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 서울의 봄 >은 왔는가
연말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이
마침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의 영화 중에서 작품성이나 화제성 면에서도 단연 군계일학이었고
코로나 이후에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한줄기 서광을 비추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의 봄>은 지난 11월 12일 극장에서 개봉했는데,
나는 12월 4일에야 CGV에서 관람했다.
영화마니아인 나는, 평소에 좋은 영화들이 나오면
꼭 개봉일을 놓치지 않고 극장을 찾았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고,
게다가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오점이자 비극’이었기에
영화를 통하여 다시 한번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현상이 벌어졌다.
내가 평소에 철부지 내지는 개인주의자로 무시했던 MZ세대들이
듣도 보도 못한 '심박수 인증' 챌린지 등으로 대거 극장으로 몰리면서,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역사적 진실과 사회적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마침내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그 시절에 <서울의 봄>을 직접 겪었던 기성세대는 대다수가 침묵했지만,
그 시대를 경험해보지도 않았던 MZ세대들은
그릇된 역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분노를 솔직하게 표출하고
또한, 함께 공유하는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MZ세대의 나이를 초월한 성숙된 시민의식과 정의감을 보면서
나의 선입견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옹졸함을 후회하며 뒤늦게나마
극장을 찾게 되었다
영화를 통해서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만,
‘12·12사태’의 본질은 군사반란이다
국가의 안위보다는
자신과 사조직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더 우선시했던
일부 쿠데타 군인들의 범죄행위였을 뿐만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진압군인들의
커다란 희생도 있었다
그러나 '승자의 기록' 속에서
그 의롭고 진정한 군인들은 철저하게 은폐되고 지워졌을 뿐만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며 과거 없는 현재란 있을 수 없고,
우리는 역사를 배움으로써
역사적 사고력과 비판력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역사적 사건의 보이지 않는 원인과 의도, 목적을 추론하는
역사적 사고력이 길러지게 된다’
이 말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사책에도 실려 있는
지극히 평범한 역사의 진리이다.
비록, 늦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국가는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에 대해서
진정한 명예 회복과 함께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12·12사태의 진압군인들이 진정한 영웅이었다’라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노력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 -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역사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
<교수신문>은 지난 12월 중순에
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교수 30.1%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고 밝혔다.
'이로움(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개인생활에서 뿐만아니라, 국가의 정치, 정책 등 공적인 영역마저
사익추구에 잠식당한 상황을 짚은 것이다.
이익추구로 가치상실의 시대가 되어가는 것을 꼬집었다
'견리망의' 뒤를 이은 건 제법 익숙한 사자성어인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의 ‘적반하장(賊反荷杖)’(25.5%)이다.
정부가 잘못을 저지르고 남 탓만 한다는 의미로
적반하장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교수들도 많았고
교수신문은 전했다.
새삼 매화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기후환경이 너무나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초 우리나라 기온은
‘영상 20도’까지 치솟으며 가장 더운 12월 기록을 경신했다.
그런데 불과 2주일 만에 ‘영하 20도’로 급락하면서 그 변동 폭이
무려 40도에 이르렀다
문제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이런 ‘극한 날씨’가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한다
매화는 겨울에 피는 꽃이다
엄동설한의 어둡고 긴 인고의 시간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고
새싹을 키우고 지켜서
누구보다도 먼저 꽃을 피워내어 어둠과 겨울을 몰아내고
찬란한 새해와 봄을 연다
어둡고 긴 시련의 시간은
매화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닥치고 있지만
우리 한반도에 새봄은 반드시 올 것이고,
숱한 희생 속에서도 진정한 <서울의 봄>은 기필코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3. 12. 25.
001. 양산 통도사 홍매화 <자장매> - 매화피다 (2023.01.20.)
새해 벽두부터 남녘의 양산 통도사로부터
매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 주초에(1월 16일) 지인으로부터
벌써 <자장매>가 꽃방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뜻밖의 정보를 들었다
깜작놀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통도사에는 벌써 꽃불이 붙었다
예년보다도 1달 이상이나 개화가 빨라진 기상이변으로
보통 설 앞, 동짓달에 <자장매>의 꽃잎 몇 장이 열린 적은 가끔 있었지만
올해처럼 본격적인 개화가 진행된 것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특이한 경우이다
말로만 듣던 지구온난화의 그 심각한 휴유증이
점점 우리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이다
2023 계묘년, <자장매>의 첫 개화소식을
뒤늦게 조사해보니 1월 8일쯤에 있었다
종무소 앞의 <통도매>가
꽃잎 1장을 피웠다는 사진이 인테넷에 올라오기 시작하여
이윽고 <자장매>로 꽃불이 옮겨 붙었다
일반적으로 통도사 <자장매>의 개화시기는 2월 중순 무렵이다
소한, 대한을 거친 뒤에, 입춘을 전후하여
그 해의 추위와 기온에 따라서 2~3주 내외의 시간 차이를 보이면서
꽃망울이 터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런데 올겨울은 새해 연초에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이상고온 현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어
그만 <자장매>의 본격적인 개화가 진행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겨울이 다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상기후 현상때문에 더 혹독한 추위가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 설날연휴에도
눈과 비바람을 동반한 한파가 전국에 예고되어 있기에
아직 봄은 멀었다고 판단된다
예년의 경험에 따르면
계절을 착각하여 일찍 꽃잎을 펼쳤던 용감한 <자장매>들은
뒤이어 닥친 강추위와 겨울비에 그만 꽁꽁 얼어버리고,
이내 꽃잎이 시들어버려서 허무하게
꽃이 떨어져버리곤 한다
바야흐로 <자장매>의 '시련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영남알프스의 한 축인
영축산 아래에 자리 잡은 불보사찰 통도사에
수령 370년이 넘는 홍매화가 1그루 있다.
스님들의 영정을 보관하는 영각 앞에 자리 잡은 이 홍매화는
‘우리나라 홍매의 표준’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고운 색과 자태가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일찍 피는 매화로도 이름이 높다
해마다 초봄이면
아이돌 못지 않은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이 홍매화는
신라 때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이름을 따서 <자장매慈臧梅>라고 불리는데
매화나무 아래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었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우운대사는
먼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인조23년(1643년)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影閣)을 건립했다.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매화 싹이 자라나서
해마다 섣달 납월에 연분홍 꽃이 피어 사람들은 이를
자장스님의 이심전심이라 믿었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칠 때 향이 더욱 짙어진다.
그 특성이 수행자의 구도행과 닮았고, 자장스님의 지계 정신을 표현한다 해서
이를 자장매화(慈藏梅花)라 하였다.”
통도사 <자장매>는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피고나면
1~2주 후에는 <자장매>도 뒤따라 피어서
'한반도의 공식적인 봄'을 알린다
매화는 다른 꽃나무에 비해 개화시기가 상당히 빠르다
그래서 매화를 ‘꽃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화괴花魁’라고도 부르고
엄동설한 속의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동매冬梅 · 설중매雪中梅 · 납월매臘月梅 등으로도 불린다
매화가 북풍의 칼바람 속에서도
고드름처럼 얼어붙은 가지목을 지키며
불빛 하나 없는 눈 덮인 산과 들에서 온기 없는 별빛을 받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혹독한 추위를 걷어내고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세상을 열어야 하는 '선구자적 역할' 때문이다
그런 뒤에 초연히 시든 꽃잎을 떨구어야
비로소 봄이 시작된다
그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존중하고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매화의 여러 덕목 중에서도 이 ‘선구자적 역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선구자적 역할’의 대표적인 매화로는
순천 금둔사의 <납월매>, 거제 구조라의 <춘당매>,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 등이 있다
‘통도사의 <자장매>가 꽃을 피워야
한반도에 봄이 온 것을 공식적으로 인증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반도의 봄 전령사'로서의 <자장매>의 개화는 의미가 특히 각별하고
그 역할을 가리켜서 어느 시인은
‘대자연이 쓰는 시詩의 첫 문장’이라고 노래했다
<자장매>가 겨울을 몰아내고
새봄의 문을 열어서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계를 깨부숴야 하는 용기뿐만아니라
역경을 헤쳐나가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어둡고 긴 겨울의 터널 속에서도
소중히 키워 낸 불씨와 온기로 이 겨울을 녹여내고
온누리에 꽃불을 지펴야 하는 '한반도 봄 전도사'로서의 역할은
<자장매>의 타고난 운명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고비과 시련을 감내하고
반드시 찬란한 새봄을 열어야 하는 <자장매>의 용기와 희생 또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온갖 역경과 시련을 감내하고 이겨내어
한반도에 새 희망을 전달하는 <자장매>의 그 ‘선구자적 역할’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할 것이다
02.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2023.01.23.)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교정에는
수령 100년 정도의 오래된 고매(古梅)들이
교문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진 약 200m의 '매화로' 양 옆으로
80여 그루가 매화터널을 이루며 도열해 있다.
이 오래된 매화나무들은
마치, 용이 땅을 기는 듯, 높은 창공으로 승천하는 듯,
마침내 무리를 지어 용트림하는 모습으로 줄지어 서 있다
그 줄기가 기기묘묘하게 휘어지고 구부러져서
마침내 ‘자유속의 질서’를 연상케 하는 고매들의 군무를 연출한다
그래서 <와룡매>라고 불린다
그 80여 그루의 <와룡매> 중에서
백매가 60여 그루, 홍매가 20여 그루 정도인데
대부분이 90년 이상 된 나무들이고
특히 구지호 연못 주변의 10여 그루가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20년생 내외의 어린 후계목들도
함께 자라고 있다
이 김해건설공고의 <와룡매>들은
1927년에 김해농고가 이 자리에서 개교할 때
당시 한 일본인 교사가 실습용으로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그 후, 해방 뒤에 일본으로 돌아갔던 그 교사는
몇 년 전에, 이제는 백발이 된 모습으로 학교를 다시 찾아왔었는데
아직도 그 <와룡매>들이 잘 보호되고 있음에
눈물을 지으며 감사해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김해농고의 일본인 교사가 심고 가꾸었던 <와룡매>는
40여 년 전쯤인 1978년에 김해농고가 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김해건설공고가 들어서면서 그 이후부터는 김해건설공고에서
<와룡매>들을 관리해오고 있는데 현재 김해시 관리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2023년 1월 23일 현재, <와룡매>의 개화상태는
아직 많이 이르다
1월 15일에 인터넷에 올라온 개화 사진만 보고 섣불리 찾아갔었는데
비록 요즘 날씨가 포근해도 아직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교문 근처의 비교적 젊은 백매 9그루만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토종 매화로서
매화의 연륜과 품격을 갖춘 고매화는 현재, 약 200여 그루 정도가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 약 70%가 전남과 광주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특별히 호남지역의 토종 매화 다섯을 엄선하여
‘호남 5매梅’라고 부른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古佛梅>, <선암사의 선암매仙巖梅>,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매溪堂梅>, 전남대의 <대명매大明梅>,
고흥 소록도의 <수양매垂楊梅>가 여기에 해당된다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매화로는 '산청 3매梅'와 '안동 2매梅‘가 유명한데,
남사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가 ’산청 3매'이고
안동 도산서원의 <도산매陶山梅>와 하회마을의 <서애매西厓梅>가
'안동 2매‘에 속한다
그리고 2007년 문화재청은 오랜 세월 우리 생활·문화와 함께해온
매화 4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바 있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484호)>,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 백매(485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488호)>등이
국가문화재로서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 밖에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화엄사의 <흑매>, 전주 경기전의 <녹약매> 등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매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고매들 중에서
도산서원의 <도산매>와 산청의 <정당매> 그리고 소록도의 <수양매>는
애석하게도 근래에 완전히 고사하고 말았다
나머지 고매들도 수령 350살에서 700살까지 워낙 나이가 많은 고목들이라서
항상 동해凍害나 태풍의 위협과 피해 앞에 놓여있고
해마다 힘겹게 꽃을 피우고 있다.
경남지역에 '산청 3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외에
김해건설공고 교정에 100년 연륜의 <와룡매> 군락지가 있다
대부분의 매화들이 전통 깊은 사찰이나 산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김해의 <와룡매>는 김해 구산동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뛰어난 것이 큰 장점이다
<와룡매> 군락지가 있는 김해건설공고 주변으로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대성동고분, 봉황대공원 등
가야의 천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 두루 산재해 있고
부산∼김해 경전철의 박물관역에서 불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교통뿐만 아니라 가야역사문화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경남 유일의 도심 매화 군락지라고 할 수 있다
003. 양산 통도사 <자장매 - 2 > - 시련의 계절 (2023.02.04.)
아침 7시 반에 통도사 매표소를 통과 하는데
저멀리 영축산 정상에 서리가 새하얗게 내렸고 계곡에는 바람이 매섭다
2023년 계묘년, 영축산의 깊고 시린 골짜기 한켠에서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던 통도사 <자장매>에게
'시련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지지난 주말(1월 20일)에 통도사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
올해의 이상고온 현상으로 벌써 <자장매>의 개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용감하게 꽃잎을 펼쳤던 <자장매>는
설날연휴 끝에 밀어닥친 극강 한파로 꽃잎이 그만 꽁꽁 얼어붙고 말았고,
이내 시들어서 떨어지고 말았다
아직 매달려 있는 분홍빛 작은 꽃잎들도 냉해를 입어서
찢어지고 시든 숱한 상처를 훈장처럼 가지마다 달고 있다
지난 2주동안 개화의 진척은 전혀 없었다
만개를 기대하며 먼 길을 달려 온 진사님들이 안타까운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온다
통도사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자장매>의 고난과 시련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오늘이 '입춘'이다
예년보다 한 달이나 일찍 꽃을 피운 <자장매>가
동장군의 끈질긴 반격과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기를 희생하여 봄의 세상을 여는 <자장매>의 '선구자적 역할'로 인해서
이제 봄은 바로 우리 문 밖까지 와 있는 듯 싶다
통도사에는 영각 앞의 <자장매> 외에도
절 입구 종무소 앞에 홍매화가 2그루 더 있다
그래서 <세가지 색의 분홍 매화> 를 한곳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탐매의 장소가 통도사이기도 하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바로 우측으로 꺽으면
종무소 앞에 홍매화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보이는 짙은 분홍색의 우측 매화가 <영취매>이고,
옅은 분홍색의 좌측이 <통도매>이다
올해의 <통도매>와 <영취매>는
<자장매>를 따라서 일찍 피기 시작하였지만
설날연휴 끝에 밀어닥친 호된 한파로 개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영취매>는 냉해가 심각한 듯 기척이 없지만
<통도매>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 보인다
<통도매>
004. 영주 매화분재원 - 국내 최대규모 매화정원 (2023.02.11.)
영주 선비세상,
‘매화분재 꽃향기 가득’…10일부터 매화전 개최
조선시대 선비들의 취미이자 풍류였던
분매(매화 분재)를 영주 선비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
영주 선비세상은 10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매화분재원과 한옥촌 기획전시실에서 군자의 향기를 전하는
‘군자를 품은 마음, 매화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대 규모 매화정원인
‘영주 선비 매화공원’과 선비세상 한옥촌 기획전시실에서 함께 진행된다
유리온실 속 분재원에서 화사하게 꽃을 피우 키운 163종 361개의
매화 분재를 감상할 수 있다.
‘봄을 기다리다’, ‘봄을 알리다’, ‘봄을 기약하다’
3가지 테마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꽃과 향을 피우는 매화의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선비세상에서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매화 꽃차 다도체험,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매화꽃 만들기,
매화꽃을 이용한 스페셜 쿠킹클래스 등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선비세상 관계자는 “겨울이 차고 긴 영주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다”며
“선비세상 한옥촌에 전시된 20여점의 매화분재를 감상하면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취미이자 풍류를 즐겨보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글출처 : 뉴스포인트)
'名梅 분재' 에 담아낸 선비의 기품…
'이른 봄' 아닌 '다른 봄'을 만나다[박경일기자의 여행]
- 매화 가장 먼저 피는 영주
이른 봄꽃 소식은, 봄에 대한 기대로 가슴 두근거리게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입춘이 지났는데도 꽃소식이 당도하지 않았습니다.
한껏 꽃망울이 부풀었던 남녘의 매화가
지난 설 연휴 기간의 한파에 죄다 얼어 떨어져 버린 탓이지요.
이제 다시 꽃눈이 달리고 있으니, 꽃이 피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경북 영주입니다.
그곳에 엄동의 혹한에도 화사하게 꽃을 피워내는 수백 그루의 매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명매(名梅)’입니다.
# 가장 먼저 매화가 피는 곳…영주 매화정원
매화가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곳이 경북 영주에 있다.
국내 최대 규모 매화 정원인 ‘영주 선비매화공원’이다.
문을 열고 이제 두 번째의 봄을 앞둔 곳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공원 면적은 5만4385㎡(1만6000여 평). 축구장 넓이의 7.6배다.
공원은 매화나무를 심어 가꾸는 야외정원과
매화 분재를 기르고 전시하는 길이 85m, 폭 19m의 초대형 유리온실 매화분재원으로 나뉜다.
야외정원은 아직 어수선하지만,
매화 분재(분매·盆梅)로 가득한 매화분재원은 정돈되고 아늑한 분위기다.
소백산 발치에 있어 겨울이 차고 긴 영주 땅에서 노지의 매화꽃은 아직 언감생심.
매화는 당연히 유리온실 속 분재원에서 먼저 핀다.
온실 안에는 163종 361개의 매화 분재가 자라는데,
나뭇가지 끝 매화 꽃망울이 이제 막 임계온도를 넘은 냄비 속 팝콘처럼
타닥타닥 터지기 시작했다.
아직 바깥은 엄동인데도, 꽃을 피운 매화가 기특하다.
온실의 매화는 일찍 피지만, 매화공원 분재원은
매화를 ‘일찍 피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늦게 피우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유리온실 타입으로 만들어진 분재원은
특수 외벽소재를 사용해 난방 없이 자연채광만을 활용한다.
유리온실의 역할은 밤에는 차가운 외기(外氣)를 차단하고,
낮에는 햇볕으로 실내를 데우는 것이다.
이렇게 온실 안에다 매화 분재를 그냥 놓아두면 12월 중순쯤 매화가 만개한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설 무렵에 매화가 피는 셈이니 일러도 너무 이르다.
분재원의 가장 큰 낭패는 ‘꽃이 너무 일찍 피는 것’이다.
매화의 품격은 ‘겨울을 견디는 데’에 있다.
너무 일찍 필 바에야 차라리 늦게 피는 게 나은 이유다.
분재원은 그래서 온실 천장을 자주 열고 추위를 불러들여 개화 시기를 조절한다.
염두에 두는 개화 시기는 ‘남녘에서 매화가 꽃망울을 열기 보름 전쯤’에 맞춘다.
남도의 매화가 보통 3월 초에 개화를 시작하니, 분재원 매화의 절정은 2월 중순쯤으로 맞췄다.
그렇다면 올해 매화공원의 매화는 개화 시기를 기가 막히게 맞춘 듯하다.
딱 그때쯤 분재 매화의 만개가 예상되니 말이다.
# 조선 선비 열에 아홉이 기르던 것
지금은 생소한 취미지만 매화를 분재로 만들어 화분에다 기른 건 역사가 깊다.
기록을 뒤지면 고려 말까지 올라간다.
매화 분재를 ‘분매’라 부르는데, 분매는 조선 시대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취미이자 풍류였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조선 선비 열에 아홉은 분매를 길렀다’는 기록까지 있다.
평범한 선비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의 ‘셀럽’들도 마찬가지였다.
흥선대원군은 운현궁터에 분매 온실을 갖고 있었고,
추사 김정희는 선대의 별장터였던 서울 경성방송국 자리에 커다란 분매 온실인
‘홍원매실(紅園梅室)’을 두고 있었다.
옛사람들은 매화를 화분에 심어 집안에 들여놓고 섣달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친구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감상했다.
분재라면 작은 택배 상자쯤의 크기라 생각하기 쉬운데,
선비매화공원의 매화 분재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이게 어떻게 화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늙고, 둥치가 굵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사뭇 다른 우리나라 분매의 특징이다.
분재원을 조성하면서 우리 분매의 전통을 되살렸다.
명맥이 완전히 끊겼던 우리나라 분매의 특징을
옛 그림과 시문을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찾아낸 결과다.
매화공원의 분재는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수령도 만만찮다.
분재 매화는 보통 매화나무 둥치에 꽃가지를 접붙여 꽃을 얻는데,
바탕이 되는 매화나무 수령이 수십 년에서 오래된 건 수백 년을 헤아린다.
늙었으되 기품 있는 매화를 표현하기 위해 분재에는 일부러 나이 먹고,
굽고 뒤틀리고 파인 매화나무 둥치를 골라 썼다.
조선 후기 문인 정극순이 쓴 ‘이소매기(二小梅記)’에서 그 얘기를 다룬 대목이 있다.
“기이함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산골짜기를 뒤져 고목을 찾아 베고 자르고 쪼개고 꺾어
그루터기와 앙상한 뿌리만 겨우 남긴다.
비바람에 깎고 벌레가 좀먹은 다음에 구불구불 옹이가 생기고
구멍이 뚫려 괴물모양으로 된 것을 가져다 접붙인다.
” 마른 붓질로 빠르게 그려낸 듯한 분재원의 매화나무가
300년 전의 묘사를 빼닮았다.
매화분재원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매화 분재가 온실 입구에 있다.
대작(大作)이기도 하거니와 ‘명매(名梅)’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분재다.
이 매화 분재가 만들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일본 시가(滋賀)현 나가하마(長濱)시의 고택 게이운칸(慶雲館)에서는
해마다 대대적으로 분재 매화전시회가 열리는데,
그때 전시되는 최고의 작품이 ‘니혼이치(日本一)’라 불리는 분재다.
그 나무가 키 175㎝에 나이 350살이다.
선비매화공원의 매화 분재는 이보다 더 크고 더 늙었다.
키가 180㎝가 넘고 수령은 자그마치 450년을 헤아린다.
‘적어도 일본 것보다는 더 크고 나이도 더 많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만든 것이다.
분재의 450년 된 매화나무는 전남 담양 창평면 야산에서 찾아낸
야생매화나무다.
# 가장 아름다운 매화나무를 기르다
매화분재원을 찾아갔던 건
단순하게 ‘개화한 매화를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서다.
실내에서 기르는 매화 분재의 가치를 ‘이른 개화’쯤으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그게 얼마나 큰 오해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화를 화분에 옮긴다는 건 ‘자연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얘기다.
늙은 매화나무 둥치를 골라 원하는 꽃가지를 접붙이고,
꽃눈을 잘라 의도한 대로 가지가 뻗는 방향을 정하며, 꽃을 피우는 시기까지도 조절한다.
그렇게 선비들은 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매화의 아름다움을 분재로 구현했던 것이다.
옛 선비가 매화를 기르면서 꺼낸 아름다움은 그저 단순한 미감이 아니었다.
매화의 아름다움에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인내와 지조가 있고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절제의 품격과 겸손이 있다.
매화의 미감에는 격과 원칙이 있다.
중국 청나라 사람 궁몽인(宮夢仁)은 책 ‘독서기수략(讀書紀數略)’에서
어떤 매화가 더 귀한 것인지를 가리는 방법을 기록했다.
그가 제시하는 조건은 네 가지다.
“가지가 드문 것이 귀하고 번성한 것은 귀하지 않다.
늙은 것이 귀하고 어린 것은 귀하지 않다.
마른 것이 귀하고 살찐 것은 귀하지 않다.
다소곳이 오므린 것이 귀하고 활짝 벌어진 것은 귀하지 않다.”
요약하면 가지가 드물고, 늙고, 마르고, 꽃을 오므리고 있는 것이 귀하다는 얘기다.
귀한 매화를 가리는 네 가지 기준은 절제와 경륜, 그리고 검소와 겸손이다.
하나같이 선비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분재 화분 속 매화와 노지에서 피는 매화는 미감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
늙은 나무의 가지 끝에서 띄엄띄엄 피어나는 기품있는 매화와,
아우성처럼 다닥다닥 피어나는 매실 농장의 매실나무 꽃이 다르듯이 말이다.
옛 선비들이 수묵화로 그려낸 그림 속 매화를 그곳에서 볼 수 있다.
화공이 최선을 다해 먹을 찍어 매화를 그렸다면,
선비들은 전력을 다해서 늙고 뒤틀린 가지 끝에 성글게 피어난 옛 그림 속의 매화 분재를 길렀다.
영주 선비매화공원의 매화분재원은 ‘이른 꽃’이 아니라,
‘다른 꽃’을 보러 가는 곳인 이유다.
# 분매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분재원의 매화 분재는 저마다 이름을 가졌다.
매화 작명(作名)은 원칙이 없다.
꽃의 색이나 나무의 형상을 보고 이름을 짓기도 하고, 지역이나 절집의 이름에서 따오거나
인연 깊은 인물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바탕이 된 나무에서 이름을 딴 것도 있고, 접붙인 가지에 핀 꽃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도 있다.
내로라하는 명매의 꽃가지를 접목했다면 그 꽃의 이름을 따르고,
바탕이 된 나무가 수령이 오래면 그 나무에서 이름을 따는 식이다.
이름이야 원칙이 없다지만 분재로 만든 매화는 대개 ‘명매 중의 명매’를 골라 접을 붙여 만든 것이다.
허투루 만든 것이 하나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매화 분재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매화의 미감과 기품을 제대로 감상하겠다면, 이름과 거기 얽힌 이야기를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다.
매화분재원에는 ‘이야기를 글로 더 적자면 책 한 권’쯤 되는 내로라하는
명매가 하나둘이 아니다.
분재원 매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정릉매’다.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 씨 묘인 정릉의 묘제를 지내는 건물인 ‘재사(齋舍)’ 추녀 아래
가지가 축축 늘어진 수양매화가 한 그루 있었다.
어느 해인가 늘어진 매화나무 가지 끝을 재사의 창호문 안으로 집어넣어 실내에 두었더니
동지 이전에 가지 끝에서 꽃이 피었단다.
소식을 들은 영조 임금이 ‘꽃을 가져오라’해서 꺾어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른바 ‘성은(聖 恩)’을 입은 매화인 셈인데, 조선 시대 매화 품평회에서 도맡아 1등을 차지했단다.
이런 풍류와 운치의 정릉매가 영주 매화분재원에 있다.
정릉매는 한때 꽃 장사들이 꺾어간 꽃가지로 접을 붙여 남쪽 지방에 많이 팔았다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남아있던 정릉매 딱 한 그루가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지난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쓰러져 죽었다.
분재원에 있는 정릉매는 고흥의 정릉매가 죽기 전에 가지를 꺾어다가
접을 붙여 길러낸 것이다.
분재원의 와룡매는
임진왜란 당시 창덕궁에서 자라던 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간 어미나무의 후계목이다.
와룡매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에 따라 1593년 일본으로 반출됐다.
이 나무는 일본 미야기(宮城)현의 한 사찰에 심어졌는데
이 사찰의 주지 스님이 지난 1999년 한국침략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후계목을 반환해
400여 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남산공원에 심어졌다.
분재원의 와룡매는 남산 와룡매의 후계목이다.
이 밖에도 광주 전남대의 대명매는 조선 중기 문신 고부천이 명나라에 갔을 때
희종 황제로부터 분매 형태로 받아온 나무며, 조선 시대 명품매화로 명성이 자자했던 월사매는
명청교체기에 외교 문제를 도맡아 해결하던 조선 시대 문장가인 이정귀가
명나라 황제의 칙사 웅화와 내기바둑을 두어 이긴 대가로 받아온 분매다.
영주 매화공원의 매화분재원을 휙 돌아보면서 꽃만 구경한다면 10분이 채 안 걸린다
하지만 분재원의 361개 분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고 거기 얽힌 사연을 더듬으며 본다면
반나절도 모자란다.
꽃을 그저 외양만 볼 것인지,
그 안에 깃든 풍류와 운치를 느낄 것인지는 오로지 ‘보는 이’에 달렸다.
어디 꽃만 그런가, 봄도 그렇다.
# 평생을 매화와 함께하다
경북 영주의 선비매화공원은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매화연구원장이자 영주 선비매화공원 자문위원인 매촌 안형재(82).
그는 평생 매화에 미쳐 살았다.
경기 안양에서 조경회사를 운영하다 1973년 매화의 매력에 빠진 뒤에
평생을 매화를 심고 가꾸고 찾고 연구했다.
좋은 매화가 있다면 그게 어디든 불원천리하고 찾아갔다.
중국과 일본의 매화전문가들과 교유하며 매화전시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다녔다.
매화 책을 쓰고, 매화 그림까지 그렸다. 그동안 낸 책이 9권.
모든 책 제목에 ‘매화’가 들어간다.
지난해 9월에는 그동안 그린 매화 그림으로 영주문화예술회관에서
‘선비마을 매화 피어’란 제목의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선비매화공원은 평생을 바쳐 그가 기르고 모은 것들을 쏟아부은 공간이다.
다른 몇 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끈질긴 제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영주를 택했던 이유 중에는 영주가 ‘순흥 안씨’의 본향이라는 것도 있다.
평생 모은 매화 분재와 나무를 내놓으면서 그는 거처까지 아예 영주로 옮겨왔다.
안 원장은 지난해 9월 영주에서 ‘한국매화회’를 창립했다.
선비의 매화 문화를 꽃피우고 확산한다는 취지 아래 결성한 모임이다.
이 모임에는 지역의 유림을 비롯해 280명의 시민이 모였다.
모임은 앞으로 매화나무 묘목을 보급하거나, 분매 만들기 교육 등을 해나갈 예정이다.
한국매화회는 올봄부터 3만2000그루의 매화나무를 길러 보급한다.
“매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매화 한두 그루쯤은 길러봐야 한다”는 게 안 원장의 설명이다.
안 원장의 매화 얘기는 끝이 없다.
옛 선비들이 매화꽃 여든한 송이를 그려 벽에 붙여놓고
하루에 하나씩 꽃잎에 붉은색을 칠해가며 꽃이 피길 기다렸다는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이야기부터
중국 쿤밍(昆明)의 헤이룽탄(黑龍潭) 공원에 있었던, 지금은 죽은 1300년 당매 얘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꼬리를 문다.
안 원장은 “매화공원을 찾는 이들이 스무 명쯤만 모인다면
기꺼이 매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설해주겠다”고 했다.
■ 안형재 원장 권하는 ‘탐매코스’
양산 통도사에서 출발… 순천 선암사서 마무리
안형재(사진) 한국매화연구원장에게
‘한국의 명매(名梅)를 찾아가는 탐매(探梅)코스’를 짜달라 부탁하니
개화 시기에 맞춰 세심하게 짠 코스와 동선을 건네줬다.
여정의 출발지점은 경남 양산 통도사다.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통도사 영각(影閣) 오른쪽 처마 아래 있는 매화 ‘자장매’.
통도사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것이라 전한다.
올해는 꽃이 늦어 이제야 막 매화가 한두 송이씩 피어나는 중이다.
통도사에서 밀양으로 건너가 ‘금시당매’를 보고,
김해로 넘어가서 김해건설공고의 ‘와룡매’를 만난다.
김해건설공고는 정문에서 교사까지 200m 남짓의 진입로 양옆으로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는데,
매화나무 둥치와 가지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자랐다고 해서
‘와룡(臥龍)’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어 서슬 퍼런 기개로 ‘칼 찬 선비’라고 불리는 남명 조식이 거처하던 산천재 앞의 ‘남명매’
그리고 전남 구례 화엄사의 ‘각황매’와 ‘야생매’를 보고
해남으로 건너가 보해매실농장을 구경한다.
보해매실농장은 1979년 보해양조가 조성한 국내 최대규모 매실 농원.
14만 평에 매화나무 1만4500주가 심어져 있다.
농장에는 동백나무도 많아 순백의 매화가 붉은 동백꽃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진 무위사는 잇단 불사로 정갈했던 절집 분위기가 흐트러졌고
‘홍매’도 수세가 예전만 못하지만 명매 감상의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
이어 광주 전남대의 ‘대명매’와 담양 지실마을의 ‘계당홍매’,
광주 환벽당의 ‘백매’를 보고 전남 장성 백양사를 찾아가 ‘고불매’를 본다.
고불매는 안 원장이 최고로 꼽는 매화다.
안 원장은 “늙은 나무가 뿜어내는 기운과 맑은 순백의 꽃 색,
그리고 절집을 휘감는 진한 매화 향까지, 아쉽거나 모자라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며
“봄날에 딱 한 그루의 매화만 보아야 한다면 주저 없이
‘고불매’를 택하겠다”고 했다.
이어 찾아가는 충남 논산 윤증고택의 ‘윤증매’나
경북 울진 불영사의 ‘고매’는 기왕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
반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의 ‘서애매’나 순천 선암사의 ‘선암홍매’와 ‘선암백매’는
이름난 명매 중의 명매다.
특히 늙은 매화나무 가지에 화려하게 피어난 꽃이 온 절집을 향기로 뒤덮는 선암사의 매화는
탐매 여행을 마무리하는 곳으로 맞춤이다.
■ 매화와 온천
경북 영주에는 소백산 풍기온천이 있다.
온천과 함께 바데풀과 수영장까지 있어 이른바 ‘워터파크’의 형태를 갖춘 곳인데,
겨울에는 온천만 운영한다.
용출온도 31도의 진짜 유황온천이다.
데우거나 다른 물을 섞지 않고 온천수만 담은 온탕이 있다.
풍기온천 옆에는 인삼박물관이 있다.
풍기 인삼 홍보를 위해 6년 전쯤 문을 열었는데 관람객이 없어 늘 썰렁한 곳이다.
그런데 지금 열리고 있는 ‘인삼, 세계와 만나다’ 기획 전시가 뜻밖에 흥미진진하다.
전시 유물은 없고 긴 설명을 적은 안내판과 사진뿐이지만
서양에서의 인삼 얘기가 재미있다.
[ 이상 글출처 : 문화닷컴 | 슬기로운 문화생활 ]
005. 영주 매화분재원 - 우리 매화의 맥을 잇다 (2023.02.11.)
일생의 매화분재 기증에 깃든 ‘큰 울림’
- 한국매화연구원 안형재 원장
경북 영주시가 한국문화테마파크 내의 매화공원 조성에 한창이다.
부지면적 54,385㎡(15,450평)에 매화나무 213종(2,380주)을 심는 사업이며,
그중 500평 규모의 매화분재원은 300~400명을 동시 수용이 가능한 현대식 시설로서
전국 최초의 매화 전용 온실이다.
이 매화공원 조성사업에 일익을 담당한 ‘한국매화연구원 안형재 원장’이
‘매화분재 163종·361점 기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더욱이 그가 기증한 매화 가운데는 국내에서 네 번째 고(古) 수령(약 450년 추정)의
수양매도 포함됐다고 한다.
즉 ‘매화와 함께한 45년여 외길 인생’의 결정체 361점을 사회에 희사했고,
크나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익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안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매화분재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러면서 매화의 역사, 유래, 생육특성 등 각종 자료들을 7년간이나
조사·발굴·수집하고 정리·기록한 단행본으로 ‘한국의 매화’를 2001년 출간했다.
국내 매화전문 서적이 극히 드물었던 시기에 ‘한국의 매화’가 나온 것이다.
이에 멈추지 않고 안 원장은
국내서 자생하는 매화 품종, 수령이 오래된 매화(고매) 등을 찾아다녔다.
8년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끝에 우리나라 매화의 족보로 일컬어지는 ‘매화보(2009)’,
100년이 넘은 85그루의 고매 기록서인 ‘매화를 찾아서(2009)’도 집대성했다.
그밖에 ‘한국의 분매(2017)’ 등을 편찬한 그는 ‘매화만필’이란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어 그는 “45년 가까이 자식처럼 돌본 매화분재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3월 영주로 이주했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매화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매화공원의 성공적 완공’에도 혼신의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 글출처 : 시사투데이)
[마이 라이프] 한평생 매화향 쫓아 ‘梅生梅死’
- 안형재 한국매화연구원장
“북한의 금강산에 갔을 때 일입니다. 온정리에서 삼일포를 향해 한참을 가다 보니 제천사과작목반에서 지원하여
재배되고 있는 사과밭이 보이더군요. 바로 건너편에 어린이들이 흙먼지를 날리면서 뛰어노는 모습으로 보아
삼일초등학교인 듯한 건물이 있고, 넓은 운동장 주변으로는 키가 큰 미루나무와 버드나무, 참나무 사이로
어느 정도 정돈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나무의 높이는 5.5m 정도이고, 수관폭은 3.5m 정도로 빈약한 편이며, 근원직경은 60cm가량 되는 수령 약 150년생의
홍매화인 듯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노매(老梅)를 처음 본 것입니다.”
최근 경북 영주의 매화공원에서 만난 안형재(78) 한국매화연구원장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던 중 북한의 매화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가 북한의 매화를 화두로 삼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정식 개장하는 경북 영주 매화공원에 40년 동안 가꿔온 매화분재 361점을 기증한 안형재 한국매화연구원장.
그가 기증한 매화 가운데는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수령 450년으로 추정되는 수양매가 포함돼 있다.
“북한 개성과 원산을 잇는 지역에서는 매화의 성장이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옛날에는 훨씬 북쪽인 압록강 유역에도
매화가 자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북한의 매화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에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중국외교부의 외교관으로 평양에 근무하던 안옥상씨를 알게 되어 평양의 저명한 식물학자들에게 매화에
대한 자료와 평양의 주요 도서관에 매화에 관한 문헌자료 등을 부탁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2004년부터 북한과 관련이 있는 북경임업대학교 진준유 교수와 장계상 박사에게 탐매(探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수차례 부탁했으나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매화의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그는 지난 3월 영주시로 이주했다. 그동안 살던 서울과 경기지역을 떠나 ‘귀촌 아닌
귀촌’을 결정한 것은 순전히 매화분재 때문이다.
“2022년 정식으로 문을 열 한국문화테마파크 안에 있는 매화공원에 자식처럼 가꿔오던 163품종 361점의 매화분재를
기증했습니다. 여기에는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수령 45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수양매가 있고, 일본에서 10억원을
호가하는 수령 100년 이상 된 매화분재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40년이 넘도록 자식처럼 돌봐 온 매화분재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아내와 이주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분재동호인들은 안 원장이 매화공원에 기증한 분재는 시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매화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이토록 매달리게 됐을까?
“옛 선비들은 매화를 ‘꽃 중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겨울 세찬 눈보라와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의 기품을 닮은 은은한 향기가 매력입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신흠 선생은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의(節義)를 지닌 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도 매화를 좋아하는 선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 원장이 본격적으로 매화분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곧장 직장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집안에서 취미로 분재를 가꾸기 시작하면서 고양 원당에서 분재원을
하던 여대기 선생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1985년 안양 관양동에 죽산조경이라는 회사를 차린 데 이어 충북 음성에
2000여평, 경북 봉화에 3만5000여평의 농원을 마련했다. 매화나무를 수집하고, 품종을 번식하는 일을 위해서였다.
지금은 작고한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민병갈 선생과 관악수목원을 창설한 이창복 서울대명예교수 등과 교류하며
나무에 대해 배운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또 1986년 한국분재협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9년 동안 부회장과 회장 대행을 맡아 활동했다.
“당시 국내 분재 전시장이나 박물관에 가보면 대부분이 일본의 분재양식을 그대로 따라 했어요. 옛 서적에는 우리만의
양식이 엄연히 있는데도 말이죠. 이를 바꾸려고 수십년 동안 노력한 결과 지금은 우리 고유의 양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화공원의 분재는 모두 우리 고유의 양식입니다.”
안 원장은 매화나무를 기르면서 문득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책과 같은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화와 관련한 조사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것이 ‘한국의 매화’(2001년)라는 단행본 서적이다. 이는 그와 아내 김영자(75)씨가 무려
7년간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자료를 찾아내고 고서에서 발굴한 기록이다.
“매화에 얽힌 일화, 전설, 매화를 주제로 한 문학 등 매화와 관련한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매화에 대한 격조 높은 사랑과 애정의 모습도 살펴봤습니다. 정매와 분매, 묵매의 역사와 유래, 생육 상황에 대해서도
정리했습니다.”
그가 이를 출간하기 이전까지 국내에는 매화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화가인 강희안(1418~1465)이 펴낸 국내 최초의 원예서라고 할 수 있는 ‘청천양화소록’에
매화에 관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매화나무에 관한 첫 기록입니다. ‘한국의 매화’는 국내 유일의 매화전문 서적인
셈입니다.”
그는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자라는 매화의 품종 등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10종의 매화가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금은 몇 종이나 자라는지 알고 싶어
8년여에 걸쳐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194개 품종이 생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한 매화에 관한 기록을 ‘매화보’(2009년)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는
이른바 우리나라 매화나무의 족보인 셈이다.
“국내에 자라고 있는 매화의 품종들을 조사해 정리한 것만으로도 뜻있고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또 여기서 멈추지 않고 100년 이상 생육한 국내 노매를 찾아다녔다. 나아가 왜 이 자리에 노매가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게 됐는지를 설명해 주는 ‘매화를 찾아서’(2009년)를 출간했다.
“행정안전부와 문화부에서 자료를 구해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을 만한 정자와 서원, 고택 등을 찾아다녔지요. 강릉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는 1400년경에 식재되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나무를 직접 가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매화마다 사연과 역사가 깃들여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이 된 매화 5그루를 비롯해 호남5매(湖南5梅),
산청3매(山淸3梅),경북2매(慶北3梅)를 포함한 총 85그루의 100년 이상 된 매화나무를 찾아내서 정리했습니다.”
006. 후쿠오카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날아온 매화 (비매飛梅)> (2023.02.18.)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다자이후텐만구는 일본 텐만구(天滿宮)의 총본산지로,
학문의 신으로 유명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메이지 시대에 다자이후진자(大宰府神社)가 되었으며,
현재는 다자이후텐만구로 불리고 있다.
수천그루의 매화나무가 아름다운 이곳은
일본에서 유명한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로, 일본의 중요 문화재 중 하나.
학문의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답게 입시철이면 합격 기원부적을 사기위해
일본 전역에서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든다는데 만지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소 모양의 동상은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쳐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일본에는 수백 곳의 텐만구 신사가있는데,
각 사원은 그 학식으로 이름 높은 학자인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영혼에 바쳐졌다
이 텐만구 사원들 가운데 두 지역이 가장 유명하다
바로 교토의 기타노 텐만구 신사 와 후쿠오카의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이다
특히 다자이후의 신사는 미치자네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는 그 자체로도 웅장하지만,
드넓은 부지를 뒤덮은 수천 그루의 아름다운 매화나무가 그 웅장함에
화려함을 더해준다
6천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신사의 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매년 3월 일제히 꽃을 피운다
텐만구는 커다란 도리이 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면,
비단잉어와 작은 거북이 있는 연못 위로 세 개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이 연못은 사랑을 뜻하는 일본어 글자 모양이다
이끼로 뒤덮인 오래된 녹나무가 호수 가장자리의 지주를 떠받치고 있으며,
호수의 둔치에는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자랑인
매화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중심부
혼덴이라고 하는 중심 본당은
후지와라 가문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다자이후로 추방되기 전까지 9세기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
미치자네는 903년 다자이후에서 죽었으며,
다자이후텐만구의 가장 초기 건축물(안쪽 신사)은
913년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미치자네의 죽음 이후 일본은 자연재해로 고통받았으며,
당시 정권은 이런 자연재해를
미치자네의 영혼이 저주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치자네의 영혼을 달래고 미치자네를 텐만텐진,
즉 문학과 서예의 신으로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다자이후텐만구 신사를 지었다
일본의 ‘날아온 매화나무'
본당 오른편으로는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에서 가장 유명한
'날아온 매화나무'인 '토비우메(비매飛梅)'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미치자네가 추방당하여 교토 를 떠난 후
이 나무가 미치자네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스스로 뿌리를 뽑고
미치자네를 만나기 위해 다자이후로 날아왔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미치자네는 오랫동안 매화나무를 아꼈다고 한다
그는 다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붉은 매화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으로 내 볼을 물들이고 싶다.'
였다고 한다
시험 합격
미치자네는 학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시험을 앞두고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이 신사를 찾는다
본당에 해당하는 고혼덴 옆 신사 사무소에서 오마모리 부적을 구입할 수 있다
시험 기간에는 신사 부지 내에 오마모리가 엄청나게 많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사의 매력적인 역사 알아보기
미치자네의 삶과 시대에 관심이 있다면 신사 뒤쪽의 작은 건물인
칸코 역사관으로 가보세요. 미치자네의 삶 속 주요 사건들을
미니어처 모형으로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규슈 국립박물관 이 있는데,
이 곳에서 이른 시기에 명성을 얻고 갑자기 다자이후 로 추방당한 미치자네의 삶에 대해
더욱 종합적으로 알아볼 수 있으며, 다른 멋진 전시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축제
다자이후텐만구에서는 연중 여러 가지 축제가 열린다
우메슈(매화주) 연례 축제가 매년 3월 매화나무 개화 시기에 맞추어 열린다
또 3월에는 와카 작가들이 기모노를 입고 작은 개울에 둘러앉아 술잔을 물에 띄우고
이 술잔이 자신에게 닿기 전까지 시를 짓는 교쿠스이노엔 축제가 열린다
매년 1월에는 우소카에라는 행사가 개최되는데,
참가자들은 액운을 쫓기 위해 나무로 조각한 피리새를 교환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이 피리새 조각들 중 하나는 금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 금 조각을 받은 사람에게는 일 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관광포인트 :
다자이후텐만구 거리에서 명물인 매화가지떡(우메에다모치)도 먹어보고,
합격과 건강을 기원하는 오마모리(부적)을 살 수 있다
개장시간 : 08:30~17:00
가는방법 :
니시테쓰(西鐵) 후쿠오카 역에서 오무다센(大牟田線)을 이용하면
다자이후 역까지 40분이 소요되며
하차 후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매화축제
Plum Blossom Ceremony
달콤한 향기가 나는 꽃 속에서 치르는 신성한 의식
매화 축제는 매년 2월 25일에 열리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이 축제는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모시는 전설적인 학자이자 훌륭한 시인이었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열립니다.
스가와라는 매화를 사랑하였고 아름다운 분홍색과 흰색의 꽃에서 영감을 받아
유명한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매화 축제는 매화와 매화꽃에 대한 그의 사랑과
스가와라 그 자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축제입니다.
의식은 아침 11시에 본당에서 참배자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제사장은 덴진신이 된 학문 및 문화예술의 신 스가와라에게 참배를 드립니다.
신사에서 종사하는 여성들이 작은 매화 가지를 쥐고 전통 신도 음악에 맞춰 전통춤을 추며
의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는 스가와라를 위해 6천 그루가 넘는 매화나무가 기증되었으며
2월 초가 되면 많은 매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다자이후 텐만구를 방문하여 경내를 산책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시가를 읊던 축제
Poetry Composition Ceremony
매화 아래에서 즐기던 고대 귀족의 취미를 재현한 축제
다자이후 텐만구의 경내에서 3월의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이 의식을 통해 헤이안 시대(794–1185)의 우아하고 세련된
일본 궁중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옛날 일본의 귀족들은 야외에서 시를 짓는 것을 즐겼습니다.
때때로 가진 시를 짓는 모임에서는 개울가에 모여 앉아 사케 잔이 물에 떠내려오기 전에
시를 다 지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놀이는 조정에서 하는 의식으로 발전했습니다.
다자이후 텐만구에서 모시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저명한 시인으로
이 의식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사는 958년에 처음으로 이 의식을 열었습니다.
Poetry Composition Ceremony
오늘날 이 의식을 통해 옛날 귀족처럼 차려입은 참여자들이
신도 피리 연주에 맞춰 신사 참배하러 가는 큰길을 따라 경내로 들어오는
화려한 퍼레이드를 볼 수 있습니다.
의식이 열리는 매화 숲에 도착하면 참가자들은 돌이 놓여있는 개울을 따라 앉아
시를 짓는 전통 놀이를 재현합니다.
후에 사람들에게 지은 시를 읊어 줍니다.
참배하러 가는 큰길을 따라 신사까지 가는 길목이나
신지이케(심자) 연못 가장자리에서부터 퍼레이드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정오에 시작합니다.
(이상 글출처 : 홈페이지 http://www.dazaifutenmangu.or.jp)
007. 후쿠오카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매화들 (2023.02.18.)
규슈의 서북쪽에 있는 후쿠오카(福岡県)는
지리적으로 왼쪽 사가현(佐賀県)· 나가사키 현(長崎県)과 함께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중국대륙 등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찍부터
크게 발전한 지역이다.
아무튼 후쿠오카 현은 36,782km²에 인구 약1,300만 명(2016년)이고,
현청 소재지는 후쿠오카 시인데, 후쿠오카 시는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나카가와(那珂川)를 중심으로 바닷가인 동쪽은 상업지역인 하카다시,
서쪽은 후쿠오카 시로 각각 별개의 도시로 발전해오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89년
후쿠오카 시로 통합되었다.
현재 510만 명(2017년)이 살고 있는 후쿠오카 시는
‘규슈의 수도’라고도 말하기도 하지만,
규슈 지방의 역사와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7세기 후반부터 규슈 전역을 통치하던
다자이후(太宰府)시이다.
후쿠오카에서 다자이후까지는 자동차로 약40분 거리이고,
대중교통은 하카다역 버스터미널 11번 정류장에서 다자이후 행 직행버스를 타면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또, 니시테츠 후쿠오카 텐진역(西鉄福岡)에서 다자이후행 열차를 타거나
하카다역 앞 A정류장에서 톈진까지 가는 버스를 탄 뒤 톈진의 니시테츠후쿠오카역에서
니시테츠다자이후(西鉄太宰府線)행 사철을 갈아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역 앞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텐만구 신사로 가는 골목이다.
이곳에서 신사까지 약200m쯤 되는 골목 양쪽에는 일본 어느 신사나 사찰 가는 길처럼
잘 다듬은 돌로 포장한 골목이고,
길 양쪽에는 기념품가게와 카페, 맛집이 즐비하다.
이곳에서는 매화꽃 모양의 떡(うめかえの もち)’이 특히 인기인데,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골목의 끝부분에 이르면 도리이(鳥尾)가 잇달아 세워져 있어서
신사 입구에 도달했음을 알게 하는데,
도리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전령사라고 믿는 일본의 신앙으로서
우리의 삼한시대에 전통신앙이던 솟대와 같은 기능을 한다.
삼한시대에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염원에서
주로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웠는데,
점점 신앙심이 커지면서 성스러운 곳에도 세우게 되었다.
이런 지역을 소도(蘇塗)라고 하며, 범죄자들이 소도로 피신하면
붙잡지 못할 정도로 성역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진수의 삼국지 위지 조선전 · 진서(晉書)· 두우의 통전(通典) 등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스가와라노가 죽은 지 16년 뒤인 919년에 세워진
텐만구 신사는 입장료가 없다.
그러나 일본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호모쓰덴(寶物館)과
본전 뒤에 스가와라노의 일생을 하카타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스가와라노 기념관을 입장하려면, 각각 300엔, 2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도리이가 잇달아 있는 마지막 지점에
큼지막한 황소가 앉아있는 고신규(御神牛)조각상이 있는데,
고신규는 스가와라노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옮기던 소가 이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멈추자
그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 전설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신사 입구에 세워진 신으로 받드는 고신규와
본전 앞에 있는 고신규만을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텐만구 신사 안에는 모두 11개의 고신규가 있다.
그러고 보면 스가와라노의 시체를 옮기다가 주저앉았다는 황소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 약간 애매하지만, 아마도 본전 앞 우측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고신규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황소의 머리는 참배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고신규 동상 앞에서 왼쪽길이 신사로 가는 길인데,
연못 심우지(心宇池) 위에 놓은 다리는 붉은 색을 칠했는데,
평면이 아니라 아리랑 고개처럼 완만한 경사를 세 번 굽어져 지나도록
설계된 것이 매우 낭만적이다.
이 다리를 다이코바시(太鼓橋)라고 하며,
다리 위에서 돌아보는 연못과 신사, 도리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곳이 텐만구 신사의 포토 존이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본전 입구임을 알리는
돌로 만든 큼지막한 도리이가 우뚝 서있고, 주변은 온통 수백 년을 살아왔음직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도리이를 지나면 왼편에는
신사마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히사쿠(久キュ)가 있고,
도리이 오른쪽에는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온 스가와라노를 찾아
‘날아왔다’고 하는 커다란 매화나무 도비우메(飛梅)가 있다.
다자이후의 경내에는 약6,000그루의 홍백, 매화가 있어서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마치 매화 밭에 온 착각을 느끼게 하며,
그밖에도 약 40종 3만 포기의 창포 등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신사에서는 본전 오른쪽의 매화나무 ‘도비우메’가 가장 인기이다.
텐만구의 도비우메는 일본 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또 매년 2~3월이면 6천여 그루의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치 우리네 순천 선암사 매화와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를
보러가는 사람들처럼.....
도리이가 우리네 사찰의 일주문격이라고 한다면,
도리이를 지나 붉은 칠을 한 2층 누문은 신사 본전으로 들어가는 사찰의 금강문쯤 된다.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전은 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본전(本殿)인데,
텐만구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기술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본전은 1591년 세워졌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전 오른쪽에는
위패를 모신 여섯 개의 자그마한 목조 비각이 세워져 있는 것이 고즈넉하다.
본전 담장 왼편으로 고목이 있는 바깥 건물은 신사의 사무소와
향전(香殿) 건물이 상당히 길게 지어졌다.
신사 오른쪽 약간 높은 위치에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보물전이 있고,
연못을 건너기 전에 오른쪽 길로 질펀한 음식점들이 밀집한 공간을 지나면
규슈국립박물관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 입구가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관청 유적지가 아니라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사로서 하나의 관광지이자,
매년 입시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합격을 기원하거나 취업을 바라는 참배자들이
모여들어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글 출처 : 디트NEWS24 - 정승열 netcolor2@naver.com)
본전의 앞마당에 두 그루 매화나무(홍매화, 백매화)가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다.
우측의 백매화가 잘 알려진 전설의 `토비우메(飛梅)'이다.
간코(管公;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별칭)가 떠난 후,
주인을 그리워하던 본가의 매화나무가 다자이후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한다.
누군가는 본가에 남겨져 외롭게 죽은 부인의 혼령이 찾아와 그리움을 새긴 나무라 하지만,
아마도 스가와라가 죽은 후 그를 추앙하던 사람이 이곳에 심은 매화나무일 것이다.
이후 토비우메는 이들의 신목(神木)이 되어 10대를 이어오면서,
본전의 앞뜰에 연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 경내에는
200여 종, 6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곳의 매화는 다른 지역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토비우메가 제일 먼저 망울이 맺고 꽃이 핀다고 한다.
매년 2∼3월에는 텐만구 경내 전체에 매화가 만발해
멀리서 보면 뽀얀 안개가 낮게 드리운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토비우메의 전설은 스가와라의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매화라는 상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숭앙(崇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도비우메(날아온 매화, 飛梅)
東風吹かば 匂ひを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동풍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꽃이여.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 말지니
3월 초순의 비오는 날 오후,
일본 규슈 후쿠오카 교외에 있는 다자이후 텐만궁(太宰府 天満宮)을 찾았다.
본전 앞 우측에 있는 비매(飛梅 도비우메)를 보았다.
‘飛梅’라고 적힌 표시판이 있고,
안내문에는 "천신(天神)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가
교토의 집 정원 앞에 있는 매화와 작별하면서 와카(花歌)를 읊었다.
그런데 주인을 못 잊어하던 매화가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고 적혀 있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학문의 신’이 된 실존인물이다.
그는 845년에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이라 불렸다.
할아버지 기요토모는 뛰어난 유학자였고,
아버지 고레요시도 대학 문장과(文章科)의 수장인 고위 관료였다.
일설에 의하면 스가와라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의 후손이라고 하고,
혹은 왕인의 문인이라고 한다.
스가와라는 열한 살 무렵 집 뜰에 핀 매화를 보고
한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했다.
달이 하얗게 비추니 마치 눈 내린 듯하고(月燿如晴雪)
매화꽃은 빛나는 별 같구나. (梅花似照星)
금빛 거울(달)이 하늘에서 비추고 (可憐金鏡轉)
정원에 핀 옥구슬(매화)이 온 뜰을 향기로 채우는구나. (庭上玉房馨)
스가와라는 18세 때 과거에 합격한 후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했다.
891년에 다이고 천황은 그를 우대신(우의정)으로 임명했다.
스가와라의 딸이 천황의 황후가 되고 스가와라가 세력을 확대하자,
귀족출신 세도가인 좌대신 후지와라 토키히라(藤原時平)는 음모를 꾸며
901년에 스가와라를 규슈 다자이후 권수(権帥)로 좌천시켰다.
이를 ‘쇼타이의 변’이라 한다.
사실상 유배살이 한 스가와라는 술로 실의의 세월을 보냈다.
끼니마저 거르자 한 노파가 ‘매화가지에 꽂은 찹쌀떡(우메가에모찌 梅ケ枝餠)’을 건넸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이 떡을 맛있게 먹으면서 노파에게 시 한 수씩을 건넸다.
스가와라는 다자이후로 좌천된 지 2년 만인 903년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관 위에는 매화 한가지와 찹쌀떡만이 얹어졌다.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장지로 향하던 중 황소가 갑자기 멈췄다.
이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스가와라의 시신은 이곳에 묻혔다.
천만궁 입구에는 청동 황소가 있는데 황소 얼굴과 코는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이 부분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한편, 스가와라가 죽은 후 교토 조정은 액운이 잇따랐다.
정적(政敵) 후지와라가 909년에 급서(急逝)한 것을 시작으로,
다이고 천황의 세자인 야스아키라 친왕이 923년에 서거했고,
천황의 세손 요시요리도 925년에 죽었다.
5년 뒤인 930년에 황궁 청량전(清涼殿)에서 조정 회의 중에 갑가지 벼락이 떨어졌다.
이리하여 조정 대신들이 다치거나 죽었고, 다이고 천황도 충격을 받아
3개월 만에 붕어했다.
조정은 이것을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저주로 여겨
스가와라의 원령을 '뇌신(雷神)' 으로 추앙했다.
그리하여 교토와 다지이후에 덴만구(天満宮)를 지었다.
세월이 흘러 재해가 사그라들자 스가와라는 ‘벼락 신’에서 ‘학문의 신’으로 변신했다.
우메가에모찌 노파도 신으로 추앙받았는데 대명신(大明神)이 되어
근처의 정묘원(淨妙院) 절에 모서져 있다.
본전 앞에는 비우메와 마주보고 홍매화(紅梅花)가 피어있다.
‘황후의 매화’이다.
이 두 그루 매화가 신목(神木)이 되어 이곳에 6천 그루의 매화가 있단다.
특히 뒤뜰에 많다.
텐만궁은 시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연간 800만 명의 참배객이 모인다.
신궁 주변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메모장들이 주렁주렁하다.
심지어 한글로 적힌 기원문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반드시 ‘우메가에모찌’를 먹는다.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져서 공부가 잘 된단다.
필자도 먹었는데 바싹 구운 맛이 담백하다.
관광지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볼거리 ·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스토리도 한 몫을 한다.
전라도 관광에도 도비우메 · 우메가에모찌 · 황소 같은 스토리를 입히자.
그래야 관광이 활성화된다.
(글 출처 : 시민의소리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008. 통도사 홍매화<자장매-3> 만개하다 - 상처뿐인 영광 (2023.02.22.)
2023년 <자장매>의 개화상황은
이번 주말쯤에, 바야흐로 만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장매> 본연의 청초함이나 화사함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생기를 많이 잃은 모습이다
1월 초, 이상 고온현상으로 반짝 따뜻했을 때
용감하게 꽃망울을 터뜨렸던 꽃잎들은
그 뒤에 밀어닥친 강력한 한파에 동해를 입고 장렬히 산화하였고
시들고 누렇게 퇴색된 꽃받침으로 매달려 있다
그리고 유독 심했던 올해의 봄가뭄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홍매화의 표준 색깔’이라는 그 부드럽고 고운 분홍빛은
생기를 찾지 못하고 있고,
근래에 핀 꽃잎도 동해를 입어서 상처 투성이로 성한 곳이 드물다
꽃으로서의 화사함이나 우아한 자태는 찾아보기 힘들고,
치열했던 전투의 상흔들만 훈장처럼 달고 있다
‘한반도의 봄’을 열기 위해서
세상 모두가 숨죽인 엄동설한에 눈 속에서 홀로 피어나지만
이내 얼어붙어 시들어 버리고, 또 다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그 불굴의 의지는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이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길보다는 '선구자의 길'을 택한
<자장매>의 타고난 운명이다
고운 꽃이기 보다는
오직 이 혹한에 꽃을 피워냈다는 그 강인한 정신과 맑은 기품으로
오래토록 우리 곁에 향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통도사의 <홍매 삼총사>
통도사에는 영각 앞의 <자장매> 외에도
절 입구 옛날 종무소 앞에 홍매화가 2그루 더 있다
그래서 <세가지 색의 분홍> 매화를
서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탐매의 장소가
통도사이기도 하다
천왕문을 들어서서 바로 우측으로 꺽으면
종무소 앞에 홍매화 2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보이는 짙은 분홍색의 우측 매화가 <영취매>이고,
옅은 분홍색의 좌측이 <통도매>이다
올해 <자장매>를 따라서 일찍 피었던 <영취매>는 동해를 좀 입었고
<통도매>는 비교적 피해가 없어 보인다
수령 70년 정도 된 <통도매>는
일명 '자장분홍색매'로 불리는데 들매화계의 홑꽃으로
꽃잎이 다소 크고 오목하며 꽃받침은 적자색이다
꽃은 아주 연한 분홍색을 띄고 있어서
담백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통도매> 우측의 <영취매>는
수령 150년 정도 되었고 겹꽃의 짙은 분홍색 꽃을 피운다
다소 화려한 분홍빛으로
무채색의 절집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통도매>
<영취매>
009.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 2 (2023.02.25.)
올해 경남지역 매화들의 전반적인 개화상황은
2월 말의 늦추위와 강풍의 영향으로 개화가 예년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김해공고의 <와룡매>도 비슷한 추세로서
1월 초에 통도사의 <자장매>를 따라서 일찍 꽃망울을 떠뜨렸지만
무려 1달동안이나 더이상 개화에 진척이 없다가
2월 하순부터 <와룡매>가 용틀임을 시작하고 있다
100여 그루가 넘는 매화들 중에서
현재, 백매와 어린 매화들은 대부분 개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홍매와 청매들은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20023년 <와룡매>의 감상시기 적기는
홍매와 청매의 개화가 불 붙는 3월 둘째 주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27년에 김해농고가 개교할 때
당시 일본인 교사가 실습용으로 심었던 90여 그루의 <와룡매>는
40여 년 전쯤인 1978년에 김해농고가 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김해건설공고가 들어서면서 그 이후부터는 김해건설공고에서
<와룡매>들을 관리해오고 있다
근래에 김해시 관리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전교생이 800여 명이 넘는 김해건설공고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글로벌 전문 기술인을 육성하는 건설 및 하이텍 특성화 고등학교로서
‘취업 걱정 없는 명품 학교’로 거듭나고 있는 남녀 공학의
김해지역 공립 고등학교이다
지금은 코로나 19사태로 인하여
잠시 중단되고 있지만, 김해건설공고에서는 36년 동안
해마다 '매화축전'을 개최해 왔다
김해건설공고의 '매화축전'은
신입생과 재학생들이 모교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애교심을 키우고,
교우들과 함께 교정을 거닐며 학년 초의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행사로서
오랜 기간 동안 교직원과 학생들의 호응도가 높았기에
학교 측에서는 “매화 축전의 주요 행사는
학생들이 교정에 핀 다양한 매화를 주제로 사진을 촬영하고
글짓기 활동을 하도록 구성돼 있는데
특성화 고등학교이지만 학생들에게 모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고,
예술 활동을 통해 심미성을 고양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커
매년 즐겁게 참여하고 있는 행사이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해왔다
아울러, '매화축전'은 학교 교내축제이지만
행사기간동안 지역사회에 교문을 완전히 개방하여
‘주민 참여형 봄맞이 매화축제’로 승화시켜 운영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와룡매>가 만개하는 2월 말쯤 주말이면
'매화로' 주위는 ‘매화 반, 사람 반!’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게
인근 대도시에서 상춘객들이 몰려와서
이른 봄을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매화축전'은 지역사회에 대한 작은 배려이지만,
이 '매화축전'이 그동안 영남 지역사회의 문화창달과 지역화합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군락지의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는 일이 2020년에 있었다
김해건설공고는 지난 2004년 가야역사문화 정비사업 지구에 포함됐지만,
그동안 사업의 장기간 표류로 교육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2020년에 '김해건설공고 이전' 건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에 포함된 김해지역 교육시설은
김해교육지원청·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구봉초교 등 4곳인데
이미 김해교육지원청과 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 이전이 확정됐고,
마지막으로 구봉초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2020년 설계, 2022년 공사를 거쳐 2024년 3월에
김해건설공고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김해건설공고 이전 이후의 <와룡매> 군락지 정비계획에 대해서
아직까지 알려진 바는 없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이라는
가야 천 년의 영광을 재현하는 역사적이고 훌륭한 문화적 인프라 환경속에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도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관리계힉을 수립하여
김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와룡매> 군락지로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010. 김해 용당나루 매화공원 (2022.03.01.)
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용당나루터가 있었던 옛 용산마을 지역에 2022년에 매화공원이
새로 조성되었다
약 900 여평의 강변 부지에 산책로와 부대시설을 정비하고
옛 마을 터에 매화단지를 새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활동을 위한
수변공원으로 꾸몄다
옛 용산마을은 4대강 사업으로 철거가 시작되면서
2016년 주민들이 인근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었던
아픈 역사를 가진 전통마을이다
이주 과정에서 당시 마을의 자랑이었던 매화나무 군락지도 함께 사라졌고
철거 과정에서 살아남은 매화나무 중 상태가 양호한 나무는
인근 지역에 옮겨 심어 두었었는데,
김해시는 이 관리가 부실했던 매화나무들을 다시 용산마을 옛터에 옮겨 심어
매화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무리하고 일방적인 국가정책 때문에 이미 사라진 마을과 역사를
다시 되살리기는 어렵게 되었지만, 용당나루터를 복원하고
매화마을 군락지를 다시 회복시키게 된 것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김해시는 매화가 '시화'(市花)인 것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해 2월부터 1억2천만원을 들여 낙동강변의 2만8천㎡ 면적에
매화나무 588가구를 심었다.
낙동강을 따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수령 40∼50년 매화나무 54그루,
배롱나무 45그루도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
대부분 수령 40~50년의 기품있는 토종 매화로서
백매와 홍매가 주를 이루고 있고 청매도 3그루가 있다
옮겨 심는 과정에서 심한 가지치기로 매화의 자태가 많이 훼손되었지만
앞으로 시간이 흘러서 자리를 잘 잡으면
낙동강변의 봄맞이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010. 순천 매곡동 탐매축제와 홍매가헌 (2023.03.04.)
순천시가 '홍매향 정원으로 잇다'라는 주제로
3월 4일부터 제5회 매곡동 탐매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순천시는 이번 축제가 지난 2019년 이후 4년만에 대면으로 개최되는 것으로
전국에서 제일 먼저 홍매화가 피는 매곡동 탐매마을의 매력을 함께 즐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탐매축제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축제는
매곡동 탐매희망센터 일원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예쁜 꽃나무 아래에서 개막식 공연과 체험행사, 먹거리 행사가 펼쳐진다.
봄의 전령사인 홍매화를 테마로 홍매화 포토존, 홍매화 페이스페인팅, 홍매실차 시음,
홍매화 버스킹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풍선 및 팝콘, 솜사탕을 무료로 나눔하며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탐매마을은 2005년부터 매곡동 주민자치위원회가
'홍매골 홍매화 가꾸기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지역 주민들이 홍매화를 직접 심고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골목길과 담장, 건물 벽 등을
붉은 매화꽃으로 장식하고 5회째 축제를 이어오고 있다
탐매마을은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붉은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다.
집마다 걸린 문패와 벽, 우편함과 헌 옷 수거함에도 매화가 만발한다.
또 초청가수 공연, 국악 공연, 댄스 공연, 매실 인형극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펼쳐
시민에게 색다른 즐길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또 정원박람회 홍보부스에서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미리 알아볼 수 있다.
홍매가헌(紅梅佳軒) 홍매 2그루
‘홍매가헌(紅梅佳軒)’은 김 전 교수가 3대를 이어 살고 있는 집.
개인 주택이지만 마당만큼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정원’이다.
홍매화를 보러 오는 이가 많은 봄날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낮 시간에 한해
마당을 열어놓는다
김 전 교수는 “아들이 여기서 자랐고 함께 살지는 않지만,
손주까지 드나드니 따져 보면 5대에 걸친 집”이라고 했다.
이 집의 매화나무는 김 전 교수가 학창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난 사이에
학교 교장이던 부친이 심은 것이다.
30년이 넘는 수령의 매화나무를 50년 전쯤 심은 것이라니
최소 80세가 넘는다
“할아버지의 매화나무가 죽자 아버지가 다시 심은 매화나무예요.
그 전에 기막힌 수형(樹形)의 노거수 홍매와 백매가 한 그루씩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선암사에서 구해와 심으셨다고 했는데
나무도 근사하고, 꽃도 좋고, 향도 참 짙었지요. 지금까지 살았으면 명목(名木)이었을 텐데,
아쉽게도 태풍으로 가지가 부러져 죽었어요.
나무가 죽자 허전해 하던 아버지가 어디선가 홍매화 나무 두 그루를 구해
대신 심은 게 지금 저만큼 자랐어요.”
해마다 일찍 피어 그윽한 향기를 뿜는 김 전 교수 집 정원의 두 그루 홍매나무가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마을의 값진 자원이 됐다.
두 그루의 홍매나무를 중심으로 순천의 원도심 매곡동에 ‘탐매(探梅) 마을’이 조성된 것.
이름처럼 ‘매화 핀 경치를 구경하는’ 마을이다.
남도 땅에 매화 한두 그루 없는 동네가 있을까. 하지만 매곡동 매화는 존재감이 남다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일찍 피어서’다.
똑같은 꽃이라도 봄에 저 홀로 이르게 피는 것은 얼마나 귀한가.
여린 꽃이 알리는 봄의 도래는 또 얼마나 감동적인가.
순천의 매화 중 첫손으로 꼽히는 선암사 매화를 보려면 한 달도 더 남았고,
낙안읍성의 매화도 아직 멀었다.
내륙에서 꽃소식이 가장 빠르다는 금둔사 매화조차,
겨우 한두 송이 힘겹게 꽃망울을 열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매곡동 주택가의 홍매화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진작 붉게 피어나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두 번째는 나무의 키가 크다는 것이다.
매실 수확을 목적으로 심은 과수원의 매실나무는,
가지를 쳐내서 키가 작게 키운다. 열매 수확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매곡동의 매화는 오로지 꽃을 보기 위해 심은 것.
가지를 옥죄거나 쳐내지 않고 풀어서 키우니 성큼성큼 자라서 훤칠하게 크다.
과수원의 매실나무처럼 꽃눈이 촘촘하지 않지만,
본디 매화는 이렇듯 가지가 낭창거리고 꽃이 좀
성글어야 하는 법이다.
탐매 마을을 조성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이런저런 지원을 받아 동네 주변에 홍매화 1000그루를 심었다.
두 그루 홍매화에서 시작한 꽃불이, 동네에 심은 매화나무로 옮겨붙게 된 것이었다.
마을 곳곳에 홍매화가 피고,
골목마다 미술 마을 프로젝트로 그리거나 설치한 벽화와 조형물이 들어섰다.
여기까지가 순천 원도심의 조용한 주택가인 매곡동 탐매 마을이
고즈넉한 봄꽃 여행지가 된 사연이다.
탐매 마을이 매화나무 두 그루에서 시작됐다고 했지만,
매곡동과 매화의 인연은 자그마치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매곡동의 ‘매곡(梅谷)’은 매화 계곡이라는 뜻.
이 동네의 중고등학교도 교명으로 ‘매산(梅山)’을 쓴다.
필시 무슨 연유가 있지 않을까. 다음은 이런 단서로 찾은 이야기.
경북 성주 출신의 배숙이란 사람이 있었다.
1516년생이니 500여 년 전 사람이다.
과거 예비시험 격인 사마시(생원·진사시험)에 합격해 성균관 유생으로 7년 동안 있었지만,
대과에는 합격하지 못해 벼슬자리에 나서지 못하다가 순천에 교수 직함을 받아 부임했다.
중앙에서 파견된 향교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지금으로 치면 공립학교 교사쯤이다.
그의 호가 ‘매곡’이었다.
배숙은 매화를 좋아해 순천의 거처에다 ‘매곡초당(梅谷草堂)’이란 현판을 내걸고
뜰에다 홍매화 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순천 매곡동이란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글출처 : 문화일보 2022.2 박경일 전임기자)
012.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 (2023.03.04.)
바야흐로 매화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매화꽃이 다투어 터지고 있다.
곧 남도 꽃잔치가 펼쳐질 것이다.
광양 다압 청매실농원 주변은 두말할 나위 없는 매화축제 명소다.
보해양조에서 직영하는 대규모 농원(50여만㎡, 해남군 산이면)도 유명하고,
순천 월등 향매실마을 매화꽃 축제도 손꼽을 만하다.
그러나 그곳은 꽃이 아닌 열매를 생산하기 위해 조성한 농원·농장이다.
매실이 아닌 오직 꽃을 완상하기 위해 조성한 매화정원이
순천에 선을 보였다.
‘순천복음교회 매화정원’(이하 매화정원)이 그것이다.
매화정원은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과 함께
순천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전국 최초의 본격 매화정원이자 일정한 규모를 갖춘
국내 최고(最高)의 매화정원이기 때문이다.
‘매화정원’을 일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20~30년 동안 공을 들인
순천복음교회 양민정 목사는
“매화나 동백의 북방한계선이 전북 내장산 정도이기 때문에
남도(南道)만의 꽃과 나무로 특색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1천2백평 남짓의
정원에는 매화, 돈나무, 단풍, 동백, 산다화, 소나무, 대나무 등
7종 330여 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벚나무도 두 그루 있다.
그중 매화가 177주로 가장 많은데 백매는 45주 홍매가 130여 주에 이른다.
매화는 화륜의 크기, 화형, 화색, 향기의 농담, 홑겹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
매화정원에는 홍매, 청매, 백매, 흑매, 비매(緋梅=비단매화), 오색매,
능수홍매, 능수백매, 운용매 등 15종의 다양한 매화가 자리하고 있다.
백매는 수령 100년을 지난 고매(古梅)가 37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확한 수령을 알 수 없지만 국내에서 최고(最古)에 속하는 선암매(600여년)에 비견할 만한
‘복음매’는 단연 발군이다.
구입에서 가식, 정식까지 수천 여 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1억짜리 매화라고 부른다.
장흥에서 이사 온 홍매(장흥매)는 화엄사 고매(흑매)에 견줄 만한
수령(약350년)을 자랑한다.
개울과 연못은 정원의 백미다.
만든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개울은 10년, 20년 전부터,
아니 원래 그 자리에서 그렇게 흘렀던 것처럼 천연스러웠다.
계류는 산 속의 계곡 같기도 하고 오래된 도랑 같기도 하다.
강돌이 아닌 월등 계곡의 산돌을 구해 만들었다.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든 도랑이 아니라 울퉁불퉁 비정형이면서
깊음과 얕음도 똑같지 않다.
예배당 오른쪽 앞에서 시작한 계류는 굽이돌기도 하고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면서
홍교형(虹橋形) 돌다리를 지나 입구 왼쪽의 지당(池塘)으로 흐른다.
교회 입구 큰 길 쪽에서 볼 때, 정원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대각을 이루며 흐르는데,
그 곡선과 배치가 예술이다.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경탄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한다.
계류가 마침내 도달한 곳은 지당이다.
산과 들을 지나 강으로 흘러든 물은 드디어 평화의 바다에 이른다.
못에서는 평화롭고 고요한 정밀(靜謐)의 미가 흐른다.
아담한 못에 담긴 맑은 물이 주는 차분함,
못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서 있는 석재 투각 십자가
(두 개의 돌로 만든 투각 십자가는 도대체 누가 구상한 것인지,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단순하면서 성스러운 작품이다),
십자가를 향해 일제히 머리를 숙인 지당 주변 27그루의 홍매화가(주로 능수매)
어우러져 조용히 뿜어내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거룩하게 한다.
입구에서 예배당에 이르는 진입로도 걸작이다.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길을 내면 100미터쯤 되는 거리다.
그 길을 굽이굽이 돌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도록 하여,
100리 길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곡선과 느림으로 사색을 유도하고 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지당을 옆에 끼고 매화를 감상한 후,
돌다리를 건너 호젓한 오솔길을 걸어올라 소나무 숲을 통과해야 예배당에 이를 수 있다.
고즈넉한 길을 천천히 걷고서야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에는 벽돌이나 침목, 자연석을 쓰지 않고
석재공장에서 나오는 작은 화강암(쑥돌) 파석을 사용했다.
눈이 지루하지 않게 드문드문 붉은색(대리석)과 검정색(오석) 파석도 섞었다.
오솔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다.
숲 속엔 앉아 쉴 수 있는 돌의자를 듬성듬성 놓았다.
< 복음매 >
매화만 심은 정원은 아니다.
정원은 춘하추동 사계절 내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봄에는 매화다.
교회당 정문 왼쪽에 커다란 수석과 함께 서 있는 운용매가
2월 초순경 가장 먼저 불을 댕긴다.
이어서 홍매, 청매, 백매 등이 연달아 꽃을 피워 3월 중순 경까지
1달 보름 가까이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모든 매화가 진 다음,
매화로서 맨 마지막 꽃을 피우는 것은 정원 왼쪽 담장 부근에 있는
겹홍매(장흥매)다.
여름에는 돈나무다.
정원에 돈나무가 9그루 있다.
남해안과 섬에 자생하는 돈나무는 흰 꽃을 피운다.
아카시꽃이나 치자꽃 향기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향기가 은은하여 기막히다.
여명과 석양에 더욱 아름답다.
한여름에는 목백일홍(배롱나무)이다.
여행객들에게 남도의 여름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붉고 흰 배롱나무 꽃은
가을 추수 때까지 간다.
정원에는 가격이 1천만 원에 이르는 목백일홍 2주를 포함하여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가 있다.
가을은 단풍이다.
단풍 색깔이 곱고 수형이 빼어난 것으로만 골라 55주를 심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흔치 않은 황피단풍도 있다.
겨울에는 동백과 산다화다.
남도에서만 자라는 이들 나무는 삭막한 겨울에 붉은 꽃을 피워 올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주의 동백은 붉은색 하얀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20여 종의 산다화와 함께
정원에 산다.
겨울을 대표하는 나무로 소나무와 대나무도 빠질 수 없다.
수고와 수형이 정정한 문인송 40여 그루는 한국의 정서를 대변하는 나무다.
그들과 더불어 예배당 앞에 서있는 반송 두 그루는 몸값에 어울리게 특히 준수하다.
대나무는 오죽인데, 예배당 왼쪽 옆에 군락을 이루어 대밭이 되었다.
느티나무도 5그루 살고 있다.
수석 애호가가 꾸민 정원답게 총 24점의 수석이
정원 곳곳에 조화롭게 놓여있다.
2~4톤 정도의 수석들인데, 형과 색, 재질 등을 고려하여 적소에 배치했다.
국내산 수석 외에, 브라질 아마존산, 인도네시아산,
필리핀산이 섞여 있다.
(이상 글 출처 : 순천광장신문 문수현 시민기자)
013. 순천 옥리단길 카페 '사운즈옥천' 홍매화 (2023.03.04.)
'순천 옥리단길'은
순천시 구도심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옥천이 흐르는 강변에 접하고 있는
'순천 문화의 거리'의 각광받는 중심 공간이다
한때는, 구도심의 낙후와 신도심 개발로 인해
인구가 하나 둘씩 빠져나가면서 지역 대표 구도심으로 전락해
긴 침체기를 맞았던 곳이었는데
2014년부터 시작한 도시재생 선도사업이 마무리되었던
2018년부터 청년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어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옷가게, 카페, 음식점, 책방, 공방 등 다양한 업종으로 창업하면서
'순천 옥리단길'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났다
다양한 개성을 갖춘 카페와 가게들이 줄지어 문을 열었고,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공방이 모여들면서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민관 합작 도시재생 사업으로
활력을 되찾은 곳이다
그 옥리단길, 옥천변의 카페 '사운즈옥천' 에
홍매화가 1그루 있다
수령 약 80년 내외로 추정되는 이 홍매화는 옥리단길의 자랑으로서
해마다 2월 초쯤에 화사하게 옥천을 붉게 물들이고
남도의 이른 봄소식을 한반도에 전한다
이 '옥리단길 홍매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설중매 계통의 홍매로
해마다 '매곡동 탐매축제'가 열리는 '홍매가헌'에 있는 홍매화 2그루와
수령과 혈통이 비슷한 것으로 보이며
이제는 '매화의 본향, 순천'의 명물이 되었다
카페 안에는 담장에 기대어
옥천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이 홍매화 외에도
동네 골목길 쪽으로 홍매보다는 약간 연륜이 어린 분홍매 1그루와
백매 1그루도 있다
옛날에, 어느 정승댁 정원의 새봄을 따뜻하게 밝혔던 매화들이
이제는 옥천의 겨우내 얼었던 강물을 녹이고
옥리단길의 새봄을 열고 있다
014. 순천복음교회 <복음매> (2023.03.04.)
2012년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순천복음교회는
교회를 신축하면서 마당 약 1000평을 확보하여 연못과 개울을 만들고,
전국에 흩어져 있던 오래된 매화나무와 정원석을 수집하여
매화정원을 조성하였다
매화정원에는 동백·소나무·산다화 등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이 매화나무로서,
홍매·백매·청매·흑매·능수홍매·운용매 등 그 종류만 15종이 넘는다고 한다
보통 수령 100년이 넘는 매화를 고매古梅라고 하는데,
여러 인연 등으로 교회 매화정원에다 가져다 심은 매화나무 177그루 가운데
37그루가 수령 100년이 넘는 고매 들이다
그중에서도 장흥에서 가져온 만첩홍매는 수령이 200∼300년은 족히 넘었고,
특히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서 옮겨온 <복음백매 >는
수령이 600년 이상이나 된 초고령의 고매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새하얀 색의 우아한 홑꽃을 피우는 <복음매 >는
나무 중간 부분에서 큰 줄기 2개가 좌우로 갈라지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서
마치 날개를 펼친 듯이 당당하고 웅장한 수세를 자랑한다
수령 600년이 넘은 고매라서 오랜 풍파로 가지가 많이 상했고,
이식과정에서도 가지가 많이 잘려나가고, 비록 지지 철물에 의지하고 있지만
<복음매 >는 고매로서의 기품과 자태는 여전히 살아있고,
주변의 정성과 보살핌으로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흰 색의 이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생화를 좋아했다.
어렸을 땐 꽃과 그림을 좋아했고, 학창시절엔 문학을,
졸업 후엔 분재, 수석, 야생화, 난초와 같은 자연을 좋아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지금의 예배당을 건축하게 된 계기가 된듯하다.
우리 교회 성도들, 그리고 순천시민과 자연을 사랑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매원을 조성하고 싶었다”,
“기독교는 서양에서 비롯한 종교여서 예배당을 한옥으로 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정원은 한국식으로 꾸며 모든 사람들이 쉽게 들어와 쉴 수 있게 하고 싶다.
성도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남녀노유 모든 시민에게 열린 정원·교회가 되기를 꿈꾸었다.
신자와 비신자, 사회와 교회가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1957년 5월 1일 창립한 순천복음교회 제2대 양민정 담임목사의 말이다.
전국 최초·최고의 매화정원은 그의 신학과 철학,
그리고 분재, 수석, 난초, 야생화를 통한 예술적 소양과 미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축 이전한 교회 부지는 1천6백여 평으로
로마네스크식 예배당의 대지 등을 뺀 정원 면적은 약 1천여 평이다.
교회 건물은 2011년 5월에 착공하여 2012년 8월 25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정원은 이미 준비된 재료들로 2012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8월에 마쳤으니 4개월 정도 걸린 셈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예배당 건축비의 40% 정도가 정원 조성비라고 한다.
전체 공사비의 10%만 조경비로 써도 많이 썼다고 평가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양 목사가 정원 조성에 얼마나 지극한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양 목사는 30여 년 전, 주위 분들로 인해
분재와 수석, 야생화를 접하면서 매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는 20여 년 전, 성도들과 함께 전원교회를 꿈꾸면서
중앙동사무소 근방에 있던 교회를 시 외곽으로 이전하기로 계획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23:2)”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평생 한 교회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드리는 게
복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매화정원’을 실현에 옮기기 시작한다.
2차에 걸쳐 터를 마련하고,
좋은 매화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닌다.
분재동호회원들에게 전국의 매화를 수소문하였고,
‘매(梅)’자가 들어간 동네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매화는 두 번 세 번 발품을 팔아 구입했다.
귀한 매화들은 고흥과 진주의 농원에 가식해 놓고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까지 정성들여 관리했다.
운용매 2그루는 광주 김태욱 선생(각화동 대림농원)이,
홍매, 비매 수십 그루(수령 40년 이상)는 순천에서 식물원을 경영하는 서정권 대표가
오랫동안 공들여 기른 나무다.
교회 입구에 세운 교회 표석(화강암) 글씨도 활자체가 아닌
서예가 무창(茂昌) 이해근(李海根) 선생의 작품을 썼다.
정원은 이 모든 것들이 어울려 그윽한 아름다움을 뿜고 있다.
(글 출처 : 순천광장신문 문수현 시민기자)
015. 밀양 <금시매> (2023.03.11.)
금시당과 벽곡재 앞뜰에는
수령 210년의 매화 <금시매今是梅>와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
그리고 마당에는 100년 넘은 백송이 있다
이광진 선생이 금시당 신축시 직접 심은 은행나무는
수고 22m, 나무둘레 5.1m의 거목으로
밀양시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변의 인기 높은 달성 도동서원의 은행나무와
경주 운곡서원의 은행나무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품격과 자태를 지녔다고 말 할 수 있다
<금시매>는 금시당과 벽곡재의 중간지점인 2단 화계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어느 쪽에도 지우치지 않는 ‘중용의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아서
양쪽 마당을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금시매>의 수령은 여태껏 160년 정도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금시당을 방문한 수목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210년 정도가 올바른 나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다고 주인어른께서 귀뜸해 주신 적이 있었다
금시당의 주인어른은 여주 이씨 후손으로
대도시에서 생활하다가 5년 전쯤에 귀향해서 금시당과 벽곡재를 관리하면서
방문객들에게 여러 도움을 제공해 주고 계신다
옛날에 주인어른이 금시당으로 귀향하시기 전에는
항상 대문이 굳게 잠겨 있었기에, 담장 너머로만 <금시매>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주인어른의 배려로 방문이 자유로워진 것은 상당히 고마운 일이고
감사드려야 할 일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귀찮을 법도 한데
친절하게 맞아 주시는 주인어른의 모습에서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명문가의 높은 선비정신'을
뵐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래서 밀양의 <금시당>은
밀양강에 살포시 퍼지는 <금시매>의 달달한 향기뿐만 아니라
손님을 예우하던 접빈객接賓客의 선비의 품격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인문학의 산 교육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밀양의 산성산이
밀양강을 향해 흘러내리다 웅지를 튼 백곡계곡 언덕위에
금시당과 백곡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대규모로 숲을 이룬 깊은 골짜기로서 백곡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뒤로는 산성산 일자봉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용두산龍頭山 능선이 내려가고
왼쪽으로는 호두산虎頭山 능선이 내려가는 요지로서
금시당과 백곡재는 용과 호랑이의 꼬리가 맞닿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금시당은 조선시대 문신인 금시당 이광진 선생이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금시당今是堂이란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내용 중
‘覺今是而昨非’ 중에서 ‘今是’를 취한 것이라 한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오늘은 잘한 일이요
벼슬살이에 얽매였던 지난날은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서
산수와 전원에서 여생을 즐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종 21년(1566)에 처음 지어졌던 금시당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743년에 백곡 이지운 선생이 다시 복원한 건물이고
금시당 옆의 백곡재는 백곡 이지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철종 11년(1860)에
후손들에 의해서 세워진 건물이다.
016. 김해 봉하마을 <민주매民主梅> (2023.03.11.)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에 낙향하여 고향마을에서 사셨던 분이다
서거하기 전까지 생활했던 그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의 집' 안채 뜰에
아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고인이 아꼈던 고매화 한 그루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노무현재단에서
"이 집은 내가 살다가 언젠가는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집"이라고 했었던
고인의 유지에 따라 2018년 5월 1일부터 '대통령의 집' 을
국민들에게 정식 개방하기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고인의 체취와 흔적이 남아 있는 집안 곳곳과 매화를
전문 학예사의 안내에 따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2019년에 처음으로 매화나무의 대면이 가능했을 때에는
꽃이 가장 싱그러운 개화시기를 가늠하기 위해서
그 해만 해도 3번의 사전답사를 거친 끝에
3월 중순쯤에 만개하는 개화시기 습성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만들어서 방문 적이 있었다
2020년 봄에는 코로나 19사태로
'대통령의 집' 관람이 중단되어서 아예 매화를 볼 수가 없었고
2021년 봄에는 잠시 관람이 다시 재개 되었지만 이내 중단되고 말았고
2022년 이후에야 차질없이 관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3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대통령의 집' 매화는
안방침실 오른쪽 장독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밑둥에서 부터 뻗은 여러 가닥의 가지가 위쪽으로 보다는 옆으로 펼쳐져서
전체적으로는 밥사발 모양을 닮은, 소박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5장의 순백색 꽃을 피우는 홑꽃의 백매화이다
'대통령의 집' 매화는
최근 몇 년간, 좀 여의고 수척한 모습을 계속 보여왔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비교적 생기있는 얼굴로 관람객들을
해사한 미소로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2009년 봄에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다
님이 어느날 갑자기 떠난 텅 빈 마당에
언제나 한결같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이 고매화는
300년이 넘은 우리 토종의 와룡매이다
현장의 전문 학예사에 따르면,
2008년에 인근의 농장에서 이 곳 봉하마을로 옮겨 오게 된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평소에 농촌의 친환경 농법에 관심이 많았던 노 대통령께서
진주의 <문산농장>에 단감나무 견학을 갔다가
참하고 매력적인 매화나무를 발견하고 칭찬을 했더니
농장 주인이 즉석에서 방문기념 선물로 내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민폐를 우려하여 대통령께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돌아 왔는데
다음날 농장 주인이 트럭에 싣고 와서 무작정 내려놓고
가 버렸다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매화나무에 큰 상처가 남아 있다
생전에 대통령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매화나무의
밑둥에서 부터 줄기까지 껍질이 아주 흉하게 벗겨진 부분이 있는데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을 때 그 상처가 생겼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온다
그런데 학예사께 물어보았더니
아직 '대통령의 집' 매화나무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매화의 이름으로는
유명인사의 이름이나 지역명을 따서 지으면 무난하지만
고인께서 사양하실 것 같아서 포기하고
내가 직접 작명해 보기로 하였다
고인께서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하셨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키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으니
고인의 철학과 정신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봉하마을 <민주매民主梅>'라고 부르기로 했다
올해 5월이면 어느듯 대통령 서거 14주기로
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강산이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우리 사는 세상은 많이 바뀌지 못 한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을 그토록 염원했었던
고인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제는 눈 앞까지 가까워진 것도 같았지만
바로 봄의 문턱 앞에서 아직 시련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는
고인의 묘비명이다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를 구별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이다
017.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 3 (2023.03.12.)
2주 전(2월 28일)에 김해건설공고를 방문했을 때
100여 그루가 넘는 <와룡매>들 중에서
백매와 어린 매화들은 개화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홍매와 청매들은
아직 미동도 없는 상태였었다
따라서 20023년 <와룡매>의 감상시기 적기는
홍매와 청매의 개화가 불 붙는 3월 둘째 주쯤이 될 것으로 예측했었다
그래서 다시 2주만에
<와룡매>의 만개를 예상하며 찾아왔는데
벌써 꽃이 거의 져 버렸다
단지, 가장 늦게 개화한 홍매화 몇 그루만이
뒤늦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마지막 정열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날씨마저 갑자기 나빠져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진다
기후온난화로 인한 환경의 역습이
자연의 순리와 계절의 구분마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고
김해건설공고 교정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매화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 군락지에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게 예상되는 일이 2020년에 있었다
김해건설공고는 지난 2004년 '가야역사문화 정비사업 지구'에 포함됐지만,
그동안 사업의 장기간 표류로 교육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2020년에 '김해건설공고 이전' 건이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했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에 포함된 김해지역 교육시설은
김해교육지원청·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구봉초교 등 4곳인데
이미 김해교육지원청과 김해서중·김해건설공고 이전이 확정됐고,
마지막으로 구봉초교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2020년 설계, 2022년 공사를 거쳐 2024년 3월에
김해건설공고 이전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김해건설공고 이전 이후의 <와룡매> 군락지 정비계획에 대해서
아직까지 알려진 바는 없다
'가야 역사문화 환경정비사업'이라는
가야 천 년의 영광을 재현하는 역사적이고 훌륭한 문화적 인프라 환경속에서
김해건설공고 <와룡매>도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관리계힉을 수립하여
김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와룡매> 군락지로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018. 화엄사 홍매화(흑매) 만개하다 (2023.03.18.)
조선 숙종 때 화엄사의 장육전이 불탄 자리에
각황전을 다시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桂波仙師가
이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 300년이 훨씬 넘은 아주 짙은 선홍색의 홍매화로
장육화丈六花라는 애초의 이름이 있었지만
특유의 아주 짙은 붉은 색이 검은 빛을 띈다하여 일반적으로 화엄사
<흑매黑梅>라고 많이 불린다
<흑매>는 화엄사와 지리산을 대표하는 명물이지만
천연기념물 485호로 지정된 아주 귀한 매화가 큰절 위쪽의 암자,
길상암 대나무 숲에도 있다
이 천연기념물 <길상암 야매野梅>는
산청 단속사지 들판의 <원리 야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대나무 숲에서 나고 자라서
작고 하얀 꽃을 피우는 400살이 넘은 야생의 들매화로서
현재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국의 유명한 고매화들의 개화시기는
지난 겨울의 추위와 개화 무렵의 날씨에 따라서 상당한 영향을 받기에
해마다 그 개화시기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화엄사 <흑매>는 특별히 기후에 상관없이 항상 3월 하순에 만개하는
규칙적인 개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매화이다
그런데 경험상으로, 3월 하순 주말에는 비가 오는 날이
상당히 많았었다
지난해 이맘때쯤(2022.03.19.)엔
새벽부터 봄비가 줄기차게 내렸고 오후 들어서 비는 그쳤지만
화엄사가 있는 지리산 노고단계곡에는 우박이 쏟아지고
산 정상 부근에는 새하얗게 눈이 내렸다
손이 시리고 추워서 버티지 못 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올 수 박에 없었다
화엄사 <흑매>의 개화율은 예년 수준의 50% 정도였었다
하지만, 2023년 3월 18일(토) 현재,
화엄사 <흑매>의 개화율은 벌써 만개 수준이었다
예년보다 만개시점이 일주일 이상 앞당겨졌고 날씨마저 이상하리만치 포근해서
지구온난화의 이상 고온현상이 지리산의 깊은 계곡까지 미치고 있음이다
새벽에는 조금 흐렸었지만 날씨도 점점 맑아져서
화엄사 계곡에 푸른 하늘이 열렸다
화엄사에는 10년 쯤 탐매여행을 다녔지만
날씨가 포근하고 새파란 하늘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
그만치 화엄사의 겨울은 깊고 길었었는데, 더 이상 온난화에 버티지 못하고
벌써 봄기온이 계곡에 번졌다
봄이 더 빨리 왔으니 편해진 것도 분명히 있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러게 되면 심각한 휴유증이 생기게 마련이다
꽃이 쉽게 피었으니 쉽게 시들고
빚깔이나 향기도 예전만 못 한 것이 당연하다
올해 화엄사 <흑매>가 그랬다
새삼 황벽선사의 매화시가 떠 오른다
"不是一番寒徹骨 (불시일번한철골)
爭得梅花撲鼻香 (쟁득매화박비향)
한 번 매서운 추위가 뼛속을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오!"
홍매·들매화 향기 지리산 구례 화엄도량 수놓다
- 전문가 및 휴대폰카메라 사진 대회, 청소년 백일장도 함께 열려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주지 덕문스님)가
제3회 홍매화·들매화 프로사진 및 휴대폰 카메라 사진 콘테스트 개막식을
주말인 18일 개최됐다.
이와 함께 올해로 제1회 대회인 청소년 백일장 행사도
화엄사 내 각황전과 원통전 앞마당에서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제3회 홍매화·들매화 사진 콘테스트는
부주지 우석스님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삼귀의, 반야심경, 내·외빈 소개,
주지스님 인사말, 사홍서원 순으로 이어졌다.
화엄사 사진 대회에서는 홍매화 풍경을 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들고 이 곳을 찾은 사진작가는 물론 일반인과
홍매화 관광객 등 많은 인파로 붐볐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청소년백일장(심사위원장 최한선교수)도
전국에서 20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참여해 당일 현장에서 부여된 시제(詩題)를 주제로
홍매화와 화엄사, 그리고 지리산을 알리는 운문 부문의 글을 작성하며
산사에서 유익한 하루를 보냈다.
백일장이 진행되는 동안 마련된 ‘홍매화에게 바치는 작은음악회’
(음악감독 김주연, 출연 퓨전음악밴드 '두번째달', 남성소리꾼 오단해)가 경내에서 열려
참석한 대중에 감동의 시간을 제공했다.
덕문스님은 개회식 인사말을 통해
"자연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와 감동을 준다.
300년 넘게 봄을 알리는 꽃으로 우리 화엄사 도량을 장엄해주고 있는 홍매화에게
올해는 더 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순호 군수도 축사를 통해 "화엄사가 위치한 구례군민이라는 것이
최근처럼 자랑스러웠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지역을 세계화하는 일에 화룡점정의 역할을 맡고 있는 화엄사는
바로 저희 집이기도하다"고 축하했다.
이번 홍매화 및 들매화 사진 콘테스트 대회는
오는 26일까지 화엄사 홈페이지에 사진을 업로드 해야 접수가 완료된다.
프로사진 및 카메라 사진 수상작과 백일장 수상작 발표는
다음 달 3일 오전 10시 화엄사 홈페이지와 BBS불교방송 뉴스를 통해 발표되고,
시상식은 5월 27일 '부처님 오신 날' 화엄사 각황전에서 열릴 예정이다
[헤럴드경제(구례)=박대성 기자]
019. 순천 선암사 돌담길 <무우전매> (2023.03.18.)
우리나라 '매화의 보물창고'인 선암사 경내에는
최소 수령 350년이 넘는 약 50여 그루의 고매들이
전각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중에서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2007년에 지정되었다
특히 무우전 돌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 군락은
우리나라 토종 매화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어느 이른 봄날 그 매화터널에 들어서면
시린 겨울과 속세에서 벗어나 환상적이고 달콤한 봄을 체험할 수 있는
보석 같은 공간이 '무우전 매화길'이다.
오전에는 하늘이 잔뜩 흐렸다가 오후에 맑아진 선암사의
2023년 3월 18일 현재, 개화상황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와 백매화는 거의 만개 수준이고
원통전 담장 옆의 백매와 대웅전 뒷 편의 홍매, 그리고 요사채인 무량수전 홍매는
벌써 지기 시작하였다
반면, 첨성각 연못 옆의 백매와 공양간인 적묵당 담장의 홍매와 백매,
해천당 담장과 마당의 고매, 그리고 뒤깐 옆과 뒷 편의 매화는
이제 곧 만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예년보다 개화시기가 일주일 이상 빨라졌다
일 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는 선암사는
예로부터 100종이 넘는 꽃나무들이 자생하고 있어서
한국의 정원수들을 총 망라했다는 찬사를 듣는 ‘꽃절’로도 유명하다
무량수각 앞의 600살 된 누운 소나무,
지장전 위의 영산홍과 자산홍, 칠전차밭의 700살 넘은 차나무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매화나무라고 할 수 있다
천년고찰 선암사에는 그 오랜 시간을 전설처럼 함께 살아 온
매화나무들이 있다.
칠전선원과 원통전 사이 그 통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선암백매仙庵白昧’와
무우전 돌담길 중간쯤의 ‘선암홍매仙庵紅昧’는 6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서
선암사의 역사와 그 향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1,500년이 넘은 완숙한 절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 그루 말고도 많은 고매화들이 살고 있다.
대웅전 뒷 계단에 자리한 수령 450년의 매화와
첨성각 앞의 홍매화는 수령 4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건강한 매실을 생산해 내고 있고,
그 외에도 수령 300년 내외의 매화들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 중에서도 무우전 돌담길의 20여 그루의 고매 군락은
선암사 매화의 진수이자 나라의 보물이다
무우전無憂殿은 선암사 북쪽으로
대웅전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요사채이다
‘ㄷ’자형으로 전면이 둘러싸여진 무우전의 뒷마당에는
철불이 봉안되어 있는 각황전이 있다
선암사에서 제일 뒷 쪽의 외진 영역에 위치한 무우전은
선방으로 적격인데 지금은 선방 겸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태고종台古宗 종정의 침실이 있다
그래서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이었었다
그런데,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무우전 지역이 2020년 부터 처음으로 개방되었다
<무우전 매화>들의 뒷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새로운 앵글과
미지의 종교영역이 열린 것이다
코로나 19사태로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선방 지역의 굳게 닫혔던 문을 일반인에게 개방해준 선암사의
자비와 배려는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선행이자
진정한 종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암사의 고매화들은
요즘 우리 주위에 흔한 매화마을의 일본산 개량종이 아니라
우리의 토종매화이다.
개량종의 수명이 수십 년인 데 비하여 토종 매화는 수명이 수백 년에 이르고,
고목의 구부러진 등걸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이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매화의 특징은 꽃잎은,
일반 매화에 비해 작고 꽃도 듬성듬성 피지만
그 기품과 향은 감히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죽은 듯이 메마른 등걸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그 고아한 멋과
끝을 알 수 없는 그 깊은 향기는
이 세상 모든 꽃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해마다 겨울이면 선암사 쪽만 바라보고 살지만,
그 찬란한 매화의 계절은 결코 길지가 않다
보통 일주일에서 길어야 이주일 정도로 아주 짧아서 금새
찰나처럼 지나간다
‘짧은 만남, 긴 아쉬움......’이지만
<선암사 매화>가 있어서 선암사의 겨울은 깊고도 깊고,
그리고 아름답다!
020. 선암사 원통전 <선암백매> (2023.03.18.)
천년고찰 선암사에는
그 오랜 시간을 절의 역사와 함께 전설처럼 함께 살아 온
매화나무들이 경내 곳곳에 자리잡고있다.
그 중에서도 칠전선원과 원통전 사이 통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선암백매仙庵白昧’와 무우전 돌담길 중간쯤의 ‘선암홍매仙庵紅昧’는
600살이 넘은 천연기념물로서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져 오는데
선암사의 오랜 역사와 세월의 향기를 우리에게 항상 전해준다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원통전 <선암백매>는
지상 약 50∼80㎝ 높이에서 네 개의 큰 줄기가 갈라지면서
다시 서로 교차하여 얽힌 형태의 웅장한 모습이고
8.2m 높이의 큰 키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의 매화나무 중 드물게 큰 키로서 아직도 수세가 양호하고
순백색의 작고 우아한 홑꽃을 피운다
하지만 원통전 <선암백매>는 600살이 넘는 고령이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 했었는데
다행히도 2020년과 2022년에는 여태껏 10년정도 내가 지켜본 세월 중에서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게 만개 하였다
명불허전, 선암사의 터줏대감 원통전 <선암백매>의
위용과 자존심을 근래에 들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때,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던 강릉 오죽헌의 천연기념물 매화
<율곡매>가 거의 고사상태에 이르러
천연기념물 지정을 취소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비보가 있었는데
뜻밖에 올해부터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늘도 치열하게 꽃을 피우는
<율곡매>와 <선암백매>의 '노장 투혼'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일일 것이다
021. 화엄사 천연기념물매화 - 길상암 들매화 (2023.03.18.)
구례 화엄사의 매화로는
각황전 옆의 <홍매화(흑매)>가 워낙 유명하지만
천연기념물 485호로 지정된 귀한 매화가 큰절 위쪽의 암자,
길상암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
순천 선암사 선암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 구례 화엄사 들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등
매화 4곳을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문화재청에서 보존관리하고 있다
화엄사 길상암 <야매>는
산청 단속사지 들판의 <원리 야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자란 산속의 대나무 숲 비탈길에 비스듬히 선
500살이 넘은 야생의 들매화이다
우리가 심어 가꾸는 매화의 대부분은
보통 접붙임으로 번식을 시키지만, 길상암의 <야매>는
사람이나 동물이 매실을 먹고 버린 씨앗이 싹이 터서 자란
속칭 들매화(야매野梅)로 알려져 있다
이런 들매화는 꽃잎과 열매가 재배 매화보다는 작지만
꽃향기는 오히려 더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무 높이는 7.8m, 수관 폭은 동서 방향으로 7.7m이다
줄기는 지상 약 60㎝ 정도 높이에서 분지한 후 1.5m 높이에서 다시 연접되어
남쪽의 대나무숲 경사지에서 거의 수직으로 생장했다
원래 4그루가 있었으나 그 중에서 3그루는 죽고
이제 한 그루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450여 년전 부용 영관대사가
화엄사 주지로 계실 때 순백의 아름다운 이 들매화에 반해서
'나와 네가 다르지 않구나!'라고 감탄한 후
이 들매화 이름을 <부용매>라고 불렀다고 한다
화엄사 길상암
화엄사 본절 뒷편의 산속에 조그마한 암자,
길상암이 있다
모과나무 기둥으로 유명한 구층암을 지나서
운치 있는 대나무숲을 지나면 호젓한 길상암이 나온다
양지 바른 길상암 툇마루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봄꽃이 만발한 연못과 들매화를 보고있으면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큰절이 속세이고
이곳,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길상암이 진정한 절간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었던 곳이 내 기억속의
길상암이었었다
3년만에 길상암을 다시 찾았더니
요사채를 새로 증축하고 없던 담장까지 높게 쌓아 놓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 한다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
모처럼 길상암 들매화가 활짝 핀 모습을 보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었는데
깊은 산속 암자까지 스며든 야박한 인심을 탓하며
미련없이 발길을 돌렸다
022. 화엄사 삼전 능수매화 (2023.03.18.)
화엄사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즈막한 축대위에 소박한 규모의 삼전(三殿)이 나타난다
삼전은 화엄사 주지 스님의 거소라고 한다
따라서 삼전은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이라
예전에는 가까이 가보지는 못하고 담장 너머로
사진 몇 장만 찍고 온 적이 있는데
오늘은 문이 열려있어서 잠시 양해를 구하고촬영을 했다
삼전 <능수매>는 요사채 뜨락에 있는
옅은 분홍색의 키가 작은 작고 귀여운 능수매화이다
화엄사의 스타, <흑매>의 짙은 분홍색과는 아주 잘 대비되는
소담스러우면서 생기가 넘치는 보름달 같은
가지가 늘어지는 능수매화이다
023. 선암사 첨성각 매화 (2023.03.18.)
선암사의 후원, 첨성각과 장경각 사이에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고 그 연못 위쪽, 담장 곁에
오래된 고매 <첨성각매>가 있다
'첨성각'은 스님들이 별이 보이는 새벽에 일어나
수행을 열심히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전각으로
지금은 원통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사는 요사체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지붕구조가 왼쪽은 맞배지붕이고 오른쪽은 우진각지붕을 가진
특이한 건물이다
그 맞은 편의 장경각은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서고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첨성각매>는 수령 400년 내외의
세월의 이끼가 곱게 내려앉은 늘씬한 몸매와 자유분방한 형태를
자랑하는 멋쟁이 고매이다
일반적으로, 수령 400년이면 상당한 고매에 속하지만
수령 600년 가까운 쟁쟁한 <선암매> 선배들이 버티고 있는 선암사에서는
아직은 '젊은 피' 매화에 속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옛 선인들은 매화를 평가 할 때,
첫 째, 가지에 붙은 꽃이 많지 않고(稀),
둘 째, 나이를 먹어(老),
셋 째, 줄기와 가지는 마르고(瘦)
넷 째, 매화의 꽃봉오리 형상으로 그 등위를 매기는
기준으로 삼았다
선암사 후원 돌담 곁에서 400년을 묵은 <첨성각매>는
고매가 지녀야 할 이러한 품격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늙은 등걸에서 용틀임하듯 기이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가지가 힘차게 뻗어 나와서 점점이 새하얀 꽃을 피워
선암사의 새봄을 연다
024. 선암사 무량수전, 해천당 및 뒤깐 매화 (2023.03.18.)
우리나라 '매화의 성지'인 선암사 경내에는
수령 350~650년에 이르는 오래된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천년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은 절집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선암사를 대표하는 '무우전 돌담길'과
원통전 담장, 응진당 담장. 뒤깐 옆 그리고 대웅전 뒷편과
첨성각 연못 옆에도 고매가 살고 있다
그 중에서 2007년에 원통전 담장 뒤편의 <선암백매>와
무우전 돌담길의 홍매화가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으로 불리는
'무우전 돌담길'에는
350년이 넘는 매화나무 20여 그루가
담장을 따라 도열하고 섰고
수령 550년의 천연기념물 <선암홍매>는
큰 줄기 3개중에 2개가 어느 여름 태풍에 부러져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지금또 꿋꿋하게 분홍빛 꽃을 피운다
원통전 뒤편의 <선암백매>는 약 600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지는데,
아직도 늠름한 기품과 수세를 자랑하고, 지금도 왕성하게 꽃을 피우는
선암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양간인 적묵당 담장의 홍매와 백매,
요사채인 무량수전 뜰 앞의 홍매
그리고 해천당 담장과 마당에도 잘 늙은 고매들이 살고 있다
< 무량수전 홍매 >
< 해천당 백매 >
선암사 뒤깐 매화
선암사에서 매화만큼이나 유명해서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해우소 뒤깐이 있다
족히 삼백년은 되었다는 이 명물은
건축 양식이 독특하고 공간의 짜임새가 뛰어날 뿐만아니라
그 화장실 고유의 기능마저 충실하고 훌륭해서
숱한 시와 문학의 소재로서 다루어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다
이 뒤깐 주위에
오래 된 매화 대여섯 그루가 심겨져 있다
화장실 환경의 부정적인 인식을 순화시키고
화장실에 앉아서 근심을 털어내고 매화향도 즐길 수 있는
아주 매혹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이 개방적이고 시원한 뒤깐에 앉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조그만 단점이다
025. 선암사 대웅전 매화 (2023.03.18.)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매화가 대웅전 바로 뒷편
계단 위의 대웅전 매화이다
대웅전 매화의 개화 상태를 보고서 선암사 경내의 나머지 <선암매>들의 개화 상태를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는 매화로서
선암사에서 비교적 일찍 꽃을 피운다
대웅전을 수호하는 사대천왕처럼
수형이 아주 당당하고 기운이 왕성한 수령 450년 내외의 대웅전 매화가
포근한 이른 봄 기운에 지난해보다 일찍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대웅전은 선암사의 주불전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좌상이 있고 그 뒤로 영산회상도가 모셔져 있다
선암사에는일반 사찰과는 달리 세가지 없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로 선암사 대웅전에는 정중앙의 어간문이 없다
다른 사찰에서는 어간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도 있지만,
선암사에서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중앙의 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좌측, 우측의 문으로만 대웅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한
독특한 동선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웅전 매화를 감상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불조전, 팔상전 마당을 지나고 삼전 전각 앞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면
선암사의 선경(仙境),
무우전 돌담길의 매화길 비경이 펼쳐진다
대웅전 앞뜰은 그다지 넓지 않다.
쌍탑을 격에 맞게 두었고 앞에는 길다란 강당을,
좌우에는 요사와 선방을 위치시켰다.
이러한 배치구조는 조선후기의 사찰가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ㅁ’자형 구조이다.
선암사의 가람배치형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영역과 축선이다.
사찰의 규모가 크고 불전의 수가 많으니 주축 외에도 여러 개의 축을 설정하여
둘 이상의 주불전이나 영역을 통합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주축 상에 위치한 대웅전 영역의 건물군 외에도
원통전 영역, 응진당 영역, 각황전 영역, 등 경내 전체를 네 개의 영역으로
건물들이 배치되는데
대웅전영역의 중심축에서 약간씩 비켜 서 있다.
특히 이러한 소 영역들은 서로 분리되어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하며
축대로 쌓여진 각각의 서로 다른 단위에 펼쳐져 있다”
조계산 선암사
호남의 명산 조계산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우리나라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그러나 서쪽의 승보사찰 송광사와 구례의 화엄사의 명성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못했고,
더러는 동백과 상사화로 유명한 전북 고창의 선운사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선암사는,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의 표현처럼
'미술사적으로 뛰어난 유적도 없고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가고 싶은 절,
가면 마음이 마냥 편해지는 사찰'로서
신도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남도의 천년고찰이다.
유홍준 교수가 자기 마음속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한글과 청자와 산사(山寺)를 꼽았고,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절로는 선암사를 뽑았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봉렬 교수도
선암사를 건축적인 면에서 ‘최후의 최고’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전남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는
백제성왕 5년에 아도화상이 현재의 비로암자에 처음 세웠고,
도선국사가 현재의 선암사 자리에 절을 중창하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다.
그 후, 의천대각국사에 이르러 대중창이 이루어지고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여
호남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전소되다시피한 선암사를
1660년 경준, 경잠, 문정 세 스님이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에 걸쳐 중수를 하였고
호암 스님에 와서 원통전, 불조선, 승선교 등을 지으며
중창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한다
026. 산청 남사마을 <원정매> 지다 (2022.03.18.)
진양 하씨가 32대째 살아온
남사마을 분양고가의 <원정매>는
원정공 하즙 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이 680여년이나 된,
<산청3매>중의 하나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매로서
분양고가인 고택 이름을 따서 <분양매>라고도 불린다
원줄기는 오래전에 동사하였었는데
몇 년 후에 뿌리쪽에서 곁가지 하나가 살아나서
간신히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해마다 쑥쑥 자라서 점점 수세가 풍성해지고 있어서
상당히 반갑고 고무적이다
<원정매> 앞에는 원정공이 쓴
영매시(詠梅詩)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 집 앞에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한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
<원정매>는 꽃잎이 여린 분홍색의 겹꽃 홍매화인데
남사마을 주차장 뒤쪽의 최씨고가 안에 있는 <최씨매>와 많이 닮았다
화엄사와 선암사를 들렀다가 늦은 시간에 찾았는데
만개한 후 시들고 있었다
분양고가의 집 뒤뜰에는
원정공의 손자로 영의정을 지낸 하연 선생이 7세에 심었다는
630여년 된 감나무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로서
아직도 감이 열리고 있다
산청의 남사마을(남사예담촌)에는
집집마다 오래 묵은 매화나무 한두 그루씩
없는 집이 없다
그 중에서도 하씨, 정씨, 최씨, 이씨, 박씨 등
마을의 다섯 문중을 대표하는 다섯 그루의 매화나무
‘오매불망五梅不忘’이 유명했었다
남사마을에는 골목을 따라 늘어선 고택 담 안쪽에
매화나무를 비롯해 기품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유독 많다.
두 그루 나무가 ×자로 가지를 교차해 자라는
이씨 고가 앞 돌담길 회화나무는 남사마을을 대표하는 명물이고
‘산청3매’로서 우리나라 매화 중에서 최고령을 자랑하는
하씨 고가의 <원정매>를 비롯하여
옅은 분홍빛의 가녀린 몸매를 자랑하는
최씨 고가의 <최씨매>가 있다
사효재에는 기이하게 자라고 있는 500년 된 향나무가 있고
선명당에는 우람한 단풍나무 노거수와
남사마을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정씨매>가 있다
남사마을 뒤쪽 사수천 건너편에는
이순신 장군께서 백의종군 때 묵어갔다는 자리에 세운 사당 니사재가 있는데
니사재 마당에는 가지와 가지가 붙은 연리지인 배롱나무와
<박씨매>가 나란히 있다
그리고 마을 중앙주차장 옆에는
근래 들어 전통염색 체험장으로 쓰이고 있는 남호정사에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매화를 피우는 <이씨매>가 있다
027. 산청 남사마을 <이씨매> (2022.03.18.)
남사마을(남사예담촌) 중앙주차장 옆에
근래 들어 전통염색 체험장과 갤러리 카페로 쓰이고 있는, 남호정사에
마을에서 가장 화려한 매화를 피우는 <이씨매>가 있다
이씨문중을 대표하는 <이씨매>는
성주 이씨 문중의 서재인 남호정사에 있는 매화로
원래 이씨고택에 있었던 400년 된 고매가 오래 전에 고사하여
지금은 <이씨매>가 이씨 문중을 대표하고 있고
수령은 150년 정도의 키가 늘씬한 백매화이다
이씨문중의 남호정사가
전통염색 체험장으로 쓰이기 전에는
평소에 항상 대문이 잠겨있어서 <이씨매>를
흙돌담 너머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카페에서 차 한잔하면서 염색작품 관람뿐만 아니라
느긋하게 <이씨매> 감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저녘무렵 늦은 시간에 남사예담촌을 찾았는데
카페 마당에서 '국악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씨매> 가 만개하는 시기에 맞추어
카페에서 마련한 '마을 주민을 위한 조그만 음악회'였다
형형색색의 염색천이 만국기처럼 마당에 걸려있고
한옥과 매화 그리고 국악이 어우러진 넉넉하고 여유로운
남사예담촌의 봄밤이었다
028. 양산 통도사 <오향매> (2022.03.26.)
2019년 2월에 통도사 <자장매>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오향매>를 처음 발견했었다
다섯 갈래의 우람한 고목에 아직 채 꽃망울도 달리지 않은 나목이었기에
아래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지리산 골짜기에서 옮겨온 통도사의 새로운 식구,
매화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윽한 매화향이
부처님께 향 사르며 예배하는 성불을 향한 수행자의 향기, 즉
1) 수행자가 계율(戒律)을 잘 지키는 향기(戒香)
2) 수행자가 마음을 쉬게 하는 향기(定香)
3) 수행자의 마음에 걸림이 없는 향기(蕙香:혜향)
4) 마음을 뛰어 넘는 향기(解脫香)
5) 수행자의 마음에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향기(解脫知見) 등
다섯 가지의 향기를 닮았다 하여 오향매라고
주지스님이 지었다
지리산 남녘 깊은 골짜기에서 자생한 이 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고매이다
여러 귀한 인연으로 통도사에 뿌리 내리고
순백색의 꽃을 피워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공양하고
영축총림의 일원으로
당당히 도량의 주인이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개말이다
그리고 품위와 격조가 있으면서도 정이 묻어나는
주지스님의 환영사라고 할 수 있겠다
<오향매>의 등장으로 인해
영각影閣 앞의 마당은 통도사의 ‘매화 정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영각 바로 앞에 통도사의 스타, <자장매>가 턱 버티고 서 있고, <자장매>의 맞은 편,
천자각과 영산전의 측면 모서리에 <오향매>가 새로 자리를 틀었다
그리고 <오향매> 앞뒤로 젊은 청매 4그루가 호위를 하며
울을 만든 모양새이다
다만, 영각과 영산전으로 이루어진 이 환상적인 정원이
대웅전과 종무소 쪽으로의 통과동선으로 인해서 가끔 분위기를 깨는 것은
‘매화 정원’의 아쉬운 점이다
영각影閣은 역대 주지 및 큰스님들의 진영을 봉안한 건물로
정면 8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 평면으로 된 팔작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04년(숙종 30)에 다시 지었고
처음에는 영자전이라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에 다시 복원하기 위하여 건물 상량식을 마쳤더니
전각 앞에 <자장매>가 저절로 돋아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영산전靈山殿의 영산靈山은
석가모니불이 법화경을 설한 영취산의 준말이다
후불탱화는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정경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고
그 주위에 여덟 폭의 팔상도八相圖를 배치하였다
팔상도는 석가모니 생애를 여덟으로 나누어 묘사한 불화이다
이와 같이 팔상도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영산전靈山殿을
팔상전(八相殿, 捌相殿)이라고도 한다
천자각은 학승들을 가르치는 강원(승가대학) 겸 기숙사 건물로 쓰이며
황화각이라고도 한다
<자장매>가 지기 시작하면 <오향매>가 피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봄을 연 <자장매>가 질 무렵이면 항상 아쉬움이 앞서지만
그때쯤부터 <오향매>가 피기 시작한다는 것은
또다른 희망이기도하다
순천 승주의 선암사를 '꽃절'이라고 칭송하는데
3월 초순 매화가 피는 시절의 통도사도 그에 못지않다고 말 할 수 있다
사찰 경내 곳곳 요소요소에 매화가 피지 않은 곳이 없고
선방 앞에도 화사한 매화 한 그루씩은 꼭 있다
통도사 <자장매>는
부산 UN기념공원의 홍매화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대표적인 매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UN기념공원의 홍매화가 피고나면
1~2주 후에는 <자장매>도 뒤따라 피어서
'한반도의 공식적인 봄'을 알린다
그러나 올해는 1월 초에 이상고온으로 너무 일찍 꽃을 피워서
<자장매>는 냉해를 입고 말았다
더군다나 유래없는 봄가뭄마저 겹쳐서, 꽃잎이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다
특히 꽃잎이 아주 성글게 달리고, 그마저 일찍 시들어서
<자장매>의 화사하고 우아한 자태를 기대했던 관람객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제, 봄이 깊었다
<영축매>와 <통도매>를 비롯하여
일주문 옆의 <수양매>와 영산전 옆의 <청매>들은 이미 모두 졌고
<육화당 백매>와 <오향매>도 남은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바야흐로, 통도사의 봄이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029. 양산 통도사 <육화당 백매> (2022.0326.)
통도사의 입구, 일주문 우측의 육화당은
원래 입적하신 월하스님의 유품을 전시하던 노천유물관으로 사용되었고
그 후 통도사의 종무행정 일체를 관장하는 사무기능을 지닌
종무소로 운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도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불교대학과 템플스테이 등 신도교육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통도사는 세 가람이 합쳐진 대사찰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상로전,
통도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한 중로전,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하로전으로 구분한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뒤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중건·중수되면서 규모가 계속해서 커졌기 때문인데
육화당은 하로전의 입구에 속한다
육화당이 종무소로 이용되던 시절에는
대문이 항상 굳게 잠겨 있어서 내부를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2020년부터 빗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 같다
대문 오른쪽에 물고기 그림의 돌로 만든 수조가 놓여 있고
그 뒤쪽 담장 곁에 <육화당 백매>가 있다
<육화당 백매 >에 대해서는 자료가 전혀 없어서
매화의 내력이나 수령 등 이력을 알기가 어렵다
몸통에 큰 상처가 남아 있는 <육화당 백매>는
수령 200년 내외의 고매로 보이고
3~4년 전쯤, <오향매>와 비슷한 시기에 육화당 담장 곁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짐작해 본다
그리고 육화당 담장 곁으로 매화를 새로 심은 깊은 뜻은
일주문 앞의 <수양매>로 부터 시작하여
<통도매>, <영취매>로 이어지는 '통도사 매화길'을 이어주는 중간 지점에
징검다리를 만들어 이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또 나름 짐작해 본다
아무튼, 통도사 산문 입구에서
담장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미소 짓는 <육화당 백매>는
아주 투명하고 흰 백색의 예쁜 꽃을 피우고
조용히 지고 있었다
통도사 일주문 <수양매>
통도사의 입구 일주문 옆
한송정이라는 식당 앞에 있는 <수양매>이다
수령 약 20년 내외로 보이는 백색의 겹꽃이 피는 어린 매화인데
수양버들같이 가지가 늘어져서 꽃이 달려
<수양매> 혹은 <능수매>로도 불린다
우리나라의 <수양매>를 대표했던
'호남 5매' 중 하나였던 <소록도 수양매>는 애석하지만
2009년에 태풍으로 완전히 고사했다
해마다 <자장매>를 보러 다닐 때에는
겨우 꽃망울이 달린 정도의 상태만 본 것이 고작인데
오늘은 활짝 만개후 낙화가 상당히 진행된
처연한 모습을 처음으로 본다
대가람의 입구 일주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의 <수양매>는
마음을 내려 놓고 대중을 공경하는
하심(下心)을 수행하는 '구도자의 집'의 문지기로서도
제법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030. 담양 장산리 <미암매> (2023.03.25.)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미암종가와
미암박물관 윗쪽 마을에 있는 수령 300년 정도의 매화이다.
우리나라의 홍매 중 가장 화려한 수세를 자랑한다는
<미암매>가 봄비 속에서 만개하였다
장산리 <미암매>는 3년만에 다시 방문하였는데
'우리나라의 홍매 중 가장 화려한 수세를 자랑하는 홍매'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좌우측으로 갈라진 두 줄기의 최상부에는 꽃이 전혀 달리지 않아서
많이 왜소해진 모습이고, 매화의 색깔도 별로 곱지 못하다
지구 온난화의 폐해가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모양이다
집 앞의 잘 가꾼 수선화는 예쁘게 피었는데,
항상 친절하게 탐매객들을 맞아주시는 주인 아주머니께서도 오늘은 보이시질 않는다
오전에 봄비가 내리고 오후내내 하늘이 잔뜩 흐려서
탐매객이 없을 줄 알고 밖을 내다보지 않는 모양이시다
마을 입구에는 연계정이라는 아름다운 원림과 연못이 있고
<미암매>를 배경으로 푸른 대나무가 마치 호위하듯 병풍 을 두르고 서 있고
집 입구와 텃밭에 있는 약 20여 그루의 매화도 한꺼번에 만개하였다
근처에 장화리 홍주송씨 종택 하심당(下心堂)과 <하심매>가
멀지않은 곳에 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지나왔다
미암(眉巖) 유희춘 선생
본관은 선산.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眉巖).
아버지는 계린이며, 부인은 여류시인인 송덕봉이다.
처음에 최산두에게 배우고, 뒤에 김안국에게 사사(師事)했다.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에 급제했으며,
1544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수찬·정언 등을 지냈다.
1546년(명종 1)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알력이 원인이 되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되어 귀향했다.
1547년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함경북도 종성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이곳에서 19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황과의 서신교환을 통하여
주자학에 대한 토론을 계속했으며,이 지방 유생들을 교육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한 뒤 석방되어
지제교·대사성·부제학·전라도관찰사·예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낙향했다.
그는 당시 사류(士類)들과 같이 문장에 뜻을 두지 않고 경학에 몰두하여
선조초에는 경연관으로 경사(經史) 강론에 주력했다.
또한 〈주자대전〉을 교정하고,
선조의 명을 받아 〈국조유선록 國朝儒先錄〉을 편찬했다.
이이(李珥)와 함께 경서의 구결(口訣)과 언해(諺解)를 상정(祥定)하는 등
유교문화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글출처 : 다음백과)
031. 장성 백양사 <고불매> - 봄비 속에서 만개하다 (2023.03.25.)
백양사 스님들은 1700년경부터
현재의 절에서 북쪽으로 100m쯤 떨어진 옛 백양사 앞뜰에다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1863년 경 백양사가 큰 홍수를 만나
대웅전 등 주요 건물들이 피해를 입자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기로 결정하고
스님들은 아껴오던 매화나무들 중에서 모양새가 좋은
홍매와 백매 각 한 그루씩을 옮겨 심었으나 백매는 오래지 않아 죽고
홍매만 살아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고불매古佛梅>라는 명칭은
부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서, 1947년에 '고불총림'이 결성되면서
홍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왜색 불교의 잔상이 선명하던 1940년대 말의 백양사는
부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성했는데
고불古佛은 '부처 원래의 모습',
고불총림古佛叢林은 옛 큰스님들이 모인 도량을 뜻한다
그 뒤, <고불매>는 역사성과 학술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2007년 천연기념물 제 486호로 지정되었다
백암산의 백학봉과 잘 어우러진 <고불매>는
담홍색 꽃이 피는 매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태와 기품을 지녔고,
선암사의 <선암매>, 전남대의 <대명매>,
담양 지곡리의 <계당매溪堂梅>, 소록도의 <수양매垂楊梅>와
더불어 호남5매湖南五梅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우화루雨花樓 옆 담장에 기대 선 <고불매>는
수령이 3백60년, 높이 5.3m, 뿌리목 줄기둘레가 1.5m 정도이고,
땅위 70cm쯤에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단정하게 가지가 뻗고 모양도 깔끔하여
고목의 기품과 포스가 살아있다
백양사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고불매> 앞에 상을 차리고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며 막걸리를 공양하고
독송을 해 오고 있다
2023년 3월 25일(토) 현재,
백양사 <고불매>는 이틀동안 내린 봄비 속에서 만개하였고
은은하고 가슴을 저리게하는 고불매의 향기가
백양사 계곡에 안개처럼 스며든다
백양사는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꼭 찾는 곳인데
2019년에 방문했던 <고불매> 탐매여행기 중 일부이다
“고불매가 모두 져 버렸다
며칠 전에 만개했다는 정보를 분명히 확인하고 왔는데
이틀 동안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꽃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것이다
평소에 <고불매> 주위에 그 많던 관광객들이 없으니
오히려 편리한 점도 있다고 느끼며 촬영 중인데
지나가던 스님이 한마디 하신다
"이미 꽃이 져 버렸는데 사진은 뭐하러 찍누?"
"꽃이 져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기만 하네요......"
같이 갔던 일행의 이미 해탈한 대답이다
일행은 꽃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해마다 <고불매>를 만나러 백양사로 간 것이었다
벌써 꽃은 져도 <고불매>의 품격과 향기는 친구처럼 애인처럼
항상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리라!
이미 '탐매의 도'를 터득한 것 같은 일행을
나는 놀랍고도 부러운 심정으로 한동안 바라보았다
(2019. 04. 06.)“
국립공원 산사문화 사진 전시회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사장 송형근)은
제3회 국립공원의 날(3월 3일)을 맞아 '국립공원 산사문화 사진 전시회'를
10일부터 국립공원 7개 사찰에서 순차적으로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는 경주 불국사(3월10~3월12), 지리산 화엄사(3월17~3월19),
내장산 백양사(3월24~3월26), 가야산 해인사(3월31~4월2), 설악산 신흥사(4월7~4월9),
오대산 월정사(4월28~4월30), 속리산 법주사(5월5~5월7)에서
주말 3일간(금, 토, 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되는 사진은 2022년 제21회 국립공원 사진공모전 수상작
(사진 16점, 한국화 4점)과 각 사찰이 보유하고 있는 사진 등으로
구성해 전시하게 된다.
이 기간 중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탐방객들은
경이로운 국립공원 자연경관과 역사 깊은 사찰 문화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만들기 체험부스도 운영할 예정으로 가족단위 방문하면 좋은
추억거리도 만들 수 있다.
(글출처 : 중부매일 (http://www.jbnews.com))
국립공원 산사문화 사진 전시회
백양사는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 및 식생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왔을 만큼 이름난 곳이다
백양사가 위치한 백암산은 내장산과 함께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백양사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를 비롯하여
1,500여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자원의 보고라 할 만하다
백양사는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면앙정 송순 등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을 탐방하여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남기는 등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특히,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과 쌍계루 앞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자태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
지금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글출처; 문화재청)
032. 영주 선비세상 매화공원 (2023.04.02.)
오늘은 2023년 탐매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원래 문경 <화장암 홍매>를 보러갈 계획이었으나
일행 중에 감기가 심한 분이 있어서 산길과 등산을 피하고, 접근이 용이한
영주 선비세상 매화공원을 찾았다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805-1 에 조성 중인 매화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매화 전문공원으로서, 세계 최대의 매화분재원도 갖추었다
16,650평(54,385㎡)부지에 매화나무 213종 2,380주가 식재되어
대지곡(大枝谷)전체가 매화골(梅花谷)로 변모하고 있다
매화 연구에 일생을 바친 안형재 원장은
“본 분재온실은 491평(1,623㎡, 교실25칸) 규모에
163종361점이 전시돼 있다
영주 매화분재원은 중국 흑룡담 매원이나 일본 나가하마시 분매원과 비교하여
손색이 전혀 없는 귀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분매의 수형이 중국,일본과 전혀 다른 우리나라 선비들이 즐겨 기르던
전통 수형을 나타내고 있어 한국적 분매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매화는 '선비의 꽃'으로서
매화에는 선비의 정서나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
선비들이 추구하는 세상이란 ‘매화꽃이 핀 풍경과 같다’고도 한다
안형재 원장은 “추운 겨울을 이기고 강인하게 피어난 매화꽃.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헌신이
바로 선비의 진정한 가치!”라는 신념으로
매화공원을 가꾸고 있다 한다
안형재 원장의 매화 예찬[4] 선비의 고장 영주와 매화
영주시민신문 입력 2023.02.24
주자학의 도래지 영주의 위상
국내 최초의 ‘매향지원梅香之源’
영주의 자랑, ‘한국선비매화공원’
한국선비매화공원 '분매원'
1453년 수양대군(세조)이 조카인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이를 반대하던 김종서 등 사육신死六臣과
반대파들을 무참히 살육하거나 숙청했던 「정축지변」을 당하여 세종의 아들들 가운데 단종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1426∼1457)가 영주 순흥 땅에 안치되었을 때, 밖에 피어있는 매화에 대하여 읊은 시를 보면
순흥 유배중 매화를 보고 읊다 順興謫中見梅有感
이유李瑜
담백한 한매는.........................淡淡寒梅樹
바람 앞에 향기로운데..............風前遠有香
고독한 신하 귀양옴을 보고......孤臣曾見謫
매화(淑女)도 마음 아파하네.....淑女爲心償
이 시를 보면 당시 순흥 땅에는 순백의 한매寒梅가 활짝 피어 은은한 향내를 풍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의
패망으로 인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과 절의를 지켜 낙향 은거隱居하였고, 단종에 대한 굳은 충정으로 숨죽이며
살아왔던 이 고장 선비들의 수많은 문집 가운데서 발췌된 매화시梅花詩가 무려 400여 수에 달한다고 하는 것은,
《韓國文集叢刊》 전 100권에 수록된 매화시가 844수인 것에 비하여 실로 대단한 것이며, 우리나라 다른 어느 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영주만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채로운 매화시가 창작되고 아울러
분매盆梅 시도 여러 편이 있음을 볼 때 당시 이 고장에는 가는 곳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지조志操 있는 선비들의 빙기옥골氷肌玉骨과 같은 정신이 이어져 옴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부석면 〈우곡마을〉에는 울타리에 매화나무가 즐비했었다고 전하며, 상석리 백로 도래지 건너편 솔안마을에는
「매학당梅鶴堂」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는 중국의 북송시대 시인이었던 임포林逋(967∼1028)의 삶을 동경하고
몹시 흠모했던 조선 후기 문신이며 세종조 문절공 김담金淡의 6대손인 고산孤山 김선(金鍌 1596∼1660)이 지은 것으로써 이미 오래전부터 영주가 우리나라의 〈매향지원梅香之源〉 이었음을 미루어 알게 되며, 【한국선비매화공원】이
들어서게 된 필연적 연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단산면 단산로 553번길 168에 조성되는 매화공원은 기본적으로 열 가지의 내용으로 조성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첫째는 분매원이다.
분매원에는 163개 매화품종의 고품격 중, 대형 분매가 361점이 전시된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장안의 명품 매화로
이름났던 〈월사매〉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는 〈납월매臘月梅〉와 꽃 속에 또 한 송이의 꽃이
핀다는 일화이개성一花二開性 〈태각매台閣梅〉, 우리의 궁궐인 창덕궁 선정전 앞에 있었던 〈와룡매臥龍梅〉 등
희귀한 매화품종들이 있고, 특히 모든 꽃이 잠들어 있는 2월 중 순경 눈 속에서 매화꽃을 감상한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눈을 밟으며 매화를 찾는다)의 경건하고 상서祥瑞로우며 선비의 품격이 넘쳐나는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둘째는 절우단節友壇이다.
우리나라 정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瀟灑園》이나 영양 《서석지瑞石池》, 그리고 퇴계 이황이
청정한 세계를 꿈꾸며 만들었던 도산의 《절우단節友壇》과 같이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를 균형 있게 식재함으로써,
선비의 절개를 나타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를 감상하게 한다.
셋째는 매화문화관이다.
매화문화관은 매화가 건축과, 공예, 회화와 문학 분야에 걸쳐 다양한 문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것을 찾아내어
회화작품으로 매화문梅花紋 도자기陶磁器와 매화도梅花圖(재현품), 서예작품과 문방사우文房四友 및 조선의 여인네들의 패물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다.
넷째는 매 품종원이다.
매화 품종원에는 우리 국내에 분포되어있는 194개 매화품종 가운데, 가장 우수한 품종 170여 종을 선발하여 한 곳에서
다양한 매화꽃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매화 품종원이며, 영주가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뿐인
매향지원梅香之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고매원이다.
고매원은 수령 100년 생 이상의 오래된 매화들을 전국 각처에서 수집 식재하여 야생의 고매들이 만발하였을 때 매화 숲
아래서 매향천하梅香天下를 느끼게 한다.
여섯째는 수양매원垂楊梅園이다.
수양매는 모든 매화나무들이 그 가지가 하늘을 향하여 곧게 뻗은 반면에,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아래로 쳐지며, 꽃도
송이마다 고개를 숙이고 땅을 향해 피어, 선비들은 이 꽃을 겸손의 상징으로 여겼기에, 이 꽃을 감상하면서 스스로
겸손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일곱째는 매영지梅影池다.
매영지는 중국의 절강성 서호에 살았던 임포林逋가 “성근 가지는 비스듬히 낮은 물 위에 어른거리고(疎影橫斜水淸淺) 그윽한 향기는 황혼의 달빛 속에 은은히 떠도네(暗香浮動月黃昏)”라는 상황을 전개한다.
여덟 번째는 명매원이다.
명매원은 매 품종원 주 탐방로에 우리나라에서 건국 후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다섯 그루의 매화와 그 밖의
명매들을 한 곳에서 감상토록 한다.
아홉 번째는 매화서옥이다.
매화서옥은 옛날 선비들과 같이 고목의 매화가 만발할 때면, 매 숲속의 서옥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고 그림을 그리며,
매화를 감상하였던 것을 재연토록 한다.
열 번째는 매화시비단梅花詩碑壇이다.
매화시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매화시를 비롯하여 20세기 한글 매화시인 이육사의 “광야”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매화시 20점을 선정하여, 시비를 세운다.
이와 같은 매화공원이 완성되는 경우 영주는 선비 고장으로서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국내 유일의
제일가는 매향지원梅香之源으로 탄생할 것이다.
KTX 고속열차가 서울에서 영주까지 1시간 10분대로 운행되고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2월초, 중순경) 분매가 피기
시작하면 매년 〈매화관광열차〉(철도청과 계약)를 운행하여 서울과 수도권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태백산맥 마구령 터널이 개통되었을 때, 단양과 영월을 찾는 연간 1,000만여 명의 관광객이 20-30분대로 영주에 밀려오는 폭넓은 관광벨트가
형성되어 ‘눈을 밟고 매화를 찾는(踏雪尋梅)다’는 옛 선비들과 같은 탐매探梅 행렬이 이어질 것이므로 격조 있고 품격을
겸비한 선비의 고장 영주의 ‘매화관광’ 꿈이 실현되어 관광수익이 증대되고 자손만대에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혹자는 매화의 개화기간이 단기이기 때문에 사군자공원을 주장하지만 일본44개, 중국37개, 대만5개소의 매화공원이
사군자공원으로 꾸민 곳은 한 곳도 없다. 우리 국내 유일의 매화공원인 만큼 제대로 조성하여 영주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글 안형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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