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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4-003. 순천 금둔사 <납월매> 피기 시작하다 (2024.02.10.)

 

 

 

 

 

 

 

 

 

 

 

 

003. 순천 금둔사 <납월매> 피기 시작하다 (2024.02.10.)

 

 

갑진년의 설날 아침에
산소를 찾아서 일찌감치 성묘를 드렸다 
우리 산소에도 10그루 정도의 매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  5년 전에 내가 심은 <와룡백매>는 상당히 일찍 꽃을 피우는 설중매라

설날 아침에 성묘를 가면 종종 <와룡매>가 피어 있어서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올해는 아직도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올해 초봄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지만 
유독 비가 적어 가물어서 매화의 개화가 좀 늦어지고 있고 

이미 핀 꽃 또한, 꽃잎이 메마르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판단이 맞지 싶다

정초의 겨울에 내리는 짖굿은 겨울비는 

한기로 잔뜩 움츠린 세상을 얼음왕국으로 바꾸고

어렵사리 피운 여린 꽃잎마저 꽁꽁 얼리고 시들게 해서 

꽃잎이 피자마자 떨어지게 만드는데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나무와 식물의 성장발육을 위해서는 

그 겨울비 또한 꼭 필요한 생명수라고 하니, 

이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깨닫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항상 느낀다



성묘를 마친 후에 
순천 금둔사를 향해 차를 몰았다 
새해 첫 날부터 탐매여행을 나선 적은 여태껏 없었지만 
명절연휴 교통정체를 무릅쓰고라도 당장 확인해 봐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며칠전, 모 중앙 일간지에
금둔사 <납월매>에게 이상이 생겨 올해는 꽃을 피우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왔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순천 금둔사엔 동지섣달에 꽃 피는 매화나무가 있는데 

겨울에도 매화 100송이나 피우던 금둔사 <납월매>였다

 이를 가꾼 큰스님이 지난 가을에 입적했다

 그리고 올겨울, 금둔사 매화는 꽃을 감췄다......"

 

 

 

 

 

 

 

 

 

 

 

 

 

 

 

스님 떠나자 기이한 일매화 100송이 피던 금둔사 무슨일이

중앙일보

입력 2024.02.02. 00:01

 

 

~ 이 맛에 중노릇을 하는 거라.” 순천 금둔사엔 동지섣달에 꽃 피는 매실나무가 있습니다. 음력 섣달에 핀다고

섣달 납()’자를 붙여 금둔사 납월매라 불렀습니다. 겨울 매화 100송이나 피우던 금둔사. 이를 가꾼 큰스님이 지난 가을 입적했습니다. 그리고 올겨울, 금둔사 매화는 꽃을 감췄습니다.

......

 

한겨울에도 꽃을 보러 다닌 건 올해로 20년째다. 처음엔 소문으로만 알았다. 전남 순천에 가면 낙안읍성 내려다보이는

금전산(668m) 남쪽 기슭에 금둔사라는 작은 산사가 있는데, 그 절집 매실나무가 동지섣달에도 꽃을 피운다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찾아갔더니 정말 매화가 피어 있었다. 붉은 매화, 홍매(紅梅)였다. 그때부터였다. 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과

연을 맺은 건.

 

40여 년 전 폐허 같았던 금둔사를 일으키고 매실나무 씨앗을 구해 와 이윽고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 지허 스님이다.

금둔사에 들 때마다 스님은 손수 기르고 따고 덖고 내린 차를 내주셨다. 지허는 그 유명한 선암사 동구 차밭을 손수 일군

선사(禪師). 인연에도 끝이 있는 것일까. 지허 스님이 지난해 10 2일 입적했다. 1941년 전남 보성 벌교에서 태어났으니 세수는 82세였고, 1956년 선암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67년이었다.

......

 

금둔사로 내려간 건 지난달 17일이다. 금둔사는 아직도 어두웠다. 꽃망울 맺힌 나무에서 한두 송이가 겨우 꽃잎을 열었을 뿐이었다. 동짓달에도 100송이 넘게 꽃을 피웠던 금둔사 매화가, 제주도 매화가 86년 만에 가장 이른 개화 소식을 전한

이 겨울에는 피지 않았다. 설마 매화도 스님이 떠나신 걸 알았던 걸까.

......

 

금둔사의 명맥이 끊긴 건 정유재란(1597) 때다. 난리 통에 가람이 전소했다. 이후 오랜 세월 폐사지였다. 1970년대까지

산 아래 주민이 금전산 중턱 절터까지 올라와 밭농사를 지었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킨 주인공이 지허다. 1979년 금전산 기슭에서 무너지고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서다. 그 뒤로 스님은 길 닦고 돌 쌓으며 버려진 절을 다시 세웠다. 산 아래 낙안읍성에서 600년 묵은 노거수의 씨앗 한 움큼을

받아와 금둔사 곳곳에 뿌린 건 1985년의 일이다. 그 씨앗 중에서 6개가 살아남아 매운 계절에 꽃을 피운다. 생전의 스님은 매화가 부처라고 말했었다."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6341#home

 

 

 

 

 

 

 

 

 

 

대웅전 우측 <첫번 째 납월매>

 

 

 

 

 

 

 

 

금둔사에 도착해서 확인에 들어갔다

 

대웅전 우측 <첫번 째 납월매>는 2024년 2월 10일 현재까지

딱 1송이만 피었다

부산 UN공원의 홍매화는 이미 만개했고

거제도 구조라 초등학교의 <춘당매>는 만개후에 벌써 꽃이 지고 있다는데

뉴스대로 심상치 않았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화장실 앞쪽 <여섯번 째 납월매> 나무.

그새 기존에 있었던  화장실은 아래로 내려갔고 대신 그 자리에

관월당이 새로 들어섰다

관월당 앞은 전망이 툭 트인 양지바른 자리이다

 

다행히 <여섯번 째 납월매>는 꽃이 제법 피기 시작하였다

그보다 더 윗쪽에 자리잡은 <두번째부터 다섯번 째 납월매>도 

마찬가지로 개화 초기의 생동과 분주함이 느껴진다

 

'<납월매>를 심고 가꾸었던 지허스님이 돌아가시자

이제는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저지르고,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하물며 매화나무도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이......

 

나도 그 미담이 사실이었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정월 초하루부터 금둔사를 찾았지만

 <납월매>는 피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와

지난 겨울의 가뭄이

<납월매>의 개화 지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관월당  앞쪽 <여섯번 째 납월매>

 

 

 

 

 

 

 

 

 

 

 

 

 

 

 

 

 

 

 

 

 

 

 

 

 

순천 낙안읍성 위쪽의 금둔사에는

음력 12(납월臘月)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는

<납월홍매> 6그루가 있다

 

금전산 아래 자리잡은 금둔사 경내에는

부산 UN공원의 홍매와 거제도 구조라 초등학교의 <춘당매>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로 유명한 <납월홍매>가 있기 때문에

전국의 탐매객 들이 이른 봄이면 항상 남녘의 금둔사를 주시하게 되는

<납월홍매>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화시기는 매우 빠르지만

그 개화 날자는 해마다 들쑥날쑥하여

 개화  적기에 맞추어 방문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꽃도 피기 전에 

너무 일찍 찾아가서 항상  헛걸음도 많이 하게 되는 탐매처가

금둔사이기도 하다

 

  금둔사에는 <납월홍매> 6그루 외에도

 100그루 정도의 백매, 청매, 홍매 등이 자라는

산지가람 매화정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넉넉하게 3월 초에 방문하면 켤코 <납월홍매>를 못 볼 리야 없지만

전국의 매화들이 앞다투어 피기 시작하는 철이면

음력 12월 부터 꽃을 피웠던 <납월홍매>

이미 많이 져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3월 달에 금둔사를 방문하는 경우는 별로 없게 된다 

 

 

 

 

 

 

 

 

 

 

 

 

 

 

 

 

 

 

 

 

 

 

 

 

 

 

금둔사金芚寺 ‘부처가 싹을 틔우는 절이라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순천의 작은 사찰이다.

바로 옆 조계산 자락에 워낙 유명한 선암사와 송광사가 턱 버티고 있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안다.

특히 사진작가들 사이에선 매화와 차로 유명한 절로서,

해마다 2월이면 <납월매>를 보려고 전국에서

카메라를 메고 몰려든다

 

 해발 679m의 금전산 서쪽에 위치한 금둔사는

신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보물인 금둔사지석불비상과 금둔사지 삼층석탑의 조성시기 등으로 보아

금둔사의 창건연대를 통일신라 때로 추정해오다가

근래에 순천대학교 박물관측의 발굴유물을 토대로 9세기경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유재란(1597) 때 가람이 완전히 불에 타서

금둔사는 오랜 세월 폐사지로 남아 있었는데,

1979년에 이르러 완전 도굴되어 흩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터 지허 선사가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약사전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하였다

 

 금둔사를 다시 일으키면서 지허 선사가

산 아랫마을 낙안읍성 근처의 조씨 면장 집에서 600살의 나이로 고사한

<납월매>의 씨앗을 받아와 1985년에 금둔사 경내에 심었는데,

그 씨앗 중에서 오직 6개만 살아남아서

오늘까지 전설적인 <납월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금둔사의 홍매화가 <납월홍매>로 불리는 까닭은

엄동설한인 음력 12월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12월을 납월(臘月), 혹은 섣달이라고 하는데,

온 세상 모두가 얼어붙어 있는 엄동설한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화가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막상 꽃을 피워도 이내 꽃잎은

아직도 매서운 추위에 바로 얼어서 시들어 버리고,

꽃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만다.

꽃으로서의 화사함이나 우아한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메마르고 퇴색된 꽃잎만 남기고

하루살이처럼 장렬히 사라져 간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세상 모두가 숨죽인 눈 속에서 홀로 피어나지만

이내 얼어붙어 시들어 버리는 그 쿨한 모습은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으로서,

오직 이 혹한에 꽃을 피워냈다는 강인한 정신과 맑은 기품만

오래토록 우리 곁에 향기로 남아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