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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4-016. 밀양 <금시매> -매화 향기로 손님을 대접하다(2024.03.08.)

 

 

 

 

 

 

 

 

 

 

 

016. 밀양 <금시매> (2024.03.08.)

 

 

밀양의 산성산이

밀양강을 향해 흘러내리다 웅지를 튼 백곡계곡 기슭 언덕위에

금시당과 백곡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대규모로 숲을 이룬

깊은 골짜기로서 백곡이라고불리던 곳이었다

 

 뒤로는 산성산 일자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용두산龍頭山 능선이 내려가고

왼쪽으로는 호두산虎頭山 능선이 내려가는 요지로서 금시당과 백곡재는

용과 호랑이의 꼬리가 맞닿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금시당은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금시당今是堂이란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내용 중

覺今是而昨非중에서 今是를 취한 것이라 한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늘은 잘한 일이요

벼슬살이에 얽매였던 지난날은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서

산수와 전원에서 여생을 즐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종 21(1566)에 처음 지어졌던 금시당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3년에 백곡 이지운 선생이 다시 복원한 건물이고

금시당 옆의 백곡재는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철종 11(1860)

후손들에 의해서 세워진 건물이다.

 

금시당과 벽곡재 앞뜰에는

수령 210년의 매화 <금시매今是梅>가 있다

 3 8일 현재 <금시매>

벌써 만개하여 청아한 절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늦을 것이다

 

 

 

 

 

 

 

 

 

 

 

 

 

 

 

 

 

 

 

 

 

 

 

 

 

 

 

 

 

 

 

  금시당과 벽곡재 앞뜰에는

수령 210년의 매화 <금시매今是梅>와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그리고 마당에는 100년 넘은 백송이 있다

 

 이광진 선생이 금시당 신축시 직접 심은 은행나무는

수고 22m, 나무둘레 5.1m의 거목으로

밀양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변의 인기 높은 달성 도동서원의 은행나무와

경주 운곡서원의 은행나무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품격과 자태를 지녔다고 말 할 수 있다

 

 <금시매>는 금시당과 벽곡재의 중간지점인 2단 화계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쪽에도 지우치지 않는 중용의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아서

양쪽 마당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시매>의 수령은 여태껏 160년 정도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금시당을 방문한 수목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210년 정도가 올바른 나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다고

금시당 주인어른께서 귀뜸해 주신 적이 있었다

 

금시당의 주인어른은 여주 이씨 후손으로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6년 전쯤에 귀향해서 금시당과 벽곡재를 관리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해 주고 계신다

 옛날에 주인어른이 금시당으로 귀향하시기 전에는

항상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기에, 항상 담장 너머로만 <금시매>

볼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주인어른의 배려로

금시당의  방문이 자유로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상당히 고마운 일이고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귀찮겠지만

친절하게 맞아 주시는 주인어른의 모습에서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명문가의 높은 선비정신'

뵐 때마다 느끼곤 한다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기억조차 흐릿해 지고 있지만

옛날에 선비 집안에서 챙기던 2대 업무는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이었다

제사 지내는 일과 손님 접대하는 일은 양반 집안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 봄이 오는 밀양의 <금시당>

밀양강에 살며시 퍼지는 <금시매>의 달달한 향기뿐만 아니라

손님을 예우하던 접빈객接賓客의 선비의 품격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인문학의 산 교육장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