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지식카페>‘강수량 150㎜’ 마을의 기적… 학교, 빗물 모아 건강·배움을 주다
- 문화일보
아프리카 케냐의 중앙 고원 산간지역에 자리잡은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의 ‘빗물 코트’. 하늘에 구름이 어두워지고 막 비가 내리려고 할 즈음 코트 앞에서 학생들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archute.com
■ 건축과 일상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26) 마히가 호프 高校 ‘빗물 코트’
케냐 음위에가, 농구 코트위 ‘빗물 지붕’ 年 9만ℓ 모아 자외선 살균… 집으로도 가져가며 수인성 질병 급감
학생들 성적, 전국 최하위서 최상위로 올라… 결혼식장·극장·시장으로도 활용되며 주민 삶 향상도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건축물이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뜻인데, 특히 요즈음 일부 건축가는 인문학이라는 말에 기대어 이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사람을 위한 것은 건축 말고도 무수히 많이 있다. 그러나 건축은 그 자체가 인간이요 사람이요 삶이요 생활이다. 그런 건축에 대해서 굳이 ‘인간을 위한’이라고 다른 말을 붙여 수식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자기 집을 지을 수 있었을 때, 지붕을 만들면 그것이 곧 집이 됐다. 그들은 비바람을 막고 무서운 짐승을 피하고자 땅을 파고 내려가 바닥을 평평하게 한 다음 지붕으로 그 위를 덮는 것이 공사의 전부였다. 이를 움집이라고 하는데, 한자어로는 수혈식주거(竪穴式住居)라고 한다. ‘세울 수(竪)’란 지붕을 덮으려고 기둥을 세웠다는 뜻이다. 바닥에서 지붕 끝까지는 대략 3m 정도 된다.
지붕은 ‘집+웅’이 합쳐진 말이다. ‘집웅’은 ‘집의 우(上)’, 곧 집의 위라는 뜻이다. 지붕이라는 말이 집에서 나왔으니, 지붕은 집이고 집이 지붕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인간의 활동을 덮어주듯이 지붕은 그 아래 있는 사람을 덮어주고 머물게 해준다. 지붕은 하늘에 맞닿아 있고 하늘을 향해 빛을 받는 것이지만, 그것은 건축의 공간을 한정해 주고 지붕 밑에 사는 사람이나 방들을 하나로 통합해 준다. 그래서 지붕은 사회적이다. 그러므로 건축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건축인데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고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배울 학(學)’의 갑골문자를 찾아보면 그 뜻이 흥미롭다. 이 한자의 윗부분은 초가지붕을 이고 이엉을 엮어서 덮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가운데 있는 두 개의 ‘×자’ 모양은 엮인 이엉이며, 그 좌우에 있는 것이 손이다. 이 글자 밑에 지붕 모양()이 붙었고, 다시 그 밑에 아이(子)가 들어가 있다. 갑골문자대로 집을 해석하자면 사람이 사는 지붕 위에 올라가 초가지붕의 이엉을 엮는 것을 배우는 것, 그것이 인간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실과 지식을 배우는 것의 시작이라는 말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집에서 배우는데, 그것도 지붕에서 배움이 시작됐다는 말일 게다.
아프리카 케냐의 중앙 고원 산간지역에 도시 니에리(Nyeri)가 있고, 그 근처에 음위에가(Mweiga)라는 시골 마을이 있다. 바람이 강하고 날씨가 매우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 15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부지런히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매년 평균 강수량이 15㎝밖에 안 된다. 이렇게 물이 부족하고 환경이 척박한데도 이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남겨줘야 한다고 첫 번째 초등학교를 열심히 지었다. 4년이나 가뭄에 시달리고 있던 때에도 그들은 이런 계획을 세웠다. 이런 곳에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Mahiga Hope High School)’가 있다.
이런 마을에 조지프 무통구(Joseph Mutongu)라는 지역 보존론자가 있었다. 그는 먼지 많고 건조한 마을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나무 키우는 프로그램을 자기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소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주민의 대부분은 근근이 살아가는 농부였고 4년씩이나 기근이 들어 있었으므로, 학교는 나무에 줄 물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깨끗한 식수를 제공할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됐다.
방법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시의 수도관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물이 나오는 것은 고작 1년에 2주뿐이었다. 우물을 파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불가능했다. 마지막 방법은 독립된 집수 시설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결책을 제안한 건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터크 핍킨(Turk Pipkin)이 세운 국제 비영리기구(NPO) ‘노벨리티 프로젝트(Nobelity Project)’였다.
이들이 처음에 시도한 것은 목조 교사 건물 한 동의 지붕에 간단한 홈통을 설치해서 작은 탱크에 빗물을 모아 이 물을 자외선 처리해 깨끗한 물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학교는 소량이기는 하나 단 몇천 달러로 갑자기 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성과를 경험한 이들은 목표를 훨씬 높게 잡았다. 이 학교의 학생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모두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해 주자는 엄청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사실 우수를 받아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예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이런 것들과 다른 것은 물이 곧 교육이며, 건물을 통해 지역사회의 희망을 짓자고 나선 그들의 따뜻한 시선이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여자나 어린이들이 도맡아 매일 먼 곳에서 물을 떠 온다. 아이들은 더러운 물이라도 그것이나마 길어오겠다고 수 ㎞를 걸어야 한다. 물을 길어온 다음 지친 몸으로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더러운 물로 가족은 병을 앓게 된다.
이러한 학생들에게 깨끗한 식수는 생명과 같은 것이다. 학교와 후원자들은 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학교에서 제공할 수 있다면, 이들은 물을 길으러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고, 제시간에 학교에 와 공부를 마친 다음, 방과 후에 학교에서 얻은 깨끗한 물을 가져가면 될 것이고, 그러면 가족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코트를 덮은 지붕은 1년에 9만ℓ의 귀중한 물을 모아 준다. @Pinterest
더구나 이 학교 학생들은 기둥 하나에 링을 적당히 걸친 골대가 있는 운동장에서 농구 시합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지붕 밑의 그늘이 있는 곳에서 운동하다가도 바로 옆에 있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으면 더 열심히 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나이키 등의 후원을 받아 교사, 지역 주민, 그리고 건축가가 함께 빗물 수거용 지붕으로 덮인 농구 코트를 만들었다. 9년 전이다. 고등학교의 명물이 된 ‘빗물 코트’라는 이름은 빗물을 모아 안전한 식수를 만들고, 농구 코트에 그 물을 가까이 둬 운동하다가도 갈증을 손쉽게 해소할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비가 자주 오지는 않지만 폭풍우 등으로 쏟아지는 물을 넓은 지붕으로 받아 그 아래에 놓은 두 개의 탱크에 3만ℓ의 물을 모으게 했다. 이렇게 해서 450㎡인 코트를 덮은 지붕은 1년에 무려 9만ℓ의 귀중한 물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커다란 지붕 위에는 태양열 축전지를 깔아 전기도 공급해 줬다. 그 덕분에 이 학교로서는 처음으로 더 많은 빗물을 자외선으로 정화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이 물로 만든 음식을 먹고, 깨끗한 물을 집으로 가져간 결과 수인성 질병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자 학생들의 학교 출석률이 크게 올라갔다. 아마도 학생들은 학교에서 얻은 물을 무거운 물통을 들지 않고 굴리면서 50ℓ의 물을 옮길 수 있게 고안한 도넛형 모양에 끈이 달린 ‘Q드럼’으로 집에 가지고 갔을 것이다.
햇볕을 가려주는 농구장이 생겨서 학생들의 체력도 좋아졌다. 두 저장 탱크 사이에는 스포츠 장비 창고와 더불어 공연을 위한 무대,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 등도 마련됐다. 이 지붕 밑 사방이 트인 그늘에서 농산물도 파는 시장이 되기도 하며, 결혼식도 하고 밤에는 영화도 상영하고 회의도 한다. 커다란 지붕 하나가 이 시골 마을에 처음으로 생긴 커뮤니티 공간이 돼 지역 공동체를 묶어내고 있다.
이렇게 하여 학교에 등록하는 학생 수는 3배로 늘었으며, 전국의 600개 고등학교 중 가장 성적이 낮았던 이 학교는 놀랍게도 1년 반 만에 가장 우수한 학교로 급성장했다. 전기가 들어오게 된 이 학교에는 컴퓨터실과 도서관이 설치됐고 2층짜리 교사 건물도 세워졌다. 버려진 시골학교가 교육의 모델 학교로 뒤바뀐 것이다. 학생들은 이 ‘빗물 코트’의 지붕에서 희망을 봤다. ‘마히가’는 이곳 말로 ‘돌’이라는 뜻이다. ‘마히가 호프’라는 학교 이름처럼 돌로 지은 건물로 희망을 짓는 학교가 됐다.
철골 기둥과 지붕만 있는 작고 허름한 농구장이 완공되는 날 무려 1000명이 모였다. 코트에서는 준공 기념으로 첫 농구 시합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3개월 동안 비는 한 방울도 안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구름이 서서히 몰려들더니,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슛이 골대에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때의 기록 영상을 보면 렌즈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는 농구 코트 주변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고, 학생들을 그 물 위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지붕 밑에서는 농구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늘 멋있는 건물만 보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지붕뿐인 구조물. 그러나 이들에게 그것은 큰 기쁨이었다. 이것을 본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그레그 엘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내렸을 때 우리가 할 일은 그것으로 끝나버렸다.”
나는 건축 사진 중에서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막 비가 내리려고 할 즈음 ‘빗물 코트’ 앞에서 많은 학생이 모여 손을 들고 환호하는 이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이것은 결코 연출된 사진이 아니다. 이것은 건축이 말하는 진정성과 기쁨을 말하고 있다. 지붕을 집에 늘 얹혀 있는 덮개로만 바라보는 이상, 지붕은 그 이상 해 줄 것이 없다. 그러나 아주 평범한 이 ‘빗물 코트’의 지붕은 그늘과 깨끗한 물을 주고, 공부도 잘하게 하며, 학교 다니는 것을 긍지로 여기게 만들고, 결국에는 사람에게 무언가 희망을 주고 그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것이 건축의 힘이다.
이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의 빗물 코트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그 중 ‘우리 동네 마을 살리기’에서는 주민이 필요하다는 건물, 막연히 공공 공간을 잘 지어주면 다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빗물 코트’와 같이 건축의 구체적인 요소 하나하나를 통해 따뜻한 마음으로 사회적 문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이상,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은 멀리 있다.
갑골문자의 ‘배울 학(學)’이라는 글자에서 보듯이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의 빗물 코트 지붕은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도 가르치며, 교육이 무엇인지도 가르치고, 이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도 가르쳐 주고 있다. 나무 키우는 프로그램을 제안한 조지프 무통구는 제일 먼저 지붕에서 모은 물을 그릇에 담아 학교 운동장의 한구석에 심은 나무 한 그루에 부어 줬다. 건조한 마을을 바꿔 줄 그 나무는 지금도 그곳에서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 빗물 코트의 지붕은 이렇게 희망을 가꾸고 있다.
후원자 터크 핍킨은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의 건설 과정을 찍은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희망을 짓다’(Building Hope)였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노벨리티 프로젝트 (The Nobelity Project) : 작가, 배우, 코미디언 및 감독인 미국의 터크 핍킨(Turk Pipkin·66)이 아동의 기본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2006년 부인 크리스티 핍킨(Christy Pipkin)과 함께 설립한 비영리 단체. 부부는 노벨상 수상자 9명을 인터뷰한 후 에너지, 기아, 지뢰 및 기후 변화와 같은 세계적인 문제에 관한 영화 ‘노벨리티’를 2006년에 만들었다. 그 후 3년 동안 5개 대륙과 20개 국가를 여행하면서 물, 영양, 교육, 건강 관리, 기회, 환경 및 평화 문제의 해결 방안에 중점을 둔 속편 ‘One Peace at a Time’을 촬영했다. 그리고 2011년에 ‘노벨리티 프로젝트’가 추진한 케냐 시골 마히가 호프 고등학교 건설에 관한 세 번째 영화 ‘희망을 짓다’(Building Hope)를 발표했다.
출처 - <김광현의 지식카페>‘강수량 150㎜’ 마을의 기적… 학교, 빗물 모아 건강·배움을 주다 :: 문화일보 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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