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실 ■/스크랩 - 세계의 건축가

세계의 건축가 -089. 안토니오 산텔리아 Antonio Sant'Elia

 

1.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

  • 출생  1888. 4. 30, 이탈리아 코모
    사망  1916. 10. 10, 몬팔코네 근처
    국적  이탈리아

미래 도시에 대한 환상적인 그림으로 유명하다. 1912년에 밀라노에서 건축활동을 시작, 미래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12~14년에 미래 도시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한 그림과 계획안을 많이 만들었다. 1914년 5월 '시타 누오바'(새로운 도시)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그림들이 그가 회원으로 있던 '누오베 텐덴체'(신경향) 그룹 전시회에서 발표되었다.

 

비록 그의 개념은 미래주의적인 것이었으나 몇몇 사람은 그가 실제로 이 그룹 회원으로 활동했는지 의심하고 있다. 본래 그는 사회주의자로서, 과거의 건축양식을 완전히 타파해야 하며 도시설계에 관한 역사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남아 있는 수백 점에 이르는 그의 그림은 마천루와 다층 구조의 교통 순환체계를 갖춘, 고도로 기계화·산업화한 도시의 다양한 면모와 전망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코모 근처에 있는 빌라 올모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얼마 뒤 군대에 입대해 몬팔코네 전투에서 죽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출처

 

 

 

 

 

 

 

 

 

 

2.  안토니오 산텔리아

최근 수정 시각: 2023-09-06 01:09:52
 

1. 개요

1. 개요

Antonio Sant'Elia (1888년 4월 30일 ~ 1916년 10월 10일)
이탈리아의 미래파 건축가.

코모 출생. 1912년 건축사무소를 차리고 이듬해까지 미래도시의 건축구상을 많이 발표하였다.

여기서 미래주의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간다면 '신시대는 그에 적합한 생활양식과 표현을 필요로 한다' 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과거를 청산하고 속도와 다이나믹한 힘이 용솟음치는 기계문명 감각을 강하게 표현했던 예술운동이다. 산텔리아 역시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건축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업해서 발표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1910년대에 이미 현대의 공업도시를 예측한 수준이었다. 또는 예측이라기보다는 산텔리아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도시가 그것을 따라 발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는 마천루와 다층 구조의 교통 순환체계 등 고도로 기계화되고 산업화한 도시의 다양한 전망을 묘사했다. 르 코르뷔지에와도 비슷한데, 심지어 자신의 고향땅에서는 이러한 구상이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까지 유사하다.

그가 남긴 수백 점의 드로잉과 설계안은 이후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지만 산텔리아 자신은 실제로 건물을 거의 짓지 못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1916년 28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사망 이유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제 8차 이손초 전투에서 전사. 기계문명의 다이나믹한 힘과 속도를 중요시한 미래파는 모험과 투쟁, 파괴, 그리고 전쟁까지도 찬양했기에 대부분 자의로 입대하여 사망했다.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 간 사나이.
 
출처 - 나무위키
 
 
 
 
 
 
 
 
 
 

 

 

3.  서양 근대건축사 산책(7) - 안토니오 산텔리아가 꿈꾼 미래파 신도시 <라 치타 누오바>(1914)

  • 기자명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 
  •  입력 2012.12.03 10:17
  •  수정 2015.06.09 10:30
 
▲ 안토니오 산텔리아, <라 치타 누오바>, 1914: 다층의 도시구조와 결합된 고층건물 부분 상세도
 
 

“우리는 우리의 현대 도시를 발명하고 다시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그것은 거대하고 떠들썩한 조선소와 같은데, 능동적이고 유동적이며, 모든 곳이 다이내믹하다. 그리고 현대 건축물은 커다란 기계와 같다.” (안토니오 산텔리아, 「메시지」, 1914.5)

 

유럽의 근대주의 건축운동을 돌이켜 보건데, 1914년은 무척 중요한 시점으로 간주된다. 그 까닭의 근본 배경에는 일차세계대전의 발발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이 있었다. 청년 샤를 에듀아르 쟌네레(후일의 르 코르뷔제)는 전쟁 후의 신속한 복구사업을 위해 도미노 시스템(1914~15)을 창안했고, 역사가 니콜라우스 펩스너는 그때까지 전개되던 건축운동을 일단락 짓기 위해 그 흐름의 완성을 발터 그로피우스의 작품, 특히 독일공작연맹 전시관(1914)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해에는 근대건축운동 가운데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중요한 발자국이 있었으니, 이탈리아의 젊은이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 1888~1916)가 ‘신경향(Nuove Tendenze)’ 그룹전에 출품한 일련의 미래주의 신도시 스케치 <라 치타 누오바(La Città Nuova)>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전시회 카탈로그에는 그 스케치의 소개말 격인 「메시지(Messaggio)」(1914.5)라는 글도 출판된다.

 

산텔리아의 스케치와 글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한창이던 미래주의 예술운동의 한 부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미래주의(Le Futurisme)’는 시인이었던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1944)에게서 시작되어, 미술과 조각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로 확산됐고, 결국 건축에까지 이른 것이다.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Le Figaro)』에 출판한 「미래주의선언(Manifeste du Futurisme)」(1909)에서 마리네티는 과거의 전통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집산적 역동성과 그 힘의 분출을 예찬한다. 그리고 무정부주의적 어조로 혁명적 변화와 속도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그가 자동차와 비행기 등 당대의 과학기술이 낳은 최신의 기계에 매료된 점은 곧 등장할 코르뷔제를 예견하기도 한다. 잇따른 미래파 화가나 조각가의 선언문 역시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혁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움베르토 보쵸니(Umberto Boccioni, 1882~1916)의 작품과 글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나 입체파에 영향을 받은 콜라주 기법이 도입된 점도 특징적이다.

 

▲ 안토니오 산텔리아, <라 치타 누오바>, 1914: 중앙역 조감도 - 1912년도의 <비행장> 계획안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산텔리아의 <라 치타 누오바>로 돌아가 보자. 우선 이 도면들에는 구체적인 콘텍스트나 전체를 아우르는 평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여기에서 우리는 다층의 도시조직을 인식할 수 있고 발전소, 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정거장, 셋백(set-back)된 고층건물 등을 볼 수 있다. 수직과 수평의 동선을 담당하는 엘리베이터 타워와 브리지, 콘크리트 블록과 철제 트러스의 대비, 그리고 이 같은 구성에 힘과 속도를 부여하는 도면상의 날카로운 직선의 반복 역시 전통에서 탈피한 새로운 도시를 인상 지운다. 그리고 자연의 요소를 완전히 소거함으로써 철저한 기계주의의 사회를 상정했다. 하지만 산텔리아의 스케치에는 (비교적 최근이긴 하나) 과거로부터의 몇몇 참조점도 찾을 수 있는데, 건물의 커다란 매스는 비엔나 제체션, 특히 ‘바그너파(Wagnerschule)’ 디자인을 단순화시킨 형태로 볼 수 있고, 19세기의 창고나 다리 구조물과도 연관되며, 다층의 도시구조와 거대 메커니즘의 경우는 당시 고밀도시로 성장 중이던 뉴욕의 상황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 「미래주의선언」, 『르 피가로』,1909.2.20.
 
 

그러나 이런 점보다 우리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산텔리아의 글 「메시지」와 그림 <라 치타 누오바>가 상호간에 꽤 모순적이라는 사실이다. 글은 가벼움과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그림은 거대한 매스와 기념비적 구조물이 두드러진다. 글은 메트로폴리스의 역동성과 군중의 힘을 발산하지만, 그림은 훨씬 정적일 뿐만 아니라 군중이 아예 화폭에서 배제되어 있다. (오히려 이 도시는 현장으로부터 초연한 관찰자에 의해 조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산텔리아가 어느 시점에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관계 맺었는지에 대한 논란을 낳았으며, 자신의 건축(드로잉) 경향을 상당 부분 확립한 상태에서 미래주의에 접속했음을 암시한다. 「메시지」에 ‘Futurist’라는 단어가 단 한 차례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약 2개월 후 마리네티의 도움으로 수정 보강된 「미래주의건축선언(L’ARCHITETTURA FUTURISTA: Manifesto)」(1914.7)에는 이 말이 여러 곳에 삽입되었고 지속적인 변화와 역동성 및 자유에 대한 미래주의적 이상이 더욱 강력히 개진되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늦어도 1914년 여름 이전에 산텔리아가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는 사실이며, 이를 통해 ‘건축의 미래’를 앞당기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세계에서 구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른 미래파 동료들과 함께 친파시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그는 1915년 조국 이탈리아를 위해 참전했고, 이듬해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실제의 프로젝트가 주어졌다면 과연 어떠한 작품이 가능했을까? 자못 궁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꿈’은 온전한 성취로서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저변의 사회적 인식구조에 작은 균열을 줌으로써 더 큰 가치를 획득하는 법. 그의 미래주의 건축과 도시는 현실세계의 여전한 보수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진행 중이던 근대건축운동에도 비옥한 자양분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그의 아이디어는 당대의 토니 가르니에와 르 코르뷔제의 도시계획안, 그리고 1960년을 전후한 메타볼리스트와 아키그램의 공상과학적 도시계획안과도 비교해봄직하다.

 

 김현섭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 
 

출처 - 서양 근대건축사 산책(7) - 안토니오 산텔리아가 꿈꾼 미래파 신도시 (1914) < 근대건축 < 연재 < 기획연재 < 기사본문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ncnews.kr)

 

 

 

 

 

 

 

 

4.  <지식카페>層구분 무너뜨린 ‘마술계단’… 상업공간의 신세계 열다

  • 문화일보
  • 입력 2019-01-23 10:24

건물 전체를 연결하며 공간의 주역이 된 런던 로이즈의 에스컬레이터. @Lee Pelling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⑫ ‘공간의 연속성’ 구현하는 에스컬레이터

움직이는 레일에 몸싣는 방식
‘수직이동’엘리베이터와 달리
주변환경 유연하게 체험 가능

런던 백화점에 처음으로 설치
매장 전체 한눈에 볼수있게 돼
쇼핑 공간 폭발적으로 늘어나
미술관 ·철도역 등 적용 확대

서울 센트럴시티 근처에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두세 걸음만 걸으면 문도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바닥과 바닥 사이를 움직이며 운송하는 계단인 에스컬레이터는 기능적으로는 교통 시설이다. 따라서 이 작은 카페는 교통 시설에 직접 이어져 있다. 20세기 초 근대 건축가들은 공간의 연속성을 얻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이러한 일상의 작은 풍경 속에서도 에스컬레이터가 만들어 주는 공간의 연속성을 얼마든지 경험하며 살게 됐다.

에스컬레이터는 가만히 서 있어도 건물의 층과 층을 이동하는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여서 비스듬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기능이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에 에스컬레이터는 ‘경사 승강기’라 불렸으며, ‘이동계단’ ‘마술계단’이라고도 불렸다. 이런 기계에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고 이름 붙인 것은 1900년이었다. 이 이름은 라틴어 ‘e’(~로부터)와 ‘scala’(사다리)에 ‘-or’를 붙여 만든 조어인데, 직역하면 ‘~로부터 사다리처럼 가로지르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자동계단’(自動階段)이다. 그러나 본래 이름에는 자동이라는 뜻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용어가 오티스사(社)의 등록상품명이 됐고, 이제는 보통명사가 됐다. 확대하다, 증가하다는 ‘escalate’라는 동사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온 단어다.

엘리베이터 1대로 1시간에 약 400~500명을 운송한다. 그러나 계속 움직이며 사람을 태우는 에스컬레이터 1대는 1시간에 엘리베이터의 약 15~20배인 6000~9000명을 수송할 수 있다. 그래서 계산상으로는 전 세계에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4일간 움직이면 세계 인구 전체를 이동시킬 수 있다. 이런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이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기계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크고 비싼 기계의 하나다. 에스컬레이터를 높이 5m에 설치하는 데 6000만 원 정도 소요되므로,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를 하루 몇 개 이용하기만 해도 우리는 엄청난 고가의 기계를 타고 다니는 셈이다.

엘리베이터는 움직이는 상자를 타고 내리는 것이지만, 에스컬레이터는 계속 움직이는 레일 위에 몸을 싣는 방식이다. 수직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는 층과 층을 분절하지만, 에스컬레이터는 흐름이 정체하지 않게 끊겨 있는 층을 연속적으로 이어준다. 게다가 오르내리면서 주변의 공간을 유연하게 체험하게 해 준다. 엘리베이터가 타고 내리는 지점만 중요한 지하철과 같다면, 에스컬레이터는 버스를 타고 길의 풍경을 연속해 바라보는 것과 같다.

장대한 포물선 곡면의 공간을 움직이는 카나리 워프 역 에스컬레이터. @김광현


에스컬레이터처럼 생겼지만, 수평면 또는 경사면을 천천히 움직이며 사람을 이동시키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데 이를 ‘무빙워크’라고 한다. 영어로는 moving walkway, moving sidewalk인데 우리말로는 자동보도, 이동보도, 자동길이라고 한다. 그래도 넓은 의미에서는 에스컬레이터의 한 종류다. 무빙워크가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는 한쪽에는 의자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사람이 걸어 다녔다. 1900년 파리박람회에는 1시간에 10㎞ 가는 무빙워크가 설치됐는데 이제는 지하철역이나 공항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비스듬한 무빙워크는 카트를 많이 사용하는 대형 마트에 주로 설치된다.

1898년 영국 최초로 런던 해로즈(London’s Harrods) 백화점에 ‘움직이는 계단’이 설치됐다. 1891년에 발명한 에스컬레이터가 불과 7년 후에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백화점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과 같이 계단이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고 224개의 가죽 조각을 이어 만든 연속 벨트를 사용한 것이어서, 신문은 이를 “거의 느낄 수 없는 동력으로 올라가는 속세에 내려진 주단”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직원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움직이는 계단’을 다 올라온 손님들에게 후(嗅)자극제와 코냑 한 잔을 주어 정신이 들게 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층 건물을 만들었다면, 에스컬레이터는 백화점을 만들었고 에스컬레이터 없이는 백화점이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는 모두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상점이었던 백화점에 설치됐다. 익명의 소비자들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게 고안된 백화점 한가운데 에스컬레이터를 놓아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매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줬다. 이로써 위아래의 바닥이 균일하게 통합됐고 가고 싶은 바닥을 선택할 수 있게 됐으며, 이에 따라 상품이 층별로 배열됐다.

근대에서 주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적 요건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사람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였다. 그러나 오래된 계단을 에스컬레이터로 대체하고 쇼핑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제시한 것은 건축가가 아닌 오티스라는 회사였다. 사람들은 건축가가 천창에서 빛이 비치도록 열심히 구상한 화려한 대계단이 아닌 에스컬레이터라는 기계적인 이동수단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건축가가 모든 것을 발명하고 제안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더구나 이 기계는 고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동시켜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 줬다.

그래서 유명 에스컬레이터 제조사는 이렇게 광고한다. “당신이 설계한 유명 쇼핑센터나 백화점의 주말을 상상해 보세요. 수천 명의 고객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그들이 쇼핑할 시간은 더 많아집니다. 손님과 상품이 잘 움직인다면 당신 사업도 잘 움직이는 겁니다.” 이렇게 에스컬레이터는 상업공간과 같은 말이 됐다.

근대 건축은 내부를 외부와 격리해 더 깊고 더 많은 층을 인공으로 조절하는 오늘날의 건축공간을 만들었다. 그 주요 요인은 에스컬레이터, 에어컨, 인공조명이었다. 이것들은 근대 엘리트주의적 건축가들이 무시했던 상업공간을 어마어마하게 확장해 줬으며, 이것을 하나의 연속체로 경험하게 해 줬다. 이런 환경은 쇼핑센터만이 아니라 공항, 미술관, 철도역이나 지하철 등 많은 빌딩 타입으로 확대됐다.

1910년대 이전에는 근대 도시가 어떠해야 하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이탈리아의 미래파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는 불과 26세에 ‘새로운 도시’(Citta Nuova·1914)라는 프로젝트에서 도시를 몇 개의 층으로 나뉜 교통망, 비행장이나 철도역, 통신탑 등으로 표현했다. 당시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건축과 도시 공간을 교통, 정보, 사람의 흐름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2년 후인 28세에 전사했다). 그중 한 계획안에서는 비행기 활주로에 내린 승객이 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단숨에 내려와 가장 아래에 있는 철도역의 플랫폼에 도달하고 여기에서 다시 군중이 돼 도시 각지로 흩어져 갔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상상은 현실의 도시 속에 들어와 있다.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런던의 지하철 주빌리 선의 카나리 워프 역(Canary Wharf station)은 마치 종교 공간과 같다. 거대한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은 장대한 포물선 곡면을 한 캐노피의 유리 돔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감싸여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듯이 움직인다. 지하철 입구에 놓인 이 에스컬레이터 공간은 크기와 분위기가 바실리카 대성당이 세속과 만나는 교차점처럼 보인다. 지하철역에서 타고 다니는 사람과 에스컬레이터라는 기계가 이렇게 장대하게 결합될 수 있다.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설계한 세계 최대의 보험시장인 런던 로이즈(Lloyd’s of London) 본사 건물은 오피스 공간이 높고 넓은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있다. 그중 지하 2층에서 지상 6층까지 보험을 계약하는 낮은 층은 에스컬레이터가 오피스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노란색의 구동하는 부분을 투명하게 노출하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노출된 서비스 정신, 바쁘게 일하는 공간 속의 역동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은 광대한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층을 달리하며 바라볼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건물 전체를 연결하는 공간의 주역이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는 아예 건물 밖에 튜브로 덮인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천천히 타고 오르며 가고 싶은 층에서 내린다. 건물 안에 계단이나 설비 샤프트를 두지 않고 내부 공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1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700만 명에게 파리라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게 했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자기 몸을 바로 밑에 있는 땅과 관련을 맺으며 도시에 펼쳐지는 새로운 조망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는 길을 걷거나 차를 타고 느끼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체험이다. 그래서 퐁피두센터의 에스컬레이터는 파리의 풍경과 몸의 관계를 강력하게 맺어주는 ‘움직이는 카메라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에스컬레이터는 오랜 도시의 풍경도 살려낸다. 중세의 도시 톨레도(Toledo)에는 주차난을 해결하려고 언덕 밑에 마련한 주차장으로부터 여행객을 실어 올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언덕의 측면에 숨겨진 채 설치됐다. 에스컬레이터가 지형에 어울리게 높이 36m인 곳을 6번 꺾이며 올라온다. 이 덕분에 도시의 풍경을 해치기는커녕 퐁피두센터의 에스컬레이터처럼 가로막힘 없이 광활한 중세 도시의 경관을 연속적으로 체험하게 해 준다.

에스컬레이터는 이처럼 경사가 심한 지대에 유효한 교통 수단이 되는데, 이것을 가장 잘 적용한 곳은 역시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Levels Escalator)다. 800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 중 하나다. 계속 이어진 23개의 에스컬레이터가 고저차 135m가 되는 경사지에 사는 주민의 발이 되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고 이 시간이 지나면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그래서 20여 분 타고 다니는 이 에스컬레이터를 법적으로 교통 기관으로 보고 있다. 부산광역시도 이를 참고로 거동이 불편한 고지대 주민들을 위해 가파른 고층 계단에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에스컬레이터는 작고 약한 일상의 생활공간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비스듬히 이어지는 경사로는 내부와 외부를 잇는 아주 효과적인 수법이다. 근대 이전에는 당연히 건물 내부는 층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가 건물 안에 들어오자 공간은 원활하게 연속하게 됐다. 끊긴 영역이 연속돼 환경의 크기를 확장하며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정치철학자이자 건축가였던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수평은 전원에서 펼쳐지는 농업사회를 나타내고, 수직은 상하로 이동하는 공업사회에 대응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정보사회는 대각선으로 이동하는 세계가 된다고 했다. 비스듬히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의 이동 속에 이런 깊은 의미가 숨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미래 사회의 새로운 이동공간을 상상해 보자. (문화일보 1월2일자 27면 11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출처 - <지식카페>層구분 무너뜨린 ‘마술계단’… 상업공간의 신세계 열다 :: 문화일보 munhwa

 

 

 

 

 

 

 

 

 

5.  마천루의 상상은 계속된다

한겨레입력 2022. 6. 6. 18:05수정 2022. 6. 6. 23:35
 
연재 | 미술교실에선 무슨 일이?
 

 

 

주인공 에드워드 말론은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엄청난 모험을 한 유명한 남자가 아니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는다. 신문기자였던 그는 편집장에게 큰 사건을 맡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괴짜로 유명한 챌린저 교수를 취재하게 된다. 챌린저는 아마존 밀림 어딘가에 공룡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런던의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었다. 급기야 챌린저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원정대가 꾸려지고 말론도 일원으로 가담한다. 원정대는 천신만고 끝에 브론토사우루스를 런던으로 옮기는 데 성공하나, 포박을 끊은 공룡은 런던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결국, 런던 브리지를 건너다 교각이 붕괴되며 공룡은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넌 도일이 1912년에 발표한 <잃어버린 세계>의 줄거리이다. 1925년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졌다. 최초의 특수효과인 스톱모션 촬영으로 공룡들의 움직임과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했다. 당시엔 어마어마한 시각적 충격이었고 영화 역사상 최초의 공룡괴수영화로 기념비적 위업을 세웠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33년 영화 <킹콩>이 개봉한다. <잃어버린 세계>의 미국식 리메이크 판이다. 이야기의 주무대는 당연히 런던에서 뉴욕으로 옮겨졌고, 주인공도 공룡에서 고릴라를 닮은 거대 괴수로 변경되었다. 이야기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고 <잃어버린 세계>에서 사용된 각종 공룡 모형과 스톱모션 촬영 기술이 재활용되었다. 차이점이라면 백인 여성과 괴수의 러브라인이 추가된 것과, 괴수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사랑하는 앤을 손에 쥐고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기어오르는 킹콩의 모습은, 다리가 무너지며 템스강 속으로 사라지는 공룡의 마지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여 경외롭기까지 하였다. 빌딩 꼭대기에서 복엽 전투기의 공격을 받은 킹콩은 앤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허공으로 몸을 던져 381m 아래로 떨어진다. 죽은 킹콩 옆에서 경찰이 물었다. “비행기가 킹콩을 죽인 것인가?” 옆에 있던 남자 주인공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미녀가 야수를 죽인 것이다.”

 

성공적인 결말이었다. 런던이 파괴되는 장면 묘사에 급급하여 후반부 이야기가 허술했던 <잃어버린 세계>의 단점을 괴수와 미녀의 사랑을 첨가하여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드라마로 완성시킨 것이다. 이들의 로맨스와 함께 마지막 무대로 등장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미래적이며 새로운 유토피아 뉴욕을 전세계에 충격적으로 각인시킨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거대 괴수조차 하찮은 미물로 만든 빌딩의 높이는 안테나까지 포함하여 지상 443m, 102층의 말 그대로 하늘 끝에 닿을 듯한 마천루였다.

 

1871년에 시카고 대화재(the Great Chicago fire)가 있었다. 약 300명이 사망하고 1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시카고 도심을 완전히 파괴한 대재앙이었다. 그러나 재건을 통해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큰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였고 최초의 마천루는 이곳에서 비롯된다. 1885년 윌리엄 르바론 제니는 지상 55m 높이의 홈인슈어런스 빌딩을 건축한다. 6층 이상의 건물은 엄두를 못 냈던 당시에 그는 사람 뼈대를 응용하여 돌과 금속과 철근 구조로 된 고층 건물을 세운 것이다. 현대식 승강기를 개발한 엘리샤오티스의 협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후, 마천루 건설은 뉴욕으로 확산된다. 1880년에서 1890년대까지 1차 붐이 일어나고 1900년에서 1910년대까지 2차 붐을 이루면서 1920년대 말에는 2479개의 마천루가 건설된다. 하여 20년대는 ‘미국적 성취의 시대’라 명명되었고 비로소 유럽식 건축을 벗어나 미국 고유의 마천루 양식이 정립되기에 이른다. 즐비한 마천루가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은 신세계 미국의 얼굴이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뉴욕에서 미래의 희망찬 상상력을 발견했고, 1914년에 ‘미래주의 건축 선언’을 하며 ‘새로운 도시’(Citta Nuova)를 위한 건물 설계도를 발표한다. 그가 상상한 미래 도시는 외부로 노출된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기반으로 다층 복합 건물이 하나로 통합되는 거대 도시였다. 그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믿었다. 그것은 낙후된 조국을 뉴욕과 같이 혁명적이고 미래적인 시공간으로 순간이동시켜줄 것 같았고, 그것은 르네상스의 찬란한 과거와 결별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의 공통된 열망이었다.

그러나 산텔리아는 자신의 상상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전사한다. 지금의 대형 쇼핑몰이나 기차역, 공항 등의 거대 복합 건물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묘사된 타이렐 사의 건물도 그의 건축 설계도를 참고했다.

 

1924년에 한 독일인이 뉴욕에 도착한다. 그는 빈 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다 영화 제작으로 전향한 이였다. 그는 입국 수속이 늦어지며 하룻밤 동안 배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의 눈앞으로 뉴욕의 마천루가 끝없이 펼쳐졌다. 그는 넋을 잃고 응시하다 이런 기록을 남긴다.

“건물들은 번쩍번쩍 빛나고 매우 가벼운, 곧게 선 휘장처럼 보였다. 눈부시고, 정신을 빼앗고, 최면을 걸려고 깜깜한 하늘에 떠 있는, 화려한 배경막처럼 보였다. 뉴욕의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축소 모형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의 영화에 2026년의 미래 도시를 묘사하는 데 활용한다. 디스토피아 에스에프(SF)영화의 시초이자 원형으로 영화 역사상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메트로폴리스>(1927)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영화는 독일인 프리츠 랑이 뉴욕에서 받은 충격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놓은 것이다. 왠지 모를 불안한 존재로서의 마천루, 그것은 희망을 품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였다. 프리츠 랑은 성경의 바벨탑, 예수와 마리아, 노르웨이 신화에 등장하는 사후세계의 여왕 헬(Hel)의 상징을 바탕으로 극소수 귀족과 다수 노동자들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100년 후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불길한 예언이었다.

 

<메트로폴리스>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오마주되거나 리메이크된다. 안드로이드 마리아는 <스타워즈>의 C3PO의 디자인으로,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이 1984년에 발표한 ‘라디오 가 가’의 뮤직비디오로, 1949년에는 ‘망가’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가 리메이크하고 2001년에는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와 <은하철도 999>의 린 타로가 극장판 풀프레임 애니메이션으로 부활시켰다.

 

이처럼 뉴욕의 마천루는 산텔리아와 프리츠 랑에게 시각적 영감으로 미래를 상상하게 하였으나 두 사람의 예감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지상 123층, 555m의 높이다. 우리나라에서 100층을 넘은 최초의 빌딩이며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마천루이다. 오래전부터 미래주의자처럼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있어, 어느 날 이 거대한 빌딩 속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들뜬 기대감인지 예민한 불안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나는 다만 압도될 뿐이었다. 그것이 산텔리아를 좇는 것인지, 프리츠 랑을 좇는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그것은 분명 창작의 영감이기도 할 것이고 미술교육의 바람직한 도입부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교사로서 20여년의 시간을 보냈다. 부족한 교사였으나, 나름 미술교육의 지향은 있었다. 산텔리아와 프리츠 랑에서 보듯이, 첫눈에 보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관찰하여 시지각적 호기심을 일으키고, 그것이 지적 탐구로 이어져 그림이든 조각이든 영상이든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 창의적 발상이란 시각적 충격을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동안 아이들에게 잘 전달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글·그림 노길상 이우학교 미술교사

Copyright©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마천루의 상상은 계속된다 (daum.net)

 

 

 

 

 

 

 

 

 

6.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 빌딩, 송신탑, 건축물(500미터 이상)

by 채소아빠 2023. 2. 14.

 

세계 초고층 건물

 

도시의 인구 및 업무밀도가 높아지면서 스프롤 현상이 벌어지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고층건물에 대한 요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발전과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건물은 훨씬 높아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02년 마천루의 시초로 여겨지는 플랫아이언 빌딩(그 유명한 다리미 빌딩) 지어진다.

 

이후 마천루의 발전은 가속화된다. 안토니오 산텔리아가 1912년에 제시한 미래 마천루의 이미지는 이후 마천루의 모습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들어 아시아권과 중남미권에서도 국력 과시나 비싼 땅값을 커버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널리 퍼져가고 있다.

 

  • 본 항목은 현재까지 건설된 마천루 중 500m 이상의 건물의 목록이다.
  • 탑 계열 같은 건축물은 비교를 위해 순위만 빠진 상태에서 기제하며, 사람 상주가 불가능한 전파송출 전용 타워 등은 제외한다.

 

13위 타이베이 101 (508m)

 

대만 타이베이시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금융센터'. 개장일인 2004년 12월 31일에서 2010년 1월 3일까지 세계 최고층 마천루였다. 2010년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에 부르즈 할리파(828m)가 개장하면서 6년 만에 1위를 내주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더 나아가 대만 전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기도 하다.

 

 

12위 중국존(베이징 중신빌딩) (527.7m)

 

베이징시 차오양구 베이징상무중심구(CBD)에 위치한 마천루로 광저우 시틱 플라자등을 소유한 중앙국유기업 중신집단(中信集团) 산하 중 신화업투자가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Zun(尊)'이라는 마천루의 별칭은 고대 중국 청동기의 술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마천루의 높이는 528m에 달하며 이는 건너편 궈마오 3기(国贸三期)를 넘어서 베이징 최고 높이 건물로 됐다. 한편, 세계 최초로 서비스높이가 500m를 넘는 이층식 엘리베이터도 사용에 투입됐다. 현재 중국존 프로젝트는 세계 최고 기록 3개, 중국 최고 기록 12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완공된 후의 중국존 높이가 528m에 달할 것으로 알려지며, 중국존 프로젝트는 지하 구조를 전부 마무리한 뒤 사흘 반에 한 층씩 올라가는 속도로 빠르게 건설되고 있다. 완공된 후 지상 108층 지하 7층으로 구성되며, 중국존 프로젝트는 101부를 엘리베이터를 통해 상하가 서로 연결될 예정이다.

 

 

공동 11위 광저우 CTF 파이낸스 센터 (530m)

중국 광둥 성 광저우시 텐허구에 위치한 마천루.

소유주는 홍콩계 보석재벌인 저우다푸(周大福(주대복), 광동어 Chow Tai Fook, 약칭 CTF)이다. 주대복은 주생생(周生生), 육복(六福)과 더불어 홍콩 주얼리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그런 주대복이 인수한 이 건물은 주대복의 중국 광저우 지사 역할을 하게 된다. 더욱 재미있는 건, 주대복 그룹은 이미 톈진시에 같은 높이(530m)의 톈진 CTF 파이낸스 센터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이 건물은 2005년 서측에 위치한 광저우 국제금융센터(103층/437m)와 똑같은 건물로 지을 계획이었다. 즉 공원을 사이에 두고 쌍둥이 건물로 지을 계획이었던 셈.

그러나 어쩌다보니 서측 건물은 시행사를 선정하고 2005년에 착공하여 2009년에 완공시켰지만, 정작 동측 건물은 이래저래 시행사를 선정하지 못했고, 결국 저우다푸가 해당 사업을 인수하면서 계획을 대폭 바꾸게 된다.

이때부터 지금의 디자인으로 바꾸고, 지상 111층에 530m로 높이를 더 높여버린다.

 

공동 11위 텐진 CTF 파이낸스 센터 (530m)

 

CTF 톈진 타워(The CTF Tianjin Tower) 혹은 주대복 센터 톈진(Chow Tai Fook Centre Tianjin)은 중화인민공화국 톈진 시에 위치한 마천루이다. 지상 97층, 530m의 마천루로, 톈진 시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10위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탑 (540.1m)

소비에트 연방이 1967년에 모스크바에 세운 탑이다.

높이는 54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지위를 10년 동안 차지했었다. 그러나 1976년 캐나다의 CN 타워가 그 자리를 가져갔으며 현대에는 CN 타워 역시 가장 큰 건축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손꼽힌다. 사실 폴란드의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이 이 기록을 깼으나 말 그대로 라디오 탑이라 전망대 같은 곳도 없었고 무엇보다 바르샤바 라디오 탑이 사고로 무너지면서 오스탄키노 탑이 현재 유럽 최고 높이의 건축물로 통한다.

부피는 70,000m³, 무게는 5만 5천 톤이며 타워 내부에 사람이 유용가능한 면적은 15,000m²이다.

 

9위 미국 제1 세계무역센터 (541.3m)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이자 세계무역센터를 구성하는 건물 중 제1동.

9.11 테러 이전의 세계무역센터를 정식으로 계승하는 후속 건물이다. 약칭은 One WTC이다.

준공과 함께 윌리스 타워를 꺾고 미국을 넘어 서반구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등극했다. 높이는 541.3 m 층의 개수는 94개이며, 세계무역센터 부지에서 가장 높이 세워지는 건물이다. 정말 시원하게 깎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살짝 깎인 모서리를 응용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미국의 상징 마천루가 13년 뒤에 더 높은 높이로 재건되었다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8위 토론토 CN타워 (553.3m)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전파를 내보내기 위해 건립된 송출탑으로, 16개의 텔레비전과 FM 라디오 방송국에 전파를 내보낸다. 그러나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는 송출탑보다는 토론토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토론토에서 로케이션 하고 미국 대도시라 하는 영화에서는 CG로 광속삭제당하는 일도 겪는다.

전체적으로 긴 로켓 모양을 하고 있는 콘크리트 타워이자, 지지물이 없는 단독 타워이다. 전망대는 351m에 위치한 스카이 포드(Sky Pod)와 447m에 위치한 스페이스 데크(Space Deck)에 있다. 초속 5.6m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4대가 있고,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상에서 2/3 지점에 있는 스카이 포드까지 1분이면 오를 수 있다. 고속 엘리베이터 아래에는 바닥이 유리로 된 부분이 있어서 엘리베이터부터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 7층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스카이포드에서는 토론토 전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스카이포드의 맨 아래층에는 바닥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발아래 도시를 볼 수 있다. 스페이스 데크까지 올라가려면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데, 이곳의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이면 120㎞ 떨어진 나이아가라 폭포의 전망대인 스카일런 타워도 볼 수 있다. 반대로 스카이런 타워나 나이아가라 폴스 시티 쪽 고층 호텔등에서도 CN타워가 잘 보인다.

 

7위 서울 롯데월드 타워 (554.5m)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번지 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지상 123층, 높이 554.5m로 202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 OECD 중에서 가장 높은 건물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본 건물은 롯데그룹의 한국 본사로서 사용되는 중이다. 전체 면적은 420,309.54㎡(127,143평)에 달한다.

시그니엘 서울 호텔, 시그니엘 레지던스로도 유명하고 타워 부속 건물로 대형 쇼핑몰인 롯데월드몰이 있다.

누구든지 돈을 지불하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전망대가 있기 때문에 여의도 63빌딩과 남산서울타워의 명성을 이어받아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송파구 일대는 고층 아파트 정도만 줄비할 뿐 대체적으로 다른 마천루들이 없어서 롯데월드타워의 높이가 더욱 돋보인다. 31층에는 신분증만 제시하면 무료로 누구나 올라가서 커피를 마시며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인 SKY31도 마련되어 있다.

 

6위 중국 평안 파이낸스 센터 (599,1m)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마천루. 이 중 메인 타워는 지상 115층에 높이가 600m로, 선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다. 중국의 대기업인 핑안국제생명보험에서 건립하는 것이며, 그룹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메인 타워가 잘 알려져 있는데, 층수는 지상 115층 정도에 불과하자만, 높이가 무려 660 m (2165 ft)였으나 첨탑 부분의 높이를 대폭 줄이면서 600m (1965 ft)로 변경되었다. 첨탑을 제외한 지붕층 높이는 562.1 m (1844 ft)이다.

보조 타워는 지상 51층에 293m(961 ft)로 건립이 되어 있다.

 

5위 사우디아라비아 알베이트 타워 (601m)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복합 마천루이자 시계탑.. 메카의 카바 대성전 바로 옆에 있다. 높이는 601m(호텔 타워), 지상 120층으로서, 2018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3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2]이며 가장 넓은 건물이기도 하다. 사우디 정부 소유이다. 총 7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시계 바로 위에는 아랍식 서예로 알라라고 쓴 문자가 있으며, 시계탑 꼭대기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의 주 용도는 호텔인데, 메카에 찾아오는 순례객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함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메카의 현대화 작업(?)도 할 겸 해서... 호텔이 이렇게나 큰 이유는 당연히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넘치고 넘치기 때문, 이 호텔이 지어지기 전 메카의 모든 호텔과 숙박업체가 방이 매진되는 건 기본이었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숙실이 제일 많은 호텔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많아 메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신축 호텔이 건설되는 중이다.

메카에 있다는 특성상 사실상 무슬림을 제외하면 거의 갈 수가 없는(...) 마천루이기도 하다. 트리바고 등 호텔 예약 사이트에 등록이 되어있지만 이는 무슬림들을 위해 등록해 놓은 것으로 비무슬림도 예약은 할 순 있지만, 메카에 진입을 못하니 사실상 돈만 날리는 셈.

 

4위 중국 광저우타워 (604m)

 

중국 광저우시에 위치한 TV 송신탑이다. 높이는 604미터로 세계의 송신탑 중 도쿄 스카이트리 다음으로 높다.
또한 중국에서 상하이타워 다음으로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캔톤타워(Canton Tower)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 광둥성 광저우가 영어 명칭을 'Canton'으로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 Canton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광동성의 광둥어 발음에서 온 것.

 

3위 중국 상하이타워 (632m)

 

중국 상하이시 푸둥신구 루자쭈이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천루이며, 2022년 기준으로 중국에 있는 완공된 건축물 중 가장 높은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상하이 세계금융센터(492m)를 비롯해서 진마오 타워(421m)를 비롯한 400m급 메가 마천루가 솟아있으며, 근처에는 동방명주탑,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등이 건설된 금융 중심지이다.

2013년 8월 5일 상량식을 거행했으며 2014년 12월에 개장할 계획...이었으나 2015년 중반에 개장하기로 연기되었고, 결국 2016년 3월 17일에야 개장했다. 기사. 지상 128층에 높이가 632 m에 달해, 세계에서는 부르즈 할리파(828m), 도쿄 스카이트리(634m) 다음으로 높은 인공 건축물이 되었고, 2016년 1월 7일 초고층빌딩 및 도시주거 위원회에서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마천루로 공인되었다.

 

2위 도쿄 스카이트리 (634m)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에 있는 전파 송출용 탑이자 일본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도쿄의 랜드마크이다. 600m를 훌쩍 넘는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등록될 예정이었으나, 이미 빌딩이 탑의 높이를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부르즈 할리파로 인해 세계 최고의 구조물의 타이틀을 따는 데에는 실패해 결국 2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현존하는 전파송출용 탑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는 듯. 도부 철도 그룹 소유이다. 설계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조각가 스미카와 기이치가 감수, 건설은 대형건설사인 오바야시구미가 맡았다. 건설 비용은 약 650억 엔.

도쿄 타워 완공 이후 도쿄에 고층빌딩들이 많이 생겨나 기존의 도쿄 타워 높이로 해결할 수 없는 전파 음영지역이 생기기 시작했고, 2011년 7월 24일부터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을 중단하고 지상파 디지털 TV 방송을 전면 실시함에 따라 전파 수신 범위를 보완하기 위하여 더 높게 새로 건설된 탑이다. 350m 전망대 입장은 성인 기준 2,100엔, 450m 특별 전망대까지 입장 가능한 세트 티켓은 성인 기준 3,100엔을 내야 한다. 과거에는 350m 전망대에서 추가 구매를 하는 방식이었으나 인파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1층에서 한 번에 구매를 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1위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828m)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현재 사상 최고 높이의 건축물이다. 높이는 첨탑을 포함하면 829.8m(2,722ft), 정식 높이는 828m(2,717ft)다. 설계는 마천루 건축의 강자인 SOM(Skidmore, Owings and Merrill) 소속의 에이드리언 스미스다. 공사 중 이름은 부르즈 두바이였으나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을 맞고 아부다비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아부다비의 국왕이자 UAE 연방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예드 알나얀의 이름을 따서 부르즈 할리파로 바뀌었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 중 가장 높다. 이 건물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건물이 아닌 구조물이었던 바르샤바 라디오 송신철탑이 646m의 최고 높이를 기록했으나 이것을 부르즈 할리파가 추월했다.

 

 

출처 -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 빌딩, 송신탑, 건축물(500미터 이상) (tistory.com)

 

 

 

 

 

 

 

 

 

7.  [최만진의 도시탐구]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인 자동차 문화

입력 2020. 3. 25. 05:09
 

[서울신문]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전염병 사태로 외부와 봉쇄된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의 도시 정황은 눈을 의심케 한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거리나 광장이 활기를 잃어버리고 텅 빈 채로 나둥그러져 있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쥐 죽은 듯 조용한 광경을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1888∼1916)가 다시 살아나 봤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그는 현대 도시가 매우 역동적이며 떠들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1914년 발표한 ‘미래주의’ 건축선언은 이런 생각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사조는 기계주의와 공업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도시 경향이었다. 우선 건축물과 시설물엔 현대적 재료인 콘크리트와 철골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고층의 마천루가 가득히 들어선 도시를 꿈꿨고, 기계나 자동차의 힘과 속도를 나타내는 날카로운 직선적 요소를 강조했다. 수직동선인 엘리베이터와 컨베이어벨트 같은 수평동선의 브리지를 주된 디자인 요소로 추가하기도 했다.

 

도시 내 도로는 기계의 복합성을 상징하는 다층구조를 가지도록 했다. 지면 위는 물론이고 고가나 지하 구조로 된 입체형 고속 교통순환체계를 만들어 자동차 같은 동력기관이 쌩쌩 달리도록 계획했다. 이로써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고도화된 산업화 시대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는 기존에 이탈리아에 있었던 사람을 중시하는 전통적 인본주의 사고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었다. 거기에다 자연적 요소마저 배척해 순수한 인공적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 진보적인 아이디어여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개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해 짧은 생을 마감함으로써 현실에서 구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1920년대에 시작된 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건축은 산텔리아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전 세계의 도시들을 자동차와 콘크리트 중심으로 만들어 갔고, 지금까지 거대한 기계도시들을 수없이 양산했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대규모 재난 발생 등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다층화된 도시공간과 빼곡히 들어선 고층건물 내에서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증식돼 현대 과학 및 기술 문명을 비웃어 버렸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간단하게 콜라 한 병을 사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 도시구조 속에서 자동차의 속도만큼 감염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화를 가능하게 한 최고의 문명이기인 비행기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국경 너머로 바이러스를 실어 날라 전 세계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도시를 마냥 요란하게 쏘다니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자연을 도외시한 인공 지상주의를 사정없이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 도시, 국가가 때로는 천천히 다가가야 하고 필요한 만큼의 거리 두기를 해야 함을 코로나19는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밀리터리 인사이드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Copyright©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최만진의 도시탐구]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인 자동차 문화 (daum.net)

 

 

 

 

 

 

 

 

 


8.  불안함 속에서 미래를 그리는 사람, 건축가

2022.12.09. 10:30167 읽음

 

인류 최초의 건축가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거대한 신전을 설계했던 ‘임호테프(Imhotep)’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고대 이집트의 제사장인 동시에 건축가였다. 권력과 신앙의 도구로 건축을 이용했다. 이후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서양에서는 길드의 ‘장인’, 동양에서는 목수 중 우두머리인 ‘대목(大木)’이 건축가의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어떤 일을 했을까?

 


완벽하고 이상적인 건축을 그리다
시대와 문화권을 불문하고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미리 알고 대비하고 싶어 했고, 이런 열망은 건축 분야에도 나타났다. 어느 시대에나 미래 지향적인 건축 시도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중세의 ‘팔마노바(Palmanova)’와 18세기의 <뉴튼 기념관(Cénotaphe à Newton)>이 있다.
팔마노바는 도시의 모든 요소를 기하학적으로 패턴화해 완벽하고 합리적으로 구현한 도시의 모델로 지금까지 관광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고, 뉴튼 기념관은 기존 고전 양식을 줄이고 기하학에 집중해 그린 페이퍼 아키텍처로 100년 후 모더니즘의 씨앗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좌) 1593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세운 이탈리아 북동부의 별모양 도시 팔마노바. (우) 에티엔느루이 불레의 <뉴튼 기념관>.


불안과 기대 속 미래주의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는 진보적이고 역동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미래주의(Futurism) 사조가 출현했다. 건축 분야에서도 기계 문명의 역동성과 속도감을 새로운 진보적 도시의 모습으로 승화한 미래주의 건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새로운 도시(La Città Nuova)>라는 그림을 남겼다.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웠을,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건물이 그려져 있다.
1960년대 영국의 진보적인 건축 그룹 아키그램(Archigram)은 <플러그인 시티(Plug-in City)> 프로젝트로 구성 요소들을 필요에 따라 꽂고 뽑으며 유동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동성 좋은 도시를 설계했다.

 
(좌) 안토니오 산텔리아의 <새로운 도시>. (우) 아키그램이 설계한 <플러그인 시티>.


신기루 같은 현대 건축
요즘 건축에서 미래 도시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잉여자본의 시대, 이제 자본력만 뒷받침된다면 머릿속 상상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두바이는 20세기 후반의 자본력이 만든 대표적인 신기루의 도시다. 화려하고 다양한 건축물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땅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의미를 담아 섬을 만들기도 한다. 없던 땅을 만드는 것으로까지 기술은 발전했다.

두바이의 팜 아일랜드(Palm Island).


미래의 건축가에게 필요한 역량은?
건축가의 일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건축가는 지금 현실에 필요한 건물을 짓고, 어떤 건축가는 사람들의 이상과 꿈을 표현하고 멋진 미래를 그려 준다. 그래서 건축가는 한편으로는 정치와 자본 권력에 이용당하기 쉽다. 건축가를 멋진 건물 설계에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 건축가 또한 자기 주관 없이, 남들이 시키는 일에 따르기만 하면 안 된다.
미래에 대한 논의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 건축은 크든 작든 계속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다가올 것인지, 그러니 미래에 대비해 어떤 기술과 능력을 키우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건축가는 누군가의 미래를 그려 주는 수단보다
올바른 미래를 제시해 주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