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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6-021. 산청 '남사8매' <남사5매 + 면우매, 기산매, 경무매>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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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2026-021. 산청 '남사8매' <남사5매 + 면우매, 기산매, 경무매> (2026.03.13.)

 

산청 남사예담촌의 매화 군락은

지리산 자락 산청군 단성면에 위치한 700년 양반 고택 마을의

한국 전통 문화유산의 정수로 통한다

기존의 '남사5매'를 중심으로 <면우매>, <기산매>와 <경무매>가 추가되어

고려 말에서 근현대에까지 연속성과 확장성을 넓히고

화가 이호신 선생이 시대정신을 더해서 '남사8매'를 완성하였다

이로써, 남사예담촌의 매화들은 단순한 관상수가 아닌

문중 역사와 시대정신이 연결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 유림독립운동기념관 <면우매> 


남사예담촌의 <면우매>는

단순한 관상수라기보다 유림 독립운동의 기억을 품은 상징적 존재로

마을 입구 언덕의 유림독립운동기념관 뜰에 심겨져 있다

​수령 100년 이상의 순백의 백매이며 전라도 지역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면우매>는 국제 사회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고,

을사늑약 반대 상소 등으로 항일 투쟁을 벌인 유림 지도자

면우 곽종석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면우 곽종석(1846~1919) 선생은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출신으로,

남명 조식 선생의 학통을 잇는 영남 유림의 영수로 평가되는 분으로​
붓과 글을 통해 국권 회복과 조국 독립을 호소했고, 일제의 침탈에 맞선 

‘펜으로 싸운 독립운동가’의 전형을 보여 준 인물이다​

 

따라서, <면우매>는 기존 문중의 매화와 달리,

근대사의 기억과 항일 정신을 품은 매화로서 

공간과 시간의 축을 일제강점기로까지 확장시켜, 남명학파의 후예인 곽종석 선생의 삶을

매화 한 그루, <면우매>로 응축함으로써,

‘실천하는 선비 정신’이 독립운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2. 기산국악당  <기산매>

 

남사예담촌의 <기산매>는

국악의 거장 기산 박헌봉 선생을 기리며 마을의 문화 서사를

민속예술 영역으로 확장시킨 상징이다​
기산국악당 마당에 자리한 이 매화는, 판소리 공연 소리와 어우러지는 봄 풍경으로,

남사예담촌을 단순한 전통 마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예술 공간으로 부활시킨다​

 

기산 박헌봉(1906~1977) 선생은

18세(1924년)에 진주에서 김덕천·임한수 선생에게 가야금과 판소리를 처음 접하며

국악의 길로 들어섰고
1923년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민속악 연구에 몸담았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26년 일본 유학 후 지리산으로 은거하며

가야금과 한시를 독학하였다


광복 후 1960년, 사립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학교 전신)를 설립하여

민속악 체계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고

 판소리·창극 이론서 '창악대강'을 집필하여
선생의 삶은 국악을 양반 예술에서 대중 민족예술로 승화시킨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기산매>는 기산국악당 담장 곁에 심겨져 있는데​
이 한옥 건물은 박헌봉 선생의 생가터를 복원 및 확장한 것으로,

전시실·공연장·기념관이 어우러진 문화 복합 공간이다

<기산매>는 남명학파 유학자의 마을에

민속악 보존자의 정신을 더해 '학문+예술'의 조화를 상징하고 있는데

박헌봉 선생의 '창악대강'처럼 판소리·민요를 체계화한 업적을

매화 한 그루, <기산매>로 압축하였다

일제의 탄압 속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민족의 소리'를 입혀서,

지리산 기슭 마을을 국악의 예향으로 변모시킨

박헌봉 선생의 정신이 <기산매>에 스며있다

 

 

 

 

 

 

 

 

 

 

 

 

 

 

 

 

 

 

 

 

 

 

 

 

 

 

3. 성주이씨  영모재 경무매(京畝梅)

 

남사예담촌 영모재 <경무매(京畝梅)>는

성주이씨 경무공파의 종가 문화와 깊이 연결된 매화로,

'남사8매' 중 이씨 계열의 상징적 존재이다

성주이씨 영모재(永慕齋)는 조선 개국공신 이제(1339~1407) 선생의 후손들이

1987년 건립한 재실로, 경무공(景武公)의 충절을 기리는 장소이다

이곳 담장 곁에 심겨진 백매 계열 매화가 <경무매>이며,

문중의 기품과 선비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영모재는 남사예담촌 중심부에

정면 5칸·측면 3칸 팔작지붕 한옥으로,

입구에는 18대손 이기두의 헌납 기념비와 경무송(景武松, 소나무)이 서 있다

기념비 비문은 "묘우숭엄경해약청(廟宇崇嚴謦咳若聽)"으로

선조의 기상을 생생히 전하며,

경무공의 '이제개국공신교서'(국보)가 보관된 성역이다

 

이제(경무공) 선생은 이성계의 사위이자 개국공신 1등으로,

이방원의 '왕자의 난' 때 목숨을 바쳐 충절을 지켰고

남사예담촌 성주이씨 경무공파는 12대 진사를 배출한 명문으로,

<경무매>는 가문의 학문과 효행 정신과 어우러져

인문적 경관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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