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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27) 베네수엘라 ‘토레 다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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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의 지식카페>세계最高 빈민가의 생동하는 삶… ‘죽은 건축’ 살린 불법거주자들

  • 문화일보
  • 입력 2020-01-22 11:18

45층의 토레 다비드를 불법 점거한 거주자들. 스스로 난간도 두고 외벽을 쌓았으나 모양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 Iwan Baan


■ 건축과 일상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27) 베네수엘라 ‘토레 다비드’

금융센터 짓다 중단된 45층짜리 빈 빌딩에 집 없는 이들 찾아와 무단점유… 2014년엔 750여가구 3000여명 거주
식품점·이발소·교회 차리고 청소·방범 등 자율규칙 시행… 버려진 공간을 삶의 무대로 꾸민 ‘공동체의 힘’

 
그리스의 금욕주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나무로 만든 통에서 살았다. 아니, 이미 있던 통을 무단 점유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는 출입이 자유로운 아테네 공공건물의 널찍한 공간도 가끔 무단 점유하며 살았다. 따지고 보면 불법 거주자나 집 없는 이, 긴급한 주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모두 오늘의 디오게네스다. 그런데 무단 점유의 원조인 디오게네스는 공동체가 지은 건물이니 구성원은 당연히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주장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적용될 것일까?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는 인구의 70%가 빈민가에 산다. 그런 수도의 중심에 ‘라 토레 데 다비드(La Torre de David)’라는 45층짜리 미완의 콘크리트 건물이 폐허가 된 채 서 있다. ‘다비드의 탑’이라는 뜻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이 건물은 베네수엘라 경제의 상징이었던 초호화 금융센터 센트로 피난시에로 콘피난사스(Centro Financiero Confinanzas) 건물이었다. 1990년대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기 직전인 1990년에 짓기 시작했다. 헬기장까지 갖춘 45층의 호텔, 19층짜리 주거 건물, 10층짜리 주차장이 19층 엘리베이터 동을 사이에 두고 연결돼 있다. 높이가 30m인 아트리움도 있다.

그러나 1993년 이 고층 건물의 개발자인 다비드 브릴렘버그가 사망하고, 이듬해 베네수엘라의 금융위기로 건설 자금을 지원하던 은행이 파산하면서 공정률 90%인 상태로 건설이 중단됐다. 2018년에는 강한 지진으로 제일 위에 있는 다섯 개 층이 25도 기울어졌다. 사람들은 폐허가 된 이 건물을 ‘죽은 거인’이라 부르고 있다.

2007년 9월 17일 폭우를 피해 쉼터를 찾던 사람들이 비어 있는 토레 다비드를 발견하고는 이 건물을 점유하자고 다른 가족에게 문자를 보냈다. 떼 지어 몰려온 사람들은 두 명의 당직 경비를 무장해제시키고 불법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텐트를 치고 임시거처를 만들고 살더니 2009년에는 200여 가구로 늘었고, 2014년 퇴거당하기까지는 750여 가구, 3000명 이상의 불법 거주자가 이 ‘죽은 거인’에서 살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유휴 토지를 빈곤층에 분배하고 이들이 거주한다면 무단 점유도 좋다고 옹호하며, 10년 이상 점유해 살면 어떤 땅이라도 주택 명의를 이전해 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정책이 그 배경에 있었다. 이렇게 하여 토레 다비드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직형 빈민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난간도 없이 28층 발코니에 마련한 체육관. ⓒ Iwan Baan


네덜란드의 사진작가 이완 반(Iwan Baan)이 찍은 정면 사진을 보면, 위험하지 않게 난간도 두고 외벽을 쌓았으나 모양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콘크리트로 된 통 속을 무단 점유한 디오게네스의 후예들이 모두 다른 집을 만들어 놓았다. 난간 벽을 붉은 벽돌로 쌓은 집, 그것을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집, 그 위에 하얗게 페인트를 칠한 집, 커튼이나 판재로 막은 집, 아무것도 안 가린 집, 아예 다 벽으로 가린 집, 아파트 베란다를 만든 집, 그곳에 빨래를 넌 집, 반원의 벽을 만들어 멋을 낸 집 등. 그야말로 난간의 높이만 같을 뿐 모두 다른 모양이다. 이렇게 “공동체가 지은 건물이니 그 구성원은 당연히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디오게네스의 주장은 훨씬 우리 시대에 가까이 있다.

이완 반의 생생한 사진 속에는 난간이 전혀 없는 콘크리트 계단을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며, 남들이 분주하게 지나다니는 계단에서 다리를 깁스한 남자가 앉아 쉬고 있다. 웬만한 동네 가게와 똑같은 잡화점도 있다. 새로 이사해 온 사람은 커튼이나 양탄자로 살 곳을 구분하지만, 들어와 산 지 웬만큼 된 집에서는 커튼 몇 장으로 침실을 가리기도 한다. 아예 큰 방 하나에 몇 개 텐트로 작은 방을 대신하는가 하면, 아파트처럼 벽을 세워 방을 구분한 집도 있다.

붉은 벽돌로 방을 나누고 벽돌 무늬 벽지를 붙인 사람도 있고, 주워온 재료로 만든 임시 칸막이를 하고 회반죽 칠을 한 다음 페인트까지 칠한 사람도 있다. 문자 그대로 슬럼가인 집도 있고, 바닥과 벽이 고급 타일로 마감된 방도 있다. 벽을 뚫어 가게의 계산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옹벽도 과감하게 뚫고 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건물 안에는 층마다 작은 가게가 있고 16층에는 대형 식품점도 있다. 이발소, 작은 공방, 잡화점, 무허가 병원, 창신동과 같은 작은 봉재 공장, 복음 성령 강림 교회도 있다. 주차 타워의 벽을 뚫고 통로를 만들어 건물 간의 이동을 쉽게 했다. 이 불법 거주자들이 만든 최고의 공용공간은 두 형제와 친구 한 명이 난간도 없이 28층 발코니에 마련한 아슬아슬한 체육관이다. 말이 체육관이지 버려진 엘리베이터의 도르래를 바벨로 이용한 운동 시설인데, 이 위험한 곳에서 운동하라고 모든 거주자에게 개방했다.

전기가 부족한 이 건물에서 복도와 계단은 누구나 만나게 되는 유일한 이동 공간이었다. 그래서 거주민이 가장 많이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들은 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 초고층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며, 남아 있었다 해도 그것을 가동할 전력 설비도 없고 비싼 전기 요금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래서 고안한 것이 주차타워의 경사로를 통해 유료 바이크 택시로 10층까지 태워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식료품점이나 잡화점이 들어올 수 있었다.

무단 점유한 사람들은 자기 목적만 달성하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토레 다비드의 거주자들은 달랐다. 토레 다비드의 거주자들 중에는 위험한 근처 빈민가를 벗어나 이주해 온 사람이 많았다. 또 주변의 다른 빈민가보다 이곳이 더 안전하고 쾌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공동체를 유지하려고 만든 자율적인 규칙도 잘 지켰으며 당번을 둬 청소를 하고 자체 방범활동도 했다. 전기세도 공평하게 나눠 냈다. 이들이 점거한 지 2년 되는 2009년에 ‘베네수엘라의 추장’이라는 협동조합을 등록해 완성된 공동체의 모습을 형성해 갔다. 강한 결속력으로 그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주워온 재료로 벽을 세워 아파트 방처럼 만들었다. ⓒ Iwan Baan


45층 건물과 주차장 사이에는 농구 코트를 만들어 젊은 거주자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게 했다. 협동조합은 주변의 다른 바리오(barrio·동네를 말하는 스페인어)의 농구팀과 시합하는 자기 농구팀을 위해 필요한 장비나 유니폼을 제공하고 팀을 관리하는 코디네이터까지 지정해 줬다. 운동복을 안 입으면 농구장에서는 뛸 수 없으며, 그곳에서는 욕도 하면 안 되는 규칙도 세웠다. 그리고 주민들이 더욱 단합하고 언제나 뛸 수 있게 지붕을 얹고 싶어 했다.

이런 과정에서 과연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는 무엇을 해 줬는가? 이 고층 건물을 지은 전문가는 그들의 삶을 바라본 적도 없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한 적도 없었다. 건축가는 콘크리트 골조로 된 무대만을 만들고 오래전에 ‘라 토레 데 다비드’라는 극장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무대에 거주자가 나타나 그들의 삶의 무대를 꾸며 갔다.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 무대가 고층건물이고 거주자가 무단 점유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건축가란 ‘거주하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라고 멋지게 말하는 건축가가 우리 사회에 있다.

토레 다비드의 주민과 함께 ‘수직형 빈민가’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자 연구한 건축 설계 집단이 있다. 그들은 어번 싱크탱크와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 팀이었다. 건물 안의 남은 공간에 수경 재배를 하고 녹지를 가꾸며, 급수시설과 쓰레기 배출 시설을 개선하고자 했다. 전력이 많이 드는 기존의 엘리베이터 대신에, 내려가는 버스와 올라가는 버스의 균형을 이용해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는 ‘수직 이동버스’ 방식을 구상했다. 일반 마을버스처럼 아침저녁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와 한가한 낮 시간대의 배차 간격을 달리한다. 이들은 토레 다비드의 실험이 비록 무단 거주 지역이라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도시 속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2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완 반은 미국의 비영리재단인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에서의 강의 제목을 ‘베네수엘라의 초고층 슬럼가에서 배우는 창조적인 집’이라고 했다. 무엇을 배우는 창조적인 집이라는 말인가? 그것은 비록 불법 점유한 거주지이지만 사람은 섬뜩한 현실에서도 집을 짓고 환경을 만들 수 있으며 그것으로 도시를 바꿀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건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유동적이었다. 그들은 유일하게 고정된 것인 콘크리트로 된 골조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인 조직으로 바꾸어 갔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건물’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유엔은 빈민가를 세 가지 조건으로 정의한다. 기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춘 시설의 결핍, 식수·위생시설의 결핍, 강제추방에서 자유로운 안정된 거주권의 결핍 등이다. 그러나 토레 다비드의 거주자들은 유엔이 정의한 세 조건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비로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불법 점거자지만, 자생적으로 환경을 결정하며 쓸모 있는 공간으로 바꿔간 창의적인 거주자였다.

우리나라도 인구감소, 고령화, 경제 축소에 따라 유휴 공간, 버려진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빈집 100만 시대’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특히 ‘빈집’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빈집’을 예술가의 창의공간이나 마을 북카페 같은 것으로 바꾸는 정도의 안이한 도시재생사업이 많이 보인다. 그렇지만 유휴 공간, 버려진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빈집 고치기’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토레 다비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층 건물에 형성된 빈민가 이야기가 아니다. 이 희귀한 불법 거주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속적으로 살아보겠다는 희망으로 그곳을 자기의 주거지로 바꿔간 공동체의 에너지다. 건축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토레 다비드의 거주자들은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인 미완성의 탑을 다양한 방식으로 고쳐갔다. 그들에게 무단 점유란 의미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 수 있는 장소로 바꾸고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공동체를 조직했고, 협력과 공동생활 방식을 통해서 건축물을 활용할 줄 아는 전용(轉用)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토레 다비드는 문자 그대로 ‘건축가 없는 건축’이었다. 국내에도 관련 내용이 상세히 소개된 ‘토레 다비드:수직형 무허가 거주 공동체’(알프레도 브릴렘버그 등 저, 김마림 역, 미메시스, 2015년 10월)가 번역돼 나와 있다. 원서의 부제는 ‘느슨한 수직 공동체(informal vertical community)’다.

사회가 낳은 문제는 사는 자들의 사회적인 방식으로만 해결된다. 사는 자를 제쳐 두고 건축만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또 새로운 것만이 다가 아니다. 버려져 있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 있는 건물과 사물을 함께 들여다보는 지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프랑스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가 요나 프리드먼(Yona Friedman)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건축이 아니다. 이미 있는 사물을 다시 조직하는 것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요나 프리드먼(Yona Friedman) : 1950년대에 이르러 주거 부족을 해결하고자 했던 시대에, 평균적인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에게 맞는 평균적 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각각의 주거는 사는 사람이 정해야 하고, 건축가가 좋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여겼다. 이에 다양한 삶을 거주자 개인에게 맡기는 ‘가동건축’, 기존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공중도시’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의 생각은 건축의 틀을 넘어 아트, 사회학, 경제학, 과학 등과 관련해 다양한 사회의 거주를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과 기본적인 기술과 발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그의 실천과 이론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의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페이지 경제사 365] 238.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 토레 다비드

[BY 도서출판경제21C]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는 '라 토레 데 다비드(La Torre de David, 다비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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