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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4-026. 성주 회연서원 백매원 (2024.03.16.)

       

 

 

 

 

 

 

 

 

 

 

026.  성주 회연서원 백매원 (2024.03.16.)

 

 

성주 회연서원은

영남 5현 가운데 1명인 한강 정구 선생이

 1583년(선조 16)에 세워 제자들을 교육하던 회연초당檜淵草堂이

선생의 사후, 1627년(인조 5) 지방사림의 여론에 따라 서원이 되었고

1690년(숙종 16)에 ‘회연檜淵’이라 사액을 받았다

 

 마지막 유언으로 “저 매화에 물을 줘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남다른 매화 사랑을 보여줬던 퇴계 이황 선생처럼

그의 학맥을 이은 한강 선생도 매화를 특별히 좋아했고

그래서 한강 선생은 '회연초당'을 건립하면서 그 초당의 마당에 

10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백매원百梅園'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이후, 한강 선생의 사후에

 '회연초당'과 '백매원'이 있었던 그 자리에

후학들이 '회연서원'을 건립하여 선생을 추모하고 있다

 

회연서원에는 건립할 당시에

강당 오른쪽의 명의재 앞에 홍매 1그루를 심고 

명의재 뒤쪽에는 백매 5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족히 수령 400 년을 헤아리는 이 <한강매寒岡梅>들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백매 1그루가 오래전에 고사하였고

홍매 1그루도 근래에 완전히 고사하였다  한다

나머지 백매들은 2019년에 방문했을 적에는

그 그루터기 정도는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2023년에는 그전 해의 심한 가지치기로

매화가 전혀 피지 못했다는 황당한 사고를 뉴스로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서서히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곳곳에 남아 있어 보인다

'회연초당의 백매원'을 복원하려는 열정은 높았지만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려는 정성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자체들은 가지지 못해서 부러워하는 

훌륭한 역사적 자산과 스토리텔링을 보유한 성주 회연서원이

실패를 교훈 삼아 명품  '백매원百梅園'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

 

 

 

 

 

 

 

 

 

 

 

 

 

 

 

 

 

 

 

 

 

 

 

 

 

 

 

성주 회연서원 (檜淵書院)    

 

  한강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수륜면 신정리에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하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서원 중의 하나로

선생의 문집판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다.  

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양현청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

(글출처 : 문화재청)

 

 

 

 

 

 

 

 

 

 

 

 

 

 

 

 

 

 

 

 

 

 

 

 

 

 

 

 

 

 

 

 

 

 

 

 

 

 

 

 

 

 

 

 

 

 

 

 

 

 

 

 

 

 

 

 

 

 

 

 

 

 

 

 

 

 

 

 

 

 

 

 

 

 

 

 

 

 

 

 

 

무흘구곡 명상의 길 매화

 

 

무흘구곡武屹九曲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정구 선생이

경북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의 성주댐 아래쪽의 대가천에 자리한

제1곡 봉비암鳳飛巖에서부터 성주댐을 거쳐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의 수도암 아래쪽 계곡에 자리한 제9곡 용소폭포까지

약 35㎞ 구간의 맑은 물과 기암괴석 등의 절경을 읊은 시이다

성주군에 1~5곡이 있고, 김천시 증산면에 6~9곡이 있다.

 

정구선생이 대가천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인 주희朱憙 선생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받아

대가천을 오르내리며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골라 이름 짓고

7언 절구의 시를 지어 그 절경을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출처 : 시니어매일)

 

대가천이 바위 언덕을 만나

잠시 멈추는 곳인 「제1곡 봉비암」에서

물가에 솟은 20~30m 높이 암벽인 「제2곡 한강대」까지의 

'명상의 길 - 매화 강변길'이 조성되어 있다

길 양쪽의 매화들은 아직 10년생 내외의 어린 매화들이지만

수려한 대가천을 따라 매화의 향기로 넘칠 날을

기대해 본다

 

 

 

 

 

 

 

 

 

 

 

 

 

 

 

 

 

 

 

 

 

 

 

 

 

 

 

 

 

 

 

 

 

 

 

 

 

「제1곡 봉비암」에서 「제2곡 한강대」 사이에 있는

한옥 「중매댁」과 소나무.

 

 

회연서원에 매화를 보러 갔다가

좋은 한옥(경상북도 민속문화재) 과 잘 생긴 소나무를 만났다

 

 

 

 

 

 

 

 

 

 

 

 

 

 

 

 

성주 수성리 중매댁(星州水成里中梅宅)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중매댁은 현재 소유자 정발의 할아버지 정재철이

1903년(고종 40)에 건립한 살림집이다.

가옥의 이름이 ‘중매댁’인 것은

현재 집주인의 할머니가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의 중매 마을에서

시집온 데에서 유래한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 고방채가 존재한다.

5동과 1곽으로 구성된 가옥의 전체적인 배치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와 중문채, 안채, 고방채가

전체적으로 튼 ‘口’ 자형을 취하고 있다.

 

특히 안채는 매우 잘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으로

2m 높이의 5단 축대를 쌓은 후 그 위에 건립하였다.

평면 구성은 대청 2칸을 중심에 두고

좌측으로 안방과 부엌, 찬방을 ‘ㄱ’ 자형으로 배치하였고,

우측으로는 가운데 방, 갓방, 작은 부엌을 ‘一’ 자로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T’ 자형의 독특한 평면 형태이다.

전통 주택의 구조와 배치법을 유지하면서도

부엌 뒷마당을 중심으로 찬방과 안방, 부엌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가사 노동을 기능적으로 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적이다.

 

성주 수성리 중매댁의 전체적인 형태는

20세기 초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전통 주택의 공간 구성도

합리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사례로 평가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