘도 꽃을 피운다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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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2026-020.  산청 <정당매> 

- 단속사는 사라져도 어제도 오늘도 꽃을 피운다 (2026.03.13.)

 


<정당매>는 '산청 3매' 중 하나로,

남사예담촌에서 약 10km 떨어진, 단성면 운리 단속사 터에 자리잡은

640년 역사의 매화이다
고려 말 문신, 통정 강회백 선생이 심은 매화로,

폐사지 뜨락에서 동·서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순백의 꽃을 피운다

 

통정 강회백(1357~1402) 선생은 산청 출신으로,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손수 심었던 매화로 알려져 있고

이 매화는 선생의 학문적 뿌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 초, 대사헌까지 지낸 강회백 선생이

종 2품 ‘정당문학’이란 직위의 벼슬에 오르자 사람들은 이 매화에게 

<정당매>란 이름을 붙여주었고

두 기의 비석과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비각까지 세워주었다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

뿌리에서 4본의 큰 줄기가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어 있으며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으로

‘산청3매’ 중 유일하게 1982년에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정당매>는 640여 년 전에 강희백 선생이 처음 심은 뒤,

100년쯤 지난 후에 고사해 버리자

후손들이 다시 후계목을 키워내어서 부활시켜냈다 한다

이후, 숱한 선비와 인물들의 사연과 사랑 속에서

540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왔던 <정당매>는, 2014년에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다시 고사하고 말았다

 

 

 

 

 

 

 

 

 

 

 

 

 

 


          
지난 2014년 새해에

TV뉴스에서 <정당매>의 고사 소식을 처음 접하고

결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지만

끝내 그 해 봄부터 다시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2010년에 내가 처음으로 <정당매>를 대면했을 때도

오래 전에 원줄기는 고사하였고, 곁가지 하나만 겨우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고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 사람이나 나무나 자연의 섭리를 피해 갈 수는 없지만

‘준비 없는 이별’은 언제나 아쉽고 허망한 법이다

 640년의 역사를 이어왔던 <정당매>가 2014년에 허망하게 고사하고 난 이후

산청군청에서는 어린 후계목 3그루를 정당매 주위에 심어 놓았는데

다행히 지금, 그 후계목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 후계목들이 성공적으로 자라서

640년 전통의 <정당매>의 명맥을 이어서

고려 말, 원정공 하즙 선생(원정매)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초, 통정 강회백 선생(정당매)으로 이어지고

남명 조식 선생(남명매)으로 흘러온

시대를 초월한 면면한 학풍과 '산청3매'의 지조와 정신이 계속 전승되기를

항상 응원을 보내고 있다

 

 

 

 

 

 

 

 

 

 

 

 

 

 

 ‘속세를 떠난 절’이라는 단속사斷俗寺는

승려가 100명 이상이나 있었고 

사찰을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짚신이 다 해어질 만큼 규모가 큰

통일신라시대의 큰 사찰이었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때의 화공 솔거가 그린

유명한 유마거사상維摩居士象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단속사는 정유재란 때 불타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옛 절 터 폐사지에는 

일부 민가와 마을이 들어섰고 그 앞으로 보물인 동·서 석탑과

당간 지주만 덩그러니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단속사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어도 <정당매>는 한 쌍의 삼층석탑과 함께

600년 이상 절을 지켜왔고

현재, 산청군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 터에서는

사적 주변을 정비하고 문화재 발굴 조사와 석탑 해체 및 보수공사가 

수 년째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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