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Friedensreich Hundertwass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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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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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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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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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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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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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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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라이트너 (1958년 ~ 1960년)
이케와다 유코 (1962년 ~ 1966년) |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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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트림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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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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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자 꿈을 꾸면 꿈에 그치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2. 생애
2.1. 미술에 대한 남다른 재능
2.2. 4개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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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 일본에 머물며 일본 전통 목판화를 연구하던 훈데르트바서는 자신의 이름을 일본어로도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이름에 프리데라이히(Friedereich)를 추가한다. 평화를 뜻하는 프리데(Friede)와 풍요를 뜻하는 라이히(reich)를 합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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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 프리데라이히는 프리덴스라이히(Friedensreich)로 수정된다.
3. 사상
3.1. 스킨론
3.2. 자연주의 사상
3.3. 자연과의 평화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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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자연과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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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린 하늘 아래 수평한 모든 것(지붕이나 길)은 자연에 속한 것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간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파괴했던 자연의 영역을 돌려주어야 한다. (자연의 영역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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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발생적인 식생에 대환 관용 (자연에 대한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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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되어야 한다. 이들의 분리는 자연과 인간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자연과의 재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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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법칙에 조화되는 삶 (자연과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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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단순히 자연의 손님일 뿐이며,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인간은 지구를 파괴해온 가장 위험한 기생자이다. 인간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태적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의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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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는 다시 쓰레기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쓰레기를 존중하고 재활용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환을 존중하고 생명이 재생하여 지구에서 계속 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환)
4. 예술 활동
4.1.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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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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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색 조합능력이 뛰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색 조합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대담한 색을 사용했다. 특유의 색감을 통해 생명의 다양함과 무한함을 표현했다. 강렬하고 빛나는 색을 선호했고 보색을 함께 쓰는 것을 좋아했다.
훈데르트바서 그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나선'의 형태이다. 그에게 나선은 생명과 죽음을 상징한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지 않고 돌고있는 나선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직선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했다.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4.2.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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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인 쿤스트하우스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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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가 건축을 시작한 이유는 기능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현대건축물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시의 메마른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건축치료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진정한 건축물이란 사람들이 그 공간 속에 이사 온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입주자와 건축물 사이에 밀접한 상호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축은 네모다'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신념을 건축에도 역시 쏟아부었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곡선이 존중되며 부드럽고 유기적인 물의 흐름을 표현했다. 그는 자연주의적 친환경 재료를 이용해서 건축했다. 흙과 벽돌 그리고 화강암, 목탄 등을 주로 사용하였다. 재료뿐만 아니라 색에서도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녹색, 짙은 갈색, 검은색을 주로 써서 자연과 어울리도록 했다. 그는 대지의 경계를 무시하고 지붕 위에 흙을 덮거나 대지 아래에 건축을 했다.
4.3. 환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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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가 그린 환경보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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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장하며 자연보호, 산림운동, 반핵운동 등 예술 밖에서도 활발한 운동을 실천한 환경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는 생태주의 복음을 설파하며 워싱턴 D.C. 환경교육센터에 '당신은 자연에 잠시 들린 손님이다. 예의를 갖추어라.'는 문구를 넣은 포스터를 제작하고 '고래와 바다를 구하자'는 문구를 넣은 작품을 그린피스에 기증했다. 뿐만아니라 식물을 이용한 정수시스템 개발, 부식토 변기를 만들어 환경보호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자연주의 철학을 피력했다. 일생을 환경보호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출처 - 나무위키
자연을 2차원 캔버스에 옮기면 훈데르트바서의 회화 작품이 됩니다. 이것을 다시 3차원으로 재구성하면 세계 각지에 남은 그의 건축물이 되지요. 훈데르트바서는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운동가로서 다차원적인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행복한 삶이라는 한결같은 메시지를 담았지요.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가 추구한 삶의 의미를 되짚어 봅시다.
천재 화가의 기묘한 그림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의 재능을 담기에 도화지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는 건물 벽이며 흙바닥, 벤치 등 온 도시를 캔버스 삼아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도구 역시 물감과 붓에 한정하지 않고 철사부터 흙, 기름까지 온갖 사물을 사용했지요. 공간에도 한계를 두지 않아 레스토랑, 기차, 비행기, 공원 등 자신이 머무르는 곳을 모두 작업실로 여겼습니다. 도구, 공간 심지어 국경에도 벽을 두지 않은 훈데르트바서는 그야말로 천재 작가였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회화는 특유의 색감과 패턴이 돋보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색채 감각이 남달라 8세 무렵 “색채와 형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지닌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그는 한평생 강렬한 보색 대비, 특히 초록색과 붉은색을 잘 활용했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나선형 역시 단골 소재였지요. 그는 나선을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도는 생명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는 직선을 미워하다 못해 혐오했습니다. “직선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직선은 무신론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관점을 고수했습니다. 그는 자를 대는 법 없이 구불구불한 대로 선을 긋고 색을 채웠습니다. 회화와 판화, 태피스트리, 환경 포스터에서 이러한 훈데르트바서만의 개성이 명징하게 드러나지요. 쨍한 색감과 반복적인 패턴, 아이의 상상 같은 자유분방한 표현을 보면 한 번에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 선언문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은 스스로 지은 이름입니다.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인데, 1949년 이름과 발음이 유사한 단어를 조합해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개명했지요. ‘평화롭고 풍요한 곳에 흐르는 100개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평화, 풍요, 강물과 같은 단어에서 유토피아가 연상되는데요. 실제로 그는 늘 자연 속 낙원을 추구했습니다. 그가 꿈꾸던 지상 낙원은 자연과 가까운, 혹은 자연을 닮은 도시였지요.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그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건축물, 즉 도시의 흔한 현대 건축물이 사람과 자연을 병들게 한다고 보았고, ‘건축=네모’라는 인식을 깨트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을 현실화하려고 건축에도 손을 뻗었지요. 그가 창조한 건축은 구조와 형태, 소재와 색감, 소소한 장식까지 현대 건축의 문법을 벗어나 온전히 자연과 닿아 있습니다.
1972년 발표한 선언문 ‘창문에 대한 권리-나무에 대한 의무’는 그의 신념을 분명히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선언문에서 그는 ‘사람은 식물의 땅을 빼앗아 집을 지으니, 옥상과 집에 나무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나무 세입자권’을 내세웠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주장에 따르면 나무 세입자는 건물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일종의 ‘월세’인 신선한 산소, 아름다운 조망, 소음 차단 등을 제공합니다. ‘창문에 대한 권리-나무에 대한 의무’의 일환으로 1973년 훈데르트바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15그루의 나무 세입자를 들이는 운동을 진행하기도 했지요.
도시에 자연을 들일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그는 나무 세입자를 비롯해 숲이 우거진 지붕, 반지하식 온실 및 고층 초원 주택 등을 자유분방하게 구상했는데요. 숲의 땅을 닮은 울퉁불퉁한 바닥과 무한한 순환을 상징하는 나선형 주택도 떠올렸습니다. 요즘이야 흔히 적용하는 방법이지만, 훈데르트바서가 처음 계획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많은 이가 허황된 꿈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는 해냈습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슈타이어마르크의 바트 블루마우 등 그의 대표작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식물과 건물이 경계 없이 어우러진 모습입니다.
요즘은 나무와 공존하는 일상이 당연해졌고, 심지어 빛이 들기 어려운 공간에서도 식물을 키웁니다. 이는 훈데르트바서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딛고 도시에 자연을 과감하게 들였습니다. 그와 같은 선구자 덕분에 푸르른 도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셈이지요.
훈데르트바서 건축 투어
- 도심 속 동화 마을, 오스트리아 빈 공공주택 리모델링 프로젝트
1980년경 오스트리아 빈 시의회는 훈데르트바서에게 공공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의뢰했고, 그는 1983년 본격적으로 착수했습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쿤스트 하우스 빈 등이 도심 곳곳에 들어서며 동화 같은, 혹은 정원 같은 경관이 탄생했지요. 쓰레기 소각장을 궁전처럼 꾸민 작품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테마파크처럼 유쾌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아낸답니다. 거주와 생활을 위한 건축물에는 ‘창문에 대한 권리’를 적용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중략) 집의 창문과 외벽을 재창조하고 모양을 바꿀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것인데요. 이를 시범 삼아 보여 주기 위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창문을 다 제각각 다르게 디자인했습니다. 오늘날까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서에는 훈데르트바서의 ‘창문에 대한 권리’가 명시돼 있지요.
- 동산 오르듯 옥상으로, 바트 블루마우
오스트리아 남부 온천 리조트는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모든 건물이 식물과 어우러져 있지요. 특히 바닥과 옥상의 경계가 불분명한 구조가 돋보이는데, 정원을 산책하다가 언덕을 오르다 보면 건물 꼭대기에 서게 되는 식입니다. ‘콘크리트 공기’ 대신 숲과 초원의 공기를 듬뿍 마실 수 있는 생태 건축물은 1997년 오스트리아 관광환경상, 1999년 독일 여행기자협회 관광 서비스상을 수상했습니다.
- 훈데르트바서의 유작, 독일 마그데부르크 그린 시타델
마그데부르크 그린 사타델은 훈데르트바서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건물이 완공되기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설계와 철학에 따라 건축을 마무리했지요. 독일 마그데부르크는 차분한 베이지색 건물 일색이던 도시인데요.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 사이에서 그가 설계한 우람한 분홍빛 건물은 튈 수밖에 없지요. 외양과 달리 이름에 ‘그린’이 들어간 것은 옥상정원 때문입니다. 훈데르트바서는 건물 설계부터 옥상정원과 테라스 정원을 조성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고, 건물 완공 후에는 입주자가 직접 정원을 관리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 천재 작가의 휴양지, 뉴질랜드 카와카와
뉴질랜드는 훈데르트바서와 인연이 깊습니다. 1973년 세계 순회 전시를 준비하기 전, 훈데르트바서는 뉴질랜드 주요 도시에서 먼저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그는 뉴질랜드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간 한 해의 절반을 뉴질랜드 북섬 카와카와 지역에서 보냈을 정도이지요. 카와카와에는 그의 작품인 공공 화장실과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훈데르트바서 아트 갤러리가 있습니다.
- 훈데르트바서를 오마주하다, 제주 훈데르트바서 파크
제주도에서도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 철학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 파크는 나무 세입자와 옥상 정원, 창문에 대한 권리, 세라믹 기둥 등 훈데르트바서의 뜻을 이어받아 지은 리조트 겸 테마파크입니다.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적 상상과 예술적 기질을 생생하게 재현한 셈이지요.
에디터 장새론여름
참고 자료 (피에르 레스타니 지음, 타셴 펴냄), 두산백과
[출처] 자연의 차원 이동, 훈데르트바서|작성자 KB금융그룹
현재 수도권매립지는 2025년까지 사용키로 했다. 사용 연한이 불과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수도권은 대체매립지 조성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해법은 쉽사리 나오지 않고 있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난지도와 인천 서구 매립지 모습이 재현 될 수밖에 없는 매립지를 유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2021년 환경부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고시하며,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금지키로 했다. 2026년부터 수도권 지자체는 광역소각장을 설치·운영해야 한다.
이를 활용해 폐기물을 소각 후 매립한다면, 매립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가 줄어든다. 또한 현재 매립하는 폐기물의 100분의 1규모로 매립이 가능하다. 매립지 면적도 감소한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매립지에선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발생한다. 광역소각장을 두고 탄소 배출을 지적하는데 최근 기술은 대기환경보전법에서 규정한 기준보다 오염물질을 잘 걸러낸다.
사람은 폐기물을 배출하고 살 수 밖에 없다. 적게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배출 후 처리 방식을 고려할 때 기후위기 시대 가장 경제적인 방식은 소각 후 매립이다.
60년 전부터 소각을 고민한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각장 중 하나인 슈피텔라우(Spittelau) 소각장이 있다.
예술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소각장의 굴뚝과 외관을 디자인한 것으로 주목받지만,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비롯해 빈의 소각장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소각장은 생활폐기물 등을 소각 처리하지만,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소각장에서 폐기물을 소각한 뒤 배출하는 유해물질은 굴뚝 밖을 나가기 전 특수 개발한 필터에 의해 모두 걸러지고 굴뚝 밖으로 배출하는 물질 대부분은 수증기이다.
오스트리아는 과거부터 기후위기 시대 대안을 가장 앞장서서 고민한 나라다. 이들이 운영하는 소각장도 그 고민의 일환이다.
빈도 과거엔 대한민국 수도권매립지처럼 생활폐기물 매립 때문에 골머리를 썩었다. 빈의 면적은 약 414㎢로 인천시 면적 106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구는 약 200만명으로 인천시 인구 300만명보다 적다.
소각장을 고민했을 당시의 인구는 지금보다 적었고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의 양도 적었다. 하지만 이들은 폐기물을 매립할 땅이 모자라다는 점에 입각해 소각장 건설을 고민했다.
이 고민 끝에 1960년대 말부터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설계해 1971년부터 운영했다. 1987년 큰 화재를 겪은 이 소각장은 재탄생해 1992년부터 현재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다.
슈피텔라우 소각장, 우리가 알던 소각장과 다른 ‘모습’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빈 시내의 중심 빈 국립 오페라극장(Karlsplatz)역에서 지하철 U4라인을 이용해 7정거장 15분 거리에 위치한 슈피텔라우(Spittelau)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쉽게 찾는 정도가 아니라 지하철역을 나오면 슈피텔라우 소각장의 상징인 굴뚝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무리 깨끗하게 운영하는 소각장이라고 하더라도, 악취가 날 것이다’는 우려는 기우였다. 그리고 소각장 입구는 소각장 관광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한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 입구 앞엔 빈 국립대 캠퍼스가 눈에 띄었다. 빈 국립대 약대 건물이었다. 그 건너편엔 예전에 경제학과가 사용했던 건물도 있다.
담당자의 안내를 받으며 만난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곳곳에서 주변 주민을 위해 했던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폐기물을 싣고 들어선 트럭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폐기물을 쏟아내는 곳에서 쓰레기 냄새가 조금 났지만 역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내 폐기물집하장을 지날 때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안내를 맡은 바레슈 게오르크(Baresch Georg)씨는 “폐기물 수거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낼 때 집하장 내부에서 공기를 빨아들여 폐기물이 발생시키는 악취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기술 덕분이다”고 설명했다.
폐기물 수거 트럭이 폐기물을 소각장에 쏟아낸 뒤 모든 공정은 밀폐한 곳에서 이뤄진다. 유리 칸막이가 쳐진 칸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집하한 폐기물을 소각로에 집어넣는 일만 수동으로 이뤄지고 그 다음부턴 모두 자동이다.
슈피텔라우 소각장, 인근 6만 가구에 난방 공급
슈피텔라우 소각장은 빈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약 3분의 1을 처리한다. 이는 연간 약 25만톤에 이른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광역소각장의 1일 처리량이 약 600톤(연간 약 22만톤)인 점을 감안하면, 인천시가 구상하는 광역소각장과 비슷한 규모이다.
바레슈 게오르크씨는 슈피텔라우 소각장이 소각장(Incinerator)뿐만 아니라 발전소(Power plant)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슈피텔라우 플랜트라고 소개한 바레슈 게오르크씨는 “이곳에서 연간 전기 120MWh를 생산하고 인근 6만 가구가 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인근 대학과 종합병원에 냉방을 공급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기술이 안착되면 인근 가구에도 냉방을 공급할 계획이다.
주민이 버린 폐기물을 활용해 발전을 하고, 난방을 공급한다. 그러면서 발생시키는 유해물질은 최소화 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천연가스를 활용한 발전이 주를 이룬 국가였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에 지장을 받자 다른 에너지원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그 동안 운영하던 소각장을 이용한 발전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주민의 반대 컸다. 하지만 계속 설득해야 한다”
슈피텔라우 소각장을 운영하는 빈에너지(Wien Energie GmbH)의 대표 크리스티네 벤츨(Christine Wenzl)을 만났다.
빈 에너지의 첫 여성 대표라고 소개한 크리스티네 벤츨 대표는 “슈피텔라우 소각장 덕분에 빈이 오스트리아 내에서 더 특별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큰 화재를 겪은 뒤 소각장을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의 반대가 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방법으론 끊임없는 대화와 설득 뿐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크리스티네 벤츨 대표는 “빈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쓰레기를 묻은 공간이 정말 없기 때문에 태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큰 화재 이후 소각장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 뒤 “폐기물을 가장 환경적으로 처리할 방법은 소각이고, 그것을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폐기물을 소각해 얻을 수 있는 전기와 난방 등 유용한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소음, 악취, 공해 등은 결코 발생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출처 : 인천투데이(http://www.incheontoday.com)
4. 제주에 깃든 훈데르트바서 미학…“오스트리아와 우도를 잇다” [함영훈의 멋·맛·쉼]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비가 오면 우도봉 근처 빗물이 하얀 물기둥 폭포가 되어 기암절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다와 만난다. 비와사 폭포는 제주 우도에 또 하나의 작품을 낳았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암벽은 우도의 절경 중 한 곳이다. 때마침 날이 개어 햇빛이 쬐면 무지개가 나타나 새로운 수채화를 그린다. 절벽에는 풍란 등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며 끈질길 생명력을 보여주고, 현무암 뿐 만 아니라 편성암, 화강암등 다채로운 지층이 공생한다. 주변에는 해식동굴 속에 달이 뜨는 풍경 주간명월, 광대코지, 몽돌해안 등이 있다.
봄날 우도봉 풍경.
이 하얀 물기둥을 받아준 바다는 여물통 ‘톨칸이’이다. 톨칸이는 소의 여물통이라는 뜻으로 ‘촐까니’라고도 한다. 촐은 꼴, 건초로 소와 말의 먹이이다. 까니는 큰 그릇을 말한다.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습의 섬으로, 톨칸이 앞에 있는 오름은 소의 머리, 툭 튀어나온 기암절벽은 소 얼굴의 광대뼈이다. 이곳 남서쪽에 있는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은 촐눌(건초를 쌓아올린 더미)이다. 촐눌과 소 사이에 소먹이통이 있어야 하니, 신은 기암절벽과 먹돌해안으로 둘러친 톨칸이를 하사한 것이다.
이야기도 정겹고, 풍경이 기가막힌 톨칸이와 비와사폭포 옆에 오스트리아 친환경 자연주의 미술가 훈데르트 바서가 우도를 제2의 고향삼아 찾아들었다.
시인 박인숙은 우도의 친구 성산포에 서서 “바다 위에 하얗게 유영하던 햇살의 파편들/ 태양도 바다에 스며드는 법을 아는데/ 나는 유독 너에게만 스미지 못했다/ 서서 자던 육중한 바람도 성산포에서 누워자는데/ 넌 어디에서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알고 보니, 우도였다. 이역만리에서 쉴 곳을 찾에 떠돌던 나그네 프리덴스라이히 레겐타크 둥켈분트 훈데르트바서와 그의 문하생들은 우도에 와서 지난했던 참 예술, 환경보호 투쟁의 긴 마침표를 찍고, 물감에 젖은 어깨를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도가 더욱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빌리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우도를 찾는 여행자들이 ‘우도에 오면 소(牛) 되는 줄 알았는데 시인이 되었다’는 이생진의 시어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제주도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훈데르트바서 미술가,건축가 겸 환경운동가는 작고한지 23년 됐다.
지난 가을부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낳은 또 한명의 스타 정은혜 작가가 훈데르트바서 예술테마파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어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훈데르트바서)로 가우디와 더불어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 그리고 자연을 사랑한 환경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작가가 스스로 지은 본명,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그는 자연에 애착이 깊었으며 물이 가진 이미지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하생들이 물과 물, 섬(제주본섬)과 섬(우도의 막내 비양도) 사이에 터잡은 아름다운 우도를 새로운 정착지 후보로 삼은 이유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고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굳은 신념과 철학은 그의 예술작품과 건축 안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색채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색 조합 능력이 뛰어나 천재 화가라 불린 훈데르트바서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을 선호했으며, 보색을 함께 쓰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한 그의 대표 회화작품으로는 224〈빅웨이〉, 630〈노란색집-사람이 다른 어딘 가에 있을 때 기다림은 상처가 된다〉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인간은 자연에 들른 손님’이라는 이념 아래 도심의 건축물에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축가이며 건축치료사이기도 하다. 유명 관광지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쿤스트 하우스 빈, 바트블루마우 등이 그의 대표적인 건축예술작품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자연보호를 실천하며 환경 운동가로서 활동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주장하며 자연보호, 산림운동, 반핵운동 등에 앞장섰고, 성명 발표, 포스터 캠페인 진행, 실천적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 운동을 했다.
훈데르트바서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과 작품세계가 제주 우도의 자연에 그대로 녹아든 내추럴 아티스틱 파크(Natural Artistic Park)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훈데르트바서재단’과 훈데르트바서의 기획 및 디자인을 실제 건축물로 탄생시켰던 건축가 ‘하인즈 스프링맨(Heinz Springmann)’이 건축 작업에 직접 참여해 훈데르트바서의 생전 건축 작품들의 콘셉트와 디테일들을 파크 안에 구현해냈다.
훈데르트바서파크의 건축물은 어느 것 하나 동일한 형태가 없다. 건축적 기교에서 단조로움 보다 다양성을 우선시 한 훈데르트바서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각 요소에 개성과 독창성을 부여함으로써 건축물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훈데르트바서파크 역시 다양성이 반영된 곳. 파크 내에 총 78개의 기둥과 131개의 유리창이 있는데, 이 중 같은 형태를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화려하고 대담한 색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크 광장의 세라믹분수를 둘러싼 세 동의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반지의 제왕 호빗마을의 그 곳, 훈데르트바서가 창조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온천마을 ‘블루마우’에 와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 그 정도로 이 파크는 훈데르트바서 건축예술작품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건물을 지을 때 베어지는 수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자생하던 수목들을 건물 옥상 위에 옮겨 심는 훈데르트바서의 ‘나무세입자’ 철학을 파크 내 건축물들에 적용시킨 것도 이 새로운 파크가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의 정체성을 계승한 곳임을 설명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하던 훈데르트바서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써온 건축치료사이자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꿨던 환경운동가다.
그의 이념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비용부담과 기술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사업부지 내 자생하고 있던 수목 1600여 주를 옮겨 심는 한편 건물이 들어서는 곳의 토지를 건축물 옥상에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파크 개발 사업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총 사업부지의 약 45%가 녹지공간인 내추럴 아티스틱 파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평지와 옥상은 연결돼 있다.
또한, 뮤지엄과 갤러리는 우도의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창문을 통해 작품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는 작가 중심의 전시가 아닌 관람자 중심의 열린 전시를 표방하는 것으로 그의 자연친화적인 철학, 권위적인 미술 전시를 지양하여 작품과 자연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훈데르트바서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일생과 작품들을 훈데르트바서식 건축물 안에서 오롯하게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는 상설기념관 ‘훈데르트바서뮤지엄’, 우도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낮게 들어선 지중해풍의 저층형 프리미엄 콘도미니엄 ‘훈데르트힐즈’, 성산일출봉을 화룡점정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우도의 바다를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뷰카페 ‘훈데르트윈즈’로 구성된다.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은 ‘드림 투게더(Dream Together)’라는 테마로 훈데르트바서의 생애부터 미술 작품, 친환경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된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의 상설 기념관이다. 훈데르트바서뮤지엄(연면적 1424㎡)은 1층, 2층과 옥상정원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회화관, 판화관, 생애관, 환경건축관, 파크관까지 총 5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됐다. 판화관에서는 훈데르트바서의 오리지널 판화 작품 20여점이 전시되며, 생애관에서는 우표, 두들 등 그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각종 기록들을 만나볼 수 있고, 건축관에는 담스타르트, 스피텔라우, 성바르바라가 전시되어 해외에 있는 그의 유명 건축물 모형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친환경 건축철학을 적용한 개성있는 전시공간인 우도갤러리는 뮤지엄 맞은편에 위치한다. 약 683㎡의 전시공간에서 새롭고 다양한 주제를 담은 국내외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동화 작가 전이수에 이어 정은혜 작가 작품전이 진행중이다.
갤러리 내에 있는 유럽풍의 노천 카페 ‘레겐탁’도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부드럽고 달달한 디저트 테린느가 일품인 이 곳에서는 훈데르트바서 건축물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독특한 형태의 세라믹 소재 쌍둥이 분수를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제주 푸른바다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프리미엄 숙박 시설 ‘훈데르트힐즈’는 대지의 자연스러운 경사면에 앉혀진 지중해풍의 저층형 콘도미니엄으로 총 8개동 48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리조트 내에는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인 ‘말차이트’가 위치해 있다. 말차이트(Mahl-zeit)란 “맛있게 드세요”라는 독일 인사말이다. 이 곳에서는 제주 특선 식재료 베이스의 현무암 슈니첼, 톨칸이 리조또, 뿔소라 갈치 속젓파스타 등의 이색적인 메뉴를 맛 볼 수 있다.
훈데르트윈즈는 성산일출봉과 제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1300㎡ 규모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다. 제주의 건강함을 품은 디저트 우도넛(U-DONUT)과 바다를 닮은 시원한 색감의 보롬 에이드는 이 곳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이다.
운영에 있어서도 훈데르트바서의 이념 계승은 지속된다. 모든 부속시설의 주방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은 음식물 감량기를 설치하여 수분을 제거하고 발효시킨 뒤 조경수 퇴비로 사용하고, 카페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컵, 빨대 등도 친환경 소재를 활용할 예정이다. 또한 환경법적 기준보다 많은 전기차 충전설비를 설치함으로써 작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환경을 생각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젠 우도봉에 올라 톨카니, 성산일출봉,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조화를 보자.
훈데르트바서 파크에서 오른쪽 길로 가다가 다시 우도의 브로드웨이 가운데 길로 우회전 한뒤 한번더 땅콩마을쪽 우측길을 걸으면 20~30분만에 우도봉과 우도등대를 만난다. 봉우리라고 하기엔 뭣하고, 야트막한 고원 초원 같은 이곳 입구엔 말들의 여물을 주는 간이시설이 있고 그 앞을 소(牛) 조형물이 지킨다. 너른 들판 말들이 뛰는 모습, 지중해 같은 색감의 제주바다를 좌우 번갈아보면서 S라인 동편 해안 절벽 윗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면, 성산일출봉 오조 식산봉, 구좌 지미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진항과 톨칸이 사이에 땅에서 솟아오른 양파 몇 개가 보인다. 바로 훈데르트바서 파크이다. 자연앞에 납작 엎드리다 땅속에서만 자라던 양파 몇 개만 내민 형상이다.
우도의 관광교통수단 1인승 전기차
우도 여행은 1인승 친환경 전기차로 한다. 전기차 중에는 롤스로이스도 있다. 전기차를 타고 돌아보거나 유람선을 통해 만나는 우도 팔경은 ▷주간명월(晝間明月:한낮에 굴 속에서 달을 본다는 뜻. 남쪽 어귀 해식동굴 초입에 반사경 같은 둥근 흰돌이 깊숙이 비춘다) ▷야항어범(夜航漁帆:밤 고깃배의 풍경) ▷천진관산(天津觀山:천진동에서 한라산을 바라본다) ▷지두청사(地頭靑莎: 우도봉에서 내려다본 푸른 모래:파도와 백사장의 끊임없는 만남) ▷전포망도(前浦望島: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사이의 앞바다에서 본 우도의 모습) ▷후해석벽(後海石壁:동쪽의 웅혼한 수직절벽인 광대코지) ▷동안경굴(東岸鯨窟:검멀레 해변에 콧구멍 같은 2개의 해식동굴. 거인고래가 살았다는 전설) ▷서빈백사(西濱白沙:서쪽의 흰 모래톱 빛나는 산호 백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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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첫 느낌은 깔끔하다였다.
고풍스러움과 멋스러움이 더해진 도시 같다고나 할까?
지금 사진을 보니 건물의 높이나 색깔 등이 런던 시내같아 보이기도 하다.
비엔나는 원래 필름페스티벌을 보러 방문한 거였는데 필름페스티벌보다는 미술관, 연주회장 등 다른 곳을 더 많이 구경한 것 같다.
그래도 빈 여행이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숙소에서의 맛있는 한식,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레오폴트 미술관에 방문했다.
개성 넘치는 에곤실레의 작품을 바로 눈 앞에서 보다니, 티켓도 멋지다!
내가 방문했던 2017년도에는 에곤실레와 클림트의 작품을 같이 볼 수 있었고 한국어 안내지도 준비되어 있었다.
작품명 왼: 앉아있는 남성 누드/ 우: 발리의 초상
에곤실레의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도 꽤 있었고 미술관 자체가 넓어서 볼 것들이 많았다.
작품명: 왼쪽부터 어머니와 딸/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치마를 위로 젖힌 검은 머리 처녀
작품명: 누워 있는 여인
에곤실레도 그렇지만 클림트도 참 개성있는 미술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모르는 작품, 다른 작품을 봐도 딱 그 사람만의 작품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이게 참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우디, BMW의 어느 모델을 보더라도 모양새는 다르지만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느낌이 항상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아반테, 소나타 등이 자신만의 색깔을 잃고 재출시되는 점은 참 아쉽게 생각한다.
작품명 왼: 죽음과 삶/ 우: 의학 *1945년 화재로 소실
딱 봐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이다. ㅎ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다리, 다리 위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이색적이다.
피렌체 여행은 못해봤는데 가게된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곳
신이 났었나보다. 이렇게 찍은 사진 진짜 많다.
기념품은 잘 구매하지 않는 편인데 레오폴트 미술관에서는 어머니와 딸 티코스터를 샀다.
가격이 꽤 비쌌던 것 같기는 한데 질도 상당히 좋다.
다만 나의 책상 서랍 어딘가에 박혀 있을 뿐
미술관 구경을 마치고
회색 계열 건축물만의 현대적이면서도 시크한 외관
날씨 화창한 날 저기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꽤 있음
나도 조금 쉬어간다.
해외여행하면서 구글맵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홀로 여행할 수 있었을까 싶다.
가고싶은 목적지 저장해놓고 경로 탐색하면 걸어서 또는 대중교통 이용해서 갈 수 있도록 안내가 정말 잘 되어있음
어느 정도냐면 구글맵만 있으면 전세계 어디든 여행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 ㅎ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공공임대 건축물로 내부 관람은 불가하다.
바닥을 보면 울퉁불퉁, 이것도 건축의 일부겠지요?
왼쪽: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오른쪽: 쿤스트하우스빈
쿤스트하우스빈 내부는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외관을 보고 느낀건 뭔가 입체적이지 않은 가우디의 느낌이랄까?
외관 뿐 아니라 내부 계단 등 건축이 독특하다.
기념품샵도 있고 무엇보다 기둥, 바닥, 자동차 등 내가 관심 갖고자 하는 것들을 보다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던 여행
6. 자연을 사랑한 비엔나 예술가, 훈데르트 바서
훈데르트 바서가 설계한 '훈데르트 바서의 집'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안토니오 가우디가 있다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훈데르트 바서가 있다.
이 두 거장들의 공통점은 '자연'이다. 훈데르트 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만큼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지만 비엔나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훈데르트 바서의 예술정신은 자연주의로 요약된다. 그는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고, 직선이 아닌 곡선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곡선의 유려함을 사랑했던 가우디와 닮아 있다.
그런 훈데르트 바서가 남긴 건축물을 느껴보는 것이 비엔나 여행이 주는 하나의 묘미일 것이다. 비엔나와 비엔나 인근에는 훈데르트 바서가 남긴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칼렌베르크 언덕이나 서부역(West Bahnhof) 근처 이케아(IKEA) 옥상처럼 높은 곳에서 비엔나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가면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슈피텔나우 쓰레기 소각장(소각장 굴뚝 가운데에 동그란 구가 있어 나는 늘 그 굴뚝을 여의봉이라고 불렀다), 3구에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와 그 앞에 기념품 가게, 훈데르트 바서의 작품이 전시된 쿤스트하우스 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아주 유명한 블루마우라는 온천마을도 그가 설계한 작품이다. 블루마우 가는 길에 휴게소에 맥도널드 가게도 있다고 한다. 실제 가서 보지는 못했다.
오늘은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는 비엔나 3구에 위치하고 있고, 시내 중심에서 가까운 편이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는 비엔나 시에서 의뢰받아 그가 설계한 공공 아파트다. 기둥은 훈데르트 바서가 특징적으로 사용한 원색의 알록달록한 타일들로 장식돼 있고, 아파트에서 직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파트 자체가 나무와 공존하고 있는데, 사람과 자연이 그대로 어우러져 함께 살고 있는 것 같다.
전형적인 비엔나의 정적이면서 직선이며 파스텔톤의 질서 정연한 건물들과 대조되면서 자신만의 강한 개성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아파트는 공공아파트라서 누군가 새로 입주하고 싶다면 적어도 백 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클까, 아니면 예술작품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만족감이 클까.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아파트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음에 유의하자.
아파트 거주민들이 드나드는 문에 독일어와 영어로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 집은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간과 자연이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집이다. 오늘날 무엇보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신들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열망을 깨닫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가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아파트 거주민들의 생활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의 말도 함께 붙어 있다.
훈데르트 바서 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원색의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타일을 붙인 기둥. 직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파트 앞 길에는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인 분수가 보는 이의 더위를 잠시 식혀주는 것 같다.
아파트 초입에 있는 스트로크 빵집 앞 빨간 전화부스가 눈에 띈다.
여기서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를 가는 분들을 위한 팁. 아파트 자체는 감상하는 것 외에 딱히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맞은편 기념품 가게는 여행객들에게 또 다른 재미와 스토리를 제공한다.
맞은편 기념품 가게는 예전에 타이어 공장으로 쓰였던 곳인데, 훈데르트 바서가 자신의 예술 혼을 담아 개조한 곳이라 그 자체로 바서의 건축물을 내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 특히 2층에 있는 가게에서는 인근 쿤스트 하우스에서 눈으로 본 예술작품들을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다. 쿤스트하우스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곱씹어 보려면 이 가게 안 그림이나 엽서들이 큰 도움이 된다.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를 가게 되면 꼭 기념품 가게에 들러 여유 있게 바서의 예술가 정신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운데에는 간단한 음식을 파는 바도 있으니 출출함을 달래기도 좋다.
출처 - 자연을 사랑한 비엔나 예술가, 훈데르트 바서 (brunch.co.kr)
7.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한 건물들
1928년 빈에서 태어난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어릴 적부터 색채와 형태에 두각을 나타내며 남다른 예술성을 보였다. 그는 예술 학교에 입학하지만 하루 만에 자퇴하였는데, 대신에 그가 머물던 모든 곳이 그의 작업실이 되었고, 한 작품에 수십 가지의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했다고 한다. 새 재료가 아니라 쓰다 버린 포장지, 천 조각, 나무판 등을 이젤로 삼아 펼쳐 놓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훈데르트바서는 훗날 화가이자 건축가, 환경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그는 현대의 메말라 보이는 건축물들이 싫어 건축가의 길에 발을 내딛게 된다. 친환경 재료를 이용해서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컬러풀한 건축물을 선보였고,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비교되고는 했다. 그의 컬러풀하고 자연주의적인 건축물은 빈뿐만 아니라 그라츠, 슈타이어마르크 주 등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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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
1983년 빈 시의회의 의뢰로 공공 주택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하면서 ‘건축은 네모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라는 신념을 갖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알록달록 화려한 컬러 때문에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동화 속에서 상상했던 집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도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는 없다. 단,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놀이터는 들어가 볼 수 있으니 방해가 되지 않도록 둘러본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맞은편에 있는 기념품 가게 칼케 빌리지(Kalke Village)에서 훈데르트바서의 영감을 느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재지 : Kegelgasse 34-38, 1030 Wien
좌표 : 위도 48.207337(48° 12′ 26.41″ N) / 경도 16.394294(16° 23′ 39.46″ E)
위치
U-Bahn : U1 · U4호선 Schwedenplatz 역에서 하차, Prater Hauptallee행 1번 트램을 갈아타고 Radetzkyplatz에서 하차, 도보 5분
쿤스트 하우스 빈(Kunst Haus Wien)
훈데르트바서가 설계한 오스트리아 최초의 사설 미술관으로 현재는 미술관과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밋밋하고 개성 없는 건축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한 쿤스트 하우스 빈의 디자인은 나란히 서 있는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눈에 확 들어온다.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면서 건축에 대한 고정 관념을 완전히 깨 버린 훈데르트바서는 ‘건축 치료사’라는 또 하나의 별칭을 얻게 되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소재지 : Untere Weissgerberstraße 13, 1030 Wien(전화 : 1-712-04-91)
개관 시간 : 10:00~19:00
가격
성인 : €10 / 학생(11~18세 이하) : €3
콤비 티켓(미술관+기획 전시) : 성인 €12
위치
U-Bahn : U1 · U4호선 Schwedenplatz 역에서 하차, Prater Hauptallee행 1번 트램을 갈아타고 Radetzkyplatz 하차, 도보 10분
사이트 : www.kunsthauswien.com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Müllverbrennungsanlage Spittelau)
이곳은 멀리서 보면 마치 놀이공원처럼 보이는데,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적 신념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외관뿐 아니라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기능면에서도 공해 물질이 전혀 배출되지 않게 설계되어 훈데르트 바서의 환경 사랑까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슈피텔라우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쿤스트 하우스 빈이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와 달리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소재지 : Spittelauer Lände 45, 1090 Wien
좌표 : 위도 48.233209(48° 13′ 59.55″ N) / 경도 16.360465(16° 21′ 37.67″ E)
위치
U-Bahn : U4 · U6호선 Spittelau 역에서 하차
S-Bahn : S40호선 Spittelau 역에서 하차
트램 D번 Spittelau 역에서 하차
참고
・ ⓘ 본 콘텐츠는 2015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지 사정에 의해 정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출처 - 천재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독특한 건물들 - Daum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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