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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4-037. 청주 운보의 집 <운보매> (2023.03.31.)

 

 

 

 

 

 

 

 

 

 

037.  청주 '운보의 집' <운보매> (2023.03.31.)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위치한 운보의 집은

김기창(1913~2001) 화백이 71세인 1984년에 한옥으로 신축을 완료하고

 2001년 1월 작고할 때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약 8만3천m²의 대지에

운보의 집과 운보미술관, 수석공원, 조각공원, 도자기공방,

연못과 정원, 운보의 묘 등이 있다

 

운보미술관에는 상설 전시되고 있는 대표작 50여 점과

도자기, 판화, 스케치, 유품과

부인 박래현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한옥으로 지은  ‘운보의 집’ 의

솟을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행랑마당이 나타나고

다시 작은문을 통과하면

아주 넓은 뜰과 정자 그리고 ㄱ자 안채가 나타난다

 

그 안채와 행랑채 사이의 담장을 경계로 하여

행랑마당에는 기세 좋게 활짝 핀 목련이 한 그루 있고

안채쪽에는 <운보매>가 있다

현재 약 40% 정도 개화한 <운보매>는

블로그 친구인 매광님께서 소개를 해 주셔서 알게 된 매화로

행매계(매화+살구) 매화이다

 

 

매실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중국에서는 중국 매실을 행매(杏梅)라 하고 일본 매실을 산매(酸梅)라 하여

행매를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의학이 전래되던 고려 중엽에

매실나무가 함께 들어와 심어졌다고 전한다

 

매실은 장밋과에 딸린 매화나무의 열매다

한자로는 목모(木母)라 쓰고,

한방에서는 풋과일을 매실(梅實),

찌거나 불에 그을려 말린 매실을 오매(烏梅)라고 하여

예로부터 귀한 약재로 쓰인다

 

‘운보의 집’ 에는 <운보매> 외에도

수령 40년 내외의 홍매 2그루가 담장곁에 자라고 있고

후원에는 아주 어린 청매 1그루가 있다

 

 

 

 

 

 

 

 

 

 

 

 

 

 

 

 

 

 

 

 

 

 

 

 

 

 

 

 

 

 

 

 

 

 

 

 

 

 

 

 

 

 

 

 

 

 

 

 

 

 

 

 

 

 

 

 

 

 

 

 

 

 

 

 

 

 

 

 

 

 

 

 

 

 

 

 

 

 

 

 

 

 

 

 

 

 

 

 

 

 

 

 

 

 

 

 

 

 

 

 

 

 

 

 

 

 

 

동양일보청주에 운보의집지어 말년 보내

 

 

한국 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4.2.18.~2001.1.23.)

59세가 되던 해인 1972년 청주시 북일면 형동리에 25000평의 산을 마련했다.

그는 노후에 가족과 함께 청주로 내려와 살면서 업을 하고

자연에 귀의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청주는 그의 외가가 있던 곳이자 어머니 한윤명(韓潤明)의 고향이었다.

김기창의 외할머니 이정진(李貞鎭)은 황해도 출생으로

청주에 살았던 외할아버지 청주 한()씨와 결혼하였다.

외할머니는 이곳에서 운보의 어머니 한윤명을 낳았고

, 30세에 홀로된 이후 77세까지 살면서 외손자 운보를 보살핀

실질적인 보호자였다.

 

산을 마련한 이후 운보는 그곳에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집을 짓기도 전에 먼저 떠난 아내 우향 박래현(1920.4.13~1976.1.2.)

묘소까지 모두 이곳에 모셨다.

그리고 자신도 세상을 떠난 뒤 이곳에 함께, 나란히 누웠다.

말년에 살던 운보의집바로 뒤, 햇볕 좋은 언덕에.

 

 

 

 

 

 

 

 

 

 

 

 

 

 

 

 

 

 

 

30년간을 아내·비서·친구·어머니의 역할을 해왔던 우향이

 1976, 57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운보는 더 이상 서울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는 1979년부터 청주시 북일면 형동리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청주의 아담한 산세와 어울리는 한옥이었다. 

마당에 연못을 만들고 정자도 지었다. 

무려 5년여에 걸쳐 1984 운보의 집이 완공됐다.

운보의 집 옆에는 운보와 우향의 이름을 딴 운향미술관

도예전시관, 운보공방 등 문화공간도 조성했다.

 

이중 운보공방은 청각장애인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하고자 했다.

 

운보는 운보의집 지하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한옥에 지하를 만든다는 것은 전통한옥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난이도가 있는 건축이지만, 

운보는 멋지게 지하작업실을 만들고

이곳에서 바보산수 문자도’, ‘서상도 

말년의 작품을 제작했다.

 

72세 되던 해 운보는 성 라자로 성당에서

이경재 신부의 주선으로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가톨릭 영세를 받는다. 

그리고 청주 내수성당에 주일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미사에 참석하였다.

 

2001 1 23(음력 12 31) 운보는

청주 운보의집에서 숙환으로 운명한다. 

서울 삼성의료원과 청주 운보의집에 두 곳에 분향소가 설치되었으며,

26일 정부 금관문화훈장 수여, 27 2시 운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우향과 합장으로 청주 운보의집 뒤에 묻혔다.

 

이로써 그는 영원한 청주인(淸州人)이 되었다.

(출처 : 동양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