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이타미 준
이타미 준
유동룡 | 庾東龍 | 伊丹 潤 Itami J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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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
2. 생애
그는 2003년 세계적인 동양박물관인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 때의 개인전 제목 역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로 기메박물관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극찬을 보냈다.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타미 준이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에 갇히지 않고 세계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일본건축가협회 정회원, 2005년 프랑스 예술훈장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06년 한국의 김수근 건축상,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0년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아시아권 건축가중에서 주요 국가에서 탈 수 있는 상들은 대부분 수상한셈.
이타미 준은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한 지역성을 살려서 인간의 삶에 어우러지는 건축을 추구했다. 국내에서는 충남 아산의 '온양미술관'(1982)을 설계했으며, 제주도의 '포도호텔'(2001), '수·풍·석 미술관'(2006), '방주교회'(2009)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사실, 동북아시아에서만 작품을 남긴것만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에서도 작품활동을 했었고, 굵직한 강연 역시 진행한 바 있으나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일관된 필모를 구축하기 위해 언급을 줄인것으로 판단. 또한, 생전 화가로도 활동해 이우환, 곽인식 등 모노하(物派) 화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타미 준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가 프랑스를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에서 초대형 규모의 수상을 연거푸 달성하면서 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지역을 존중하는 그의 작업방식과 동시에 특정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색체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그의 독특한 세계관은 한일 양국을 떠나 2000년대 초반 되려 유럽에서 그에 대한 개념화에 먼저 성공한 편.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국에서 구축되고 있는 그에 대한 해석은 다소 지엽적인 편이며, 과거에도 그를 영토주의적인 시각에서 극복되지 못한채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다뤄졌거나, 단순히 모더니즘과 지역주의 건축의 대립구도의 연장선상에서만 그를 다루려는 표상적인 해석이 주였다. 또한, 근래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에서조차 그의 작품들은 두서없이 파편화되는 식으로 조명되어 평론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으며, 제주도에 남긴 그의 유작들에 대한 영상의 비중이 너무 커서 대중적으로 그를 제주도에 박제시켜버린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전반적으로 본국인 한국에서 되려 그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 무엇보다도 그를 단순히 한국을 그리워하던 지역주의 건축가로만 단순하게 한정짓기에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의외로 입체적인 면모가 많으며, 작업 접근방식 또한 의외로 유연한 구석이 많아서 장르적인 측면에서도 그 각이 상당히 넓은편에 해당하는 건축가. 물론,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개념화 시키기에 까다로운 구석이 많은 건축가임에는 틀림없기에 그간에 이뤄졌던 그의 해석이 표면적 수준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 부분. 왜냐하면, 개념적인 측면에서의 그의 필모는 일관성이 뚜렷한 편이지만, 작품의 물리적인 일관성이 표면적으로 관찰되기 어렵기 때문인데, 사실 이는 그와 비슷한 정서를 지니고 있는 건축가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예를들면, 스위스의 건축가 듀오인 헤르초크와 드뮈롱) 이와 같은 부류의 건축가들은 특히 사후에 그들의 일대기를 단권화 시키는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작업 중간 중간에 지속적인 아카이빙 작업과 출판이 실시간으로 다뤄져야 한다. 다시말해서 작품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물리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건축가 부류.
3. 작품
3.1. 제주 방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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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인 제주도 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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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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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이타미 준의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가 개봉했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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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출처 - 나무위키
2. 살아있는 건축, ‘이타미 준’의 제주도 수(水)∙풍(風)∙석(石) 박물관
건축은 삶을 만드는 일이다. 공간은 만든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또다시 공간에는 감정, 관념, 추억이 쌓이고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인간의 삶처럼 폐허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어디에 머무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공간적 작용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다. 그렇기에 한 인간만큼이나 공간은 소중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에 인간적 정서와 따스함을 담으려 노력했던 건축가가 있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Jun Itami’
공간에 따뜻한 체온을 불어넣는 건축가 ‘이타미 준’
이미지 출처 – WIKIPEDIA ‘포도호텔’
재일 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 본명은 ‘유동룡’으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그의 활동명인 ‘이타미 준’은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 이용한 ‘이타미(伊丹) 국제공항’과 절친한 작곡가 ‘길옥윤’의 이름인 ‘윤(潤)’을 합쳐, 국적을 떠나 자유로운 국제적 건축가가 되겠다는 의미로 지었다. 일본의 시골학교에서 한국어 이름으로 보낸 학창 시절, 무사시공업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나온 사회에서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온전히 섞일 수 없는 역사의 경계에 서 있던 그. 정체성의 갈등으로 그의 내면에는 짙은 어둠이 존재했다. 하지만 끝까지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잃지 않았고, 한국의 건축과 예술을 조명했다. 특히 조선의 도자기나 목공의 선, 무명을 중시한 그의 건축은 도자기를 빚는 도공처럼 원초적이고 철학적이다.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 ‘기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 문화훈장’, ‘김수근 문화상’, 일본에서 외국인 최초로 ‘무라노 토고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말년에 맡은 제주도 프로젝트. 제2의 고향인 제주에서 내면의 어둠을 뛰어넘어 본연의 모습을 자유롭게 표출했다. ‘비오토피아’ 단지 내의 ‘핀크스 클럽 하우스’, ‘수풍석 박물관’, ‘포도호텔’, ‘방주 교회’ 등 제주의 자연과 지역성을 담은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든든한 지원군은 재일사업가 김홍주 회장. 김 회장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교감했다. 좋은 공간에 대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지와 철학은 작품으로 녹아들었다.
제주도의 자연을 전시한 ‘수풍석 박물관’
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이타미준의 바다’(2019) 스틸컷
수풍석 박물관은 휴양형 거주 단지인 ‘비오토피아’ 내부에 있어 관람은 하루에 두 차례 이뤄지는 투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비오토피아 완공 이후 부지 내 박물관을 고민하던 김홍주 회장에게 이타미 준은 인위적인 수집이 필요 없는 자연 박물관을 제안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소재인 돌, 바람, 물을 테마로 자연을 전시하는 것. 김홍주 회장은 약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던 그 자리에서 바로 이타미 준의 콘셉트을 샀다. 그렇게 시작된 박물관은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합일하여 사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빛과 돌 그리고 기도, 석(石) 박물관
이미지 출처 – PINX BIOTOPIA 홈페이지
산화 강판으로 만든 석(石) 박물관은 빨갛게 녹이 슨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황색을 띠던 외벽이 시간이 흘러 붉은색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비와 바람을 맞고 자연스럽게 색이 변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어둠이 드리운 텅 빈 내부에는 오직 창과 돌만이 존재한다. 천장에 뚫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시간에 따라 모양과 밝기를 달리해 내부를 비춘다. 정오에는 정확하게 빛이 바닥에 놓인 돌 가운데를 통과하고, 시간에 맞춰 다른 각도로 빛을 감상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이타미준의 바다>(2019) 스틸컷 이미지 출처 – PINX BIOTOPIA 홈페이지
수풍석 박물관의 모든 건축물은 제주도의 산방산을 향해 있다. 석 박물관에 난 창 너머로는 돌로 조각한 부처의 손과 복숭아가 놓여있고, 그 뒤로는 산방산이 보인다. 이타미 준은 특히 산방산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산에는 자연 석굴에 불상을 둔 ‘산방굴사’(山房窟寺)가 있다. 불상이 있는 산을 향해 놓인 돌로 만든 부처의 손. 동양 철학적 사유가 담긴 기도와 명상의 공간이다.
바람의 노래를 듣는 풍(風) 박물관
수풀 사이에 헛간의 모습을 한 풍(風) 박물관은 적송(赤松)을 판으로 이어 바람이 드나들도록 했다. 완공 직후에는 적송의 붉은색을 띠었지만, 세월이 지나 지금은 고동색으로 변했다. 짙은 고동색이 건물에 중후한 맛을 더한다. 언뜻 직사각형으로 보이지만 한쪽은 직선, 반대쪽은 휘어져 곡선 모양으로 되어있다. 이는 바람의 소리가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한 것으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전달한다. 이곳에 있으면 판자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바람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위치를 달리하면 독특한 모양으로 생기는 그림자.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가 작품이 되는 곳으로 무형의 바람을 청각적,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공간은 양쪽으로 나뉘어 한쪽에는 박물관을 지키는 양 모양의 수호 동상이, 반대편에는 사색을 위한 공간이 존재한다. 돌 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사색을 하다 보면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낀다.
내면세계의 구체화 수(水) 박물관
이미지 출처 – PINX BIOTOPIA 홈페이지
수(水) 박물관은 들어가자마자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돌담을 지나면 세로로 긴 문 사이로 하늘, 벽, 물, 용 모양의 상징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이 없는 둥근 천장으로 하늘과 빛이 쏟아져 직사각형의 호수 위를 채우고 바람이 파동을 만든다. 다른 곳은 명상을 위한 개인적인 공간이라면, 이곳은 명상을 통해 구체화한 내면세계가 떠오른다. 사방이 막힌 공간. 고요한 수면에 집중할 때, 성인의 숭고한 내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지 출처 – PINX BIOTOPIA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이타미준의 바다’(2019) 스틸컷
이곳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림자가 그림처럼 드리워진다. 사면에서 보는 모습이 모두 달라 구석구석 놓인 돌의 위치마다 옮겨가며 감상하길 추천한다. 천장이 열려있기에 비가 오는 날이면 빗줄기가 호수를 때리고, 수많은 물방울이 아름답게 튀어 올라 장관을 이룬다고. 비 오는 날, 맑게 갠 날, 눈이 오는 날 사시사철 모두 다른 모습으로 즐길 수 있다.
이타미 준은 수풍석 박물관을 통해 건축이 매개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대답하는 하나의 몸짓으로서의 작업.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은 이어진다. 제주의 자연과 오롯이 소통할 수 있는 박물관에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삶, 건축물의 삶이 살아 숨 쉰다.
참고자료 감독 정다운, 다큐멘터리 <이타미준의 바다>(2019)
출처 - 살아있는 건축, ‘이타미 준’의 제주도 수(水)∙풍(風)∙석(石) 박물관 - INDIEPOST 인디포스트
3. 이타미 준의 인생을 담은 : 유동룡미술관
「SPACE(공간)」2023년 4월호 (통권 665호)
이타미 준의 인생을 담은: 유동룡미술관
따스한 봄날에 방문한 유동룡미술관은 미술관 형태를 띤 이타미 준(유동룡)의 집 같았다. 낮고 긴 담을 끼고 돌아 담 안쪽을 따라 걷다 보면 단독주택 현관에서 볼 법한 나무 문과 마주한다. 그 너머 유리 중문에는 이타미 준을 상징하는 용 조형물이 문손잡이처럼 붙어 있다. 이 문을 통과해 실내로 들어선 순간 먹 향이 코끝을 스치는데, 마치 타인의 집에 배어 있는 고유한 향을 맡는 듯했다. 이 모든 경험을 기획하고 장면을 설계한 유이화(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났다.
유이화의 유동룡미술관 스케치
인터뷰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 한가람 기자
한가람(한): 2011년에 타계한 이타미 준은 유언장에 “내 이름을 딴 문화재단, 기념관, 건축상을 만들어라. 이 모든 책임은 내 딸 유이화에게 있다”고 남겼다.
유이화(유): 사실 마지막에 한 줄이 더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다.” 가족들과 유언을 읽어내려가다 다 같이 웃음이 터졌고 나에게 수고하라며 놀리듯 다독였다. 부담도 됐으나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내가 잘 할 거라는 신뢰가 있으니 그 말을 남긴 게 아니겠나. 안 그래도 일본의 아버지 자택을 자료관으로 간직하는 등 건축가 이타미 준을 기억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언으로 책임을 껴안으면서 본격적인 일이 될지 몰랐다. (웃음)
한: 유언과 달리 작년 12월에 기념관이 아닌 미술관이 개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 아버지는 기념관을 말했지만, 왠지 기념관은 시대 흐름과 동떨어지게 작가 자체를 박제해서 우상화하는 인상이 든다. 시대와 함께 호흡해가는 방향이 아버지가 원하는 바라고 생각해 미술관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미술관 자체가 단기적 공간이 아니기에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하고, 수익 사업보다는 공공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 그렇기에 내 아버지니까 미술관을 짓는 게 아니라 공공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줘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 명분을 찾고 각오하는 데 거의 6~7년을 썼다.
한: 사회적 메시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답을 내렸나? ‘나의 오리지낼리티를 발견하는 곳’이라는 유동룡미술관의 소개 문구와도 연관 있을 듯하다.
유: 이타미 준은 당대 필요했던 메시지를 작품으로 꾸준히 전달한 건축가다.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의 영향으로 화려한 건물이 일색일 때다. 이타미 준은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사람들이 상실하고 있는 것에 대해 꾸준히 건축과 글로 보여줬다. 지역성, 야성미, 자연과 같은 키워드처럼 ‘이타미 준만의 오리지낼리티’가 형성될 수 있던 이유는 자신만의 철학을 계속 발전시킨 덕분이다. 참고로 ‘오리지낼리티’는 아버지가 생전에 언급했던 단어다. 쉰 살이 넘었을 때 “건축이 비로소 재밌다”고, 예순 때는 “건축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데에 이어 일흔이 지나서 “이제야 내 오리지낼리티가 뭔지 알 거 같다”는 말씀이 아직도 인상 깊다.
한편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의 패러다임에 대다수가 자아를 지키지 못한 채 흔들리고 휩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을 찾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그 사유 과정에서 이타미 준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태도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여겨 미술관을 통해 공유하고자 했다.
유동룡미술관 외관
한: 이러한 공간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을 택했다. 제주도의 문화예술 사업 공모로 나온 부지이지만, 막연히 상상했던 대지 조건에 부합하기에 지원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땅의 첫인상은 어땠나?
유: 주변에 무조건 자연이 있어야 했다. 사실 지자체에서 사거리의 코너 부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 위치가 장사할 목으로는 좋을지언정 유동룡미술관이 자리할 곳은 대로변에서 떨어진 현 부지라고 간주해 역으로 제안했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백마가 수풀 사이에 서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건축적, 환경적으로 축이나 향을 따지는 절차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굉장히 직관적인 선택이었다. (웃음)
한: 백마가 서 있는 영상을 보니 자연이 한층 더 신비로워 보이면서 그 직관적 결정이 절로 납득될 정도다. 이곳에 설계한 건축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겠다. 이타미 준의 첫 작품인 어머니의 집(1971)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유: 많은 분이 어머니의 집과 오버랩하기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라고 답한 게 기사화됐더라. 이 미술관은 내 작품이기보다 철저히 이타미 준의 건축 사상이 배어 있는, 이타미 준다운 공간을 의도했기에
사람들이 그의 여러 작품과 겹쳐 보는 듯하다. 사실 정해진 장소가 없을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그린 마지막 스케치를 발전시키려는 마음도 막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 땅을 만나고 보니 맥락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계획을 접고 새롭게 설계했다.
우선 부지 중앙에 타원을 그려 넣었다. 이타미 준은 제주도에서 건축을 할 때 “제주도 지형이 타원형에 가깝다는 의식 때문인지 스케치 또한 자연스럽게 타원형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유동룡미술관에서 타원형 공간은 이타미 준을 보여주는 핵심 공간이다. 타원형의 1층은 이타미 준의 저서와 작품집을 모아 놓은 라이브러리, 2층은 제주도 대표작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관이다. 주변으로는 기획 전시관, 부대시설 등을 배치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부분은 아버지의 교훈처럼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었다. 겸허한 자세로 대지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바람에 순응하는 건축을 의식하며 발전해나갔다. 건물의 필요한 기능, 전시실의 층고 등을 갖추려 하니 어려움도 따랐다. 그럼에도 곶자왈 숲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 높이와 비율에 대해 수십 번의 모형을 만들며 스터디 했고 내외부의 피드백도 받았다.
공사가 8개월간 멈춘 일도 있었다. 착공하며 흙을 걷으니 생각지도 못한 암반이 드러난 것이다. 제주말로 ‘빌레’라고 하는 평평한 암반인데 용암 줄기가 보인다. 이를 발견하고 빌레를 존중하는 배치로 다시 조정했다. 티 라운지는 곶자왈과 빌레를 같이 끌어안도록, 제일 큰 빌레 밭쪽에는 교실을 두고 통창이 열리도록 했다.
한: 그렇게 완성된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묘하게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 나더라. 또한 리셉션에서부터 전시를 보기까지의 경험이 보통의 미술관들과 다르다.
유: 의도를 정확히 간파했다. 직원들과도 “여기는 이타미 준의 집이고 손님을 환대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집에 온 손님처럼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소개해주지는 못해도 이곳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뮤지엄키트도 제작했다. 뮤지엄키트는 파우치 안에 전시·건축가·미술관 이용에 관한 리플릿 세 장과 미술관 내에서 열람 가능한 이타미 준 관련 서적 목록, 연필로 구성된다. 리셉션에서는 이 키트를 활용해 이곳을 즐기는 방법을 안내한다. 또 오디오 도슨트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여러 명이 오더라도 이어폰을 끼는 순간 혼자만의 사색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천천히 음미하는 환경을 위해 입장 인원도 제한했다. 작년 12월 한 달간 제주도민을 상대로 무료 개방을 하며 이 작은 공간에 적절한 인원수와 이용 시간을 가늠해봤다. 현재 한 시간에 스무 명까지 예약받고 이용 시간은 두 시간이다.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은 후에는 타원형 공간을 둘러싼 계단을 통해 전시실로 올라가게 된다. 큰 건물이 아니기에 동선을 일부러 돌아가듯 길게 설정했고, 천창에서 비치는 햇빛은 자연을 느낌과 동시에 기대감을 북돋는 역할도 한다. 좁은 폭에는 일행이 있더라도 한 명씩 들어가길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
1층 로비
상설 전시관
한: 2층에서는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을 11월 1일까지 개최한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제주도에서의 말년 작업을 아우르는데,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유: 2014년 전시는 이타미 준의 건축 경향이나 태도를 시기별로 애써 나눴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억지스러움을 깨달았다. 이번 전시는 기준을 두고 작품을 분류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타원형 공간에서 제주도의 작품들로 마무리되게끔 구성했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포도호텔(2001)이나 수·풍·석 미술관(2006), 방주교회(2009) 등을 완성하기까지 이타미 준이 어떠한 철학을 갖고 과정을 밟아왔는지 보여주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타미 준의 마지막 오리지낼리티에 영향을 준 지역성, 소재 등에 대한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 선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비해 협소해서 전시품을 줄일 수밖에 없어 아쉬웠으나, 앞으로 이타미 준의 여러 면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는 건축가일 뿐 아니라 화가이자 수집가였다. 그의 다양한 면모를 시대 흐름에 맞춰 부각해 이타미 준의 사상을 기초로 한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고자 한다.
한: 관람객은 전시를 본 후 1층의 티 라운지와 라이브러리에서 시간을 보낸다.‘집으로의 환대’, ‘사유’라는 개념이 강하게 작동하면서도 이타미 준의 건축관을 놓치지 않은 공간 같았다.
유: 1층은 먹색을 주요 색상으로 잡았다. 이타미 준의 ‘먹’ 시리즈—먹의 집(1975)과 먹의 공간, 물의 공간(1997), 그리고 먹의 암(1998) 내부가 다 먹색이다. 그러나 한 건물 안에서도 먹색마다 재료가 다 다르다.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에 남들은 화려한 대리석을 쓸 때 이타미 준은 재료의 색을 어둡게 통일하면서도 그 소재들이 자연광을 만났을 때 각기 다른 ‘소리’를 내도록 했다. 유동룡미술관에서도 현무암, 나무, 패브릭 등의 다양한 먹색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아버지의 창작 공간이나 사무실이 먹색인 점을 고려해 라이브러리 이름을 ‘먹의 공간’이라 붙였다. 라이브러리에는 메모지를 준비해두고 뮤지엄키트에 동봉된 연필로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게 했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먹색 테이블을 비추고, 1층 바닥 레벨보다 한 단 내려간 공간은 몰입을 돕는다.
티 라운지는 아버지의 캐릭터가 반영됐다. 그는 차를 즐겨 마셨고 손님이 오면 늘 당신이 직접 차를 우렸다. 유동룡미술관의 손님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입장료에 차 한 잔 혹은 기념품과 교환할 수 있는 티켓을 포함시켰다. 제주도의 우연못이라는 차 브랜드와 협업해 시그니처 차도 만들었다. 아버지의 원고 제목이자 티 라운지의 이름이기도 한 ‘바람의 노래’를 표현한 차다. 커피는 마련하지 않았는데, 커피 머신 소리가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빌레가 보이는 창 옆에서 다기들이 달그락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외에도 향과 음악을 통해 몰입을 더욱 극대화하도록 했다. 공간이라는 게 오감이 한꺼번에 인지되면서 채워지고 기억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입장하면서부터 다른 사람 집에 온 듯한 냄새가 났다고 했는데,
이타미 준의 시그니처 향을 두 시간에 한 번씩 뿌리고 있다. (웃음) 아버지 서재에서는 먹이라든지 책 냄새가 뒤섞여 편안한 느낌을 줬는데 향기 작가 한서형이 이를 모티브로 향을 구현했다. 미술관에 흐르는 피아노 음악은 양방언이 맡았다. 양방언과 이타미 준은 서로 만난 적 없지만 그가 아버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음악가라는 확신이 있었다. 재일 교포임에도 한국 전통에 관해 공부하고 뿌리를 둔 접점이 있어서였다.
한: 1층에는 일반 방문객이 자유롭게 출입하기 어려운 공간도 있다.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가 열리는 교실인데,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는 약 2년 전 서울에서부터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에서 해오던 활동이다. 교육의 지향점과 방식을 소개해 달라. 그리고 서울과 제주에서의 차이가 있다면?
유: 요즘 도시에서는 놀이터에 가도 흙과 돌을 만지기 어렵고 자연을 접하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멀리 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일은 ‘자연과 친해지기’다. 바로 이 점이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가 지향하는 바이자 타 건축학교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의 주제는 돌, 흙, 나무, 종이로 이뤄진다. 돌을 예로 들면 제주도의 현무암, 강화도의 강화석, 이탈리아의 대리석이 다 다르지 않나. 수업을 하다 보면 차이에 대해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지질 수업으로 이어지고 여러 분야로 확장된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을,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리라 믿는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을 갖추고 건축가가 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재단에서는 교육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생각하고 운영해나가고 있다. 대상은 미취학 아동부터 청소년까지다. 유동룡미술관에서 미취학 아동 수업은 이미 진행 중이고 곧 초등학생 수업도 열린다. 방학 때는 청소년 수업도 계획 중이다. 제주도에서는 서울과 달리 해외 굴지의 어린이 건축학교와 MOU를 맺고 방과후 학교처럼 운영하려 한다. 동네에 대해 알려주고, 자연과 함께 건축을 알아가는 수업을 구상하고 있다. 교실에서 통창으로 빌레 밭을 보며 혹은 빌레 밭 위에서 실외 수업도 할 수 있게끔 철저히 자연 안에서 자연과 친해지는 걸 기본으로 할 예정이다.
티 라운지(바람의 노래)
라이브러리(먹의 공간)
한: 개관 후 3~4개월이 지난 시점, 미술관 방문 후 제주 내에 다른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더라.
유: 의도한 바고 원하는 바다. (웃음) 아카이브 전시가 아닌 실체가 주는 감동이 또 있으니까. 그리고 건축 자체가 관광 콘텐츠로 활용되는 흐름은 굉장히 좋은 신호인 것 같다. 건축에 대한 대중의 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다. 그러면 그 수준에 맞추기 위해 건축계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한: 마지막으로 남은 과업을 알려 달라.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의 웹사이트에서 암시하는 시간의 집, 아버지의 유언 중 미완 상태로 남아 있는 건축상 말이다.
유: 시간의 집은 유동룡미술관 라이브러리의 서울 버전처럼 현재 사무실로 쓰는 건물 1층을 활용해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쉬다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획됐다. 예약제로 온전한 시간을 제공하는 등 구체적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건축상의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그리고 여러 대상을 포용할 수 있는 형태를 고민 중이다. 다만, 프로젝트가 속한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두고 본인만의 오리지낼리티가 묻어난 건축을 만들었는지가 초점이 되겠다. 그것이 이타미 준이 늘 이야기 했던 메시지니까. 수·풍·석 미술관이나 포도호텔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계속 사랑받고 화제성을 가지는 현상을 보면 이타미 준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유동룡미술관 전경
▲ SPACE, 스페이스, 공간
어워드(2019), iF 디자인 어워드(2018,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 JDC 어워드(2004) 등 다수의 건축상 수상 경력이 있다. 호텔, 리조트, 주거, 문화 및 업무 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출처 - 이타미 준의 인생을 담은: 유동룡미술관 (vmspace.com)
4.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이타미 준의 건축 세계
경계인이자, 경계를 초월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충돌로 벌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2006년, 정다운 감독(44)과 김종신 프로듀서(44) 부부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 건축대학원과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건축영상과 영화연출을 공부한 뒤였다. 김 프로듀서의 고향 제주도를 찾았다. 아버지가 가볼 데가 있다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수풍석 박물관.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의 물, 바람, 돌을 테마로 삼은 건축물이었다. 미술품이 아니라 자연 자체를 수집해놓은 체험 공간이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지만 침잠하지 않게 했다. 인간이 약하고 고독한 존재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시선은 따뜻한 사람이 만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타미 준의 예술세계와 교감한 순간이었다.
일본인인 줄 알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재일 한국인이었다. 제주도에서 받은 감정이 더 잘 이해되었다. 경계인의 감수성이지만, 현대인이 가진 본질적인 감성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용기를 못 내다가 2011년 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파트너 건축가였던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씨를 찾아갔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개봉까지 8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이타미 준의 바다〉(8월15일 개봉)에는 부부의 아들이 나온다. 다섯 살 때 출연한 아이는 열한 살 때 한 번 더 등장한다. 부부는 그사이 건축 전문 영화영상 제작사 ‘기린그림’을 설립했고, 첫째와 터울이 좀 나는 둘째 아들은 17개월이 되었다.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이다.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일본에 살았던 재일 한국인이다.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자랐다. 일본어에는 그의 이름에 쓰이는 ‘유(庾)’자가 없었다.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에서 준을, 생애 처음 이용한 공항의 이름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왔다. 국적을 떠나 국제인으로 살겠다는 의지였다. 1964년 무사시 공업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4년 뒤 이타미 준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2003년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 ‘슈발리에’를 수상했다. 2006년 한국에서 ‘김수근문화상’을, 2010년엔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도고상’을 받았다. 외국 국적의 건축가로는 최초였다.
영화에는 유독 바다와 숲이 많이 나온다. 자연을 간접 체험하는 느낌이다. 이타미 준이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위로 두 명의 형이 일찍 죽자 그의 부모는 몸이 약한 이타미 준을 위해 공기 좋은 시미즈에 정착했다. ‘부두에서 보는 검고 거친 바다와 하얀 후지산이 대조를 이루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다운 감독은 시미즈에 갔을 때 깜짝 놀랐다. 산과 바다, 귤밭이 펼쳐져 있고 녹차가 유명했다. 제주도와 비슷했다. 이타미 준도 제주도에 갔을 때 고향에 온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을 제주에서 보낼 작정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정 감독은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로서 건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과 무한한 자연의 조화와 충돌,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2016년 가을, 촬영팀은 일본에 20일 정도 머물렀다. 도쿄로 들어가 오사카로 나오는 동안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영상에 담았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건축물은 두 나라의 차이만큼 달랐다. 일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 들어선 곳의 지역적 특성과 역사, 사람을 반영한 결과다. 1972년 지어진 온양민속박물관은 충청도의 돌담과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그 지역 황토를 활용했다. 1991년 홋카이도에 만든 ‘석채의 교회’는 겨울 한파와 풍경에 지지 않고 견디는 건물을 짓기 위해 돌을 쌓았다. 1998년 도쿄에 ‘먹의 공간’을 만들 때는 원래 있던 벚나무 두 그루를 벨 수 없어서 설계를 변경했다. 생전 그는 ‘그 땅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이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꿈이고 철학’이라고 말했다.
이타미 준은 귀화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족보만은 지니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고 한국에선 일본인 대우를 받는 이방인’이었다. 일정 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열 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해야 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아서 도자기, 민화 등을 수집하고 관련 책을 발간했다. 2002년 딸 유이화 건축가가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사무소를 열었다. 경계인이자, 경계를 초월한 건축가였다. 일본의 손지와 한국의 창호를 반반 섞어 창문을 만들기도 했다. 온양민속박물관을 만들 때는 한국의 미를 추구했으나 ‘일본의 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 추구
김종신 프로듀서가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축물은 40여 년 전 만들어진 도쿄 식당 ‘주주’다. 70대의 재일 한국인 손영도 사장이 당시 기억을 들려주었다. 이타미 준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재일 한국인이라 취업이 쉽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했다. ‘열외 취급’ 받은 경험이 역설적으로 힘이 됐다며 동네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설계부터 시작해 실력을 쌓았다고 했다. 그때 만든 공간 중 하나다. 의자 하나, 기둥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고 간판 글씨를 직접 써주기도 했다. 김 프로듀서는 “조그만 불고기집(식당) 주인을 위해 이렇게까지 애썼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게 바로 건축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 감독 역시 건축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터전을 만들어주는 존재라는 걸 감동적으로 실감했다. 7개월 전 예비 취재차 찾았을 때보다 부쩍 늙고 지친 기색의 손 사장을 보고 정 감독은 30분간 통곡했다. 건물이 오래되어, 주주는 곧 사라진다.
이타미 준은 흙, 돌, 나무 등 원초적 소재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을 추구했다. 저서 〈돌과 바람의 소리〉(2004)에서도 이 같은 재료가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뛰어난 내구성과 따스함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화에도 그가 요코하마 강 운하에 가라앉은 목조를 인양해 재료로 쓰거나 혜화동 소재의 서울대 철거 당시 벽돌을 가져와 건축 자재로 썼다는 증언이 나온다. 건축의 시간성을 중시했다는 의미다. 채석장을 찾았고 보통은 돌을 다듬어 쓰는데, 거친 면을 그대로 썼다. 정 감독은 도쿄 한복판, 돌을 쌓아 올린 ‘M 빌딩’을 보며 자연에서 온 물성이 주는 근원적 따뜻함의 정서와 야성미를 느꼈다.
절정의 이력을 만든 바탕에는 재일 한국인 사업가인 건축주 김홍주와의 인연이 있다. 대표작인 ‘제주 프로젝트-핀크스 리조트’가 시작되었다. 1998년 핀크스 퍼블릭 골프클럽 하우스를 시작으로 포도호텔, 수풍석 박물관, 두손지중 박물관, 비오토피아 주택단지까지 완성되는 데 11년이 걸렸다. 제약 없이 마음껏 설계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이었다. 특히 제주의 민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포도호텔(2001)은 오름을 비롯해 제주의 풍광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에는 많은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건축계에서 이타미 준의 위치랄지 그의 건축 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다. ‘훌륭한 건축가의 훌륭한 삶’을 그리려던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공간에서 받은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와 건축은 닮아 있다. 시간과 공간의 예술이고 그 안에 삶을 담는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시간성의 매력이 있었다. 제작비 문제로 지연되는 동안 영화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성장했다.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가 살면서 뿌려놓은 씨앗이 꽃피우는 걸 목격하는 과정이었다. 그의 딸과 글을 통해, 영향받은 제자를 통해 건축가를 만났다.
“예술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영화이기를…”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타미 준-바람의 조형전〉을 할 때 7분짜리 영상을 의뢰받았다. 사비를 들여 30분짜리로 만들었는데 그대로 상영되었다. 세 살짜리 아기도 30분을 꼼짝 않고 지켜봤다. 치유와 위로의 감성을 사람들이 느끼고 있었다. 지난 5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자원봉사를 하던 청년들이 감사하다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수상보다 기뻤다. 정 감독은 “아이 둘을 키우며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지 궁리를 많이 한다. 공간이라는 게 부동산으로 연결되는 돈의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보듬어주고 삶을 빚는 곳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선한 가치가 전달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 프로듀서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아내 정다운 감독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건축 영상을 만들 때도 공간에 가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영화 제작을 결심할 당시엔 거장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그걸 극복할 즈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고통이 찾아왔다.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될 당시 심사위원 표정을 기억할 정도다. 이타미 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정 감독은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양쪽에서 아웃사이더면서 오랜 시간 자기를 단련했던 그에 비하면 8년은 아무것도 아닌 듯싶다. 다른 예술가에게도 위로가 되는 영화이길 바란다. 재일 한국인 음악가 양방언이 음악을, 배우 유지태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영화 개봉과 맞물려 8월7일부터 한 달간 웅갤러리에서 이타미 준의 회화전 〈심해(心海)〉가 열린다.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수 있겠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을 받고 진로를 바꾼다. 건축 드로잉이 아니라 본격 추상회화다. ‘건축가로 살고 있지만 어떤 때는 하염없이 그림을 그리곤 한다. 적어도 그때는 화가의 마음이다(〈손의 흔적〉, 2014).’ 재즈를 즐겼고, 시를 쓰고, 곽인식·이우환 같은 미술가와도 교류했다.
정다운 감독 인생 최초의 기억은 공간과 관련이 있다. 빛이 들어오는 집 안의 풍경이다. 강화도 교동도 섬에서 자라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을 경험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남으로 이사하며 충격을 받았다. 전혀 다른 공간이었고 그때의 경험이 강렬하다. 좋은 공간은 좋은 영향을 준다고 두 사람은 생각한다. 김 프로듀서는 “모두 건축주가 되어 좋은 공간을 갖기는 힘드니까 공공건축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이타미 준과 두 사람을 잇는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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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산인테리어 전문 회사 이건디자인 입니다.
디자인과 건축은, 영감이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유명한 디자이너의 건축물을 보면서, 어떤 공간을 어떤 요소와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는지를 살펴보면, 그 건축가의 지나온 삶과, 건축물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를 알수 있습니다.
우리 이건디자인도,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기업으로, 공간의 특성을 살리고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수준의 디자인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세계적인 건축가,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여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기록하고자 한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 을 소개합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출저: 이타미준_건축문화재단
건축가 이타미 준 (유동룡, 1937-2011)
건축가 이타미 준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로, 한국이름은 유동룡 입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고려시대 3대 장군 중 한분인 유금필 장군의 후예이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로, 평생을 일본에서 살면서도 귀화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획일화된 산업 사회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현대건축을 실천하고자 하였으며, 백자, 불상,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인간의 사색을 통한 조형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건축을 하였습니다.
이타미준 <온양미술관, 현 구정아트센터 ,1982년>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건축물은 세련되고 차가우며 매끄러운 느낌을 강조한데에 비해, 이타미준은 재료의 재질,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한 차분한 건축을 보여줍니다.
이타미준 <방주교회> 출저: 이타미준_건축문화재단
2003년, 프랑스 국림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재일 교포이지만 평생 귀하를 거부했음에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나로고도상 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인최초로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타미 준 <풍박물관 | Three Art Museums "WIND" 2006 Jeju, korea> 출저: 이타미준_건축문화재단
대표적으로, 포도호텔, 수풍석 뮤지엄, 방주교회 등 역사의 본질과 자연을 담은 것으로, 한국과 일본,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건축물을 제작하였습니다.
이타미 준 <먹의공간 | Hermitage of Ink 1998 Tokyo, Japan> 출저: 이타미준_건축문화재단
이타미 준의 작업실을 재현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4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각인의 탑
건축가 이타미 준은 건축에서 조형의 순수성과 물성의 본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1988년 방배동의 #각인의탑 은 인근 채석장에서 캐낸 돌 그대로의 질감과 모습을 표현한것으로, 인위적인 구조물보다는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화강석 봉우리의 느낌을 줍니다.
각인의 탑 Carved Tower, 1988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각인의 탑 Carved Tower, 1988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1988년 방배동은, 주변에 먼지투성이의 붉은 벽돌집이 많았습니다.
이타미준은, 각인의 탑 건축당시, 주변 환경을 통해 소비사회에서 폐허의 조짐을 보았으며, 폐허에서 살아남을 근원적인 형태인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건축물을 지축으로 정하고, 꼭대기의 조각은 하늘로 치우치게 설계하였습니다.
각인의 탑 Carved Tower, 1988 단면도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각인의 탑 Carved Tower, 1988 평면스케치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각인의 탑 Carved Tower, 1988 /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마치 고구려 적석총의 느낌을 주며, 건물 외벽을 석재로 디자인하여 전체가 하나의 조각과 같은 강인한 인상을 줍니다.
1층은, 서구식 주거개념과 한국 전통민가 공간을 융합하여 주실, 종실, 여백의 공간이 있으며, 지하 작업공간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벽을 전벽돌로 마감하여, 벽이 회랑처럼 이어지며 실내로 감겨들어오는 형태입니다.
각인의 탑 Carved Tower, 실내공간/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각인의 탑 Carved Tower, 실내공간/ 출저: 국립현대미술관
제주 포도호텔
포도송이를 닮은 독특한 외관은 가로로 길게 건축되어 주변 자연 흐름에 거스르지 않도록 건축되었습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외관 / 출저:https://podo.thepinx.co.kr/
이타미준 포도호텔 외관 / 출저:https://podo.thepinx.co.kr/
포도호텔 내부의 복도 천장이 특이한데요, 연속적이고 경쾌한 느낌이 듭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통로 천정 디자인 / 출저:https://podo.thepinx.co.kr/
천정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래로 향하는 곡면을 통해, 닫힘을 표현합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통로 천정 디자인 / 출저:https://podo.thepinx.co.kr/
호텔 안쪽에는, #케스케이드 라고 하는 전시공간이 있습니다. 케스케이드는 작은 폭포라는 의미로, 물이 흘러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케스케이드 / 출저:https://podo.thepinx.co.kr/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케스케이드/ 출저:https://podo.thepinx.co.kr/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케스케이드/ 출저:https://podo.thepinx.co.kr/
햇빝이 들어오는 공간과 내부를 연결하여 호텔 안쪽에서도 계절감과 자연을 느낄수 있습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케스케이드 / 출저:https://podo.thepinx.co.kr/
호텔 안쪽의 창호는 한국과 일본의 디자인을 같이 보여줍니다. 위쪽 창살 안쪽에 창호가 붙어있는것은 한국전통방식이고, 아래쪽 창살 바깥쪽에 창호가 붙어있는것인 일본전통방식입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창호디자인 / 출저:https://podo.thepinx.co.kr/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창호디자인 / 출저:https://podo.thepinx.co.kr/
한국과 일본 두개의 정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건축물입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내부 / 출저:https://podo.thepinx.co.kr/
건축가 이타미준은 건축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며 , 각 재료의 질감과 특성을 작품의 일부로 활용하였습니다.
이타미준 포도호텔 / 출저:https://podo.thepinx.co.kr/
한낱 인간으로 태어나 위대한 자연에 잠시 잠깐 어울리는 물건을 놓는다
이타미 준
오늘은,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살펴보았습니다.
공간은, 합목적성만 강조하면, 기능적으로 잘 다듬어진 차가운 공간이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멋이 우러나오고 그 가치가 더해지는 디자인을 하는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객님의 디자인 철학에 맞는 건축디자인, 내부공간과 외부 디자인을 진행하는 이건디자인 입니다.
우리는 부산, 경상권 디자인 전문회사로서, 고객님의 공간을 가치있게 바꾸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작성자 이건디자인
6. 구정 아트센터 - 온양 민속박물관 옆 미술관, 이타미 준 설계
*위치 - 충청남도 아산시 충무로 123
*휴관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온양 민속박물관에 그렇게 여러 번 드나들었어도
바로 옆에 이타미 준의 건축물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히 건축에 관한 책을 읽다 발견했다
그야말로 가까이에 있는 보물을 몰라 본 기분이다
이곳은 민속 박물관의 단순한 부속 건물인 줄 알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가끔은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된다고 들었는데 이 건물이 미술관이었다
그런데 사실 전시회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라고 하니 거의 개점휴업상태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이 곳에 이타미 준의 건축미를 확인하겠다고 갔다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실망하고 돌아가려다
이곳 박물관 관계자의 안내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사진출처 뉴스1 제공 <이타미 준>
본명이 유동룡인 이타미 준은 일본의 권유에도 끝까지 귀화하지 않아 많은 불이익을 받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다
제주의 방주교회 건물을 보게 되면 금방 이타미 준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이 곳 저 곳 한국에 존재하는 그의 건축물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충남 아산의 민속박물관 안의 구정아트센터가
이타미 준이 한국에 세운 최초의 건물이라 해서 너무 놀랍고 반가웠다
실내로 들어서면 우선 지붕을 떠받고 있는 둥근기둥에 놀라는데
이 기둥이 일본의 곡식 저장고 모양이라며 왜색이 짙다고 많은 조롱과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붕을 올려다 보면
거북선의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특히 양 벽 쪽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마치 거북선의 노를 젓는 느낌이 든다
이 것도 이타미 준이 의도한 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본관 양 옆으로 회랑이 길게 연결되어있다
이 회랑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충청도의 전통가옥 모양인 ㅁ 형태를 이룬다고 한다
이 작은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하늘이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이 창 가득 아파트 건물이 들어있다
이 원통 안에는 위 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들어있다
전시 작품은 없지만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곡선을 만나게 된다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 <두손 미술관>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제주 방주교회> 사진출처 다음 이미지 검색<제주 포도호텔>
이타미 준의 건축은 제주에 주로 많은데
제주에 가면 꼭 찾아봐야 할 건축물이다
방주교회, 포도호텔, 수풍석 박물관 등이 유명하다
출처 - 구정 아트센터 - 온양 민속박물관 옆 미술관, 이타미 준 설계 (tistory.com)
골프 성수기를 앞두고 필드 예약을 고민 중이라면 다음 기사를 참고해보자. 오션 뷰, 한옥, 건축 거장이 지은 건물까지 클럽하우스 맛집 골프장 7곳을 소개한다.
블랙스톤이천 GC
외국의 고성에 온 듯 웅장한 내부 구조와 앤티크한 실내 장식이 돋보이는 클럽하우스. 아치형 천장과 기둥, 대리석 조각상들과 이국적인 레스토랑까지 해외여행에 온 기분이 든다. ⛳️경기 여주시 가남읍 삼승리 386-39
핀크스골프클럽
한국 최초로 세계 100대 골프장에 선정된 핀크스의 클럽하우스는 포도호텔, 방주 교회를 지은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흙, 나무, 돌 등 자연 재료를 사용해 가공되지 않은 거친 느낌을 주는 건축물로, 제주의 산과 바다가 보이도록 설계되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863 핀크스골프클럽
라비에벨 CC 올드코스
한옥 클럽하우스, 고즈넉한 조경과 코스에 둘러싸여 운치 있는 라운딩이 가능한 라비에벨 CC. 강원도 명문 골프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하는 골프장이다.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다고 하니 미리 서두를 것. ⛳️강원 춘천시 동산면 종자리로 436
아시아나 CC
통창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갤러리 같은 클럽하우스를 갖췄다. 동코스는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하지만, 웅장한 페어웨이와 잘 관리된 조경이 어우러져 골프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대로 290
페럼클럽 CC
페럼클럽 클럽하우스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노출 콘크리트 공법과 단정한 선과 면의 결합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바람을 듬뿍 머금은 돛’을 모티브로 삼아 날렵한 외관과 거대한 통창 너머로 시원스레 펼쳐진 그린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경기 여주시 점동면 점동로 181
사우스케이프 CC
곡선미를 살린 건축과 고급스러운 오브제와 가구를 갖춘 클럽하우스로 유명한 사우스케이프. 남해 천혜의 자연경관을 눈에 담으며 최상급 그린 코스에서 라운딩을 즐길 수 있다. 건물 사이로 바라보는 하늘과 물이 맞닿은 풍경이 이곳의 절경. ⛳️경남 남해군 창선면 흥선로 1545
담양레이나 CC
유럽 궁전 같은 외관과 샹들리에 등 화려한 실내 장식, 야외 조각 분수 등 앤티크하고 이국적인 풍광을 더하는 담양 레이나 CC의 클럽하우스. ⛳️전남 담양군 담양읍 깊은실길 169
8. 이타미 준의 바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그리고 아이 엠 페이 2019.10
2023. 1. 5. 09:08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he Sea of Itami Jun, Sketches Of Frank Gehry, and I. M. Pei
대학시절 영화를 좋아하던 터라 왜 건축하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다큐는 없는지 궁금했다. 이십 년 전 영화 관련 책을 쓰다가 약간의 아쉬움 때문에 건축사라는 직업이 강조된 영화들을 따로 모아 이야기를 했었다. 영화 속 건축사들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찾아보니, 주인공 직업이 건축사가 상당하다. 뭔가 있어 보이는 직업? 자유로운 시간과 물리적 이동 거리도 다양하니 시나리오상 안성맞춤인 주인공 직업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면 건축사라는 직업 명칭이다. 분명 시공사 현장 소장인데 번역은 건축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도 많다. 건축사와 현장 소장은 영어로도 다르고, 건축사(가)는 법적 자격자만 사용하는 호칭 Architect이다. 그래도 대학시절 내가 선택한 전공이 멋지게 나올 때는 쓸데없는 집단의식에 빠져서 기분이 좋았다. 영화에는 여러 직업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관련 직업인들이 감정적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비단 건축하는 이들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아무튼 괜한 동질감은 직업으로 건축을 하는 내내 쓸데없이 감정적으로 우호적이 된다. 그런 감정덕분에 건축이나 건축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더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관련 책을 출판한 덕에 1998년부터 강의하던 학교에서 십여 년 가까이 ‘영화 속 건축’을 테마로 설계 수업을 진행했었다. 영화만큼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시선을 이해하기 좋은 학습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직설적인 공간에 대한 이해 도구이기도 했고, 이야기구조로 드러나는 은유적 공간에 대한 이해 도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업하던 중 실제 유명 건축가(사)인 프랭크 게리를 주연으로 찍은 다큐멘터리가 국제적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아마존을 통해 CD를 구입해 보니 감독이 시드니 폴락이다. 가벼운 로맨틱부터 다소 진지한 현실 비판까지 다루는 주제가 폭 넓은 노장 극영화 감독이다. 그런 사람이 건축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니...
포장을 뜯자마자 학생들하고 같이 보기도 했다. 시드니 폴락의 친구이기도 한 프랭크 게리가 주연한 다큐멘터리다. 거의 밀착해서 24시간 따라다니듯 촬영한 : 프랭크게리의 스케치, (원제목 : Sketches of Frank Gehry)는 프랭크 게리의 생각과 일상을 들여다 보는 셈이라 그의 건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완성되는지 흥미로웠다.
기억에 남는 몇몇 장면들 중 프랭크 게리를 세계 건축계에 알린 작품인 LA에 있는 그의 주택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카메라는 게리의 설명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각조각 이어진 철물점 이미지의 주택은 하늘과 빛, 그리고 클로즈업한 부분들을 보여준다. 갑자기 집에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건축하는 이들과 달리 영화하는 이들의 카메라 앵글은 좀 더 이야기 중심적이고, 뭔가 상징과 은유를 담는 것에 능숙하다. 확실히 카메라 앵글이나 시선의 차이가 많다. 대체로 건축 잡지에 나오는 또는 건축하는 이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아름다운 대상에 집중하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매력적인 연예인들의 화보 사진 같이 최대한 건축의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드러낸다.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 역시 그렇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비례나 구성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뭔가 인간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는 진지하게 그의 건축을 설명하기 보다는 그의 일상을 추적하면서 일기 쓰는 것처럼 시나리오를 만든 듯하다. 게리의 다큐가 일상의 현재를 다루듯이 했다면 이타미 준의 바다는 조금 다르다.
다큐의 시작은 제주도의 독특한 미술관으로부터 시작한다. 오래전 이 미술관을 처음 보고 너무 신기했다. 통상의 미술관이라고 하면 그림이나 조각, 공예 등 대상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작디작은 제주도의 미술관은 덩그러니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을 전시하고, 돌을 전시하고, 물을 전시한다. 독특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자연이고, 건축의 감성적 요소들 아닌가? 이타미 준이 전시한 것은 시적 감성을 전시한 것 같았다. 바람소리가 들리고 영화의 인트로가 시작되면서 그의 작품 몇 개와 개인사적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타미 준을 처음 안 것은 작품이 먼저였다. 1984년 서울 대학로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지나가다 독특한 건물이 완성되는 것을 보았다. 김석철 선생이 설계한 두손 갤러리 였다.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던 것이 등하교길에 있는 김수근 선생의 미술회관(지금은 아르코 미술관)과 두손 갤러리 등은 입시공부로 머리 아픈 내게는 탈출구였고 오아시스였다. 하교길에 이런 미술관을 종종 들렀다. 두손 갤러리 지하에는 클로즈드(Closed)라는 카페가 있었고, 지하 두 개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블랙, 다른 하나는 화이트. 이번 다큐를 보니 아마도 80년대 이타미준은 흑백에 빠져 있는 무채색의 시기였던 것 같다. 아주 나중에 건축잡지에 나온 그의 스케치를 보면서 일본의 극단적 디테일주의자인 다카마츠 신과 중첩됐다. 다만 두 사람의 선은 매우 다르다. 나는 다카마츠 신을 망가적 로봇디테일 주의자로 보는데, 이타미 준은 전혀 다른 굵직굵직한 덩어리들과 재료의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가 왜 이타미 준이라는 일본식 이름의 예명을 썼는지 처음 알았다. 사실 공항이름에서 가져왔다는 대목에서 뭔가 그의 내면에 있는 유목적 정체성의 혼란을 알 것도 같았다. 그런 유목성은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시간 넘게 상영되는 이타미 준의 이야기는 단지 건축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배타적 국가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이주자의 삶. 직업에 대한 애정과 애착, 그리고 그것을 자녀에게 잇고 싶어 하는 마음. 일종의 집착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이 다큐의 전체적인 인간적 흐름은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 되고 이해됐다. 한국인으로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거주하는 외국에서의 삶은 겪어보지 않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치열한 고민과 갈등 속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나고 자라서 모든 추억과 기억이 일본에 있는 이에게 무작정 왜 한국어를 못 하냐,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느냐라는 질문은 일차원적인 것 같다.
그런 그의 갈등은 아마도 건축에서 차분해지고, 마음의 평정을 갖는 것 같았다. 초기작에 비해서 점차 후기로 들어가면서 점점 선은 더 단순해지고, 오히려 감성적으로는 강렬해진다. 그의 부모님 집에서 보듯이 초기 작품은 과잉 의욕이 드러나 보이지만, 그의 빛과 질감에 대해 집착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감성적 느낌들은 마치 시어처럼 구사되어 전체 건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타미 준 역시 현대 수많은 건축사들의 도전처럼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지만, 흔히 우리가 아는 노출 콘크리트와 뭔가 좀 다르다. 안도다다오의 노출이 묘한 긴장감과 반짝이는 질감으로 마무리 한다면 이타미 준의 노출은 좀 더 거칠고 인간적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구사하는 노출 콘크리트의 약간 건조한 구성과도 다르다. 맹숭맹숭한 영국 음식처럼 싱거운 느낌인 반면에 이타미 준의 경우는 좀 더 감정적 느낌을 전달한다.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더 유머있고, 의도적 거침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감성적 디테일을 보여준다.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고 얼마 안 있어서 EBS 국제 다큐 영화제 소식을 듣고, 프로그램 검색에 들어갔다. 안도 다다오의 다큐도 이 프로그램에서 봤었는데, 죽 훑어보니 건축 섹션이 있었고, 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좋아하는 렌조 피아노도 있고, 노만 포스터도 있다. 그중 얼마 전 102세로 돌아가신 아이 엠 페이에 대한 다큐: 아이 엠 페이의 건축세계 (원제목: I.M. PEI: Building China Modern.)를 발견하고 사무실에 앉아서 한 시간 남짓 보았다.
이 다큐를 보면서 깜작 놀란 것이 90살이 다 된 노장의 에너지였다. 흔히들 건축은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증가할수록 좋아 진다고 하는데, 일찍이 성공한 아이 엠 페이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90이 넘어서도 여전한 현역이고 건축에 대한 밀착된 감정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다큐는 미국 PBS의 미국의 거장 시리즈 중 하나로 만들어졌다. 다큐의 중심에 나온 건물은 소주의 부호 출신으로 수백 년을 살아온 자신의 어릴 적 고향에 건축된 박물관이다. 2002년에 시작되어 2006년에 건축된 소주(蘇州) 박물관의 진행 과정을 다큐로 담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다큐를 제작한 앤 메이크피스 역시 노장이라는 점.(1947년 생으로 2010년 상영했으니, 다큐 제작 시점을 보면 63살에 만든 셈이다.) 젊은 노익장은 정말 노익장인 아이 엠 페이의 작업 루트를 따라가면서 촬영한 셈인데, 아이 같은 아이 엠 페이의 미소가 한 몫 단단히 한다. 대부분의 건축사들의 표정이 다소 근엄하다 못해 화난 듯 해 보이는데, 아이 엠 페이의 해맑은 미소같은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 엠 페이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로 미니멀리스트 건축사로 대표적 인물이다. 현대 건축의 중요한 시절을 장식한 인물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대담한 형태의 자유로운 표현이 놀랍다. 사선이나 원형은 건축에서 사용하기 무척 어려운 도형인데, 아이 엠 페이는 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이 다큐에 나오는 소주 박물관만 하더라도 사선과 사각형, 원형으로 구사하는 매스들의 집합체이다. 아이 엠 페이의 탁월한 감각은 루브르 피라미드에서 새삼 읽혔지만, 소주 박물관을 만들어내는 기하학의 구성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단순한 기하학으로도 충분히 소주의 건축적 정체성을 훌륭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하학으로 일본에 건축한 폴라 미술관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아이 엠 페이의 뛰어남은 기초 도형인 삼각형과 사각형만으로 각각의 국가적 건축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폴라 미술관은 누가 봐도 일본 전통 건축을 현대화 한 것 같고, 소주 박물관은 중국 소주 건축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이런 것이 대가의 능력일까?
그런데 아이 엠 페이의 건축세계를 보는 동안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갔다. 그것은 건축사를 대하는 중국 공산당 간부인 소주 시장 등의 태도다. 한마디로 영접하는 모습에 감동을 넘어서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 건축사가 아이 엠 페이만큼 성공한 사례도 없고, 세계 건축계에 작품세계를 인정받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이 장면만큼은 정말 부러웠다. 그것은 창작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의미다. 한마디로 업자 취급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이 글의 맨 처음 언급한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 콘서트 홀에 초대 받아 무대에 선 장면과 중첩된다. 우리는 그림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창작가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건축사들은 어떤가? 하나의 훌륭한 건축을 창작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커녕 업자로 취급하는 수준 저열함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그냥 계약에 의해서 수주하는 업자일 뿐이다. 개인적 경험에서도 굳이 오라고 해서 찾아간 개점식에 이름 한번 부르지 않고, 멀찌감치 바라본 수치심이 떠올랐다. 시공사 대표가 한마디 하고, 마을 대표가 한마디 하는데 뙤약볕 밑에서 느껴지는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원래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건축사를 존중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창작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면서 그 역시 한국에서 작업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알게 한다. 일본에서는 이방인이라 힘들었을 것이고, 한국에서는 또 다른 이방인과 건축사에 대한 태도로... 하지만, 마지막 제주도 건축 후원자를 만나서 펼쳐진 그의 에너지와 결과물에서 행복한 말년이었을 것 같았다. 성공한 건축사들의 다큐를 보면서 그들의 치열함이나 건축적 성과보다, 더 멋지고 부러운 점이 이 부분이었다면 조금 거시기 한 걸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
출처 - 이타미 준의 바다, 프랭크 게리의 스케치, 그리고 아이 엠 페이 2019.10 (kiramonth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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