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교실이 된 텃밭… 초록빛 원시의 공간에서 미래 교육을 일구다
- 문화일보
- 입력 2019-09-04 10:08
3년 동안 학생, 교사, 주민이 힘을 합쳐 주차장이었던 곳을 텃밭으로 바꿨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중학교.
@Michael Layefsky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22) 美 마틴 루서 킹 중학교의 텃밭
- 건축과 일상
직접 음식물을 키워 조리해 먹는 것이 커리큘럼… 미술시간엔 텃밭 그리기, 과학시간엔 물·토양의 성질 공부
지속가능한 삶·생태를 이해하는 지성·감성적인 유대 가르치며 획기적 교육 모델로 주목
사람은 울타리를 치고 길들인 또 다른 자연을 집 가까운 데 두었다. 그것이 정원이다. 정원은 자연과 집 사이에 있는 지붕 없는 방이며, 집과 숲 사이의 중간에 해당하는 장소다. 그렇지만 정원은 보고 즐기려고만 만든 것이 아니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려고만 만든 것도 아니다. 지금은 채소와 과일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시장에서 사다 먹지만, 옛날에는 손쉽게 채소를 재배해 먹고 아프면 약초를 금방 얻을 수 있게 집 가까이에 심고 그 주위에 울타리를 쳤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정원의 시작은 분명 원예였을 것이다.
정원의 본래 이름은 ‘호르투스 가르디누스(hortus gardinus)’였다. ‘호르투스’는 정원이고 ‘가르디누스’는 벽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인데, 이 ‘가르디누스’가 후에 영어로 ‘garden’이 됐다. 한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원(庭園)의 ‘園’은 울타리가 ‘口’ 모양으로 에워싼 곳에 과목(果木)을 심었다는 뜻이다. 원예를 영어로 ‘호티컬처(horticulture)’라고 한다. ‘호티(horti)’와 경작하다는 뜻의 ‘컬처(culture)’가 합쳐진 것인데, 벽으로 둘러싸인 터에서 필요한 풀이나 약초를 기르는 것이 원예라는 말이다.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중학교. @https://www.berkeleyschools.net
텃밭에 채소와 약초를 키우려면 들어가서 손질하기 편리하도록 못자리 사이를 떼고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놓은 모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땅을 격자로 나누고 분류해야 한다. 1610년에 만들어진 네덜란드 레이던대(Universiteit Leiden)의 식물 정원을 보면 꽃이나 채소를 찾기 쉽게 기하학적으로 잘 분류해 놓았다. 또한 텃밭은 ‘집터에 딸리거나 집 가까이 있는 밭’이다. 따라서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텃밭이 아니다.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화분 등에 흙을 담아 채소를 기른다 해도 ‘집터’에 가까운 곳은 아니므로 텃밭이 아니다. 이런 곳은 ‘집의 울안에 있는 작은 밭’을 뜻하는 ‘터앝’이 맞는 말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는 영주가 거느리는 많은 사람을 먹이려고 자기 주거지 안에 채소, 과일, 허브, 버섯 등을 키우는 정원을 많이 만들었다. 텃밭이 부엌과 가까운 곳에 있다 해서 이런 정원을 ‘키친가든(kitchen garden)’이라 하는데 번역하면 ‘부엌정원’이다. 프랑스에서는 ‘포타제(potager)’, 일본에서는 ‘가정채원(家庭菜園)’이라 한다. 이런 정원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담장정원(walled garden)’이라고 했다. 모두 텃밭의 다른 표현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고층 아파트 사이의 노는 땅이나 방치된 주차장을 텃밭으로 만들고 이를 구획한 자리에 유기농 재배를 하고, 그중 일부를 다른 주민에게 싼값에 판매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서울의 상암두레텃밭도 이렇게 출발했다. 이곳 주민들은 스스로가 버려진 환경을 수습해 텃밭을 구획하고 여기에서 기른 것의 절반은 기부한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이런 텃밭을 ‘공동체텃밭(community garden)’이라 하는데, 영국에서는 ‘allotment garden’(줄여서 allotment), 일본에서는 ‘시민농원(市民農園)’이라고 부른다.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이뤄진 공동체다. 그러나 식구(食口)는 가족과 다르다. 식구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의 공동체다. 함께 먹는(食) 입(口)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텃밭에서 일군 채소나 과일을 함께 먹는(食) 사람들(口)은 도시 안에 작은 공동체를 이룰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교정의 일부를 텃밭으로 바꾸고 이것으로 교육 과정까지 바꾼 주목할 만한 학교가 미국 서해안의 버클리에 있다.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Edible Schoolyard)’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중학교(Martin Luther King Jr. Middle School)의 텃밭이다.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이란 학교의 텃밭에서 야채나 과일 등을 재배하고 수확한 것을 조리해서 먹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원래 이 학교는 전교생이 1000명이나 되는 대형 중학교였다. 그중 백인 학생이 약 30%이고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이슬람 이민자의 자녀가 함께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무려 22개국 언어를 사용할 정도로 인종적으로 무척 복잡한 학교였다. 그런 탓에 학생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으며, 벽에는 낙서로 가득 찼고 유리창은 여기저기 깨져 있는 등 학교시설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때 미국의 유명한 유기농 레스토랑 ‘셰 파니스(Chez Panisse)’의 오너 셰프인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가 황폐해진 이 중학교 앞을 지나 매일 출퇴근하고 있었다. 요리사가 되기 전에 환경과 감각을 중시하는 몬테소리 교육의 교사이기도 했던 그녀는 이 중학교 앞을 지나가며 황폐해진 이 학교를 어떻게든 음식의 소중함을 배우는 학교로 바꿔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생각을 말하게 됐고, 이 기사를 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학교의 재생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1994년의 일이다.
워터스가 제안한 것은 음식물을 키워 조리해서 먹는 것을 통한 교육이었다. 3년 동안 300명의 학생, 10명의 교사, 100명 이상의 주민과 힘을 합쳐 학교 주차장이었던 곳을 텃밭으로 바꿨다. 이들은 아스팔트를 떼어 내고 흙을 일구며 퇴비를 줘 1에이커나 되는 훌륭한 텃밭을 마련할 수 있었다. 주차장 한구석에 있던 창고를 개조해서 부엌을 만들었으므로, 이 텃밭은 ‘키친가든’이었다. 학생들은 텃밭에서 얻은 수확물을 함께 요리해서 먹었다. 그리고 텃밭 주위에는 울타리를 치지 않고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학교의 공동체텃밭이 지역의 공동체텃밭이 됐다.
학생들에게 교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텃밭 교사(garden teacher)와 부엌 교사(kitchen teacher)가 가르치는 텃밭과 부엌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마른 풀로 묶은 의자에 둘러앉아 이들이 재배하고 수확한 야채, 과일, 허브 등을 실제로 요리한다. 텃밭에 붙어 있는 부엌에는 일류 셰프가 사용할 정도의 제대로 된 조리 기구가 다 갖춰져 있다. 보통 요리는 부엌 교사와 함께 만들지만, 때로는 셰 파니스의 셰프가 직접 가르치러 올 때도 있다. 운영에는 텃밭 상담역 등도 참가한다. 교사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가르치고 관여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만든 요리는 제대로 된 그릇에 담아 텃밭의 한쪽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함께 먹는다. 어떻게 보면 일종이 ‘가정과’ 수업 같지만, 미술시간에는 식물과 텃밭 그림을 그리고, 국어시간에는 텃밭 활동에 관한 글을 쓴다. 과학시간에는 재배에 적합한 물과 토양의 성질을 공부하고 사회시간에는 음식문화를 조사한다. 이처럼 사회, 과학,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복합적으로 배우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독특한 학습 방법이다.
같은 반 친구들과 지역 주민과 협력해 야채를 기르고 그것을 요리해 먹는다는 것은 최고의 교육이며,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 몸을 움직여 일하는 기쁨을 아는 것은 곧 다양한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텃밭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바꿔나갈 수 있다. 또한 학교와 지역이라는 두 사회는 텃밭을 통해 새롭게 이어질 수 있다. 이 작은 예는 공간은 미학적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사회는 경제와 효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서 작용함을 증명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새 부엌을 더 좋은 장소에 설치할 때도 모든 학생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옛 부엌의 어떤 것을 새 부엌에 가지고 가야 할까” “새 부엌에 있어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중국 종이로 만든 랜턴이 있으면 좋겠다” “옛 부엌에 걸린 그림을 가져 오자” 등 학생 대부분이 의견을 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공간을 통해 교육을 바꾸면 어린 학생들도 사물의 효율이 아니라 생활의 보편적 가치를 작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학교는 필수과목, 영양교육, 인간 형성이라는 3개의 목표를 정하고 텃밭과 부엌 수업을 학습 목적에 융합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 생태를 이해하는 지성, 자연과 이어진 감성적인 유대를 몸으로 배우게 한다. 그 결과 먹는 것과 생명의 연결을 가르치는 이들의 교육 방식은 어느 사이에 현대 교육의 획기적인 모델로 주목받게 됐다. 이 학교의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 프로그램은 버클리 학교 급식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도입되기도 했으며, 이것에 영향을 받아 캘리포니아주에만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3000개 이상의 같은 텃밭이 생겨났다. 그리고 미국 전체 공립 및 사립학교에서 정규 수업으로 실천되고 있다. 학생 급식을 위해 학교 주변 지역에서 만든 유기농 야채를 매입하고 그것으로 학생들이 요리하는 활동도 많아졌다. 텃밭의 먹을거리로 시작한 변화가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2005년에는 처음으로 뉴올리언스에 제휴학교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학교가 제휴학교가 된 사정은 조금 남다르다. 이 학교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다른 마을로 피난 갔던 학생들이 몇 개월 동안 학교에 오지 못했고, 시가지가 심각한 타격을 입어 아무것도 키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의 제휴학교가 돼 학생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교장 선생님이 워터스의 역할을 한 셈인데, 그만큼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은 교육과 생활의 근본을 묻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휴학교는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학교에 텃밭을 만들 만한 장소가 없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을 실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교실 바로 옆에 텃밭이 있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옥상에 플랜터(화분)를 두거나 가까운 곳의 텃밭을 빌리거나 또 여러 학교가 텃밭을 함께 사용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교육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가 하는 마음가짐이다.
요즈음 한국의 교육부는 공급자 위주가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학교 공간이 미래 교육을 위한 ‘민주주의의 정원’이 되도록 사용자 중심의 학교 공간으로 혁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아직은 이 계획이 기존 학교 건물을 고쳐 쓰는 데만 한정돼 있다. 무엇이 미래이고 왜 사용자가 주도하는 공간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비전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는다.
공간은 때로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공동체텃밭은 도시농업의 한 방법으로만이 아니라 학교로, 교육으로, 지역공동체로 확장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의 건축을 새롭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우리는 ‘먹을 수 있는 학교 텃밭’을 보며 첨단 기술만이 아닌 공간과 함께하는 매우 원시적인 가치 속에 미래의 교육이 있음을 발견한다. (문화일보 8월 14일자 28면 21 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 정원(garden)
본래 이름은 ‘호르투스 가르디누스(hortus gardinus)’. ‘호르투스’는 정원이고 ‘가르디누스’는 벽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말인데, 이 ‘가르디누스’가 후에 영어로 ‘garden’이 됐다.
- 한국의 텃밭
집터에 딸려 있거나 집 가까이에 있는 밭.
- 영국의 키친가든(kitchen garden)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 영주가 많은 사람을 먹이려 주거지 안에 채소, 과일, 허브, 버섯 등을 키우는 정원을 많이 만들었다. 텃밭이 부엌과 가까운 곳에 있다 해서 이런 정원을 ‘키친가든’ 즉 ‘부엌정원’이라 한다.
출처 - <지식카페>교실이 된 텃밭… 초록빛 원시의 공간에서 미래 교육을 일구다 :: 문화일보 mun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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